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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프리 님의 서재입니다.

과거만 가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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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프리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8
최근연재일 :
2024.05.16 13:00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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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추천수 :
0
글자수 :
44,390

작성
24.05.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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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김치찌개(1)

DUMMY

3화 김치찌개(1)


내 나이 5살, 1988년 10월에 보내는 병원 생활은 갑갑했다.


새하얀 침실에 누워 천장을 보며 내 행동을 복기했다.


분명히 계획대로 관심을 돌렸어. 단 하나만 빼고.


“간과했어. 내 몸이 5살이라는 걸.”


고작 키 110cm도 안 되는 나는 2층 높이의 무시무시함을 몸소 배웠다.


떨어질 때 제대로 된 착지는커녕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돌부리에 허리가 찍히고 말았다.


풀썩, 엉덩이로 주저앉아 타박상을 입는 정도로 예상했는데.


그게 너무 크게 빗나갔다.


“하반신 불구라.”


움직이라는 신호를 줘도 허리 아래는 결단코 거부했다. 솔직히 이건 간과가 아니라 무모했다.


그러니 한동안 의식을 잃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살아난 것에 감사하자.


죽을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서는 안 돼.


그러면 현재도, 미래도 없어.


그리고.


"과거로 가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과거로 향할수록 내 원래 미래와 점점 멀어지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드르륵.


생각을 정리할 때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분. 일부러 나는 애틋하게 바라봤다.


원인 제공은 내가 했는데.


삼십 분 전, 서로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고 내 앞에서 크게 다투었다. 두 분 다 아까 일로 상당히 미안한 모양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나는 그간의 사정을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특별히 1인실에 입실했을뿐더러.


주스를 들고 온 사기꾼이 병실 밖에서 아버지를 찾았으나, 아버지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냈다.


“담아. 아빠가 최고의 의사를 데려올 거야. 그러니.”


아버지가 내 하반신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의 눈물을 또 볼 줄이야.


어머니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몸서리치게 흐느꼈다.


지금이 더 슬펐구나.


“엄마.”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덜덜덜.


단순한 떨림이 아니었다. 특정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내 과감한 선택 때문에 오늘 이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볼 것만 같은 불안감이 올라왔다.


“엄마가 너무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아직도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봐야 한다. 제발 보세요. 그래야.


지금 당장 없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런 일을 경험하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어두운 미래는 애초에 만들지 말자.


그날 밤 두 분이 자리를 비울 때 바로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해야 도장을 찍지 않을까.”


무한대로 능력을 사용하면, 생각만 하는 계획에 고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계획을 직접 몸으로 다 실행해 보고, 가장 적합한 걸 찾으면 됐다.


할 수 있을까. 두 번이면 여러 번도 될 수 있잖아.


먼저 연습 차원에서 1분 단위로 한 차례, 두 차례.


11시 58분. 11시 57분.


그렇게 수십 차례 과거로 돌아갔다.


"이런 미친. 무한대잖아."


이 어마어마한 능력이 문득 무서워졌다.


능력이 큰 만큼 위험도 도사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용할 때마다 내 정신을 확인했다.


나는 누구지.


현재 어디에 있지.


내 아내와 딸아이의 이름은.


과거로의 이동은 정신을 붕괴시키거나, 왜곡시키는 일을 일절 발생시키지 않았다.


“해보자. 하나씩 장면을 만들어가는 거야.”


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탁월하게 미래로 간다.


테이크 원.


때론 부모님은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다. 매번 허튼소리 같아도 아이는 진심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 처음부터 이 방법은 주인공의 실체를 곧바로 드러내야 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아버지가 너무 기가 막힌다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참을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자아냈다.


“아빠, 도장 찍지 마세요. 아시죠? 가족끼리라도 보증은 서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페.”


순간 페이퍼 컴퍼니란 단어까지 말할 뻔했다.


“너 어디서 그런 말을. 아니다. 담아, 어른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란다. 네가 무슨 생각으로 말하는지 모르지만, 아빠와 이 아저씨는 서로 안 지 30년이나 넘었어.”


