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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프리 님의 서재입니다.

과거만 가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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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프리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8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0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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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추천수 :
0
글자수 :
44,390

작성
24.05.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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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김치찌개(2)

DUMMY

4화 김치찌개(2)


솔직히 나에게 김치찌개란.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 났다.


매일 아침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먹어 봐라.


그러니 너도.


“장난하지 마.”


점심에도 콜이라는 사인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김용태였다.


권하는 나도 정말 싫지만, 오늘은 왠지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왜일까?


“내가 장남으로 보이니.”

“꺼져, 이 미친 새끼야.”


이놈의 저의가 뭘까, 아침에 먹고 또 먹자는 의도가 뭘까.


김용태가 그걸 알고 싶은지 내 얼굴을 이리저리 관찰했다.


그러다 3초 정도 생각하고는 말했다.


“저번에 내가 소고기 많이 먹은 거 인정. 오늘은 적당히 먹을게.”

“적당히? 몇백이 나왔는데?”

“그랬냐? 에이, 너한테 푼돈이잖아.”

“음, 푼돈이긴 하지.”

“자랑이냐.”

“자랑 따위 절대 안 하지. 나는 세상 아무도 모르는 졸라 부자가 컨셉이니까.”

“미친놈. 어쩌다 돈이 많은 건지.”

“말했잖아. 김치찌개 때문이라고.”

“그게 말이 되냐.”

“돼! 나처럼 많이 먹어 봐.”


고등학생 아침으로 나는 어머니에게 큰 걸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친히 당부했다.


“매일 먹어도 안 지겹니?”

“안 지겨워요. 매일 생각나는 맛이에요.”

“내 아들이지만, 참 별나. 보통 고기반찬 해달라고 할 텐데.”


돼지고기를 넣기보다, 진한 멸치 육수에 김치만 넣은 걸 원했다. 그게 국물 맛이 더 진했고, 입맛을 더 자극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만.


아무튼, 나는 나만의 특정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으로 가장 빠르게 과거로의 초연결.


쓸데없이 더 먼 과거는 안 돼.


무조건 오늘이어야 해.


오늘도 독하게 밥을 말아 먹은 아침 김치찌개. 정말이지 몸서리를 치며 입에 넘기지만.


다른 한편, 이건 본래 미래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내 최선의 방편이기도 했다.


아내의 김치찌개는 내 최애 요리였다.


"아, 몰라. 먹기 싫어. 그 집 조미료 넣는단 말이야."


고래 소리 지르며 내 점심 선택을 말리는 김용태였다.


“알고 있어. 그래서 맛있잖아.”


알고 있었다. 아내가 몰래 넣은 것을 봤다. 짐짓 모르는 체하고 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지금은 그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들어갈 거야, 말 거야?”


김용태의 투정을 듣다 보니, 어느새 식당 건물 앞에 도착했다.


소문난 김치찌개 집?!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한 듯 매장 안은 한산했다.


나는 지체 없이 식당의 문고리를 잡았다.


“진짜 이러기냐. 제발.”


김용태가 백허그를 하며 저지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킥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저리 안 꺼져. 창피하게 왜 그래.”

“꺼져줄 테니, 제발.”

“먼저 꺼지라고.”

“알았어. 그러니.”

“먹을 거야. 아니, 먹어야 해.”

“진짜 뭔데! 오늘 뭐가 마음에 안 든 거야. 뭐? 그 여자가 이쁘다고 말한 거?”

“그게 하루 이틀이냐. 말하면, 고칠 거야?”

“있었구먼. 당연히...”


별 의미 없이 곁눈질한 김용태였다. 그런데 무얼 봤는지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야, 빨리 들어가.”

“왜?”

“그냥 들어가. 안 그러면, 너 죽어.”

“죽어?”

“빨리.”


나는 그러지 않았다. 수작 부릴 것 같은 예감에 몸을 돌려 김용태의 시선을 추적했다.


하물며 죽음 따위를 무서워하는 나일까.


“난 최선을 다했다. 그것만 기억해라.”


최선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등을 떠밀어서라도 나를 밀어 넣어야 했다.


빌어먹을.


같았다.


나와 너무 같았다.


“...”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쯧쯧.”

“...”

“이거 어쩌냐. 곧 쪽팔려서 죽겠네.”


얼핏 봐도, 동일한 브랜드를 상징하는 가운데 상표가 너무 눈에 띄었다.


튀지 않으려고 일부러 짙은 회색 츄리닝을 골랐는데, 상표까지 고려하지 못했다.


