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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野 (원영모)의 서재입니다.

여족여수(如足如手)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雪野
작품등록일 :
2017.08.07 08:32
최근연재일 :
2017.08.07 13:48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97
추천수 :
0
글자수 :
16,004

작성
17.08.07 13:42
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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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0년만의 소식

DUMMY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영철은 저녁 뉴스시간에 T.V를 보고 있으려니 소파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요동을 친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데 둘째형 전화다.

“어 형! 웬일이유?”

“여! 동생, 방금 전에 큰형님과 통화했다.”

“뭐유? 큰형님과 통화가 되는 겨?”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큰 질녀 결혼식을 끝으로 큰형과 소식이 끊긴지 10년의 세월이 흘러 듣게 된 소식이다.

“어떻게 통화 된거유? 지금 어디서 사신댜?”

“서랍 정리하다가, 예전에 형수 전화번호 적어놓은 수첩이 있더라고, 혹시나 해서 걸었더니 아직 전화번호가 그대로네. 대구에서 살고 있댜.”

사실 큰형과는 15년 전 부모님 돌아가실 때에 석연치 않은 일로 동생들과 한동안 단절되었다가, 큰딸 결혼식이 있다고 연락 받고 참석한 이후 또 다시 잠적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앙금이 잦아지면 찾겠지 하고 지나쳤는데, 몇 년 지나 연락하려니 모든 연락망이 끊긴 상태다. 어디로 이사 갔는지 조차도 모른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아무리 서운한 것이 있다 해도, 하늘아래 같이 숨을 쉬면서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결국은 경찰서와 동사무소를 통해서 이사 간 현주소로 찾아갔었다. 셋째와 넷째가 대구 주소지로 갔었지만, 주소만 빌려준 집이란다. 그것도 살림집이라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목재소 한쪽에 있는 사무실로 사용하는 천막집이다. 우편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여기서도 큰형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동생이라면서 사정 이야기를 해도, 실제 살고 있는 곳은 모른단다.

“사장님, 저의 형님이 가끔은 이곳에 찾아오나요?”

“글쎄요, 어쩌다 오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딱히 언제 온다고 보장은 못하겠네요.”

“사장님, 혹시라도 저의 형님이 오면 동생들이 찾고 있다고 여기로 연락 주시겠습니까?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명함을 맡기고, 대구 어디에선가는 살고 있으려니 추측만하고 올라온 것이 5년 전이다.

그런데 큰형과 통화가 되었단다. 영철은 전화번호를 받아서 바로 큰형과 통화했다. 10년만의 통화다.

“여보세유?” 큰형 목소리다.

“셋째 영철이유”

“아! 영철이구나?”

“방금 전에 둘째 형한테 소식 들었어유, 그동안 별일은 없었유?”

“나야 그렇지 뭐, 너네는 별일 없었냐?”

10년만의 통화였지만 좀 어눌하기는 해도 목소리는 그대로다. 그동안 별일이야 왜 없었겠나?

자식들 크면서 생기는 일도 있었을 테고, 형 찾느라 헤매던 얘기까지 하려면 할 말이 많겠지만 서로의 안부로 모든 내용이 압축되었다.

조만간 형제들 모두 한번 만나자고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큰형과 통화되었다는 소식은 다른 형제들에게도 바로 알렸다. 영철은 5남1녀 6남매 중 셋째다. 중간 위치이다 보니 형제들에게 연락하는 전달자 역할을 해 왔었다.

예전에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명절이나 생신 때마다 전 가족이 모였기 때문에 굳이 형제들끼리 따로 만날 이유도 없었다. 각자 사는 곳이 달라서 함께 모이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사시는 예산에는 수시로 찾아뵈었기 때문에 형제들 끼리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첫째 형철은 부모님 사시는 예산에서 작은 공장에 다녔기 때문에 부모님을 곁에서 모실 수가 있었고, 둘째 성철과 넷째 정철은 천안에서 사업을 하면서 역시 자주 찾아 뵐 수가 있었다. 반면 셋째 영철은 일산에 살면서 직장 생활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일이 있어야 겨우 내려갈 정도였다.

다섯째 정숙은 자식들 중에서 유일한 딸이라 부모님이 제일 아끼고 정을 주었기 때문에 분당에 살면서도 남편이 대기업 건설회사 임원이라 바쁜데도 불구하고 자주 예산에 내려가곤 했다. 막내 경철은 서울에서 살면서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느라 역시 바쁘다.

그래도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는 모두가 모였고, 형제들이 모였다하면 온 국민의 오락인 고스톱을 밤새워치기도 하면서 형제애가 돈독했다.