내 폭탄 같은 발언에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억지 미소를 짓는 사기꾼이었다.


“담아. 아저씨는 그런 사람 아니란다. 형님과 나는 호형호제야.”

“전 아저씨가 어떤 분인지 몰라요. 아빠, 사업장에 가봤어요? 그 주소지가 맞는지 확인했어요?”


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사기꾼에게 얼굴을 돌렸다.


됐어.


아닌가?


아주 잠깐 눈살을 찌푸리는 사기꾼을 아버지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당돌한 내 태도에 미안함을 감출 줄 몰랐다.


“자네에게 미안하네. 우리 아이가 고집이 너무 세.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봐. 여보, 담이하고 방에 들어가세요.”


아버지는 최대한 화를 억누르는 말투였다.


어머니도 동의했는지 반박하지 않고 대뜸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두 분 다 내 말솜씨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을 마냥 숨기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담아, 들어가자.”


들어가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기부터 내가 만든 두 번째 장면이다.


“싫어요. 이거 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이번엔 본연의 아이답게 강하게 생떼를 써서 어머니가 손쓸 새도 없이 그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잡아들었다.


이제 갈기갈기 찢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만해!”


짝!


찢으려는 찰나에 나는 그만 뺨을 먼저 맞고 말았다. 아버지의 손이 내 손보다 더 빨랐다.


쿠당!


제대로 뺨을 맞은 나는 훅 날아가 거실에 내동댕이쳐졌다.


“여보!”


어머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왔다.


더 놀란 건 아버지였다. 떨고 있는 자기 손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담아, 괜찮니?”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나는 느낄 수 있다. 왼쪽 뺨에서 서서히 뜨거운 열기가 오르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


이 상황에 제일 경악한 건 되려 사기꾼이었다.


두 손 놓고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자기 계획이 물거품으로 끝날 것 같았다.


남들이 볼 새라 금세 질겁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계약서를 줍고는 슬며시 뒤로 숨겼다.


“이담. 두 번 말 안 해. 당장 방에 들어가.”


일부러 들으라고 엄중하게 말했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음 장면으로 나가게 해주었다.


나야말로 손쓸 새도 없이 강압적으로 힘에 밀려 방에 들어갔기도 했고.


운 좋게 계약서를 찍은 적도 있지만, 두 장이 있을 줄 몰랐다.


아예 처음부터 더 전문적인 분석과 용어를 사용해도.


여러 방법의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바꿀 수 없는 운명처럼, 아버지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때리는 장면이 갑자기 연출되었다.


아버지가 때려? 한 번도 손찌검하지 않은 분인데.


왜 그랬지.


이유는 알 필요가 없었다. 이건 국면을 전환할 나의 기회였다.


처음에는 너무 아파 정신이 얼얼했다.


어떻게 반응하지?


몇 차례 더 맞자, 솔직한 마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씨, 졸라게 아파 뒈지겠네.


“엄마... 나... 머리가...”


나는 머리를 잡고 쓰러졌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시늉을 했다.


“나, 살려... 줘요. 으윽.”


돌고 돌았지만, 역시 답은 처음 생각한 게 맞았다. 돈보다 아들의 생명이 더 소중했다. 드디어 한목소리로 두 분이 나에게 관심을 돌렸다.


“담아!”

“담아!”


그런데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여러 차례 맞은 충격이 컸던 탓인지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흐음. 여기는.”


다시 눈을 떴을 때, 새하얀 침실과 천장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 하반신은 살아 있었고, 다만 누군가는 죽어지내야 했다.


“담아.”

“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여기에 올 자격이 없어요.”

“담아.”

“말하지 말라니까요.”


아버지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이러다 나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날 것 같았다.


“흑흑. 아빠, 다음부터는 제가 주제넘게 행동하지 않을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담아. 이건 명백히 아빠 잘못이야.”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괜히 어디서 본 걸 가지고 따라 해서.”