궁색하게 다른 점을 찾는다면.


내 목깃이 그에 비해 브이넥처럼 무지하게 늘어났다는 거?


다행히 아직 그는 땅만 보며 걸었다.


지금 그대로 쭉 가라.


아니, 평행선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게 가야 했다.


제발.


누가 방향을 틀었을까, 우리는 운명처럼 서로를 보게 되었다.


이제 그 평행선이 충돌하면 어떤 소리를 낼까.


“헉.”

“헉.”


나를 향한, 너를 향한 탄식이 나왔다.


이 정도면 서로 얼굴을 돌리고 갈 길을 갈 텐데, 특이하게 무언가 궁금한 게 많은 듯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물었다.


“어디서.”

“얼마에.”


사셨냐고, 나올 차례에 남성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눈동자를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 금세 멈추고 말았으니까.


축 늘어진 내 목깃. 


그럼 그렇지, 그가 눈으로 말하며 확연하게 얼굴색을 바꿨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자기 목깃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놓았다.


팟, 신축성 있게 원래대로 돌아간다.


피식.


피식?


아까 전 김용태가 이렇게 웃고 사고를 쳤는데.


그는 짝퉁 따윈 상대 안 한다고, 머리를 작게 흔들며 가던 길을 마저 떠났다.


“내 것도 진.”


김용태가 내 어깨를 잡았다.


“늦었어. 이미 늘어났잖나. 그것도 너무 추레하게.”


정말 후회막심하여 견딜 수 없었다.


김용태, 이놈이 억지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나를 그윽하게 봤기 때문이다.


불쾌하다.


이 불쾌함이 머리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는다.


오늘의 내 존재를.


“죽이고 싶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도플갱어처럼. 어쩌냐. 쪽팔려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큭큭.”

“...”


윗입술이 삐죽 올라갔다. 김용태를 노려보는 척 정신을 집중하여 바로 왼쪽 눈에 과거를 불러냈다.


밝게 빛난 장면 속에서 구차하게 소고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본연의 김용태가 보인다.


“소고기를 선택했으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안 그래?”


으쓱 어깨를 올리며 말하는 김용태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과거를 닫았다.


저 악독한 입술에 반짝반짝 기름칠해 줄 수 없다.


내가 더 참을 수 없는 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어차피 경험했고, 내 정신에 오롯이 남았기 때문이다.


“넌 평생 김치찌개가 답이다. 얼른 들어가!”


김용태의 등을 세게 밀었다. 끄응, 소리를 내며 억지로 버티며 섰다. 이게 자신에게 승기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어쭈. 더치페이할까?”


김용태가 내게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그의 논지는 단순했다. 밥은 부자가 무조건 사는 거다.


“해.”

“해?”

“어, 어. 아니. 당연히 네가 사야지.”

“뭐야, 벌써 꼬랑지 내리고. 재미없게.”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지금 내 운명이 여기에 있어.”

“또? 누군데.”

“고맙다, 담아. 김치찌개 선택해 줘서.”


[손 점, 당신의 운명을 봐 드립니다.]


아까는 없었던 것 같은데, 골목길 한 귀퉁이에 돗자리를 펴고 조그마한 책상 하나를 두고 앉아 있는 한 점쟁이를 발견했다.


색안경 때문인지 몰라도, 이런 유의 직업은 보통 연륜 있는 사람이 할 법한데.


대단히 젊은 여성이라.


게다가 뛰어난 미모까지.


하트 뿅뿅을 날리는 김용태와 달리,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봤다.


운명을 볼 수 있다고?


어떻게?


그건 과거가 아닌 미래인데.


이렇게 속 편히 웃고 있지만, 내 운명을 찾으려고 떠난 지 몇 년째일까.


이제는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그나마 김용태를 만나 내 운명을 부단히 견디고 있을 정도였다.


“점 보실래요?”


김용태와 얼굴이 마주친 그녀가 먼저 물었다.


금세 설레는 표정으로 간이 의자에 털썩 앉는 김용태.


“볼게요. 볼게요.”

“일행분도.”

“당연히 보죠. 빨리 앉아.”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설레발을 치며 나를 부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앉고 말았다.


단, 앉는 과정에서 김용태의 등을 무릎으로 세게 밀쳤다.


“으응? 왜에?” 


목소리가 변했다.


“...”

“...”

“...” 


침묵이다. 누구 하나도 입을 열지 않는다.


“입 닥치고, 점이나 봐.”

