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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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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3
글자수 :
706,311

작성
18.12.13 18:04
조회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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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신궁 아라방 <1>

DUMMY

마한의 마리산에서 흠차대신 경욱이 소도를 건설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즈음, 탁왕자와 진혁 장군은 사전에 습득한 자료를 바탕으로 절정 고수들을 찾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부지런하게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아라방을 찾기 위한 길을 잡았다. 아라방은 삼한의 중심지인 마한,마한의 국읍인 월지국, 그곳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인 직산(稷山)의 가장 큰 저잣거리인 ¹ 시항(市巷)에 거주한다고 했었다. 외국의 이색적인 물건들을 조금씩 가져와 노점에서 팔거나, 운세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² 천문점(天文占)을 봐주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색목인(色目人)이 아라방이었다.


그러나, 듣기로 일정한 거처 없이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곳에 있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넓은 저잣거리를 다 헤맨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한 정보에 의존하여 탐문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도 있어 최대한의 주의(注意)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아라방을 생각보다 쉽게 찾았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장소부터 찾았는데 그곳에서 아라방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흠차대신은 역시 정보를 수집하여 취합하고 이를 우선순위로 구분해서 제공했는데 꽤나 정확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그는 과연 소문대로 두드러지게 특이한 외형을 가진 무척 잘생긴 색목인 미남자였기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독 돋보이고 있었다. 다만 깨끗한 외관(外觀)을 가졌음에도 ³ 파리한 느낌마저 주었는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영향으로 보였다. 문득 그가 듣던대로 무공을 익힌, 그것도 고수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미리 들은 정보로 인한 선입견이 없이 외형만 놓고 볼 때 아라방은 연약한 사내의 범주에 속할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탁왕자는 그래도 아라방이 처음으로 접촉할 고수임을 감안하니 부담은 오히려 덜했다. 만약 아라방이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신체의 사내였다면 다가서기가 지금보다는 무척이나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라방의 앞에는 천문점을 보기 위해 몇 사람이 도열(堵列)해 있었다. 탁왕자와 진혁은 멀리서 말을 내렸다. 아라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다가가서 줄을 선 사람들의 맨 뒤쪽으로 가서 순서를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진혁의 차례가 되었다. 진혁은 자신의 운세를 예언해 달라고 주문(注文)을 넣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진혁을 한번 슬쩍 본 아라방이 문득 하늘을 쏘아 보았다. 맑고 청명한 하늘엔 구름 한 점도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보이는 듯 한참을 쳐다보던 아라방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며 진혁을 쏘아 보았다. 푸른 눈동자에서 강한 안광(眼光)이 찰라지간 쏟아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일순간 서먹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아라방이 긴장을 날리는 유쾌한 웃음을 던지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앞날이 창창한 게 앞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시겠습니다. 하하”

좋은 기분을 불어넣는 웃음이었다. 아라방이나 진혁 모두 묘한 끌림이 있는 첫 대면이었다. 뒤에서 바라보던 탁왕자도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진혁의 차례가 끝나자 다음으로 탁왕자가 아라방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 앞날은 또 어떨 것 같소이까?”

잠시 그의 얼굴을 보던 아라방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저 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가지신 듯합니다. 아니, 그 이상인 듯합니다. 저와 같이 지나온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대략 석 달 열흘 정도는 걸릴 듯하군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하늘에서 고생하신 시간들에 대한 보상으로 앞으로 꿈꾸는 모든 것들을 다 이루도록 해주시겠다는 대답이 나오네요. 좋은 운세입니다.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이 이루어질 운세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편하게 생각하고 노력하십시오. 다만, 지금은 너무 진지하여 오히려 일을 그러치실 것 같습니다. 하하”

아라방은 두 사람이 함께 온 것을 아는 듯했다. 흰 피부의 아라방이 힘써 웃으니 주변이 밝아진 듯 화사했다.

“옜소, 오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무척이나 좋소이다. 그래서 더 드리는 것이니 사양하지 마시고 받아 주시오.”

탁왕자는 동전 (銅錢)을 다섯 냥이나 건냈다. 동전 (銅錢)은 철전(鐵錢)에 비해 열 배정도의 가치가 있는 돈이었다. 아라방은 통상 한 냥의 철전을 복채(卜債)로 받고 있었다. 복채로는 상당히 큰 돈이었다. 물론 먼저 점을 본 진혁의 복채도 포함된 것이었다. 머뭇하던 아라방은 탁왕자와 눈웃음을 교환하더니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느낌이 온 듯했다.


아라방과 첫 대면을 마친 탁왕자와 진혁은 상점들이 줄지어 이어진 혼잡한 골목의 어귀까지 다시 걸어 나왔다. 처음 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적한 평지에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고 주변은 잘 정돈된 평지였다. 가끔씩 밭 모양의 농지가 보였다.

“이곳에 앉아서 아라방을 기다리시지요.”

진혁이 반듯하게 둥글고 납작한 바위 두 개를 발견하고 탁왕자의 승낙을 구했다. 어찌보면 탁자 같기도 하고 의자 같기도 한 모양이었다. 보기에도 편한 모양새였다.