“그런, 말하지 마. 아빠가 죽을죄를 지었어.”

“제가 너무 주제넘었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흑흑.”


먼저 책임을 나에게 넘겨 최대한 미안하게 만들었다.


이러지 않았다면.


어찌 파탄은 막아도 앞으로 피곤할 일이 산더미처럼 몰려왔을 터이다.


우습게도 내 능력이 미안함이란 감정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 뒤로 여느 부모처럼 집안에 신동이 태어났다는 극성을 경험해야 했다.


하나 더 예방이 필요했다.


내 편이 되어줄 사람.


어떤 상담가가 내 편에 서는 전문적 소견을 낼까.


“담이는 언어 천재입니다.”


땡.


“150, 충분히 넘을 겁니다. 아이큐 검사를 받아야겠어요.”


땡.


“다른 아이처럼 평범하게 대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별하다고 부모가 일일이 참견하면, 반항심이 더 크게 생길 아이죠.”


딩동뎅.


나에 대한 관심을 확실하게 줄였다. 단, 드러난 만큼 그 결과를 이후 보장했다.


“세상에, 중학교 내내 전교 1등이라니.”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마세요. 담아, 너무 무리해서 하지 마.”


무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 시험 문제와 답을 미리 엿봤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편법만 쓰지 않았다. S대 갈 정도로 전에 공부했고, 지금도 지식을 충분히 쌓고 있다.


결국, 학창 시절 내내 간섭받지 않고 자랐고.


이 과거로 온 목적, 가족의 후회 가득한 삶은 일절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 인생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등장했다.


“무슨 의미지.”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서 알게 된 맨 오른쪽 장면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뜻했다.


나란 존재의 나비 효과일까.


정말 작은 날갯짓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때론 일어나지 않았다.


지극히 사소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용돈벌이로 참가한 동네 마라톤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우천도 아닌 대회 그 자체가.


큰 사건이 아니라고 무심코 넘어갈 수 있지만.


그걸 나에게 비추어 생각하니, 단순하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확신하지 말자. 미래는 알 수 없어. 불확실해.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다행히 그때 의식을 차려서 망정이지 그날에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면, 내 운명은 과거에서 끝이 날 팔자였다.


내 아내도.


내 딸아이도.


영영 보지 못할 뻔했다.


확실한 대비가 있어야 했다.


“먼저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도, 껴들지도 말자.”


그 결심이 이후 내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능력이 빼어날수록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평범한 무리에 섞이기로 했다.


더 말고, 딱 중간만 하자. 있는 듯 없는 듯.


부모님이 원하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더 확실한 것으로 채워주자.


“S대 보다 인서울로.”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게 나를 단련해야 해.”


그리하여 권투를 배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감지 않는 훈련을 했다.


어떻게든 왼쪽 눈만 뜨자.


그리고.


“툭 치면 떠오르는 과거를 연상하는 거야. 찰나의 위기에도 나올 수 있는 그런 거.”


언제든지 내 정신을 특정 과거로 즉각 연결할 장면.


그게 무엇일까.


가장 기억나는 것.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


생뚱맞게도 나에게 그건 김치찌개였다.


“그만 좀 먹자, 김치찌개! 지겨워 죽겠다.”


김용태가 바득바득 성질을 냈다.


내가 말했다.


“이 김치찌개가 내 부의 비결이다. 네가 뭘 알겠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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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만 가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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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붉은 눈 24.05.16 2 0 13쪽
7 7화 대비 24.05.15 3 0 12쪽
6 6화 다른 과거 24.05.14 6 0 13쪽
5 5화 츄리닝 남자 24.05.13 5 0 12쪽
4 4화 김치찌개(2) 24.05.10 6 0 12쪽
» 3화 김치찌개(1) 24.05.09 8 0 12쪽
2 2화 두 번의 과거 회귀 24.05.08 12 0 12쪽
1 1화 버려진 과거 24.05.08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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