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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 (원영모)의 서재입니다.

여족여수(如足如手)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雪野
작품등록일 :
2017.08.07 08:32
최근연재일 :
2017.08.07 13:48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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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6,004

작성
17.08.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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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어릴적 추억 속으로

DUMMY

천안에서 만나 넷째가 운전하면서 떠났다. 넷째가 대천00콘도 회원권을 갖고 있어 편하게 예약한 곳이다.

바닷가 활어 횟집에서 회를 준비하고 편의점에서 야채와 초장을 사고, 콘도에 들어와서 술을 마신다. 친구끼리 아니면 다른 모임에서는 자주 있었던 모습인데도 3형제가 이렇게 콘도로 여행 온 것은 처음이다. 바다냄새와 파도소리에 어울려서 오랜만에 깊은 밤까지 얘기하다 새벽2시가 되어서야 잠을 잔다.


모든 것은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쉬어진다. 형제들 여행도 그렇다. 지난 5월 이후 매월 만나기로 한 약조(約條)도 있으니 둘째가 여차하면 카톡에 올렸지만 6월은 서로 일정이 안 맞아 못 갔다.

7월 여름, 이제는 막내도 포함해서 형제들 4명이‘충주 00콘도’로 놀러갔다. 이곳 콘도 바로 뒤에는 ‘한포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깨끗한 물도 좋지만 피라미가 많이 잡힌다. 막내는 다른 것은 몰라도 ‘도리뱅뱅이’를 꼭 해 먹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참석했다.

물고기 잡는 것만큼은 모든 형제가 즐긴다. 어릴 때 툭하면 냇가로 물고기 잡으러 다니던 형제들이다. 그 당시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것이 피라미를 고추장에 조려서 주는 요리다. 그 요리를 좀 더 발전한 것이 ‘도리뱅뱅이’이며, 형제들의 뿌리를 일깨워주는 요리다. 막내가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물이 있는 곳에 가면 당연히 물고기를 잡는다.

형제들 중에서도 넷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물고기 잡는 것에는 귀신이다. 물고기가 없어도 잡는다. 평상시에도 어항을 차에 싣고 다닌다. 집사람이 워낙 민물매운탕을 좋아해서 업무 차 다니다가 시간만 나면 잡는 단다. 민물매운탕을 싫어하는 여자도 많은데, 남편과 부인이 죽이 맞는다. 잘 잡고, 잘 먹으니... 환상의 부부다.

어항을 이곳저곳에 설치해 놓았다가, 30분정도 지나서 어항을 들고 나오는데 유리 속에는 반짝이는 피라미로 가득하다.

한 번씩만 건져 올렸는데도 바구니 한 가득이다. 야트막한 물가에 앉아 피라미 배를 따는 일은 다른 형제들의 일이다. 그렇게 3~4번 정도 반복하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콘도에 올라가 막내가 주문한 ‘도리뱅뱅이’를 만들고. 한편에서는 어죽을 만든다.

그날 저녁 ‘도리뱅뱅이’와 어죽으로 술과 함께 옛 추억에 잠겨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웠다. 늘 어죽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큰형과, 여동생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쉬운 밤이었다.


이렇게 모여서 논지 한 달 지나 8월 중순 1박 2일로 6남매가 울산 정자해변에 모였다. 울산에서 경주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해변이다.

모처럼 6남매 전원이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적당한 장소를 물색 중에 여동생이 거실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내면서 적극 초청한 곳이다. 한창 더운 여름에 여동생은 울산 정자 해변 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파도소리 들으며 시원하게 보내고 있었다. 사업차 내려간 남편 따라 있으면서 형제들을 초대한 것이다.

큰형은 대구에서 차로 내려오고, 둘째, 넷째는 천안에서 KTX로 출발하고, 셋째와 막내는 비행기로 내려간다. 배만 안탔지 완전 육해공 군사이동처럼 합동작전이다.

도착 시간을 조절해서 여동생이 공항과 기차역으로 픽업(pick-up)을 했다. 창문만 열면 파도소리와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다. 파랗게 펼쳐진 바다와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실에 앉아 있으려니 맞바람이 불면서 시원하다 못해 추울 지경이다.

가까운 횟집에서 회를 떠오고, 미리 준비한 반찬으로 식탁이 가득하다.

모여서 보니 완전 순수 혈통만 모였다. 집주인인 양 서방(여동생 남편)은 서울에 건강검진 약속 때문에 전날 자동차까지 놓고 올라갔단다. 어차피 같은 아들로 칭했는데 함께 못해서 아쉬웠지만, 결국은 부모님만 빠진 예전의 6남매만이 고스란히 모이게 되었다.

40년 전만 해도 늘 6남매가 같은 밥상에 앉아서 먹었던 형제들이다.