탁왕자가 둘 중에서 길이가 긴 바위에 먼저 앉았고 잠시 후 진혁이 그 옆쪽에 앉았다. 아라방이 오면 앞쪽의 바위에 앉으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아라방이 영업을 마치면 이곳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약속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만날수 있다는 확신은 컸다.

“이곳이 저잣거리의 입구이자 출구이므로 아라방은 반드시 이쪽으로 올 것입니다.”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주위를 살핀 진혁의 계산에 의하면 주변에 상점을 제외하고 민가는 없었다. 따라서 영업을 마친 사람들은 상인이나 손님이나 관계없이 이곳을 거쳐야 했다. 다른 쪽으로 갈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을 것으로 확신한 진혁이 자신있게 대답한 이유였다.


“사실, 절정 고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아라방처럼 연약한 몸매의 미남자가 그런 반열에 들어갔다는 것은 무척이나 경이(驚異)롭소이다.”

탁왕자가 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수라고 하면 우락부락한 거한을 떠올리게 되는 건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처음 아라방을 먼 발치에서 보았을 때 아라방이 과연 진정한 고수일까하는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천문점을 보면서 그 생각은 확 달아나 버렸습니다.”

진혁이 잠시 두 눈을 손으로 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까 제 눈을 녹일 듯 쏟아낸 아라방의 안광은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제 눈은 물론이고 온몸도 불에 데인 듯 뜨거웠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런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리라곤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분명 아라방은 우리가 듣거나 생각한 그 이상의 절정 고수일 것입니다.”

진혁은 이번엔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탁왕자에게 말했다. 익살스런 느낌이 동반되는 행동이었다. 여유가 묻어났는데 기분도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문득 바위 옆에 우뚝 솟아있는 자작나무의 둥글고 넓은 잎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화사하고 편안한 느낌이 묻어들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던 가능할 것 같은 아련한 기운이 늦은 오후를 여유롭게 감싸고 있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희미한 불빛 같은 후광을 드리운 인영(人影) 하나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왕자 일행은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주변의 공기흐름이 호젓하였기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얼핏 엄습(掩襲)을 가하는 기세로 느껴질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희미한 인영은 그런 갑작스런 변화에도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별다른 반응조차 없었다. 당연히 만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은 것처럼 여유가 있었다. 그는 웃으며 조용히 다가왔다.

“많이 기다리게 해서 송구합니다.”

아라방이었다. 아라방은 탁왕자 일행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벌써부터 꿰뚫고 있었다. 탁왕자와 진혁은 아라방의 정확한 예지력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그들의 첫 조우(遭遇)가 시작되었다.

우연히 만난 듯했지만 그러나 숙명의 만남이기도 했다. 아라방과 탁왕자, 그들은 필생의 사명을 기꺼이 같이 짊어질 운명이었다. 책임지고 들어가야 할 운명의 문을 그들은 흔쾌히 열어젖히며 들어갈 것이다. 삼한에 다가오는 운명의 순간들을 책임져야 할 영웅들의 인연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¹ 여러 가게들이 죽 잇대어 있는 거리, 저잣거리

² 천체의 운행에 관찰하여 앞날의 운수나 길흉(吉凶)을 미리 판단하여 예언하는 일

³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이 핏기가 전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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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환담 <1> 19.01.08 193 4 10쪽
41 연검의 여신 아랑비아 19.01.08 210 4 4쪽
40 귀환 19.01.08 223 4 9쪽
39 언월도의 달인 조동일<4> +2 19.01.06 326 4 24쪽
38 언월도의 달인 조동일<3> 19.01.03 236 4 10쪽
37 언월도의 달인 조동일<2> 19.01.03 243 4 12쪽
36 언월도의 달인 조동일<1> 19.01.02 260 4 15쪽
35 천하제일권 사마철<4> 19.01.01 266 4 11쪽
34 천하제일권 사마철<3> 18.12.31 255 4 18쪽
33 천하제일권 사마철<2> 18.12.29 260 4 22쪽
32 천하제일권 사마철<1> 18.12.28 293 4 11쪽
31 맹인 검객 선우이치<3> 18.12.27 302 4 18쪽
30 맹인 검객 선우이치<2> 18.12.27 274 4 20쪽
29 맹인 검객 선우이치<1> 18.12.26 280 4 13쪽
28 삼한제일검 길태곤 <3> 18.12.21 316 4 25쪽
27 삼한제일검 길태곤 <2> 18.12.20 317 4 21쪽
26 삼한제일검 길태곤 <1> +2 18.12.19 331 4 15쪽
25 신궁 아라방<5> 18.12.18 306 4 12쪽
24 신궁 아라방 <4> 18.12.17 309 4 13쪽
23 신궁 아라방 <3> 18.12.14 368 4 21쪽
22 신궁 아라방 <2> 18.12.14 376 4 12쪽
» 신궁 아라방 <1> 18.12.13 410 4 9쪽
20 검증의 요건 18.12.13 393 4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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