“알았어. 어떻게 하면 되죠?” 


원래 목소리로 돌아왔다.


“오른손 좀 주실래요.”

“네?”

“네, 오른손이요.”


김용태는 오른손보다 왼손을 내밀고 싶었다. 오른손등에는 붉게 물든 긴 흉터가 있었다.


“제가 오른손에 큰 흉터가 있어서. 이게 어떻게 생겼냐 하면.”

“다친 거겠죠.”

“그, 그렇죠.”

“죄송해요. 제가 운명을 볼 때 집중해야 해서.”

“그럼요. 그럼요. 집중해야죠. 제대로 보려면.”

“이제 시작할게요”


그런데 특별했다.


김용태의 오른손을 잡은 그녀가 유심히 손금을 보는 게 아니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응?


감은 두 눈에 숨겨진 눈동자가 매우 격렬히 움직이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마치 무언가를 읽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략 30초 정도.


그동안 김용태, 이놈은 뚫어지게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만. 봐. 라.”


이를 꽉 물고 들릴락 말락 내가 말했다.


김용태는 들은 체 만 체 푹 빠진 얼굴로 볼 뿐이다.


“우와, 이런 운명은 처음 봐요.”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한 말이다. 가까이서 빤히 보는 김용태를 보고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네? 제 운명이 어떤데요.”

“세상에, 당신은 전생에 큰일을 했나 봐요. 이렇게 운빨이.”

“풋!”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운빨이란 단어도 그렇고, 아무리 점으로 사기를 쳐도 이런 점괘는 오버였다.


복비 5만 원을 받으려고 이런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니.


하긴 30초에 5만 원이면 엄청나게 센 금액이다.


“왜 웃나요? 저는 본 대로 말한 거예요.” 

“웃으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닌데. 제 능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무슨 무시에요. 아주 정확한데. 더 말해주세요.”

“그럴까요. 근데 더 들으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합니다.” 

“...”

“...”


김용태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뭐해? 돈 내.”

“돈 맡겨났냐.”


스윽.


그녀가 명함을 책상에 내밀었다.


[Pro. 오설아.]


아래에 계좌 번호가 쓰여 있다.


꼴에 프로라고 비웃고 싶지만, 그녀의 점괘를 듣고 싶었다.


나란 존재를 알아챌 수 있는지.


띵동.


“우와, 이렇게나 많이. 귀인이 여기 있네요.”

“그냥 돈이 많은 겁니다.”

“정말 부럽네요. 아.”


오설아가 김용태의 눈을 마주하며 다시 말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든 성공할 팔자에요. 사고를 쳐도 말이죠.”

“네?”

“네라뇨. 이거 말고 더 좋은 운명이 어딨어요.”

“...” 


김용태가 원하는 답변은 이런 게 아니었다.


여기 있네요. 나의 운명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답변을 바란 것도 아니지만.


“아니, 그거 말고. 진짜 제 운명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보실래요?”


오설아가 김용태의 말을 끊고 불쑥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잡을까, 말까.


잡으면 기본 5만인데.


“볼 수 있을까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당연하죠.”


나는 오설아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잡기 직전, 이 순간을 정확히 기억했다.


슬쩍 왼손에 찬 시계를 봤고.


골목길에 스며든 음식 냄새와.


허탈하게 오설아를 보는 김용태까지.


전부 세세히 기억 속에 새겨넣었다.


그래야 내 점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30초가 안 걸렸다.


“저기, 조금 있다가.”


김용태와 다르게 눈을 뜨자마자 말하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렸다.


“괜찮으니, 말하세요.”

“조금 있다가.”

“네.”

“...죽어요. 당신.”


죽어요. 죽어요.


나는 수십 번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들었다.


그리고 이 말도.


“그것도.”

“심장에 칼이 찔려서?” 


그때 오설아가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놓았다. 지금까지 내 손을 놓고 있지 않은 그녀였다.


“그걸 어떻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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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만 가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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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붉은 눈 24.05.16 3 0 13쪽
7 7화 대비 24.05.15 3 0 12쪽
6 6화 다른 과거 24.05.14 6 0 13쪽
5 5화 츄리닝 남자 24.05.13 5 0 12쪽
» 4화 김치찌개(2) 24.05.10 7 0 12쪽
3 3화 김치찌개(1) 24.05.09 8 0 12쪽
2 2화 두 번의 과거 회귀 24.05.08 13 0 12쪽
1 1화 버려진 과거 24.05.08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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