연검의 여신 아랑비아
월지국에 도착한 탁왕자 일행은 곧장 흠차대신 경욱의 집으로 갔다.
자신이 고수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의 왕실이 돌아가는 사정도 듣고 그동안 진행되었을 소도의 건설 상황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 칼날 같은 영봉의 넓은 칼바위 평야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천군으로 내정한 아라방과 그의 여동생이 와있을 테고 사마철도 하선낭자와 함께 미리 와서 여러 가지 준비상황들과 함께했을 것이다.
소도로 함께 들어갈 그들과 어울려 마음을 나눈 다음 아버지 한준왕을 알현한 후 마리산으로 떠나면 탁왕자의 준비가 마무리될 것이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왕자님.”
흠차대신 경욱이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탁왕자 일행을 맞이했다. 그들은 햇살이 밝게 비춰져 들어오는 저택의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응접실은 넓었는데 탁왕자 일행이 들어섰을 때 사마철과 하선낭자, 아라방이 도열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방의 뒤쪽으로 그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소저가 서있었다.
“소녀는 아랑비아라고 하옵니다.”
아라방의 옆으로 걸어 나온 소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공손히 인사했다.
그녀 역시 아라방처럼 온몸과 머리카락이 하얀 전형적인 색목인이었는데 오빠인 아라방처럼 눈동자가 푸른색이었지만 아라방보다 크고 맑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노라니 흡사 깨끗하고 고요한 호수를 보는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여자인 그녀가 이색적이게도 머리카락이 아주 짧았는데 그럼에도 단정하고 예쁜 외모여서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단연 주목을 끌 정도였다.
“그런데, 소저도 무공을 익히셨는지요?”
진혁이 불쑥 물었다. 진혁은 아라방에게 여동생도 함께 무공을 익혔다는 얘기를 해 주었기에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왠지 그가 보기에는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아랑비아였다. 그렇게도 여러 날 들었음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랑비아는 가날픈 몸매의 미녀였다. 왠지 보호해주고 싶다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어서 진혁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했는데 다소 진지하게 말을 하다 보니 그녀에 대해 전혀 모르고 물어보는 모양새가 된 것이었다.
“저는 이 연검(軟劍)과 연편(軟鞭)을 쓴답니다.”
아랑비아가 웃으며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요대(腰帶)를 가리켰다.
아랑비아는 자신의 요대를 허리춤에서 빼어내었다. 두께가 아주 얇은 여러 가닥의 철제들을 정교하게 엮어서 만들 요대였다. 아랑비아는 휘어져 늘어진 요대의 손잡이를 잡고 정신을 집중하여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요대가 단단한 칼날의 모양으로 변했다. 요대가 연검으로 변한 것이었다. 아라방이 탁자에 놓인 과일 접시에서 포도 한 알을 집어 응접실의 출입문 쪽으로 던지자 곧 연검의 길이가 늘어나더니 그 포도의 정중앙을 관통하여 두 조각으로 쪼개버린 후 떨어지는 두 조각의 포도송이를 가볍게 받아내어 돌아왔다. 아랑비아는 연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포도송이 두 조각을 받아내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연검의 위력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한 사람들은 그녀의 희귀한 병장기 다루는 실력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요대로 가까운 곳에 있는 적을 상대할 땐 연검으로, 멀리 있는 적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땐 연편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아랑비아는 웃으면서 요대를 들어 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실력을 보인 아랑비아의 시범을 본 진혁의 얼굴빛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토록 고강한 여인을 가냘프다는 외형만으로 판단했으니 왠지 민망했던 것이다. 진혁을 바라보는 아랑비아의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표나지 않게 번졌다. 아라방도 그 두 사람을 표나지 않게 유심히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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