서로의 근황은 금방 끝나고, 옛날 얘기로 끝이 없다. 어려서 미처 몰랐던 이야기, 현장에 없어서 몰랐던 이야기, 숨은 비화들···. 밤을 새어도 할 말이 그렇게 많았다. 처음에는 형들이 동생을 부를 때 “0째야!”하던 호칭이“영철아”“정숙아”하면서 옛날 어렸을 적 그렇게 자주 부르던 이름으로 바뀌었는지 오래다. 10대, 20대의 소년 소녀시대로 돌아가 있다.

어느 정도 들뜬 마음도 가라않고 술도 마칠 즈음에 둘째가 묻는다.

“그나저나 형은 그동안 왜? 연락을 끊고 살았수?”

한참을 망설이던 형이 앞에 놓인 술을 단숨에 마시면서 말한다.

“내가 너희들한테는 사실 할 말이 없어. 내가 예전에 교통사고 낸 것은 알고 있지?”

“그때 엄마 돌아가시고 바로 교통사고 낸거요?”

여동생이 눈이 동그래서 묻는다.

그랬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동생들과 서먹하던 상황에서 늦은 밤 집에 오는 길에 사람을 쳤는데 젊은 여자였고 중상이었다. 형사 입건까지 되었지만 피해자 가족과 겨우 합의하면서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합의하는 과정에 둘째의 역할이 컸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그 얘기가 지금 새삼스럽게 나온다.

“그때 보험처리하면서 합의금도 주었는데, 다친 여자애 오빠라는 놈이 완전 조폭이야. 조폭 중에서도 우두머리나 되는 모양이야? 아예 동생이 죽었으면 그때만 슬프고 마쳤을 텐데,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된 거야. 그 이후에도 동생 볼 때마다 툭하면 집으로 똘마니들 보내서 보통 행패부리는 것이 아니야. 돈도 숱하게 뜯기고 우리 애들을 제 동생처럼 반병신 만든다고 엄포가 엄청 심했어.”

“아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든지? 아니면 우리 형제들한테라도 말을 하지 그랬어요?” 둘째가 나름 합의까지 해 놓은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니 은근히 책임을 느끼면서 한마디 한다.

“야!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경찰에 신고하는 즉시 딸들은 볼 생각을 말라는 거야. 또 너희들하고는 그때 말할 겨를도 아니고 해 본들 똑 같잖아.”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유?”

막내가 당시 상황을 모르던 참에 궁금해서 한마디 한다.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갔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서는 거기까지 와서 행패 부리더라고. 결국 재산 다 털리고 멀리 피한다는 것이 대구로 도망 온 거야. 애들은 애들대로 알아서 살라하고 겨우 지금까지 왔다. 아직도 그 놈들이 찾는 것 같아서 너희들한테도 연락을 못했다.”

자식들도 연락이 끊겼다가 몇 년 전부터 겨우 연락이 닿았단다. 그사이에 막내딸도 시집갔고, 저희들끼리는 그럭저럭 살아간단다. 나이 먹어 겨우 아파트 경비원을 한다지만 그것도 경쟁이 심해서 힘들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없는지라 사는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누구한테는 길 것이고, 누구한테는 짧은 세월이지만 큰형으로서는 엄청 길고 험난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맏이로 부모님의 유일한 재산을 독차지하고서도 제대로 모시지도 못했고, 그 재산까지 다 날렸으니 동생들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차마 힘들더라도 잊고 싶었단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감희가 새롭다.

함께 뒹굴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지냈던 옛 추억만큼 좋은 처방은 없다.

특히 유난히 동생들을 챙겨주었던 큰형과 함께한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형제들은 저마다 큰형과 겪었던 지난 얘기로 그동안 소원해졌던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큰형은 큰형대로 부모님 돌아가시면서 생긴 동생들과의 괴리(乖離)가 어느새 없어졌다.

6남매는 세월의 흔적을 찾아서 서로 꿰어 맞추며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있다. 파도소리 들으며 밤새 할 얘기가 많다.

넷째의 중학교 때 가출사건, 여동생은 어릴 적 오빠들의 따돌림에 서운했던 일들까지···.

40여년이 훌쩍 지난 옛 얘기를 하면서도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다.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 예전의 어릴 적 철부지모습 그대로다.

자주 만나야겠다. 건강할 때 한 번이라도 더 자주 보면서 지난 얘기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야 하겠다.

한동안 서운한 마음에 응어리를 품에 안고 살았지만, 그래도 만나면 즐거운 것이 피를 나눈 가족이다.

이제는 훌훌 털고 예전의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자면서 술잔을 높이 들었다.

여족여수(如足如手)라는 옛말이 있듯이 형제는 팔다리와 같아 서로 떨어질 수 없다.

6남매는 예전처럼 큰형을 중심으로 여생을 함께 보내자며 밤바다를 바라본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끝-




장남은 왜? 떠나 살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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