부모님이 이북에서 6.25 동란 때 갑자기 피난오시면서 식구들과 헤어지는 바람에 생사도 모를 뿐만 아니라 친가나 외가 통틀어 남한 땅에는 일가친척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달랑 6남매가 전부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해봐야 부모님 집에 6남매가 모이면 다 모이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방학 동안에 어디 외할머니나 이모 집에 놀러갔었다는 친구들이 제일 부럽기도 했었다.

대신에 형제들과 노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우애가 깊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형제들은 똘똘 뭉쳐서 잘 놀았다. 동생들은 큰형의 말 한마디에 기꺼이 따랐고, 언제라도 부르면 쫓아갔었다. 가끔 동생들에게 전화로 호출 령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주 토요일 부모님 집 옥상위에 방수 칠을 다시 해야 하는데, 전부 내려와라.”

그러면 모두가 내려가서 한 아들은 방수액을 사오고, 누구는 옥상에 올라가 청소를 하면서 미리 준비를 한다. 한편에서는 돼지 수육을 만드느라 마당에 장작불을 피운다.

6남매의 식솔까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옥상 방수 공사를 마치고 밤늦도록 떠들면서 노는 재미가 어느 놀이보다 흥겹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큰형이 중심이 되어서 모여야 할 텐데, 그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다.

교직에서만 평생을 바치고 은퇴하신지 10년째 되던 여름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급하게 아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응급처치는 했지만,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는 반신불구의 몸이 되셨다. 가끔 휠체어에 태워서 바깥 공기도 쐬고 하였지만 누가 돌보지 않으면 당신 혼자서는 꼼짝을 못하신다. 병원에서만 1년 동안 간병해도 차도가 없던 어느 날 큰형이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병원 앞 식당에서다.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언제까지 아버지를 저렇게 모실거냐?”

그러자 셋째가 반문한다.

“아니면 다른 좋은 방법이 있나유?”

“내 생각은 지금처럼 병원에 계셔봤자 좋아지는 것도 없고 괜히 병원비만 나가니깐 방법을 찾자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하실거유? 누가 집에서 모셔야 하는거 아녀?”

둘째가 의아해서 묻는다.

사실 전부터 집에서 모셨으면 했지만 선뜻 누가 나서는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각자 경비를 출연해서 병원비와 간병인을 두었던 것이다. 간병인을 두었지만 어머니는 계속 병원에 붙어 사셨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집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아들 마음하고 다른 것이 며느리다.

집으로 모신다 해도, 부모님 집은 옛날 양옥집이라 계단도 많고 모든 여건이 환자를 모시기에는 부적합하고, 가까이 사는 장남이나 천안에 사는 둘째도 개인주택인데다 세사는 입장이라 힘들다. 다른 형제들은 아파트에 살아서 모실 여건은 된다 해도 각자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 넷째가 그나마 병원도 가깝고 집사람이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기 때문에 그중 모실 수 있는 여건만 따진다면 제일 우선권이다. 그러나 방이 3개인 아파트에서 다 큰 아들 딸 각방을 쓰고 나면 남는 방이 없다. 부모님을 안방에 모시고 부부는 거실에서 살아야 할 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새삼스럽게 그 얘기가 또 나오니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나 싶어서다.

“너희들은 부모님 집을 어떻게 하려고 하냐?”

“큰형님 그게 무슨 얘기유? 부모님 집은 왜?”

막내가 무슨 좋은 방안이라도 있나 싶어서 기대하던 참에 집 얘기가 나오니 궁금해서 물었다.

“부모님 집이야, 아버지가 어떻게 되신다 해도 어머니가 계시잖유?”

넷째가 뭔가 낌새를 느꼈는지 불퉁스럽게 말한다.

“아아! 됐다 됐어, 내가 뭔 말을 못하겠다. 그만 얘기하자!”

큰형은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남은 형제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는데 넷째가 먼저 말을 한다.

“큰형이 부모님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아파트사서 부모님을 모시려나 봐유.”

“아니, 아파트를 얻는다 해도 큰형수도 출근하는데 누가 모신다는 거야? 큰형이 언제 너한테 얘기 했냐?”

둘째 형이 의아한 듯 묻는다.

“아버지야 어차피 여기서도 간병인 쓰잖유, 그러니 그냥 아파트로 이사해서 간병인 쓰면서 모신다는 거쥬. 며칠 전에 병실에서 만났는데, 언 듯 그런 얘기 하더라고.”

“아니? 그러면 되는데 왜? 뭔 일이 또 있는거야?”

셋째도 뭔가 이상해서 물었다.




장남은 왜? 떠나 살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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