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통을 치려던 방주는 간신히 화를 가라앉히고는 나직히 말했다.
"꿇려라."
털썩. 봉두난발에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금 전까지
개방의 밀전(密殿)을 이끌고 있었던 개방 장로 비밀수래(秘密受來) 다라나였다. 팔은
뒤로 묶여서 결박당하고 그 위에 다시 굵은 동아줄이 칭칭 감겨 있었다. 눈을 감고
앉아있는 다라나의 얼굴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하여 그런 일을 했단 말인고? 허허허, 장로, 말씀해 보시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개방 방주가 물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이오? 그간 내가 강호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졌다고 이러시는 거요? 대체 나를 이렇게 음
해하는 자가 누구요? 방주 당신이오?”
“네가 아직도 네 죄를 모르고 이런 망발을 하는 것이냐?”
방주 옆에 서있던 여러 사람들 중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의 중년 사내가 나서면서
호통을 쳤다. 금환패도(金環覇刀) 신독(愼獨)이었다.
“대체 내 죄가 무엇이요? 모르는 죄를 어떻게 안다고 한단 말이오?”
“그렇다면 말해주지. 지금 초우지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알 것이다. 강력
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초영이란 소저가 월인지겁을 일으킨 초객대마왕과 관련이
있다는 건 네가 벌써 보고한 사실이니 당연히 알고 있을 거고, 그 소저가 이번에 사
용한 배경음악이 너의 방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 금고에서 나왔다는 증거가 있다. 이
래도 네가 초객대마왕과 연관이 없다고 잡아뗄 것이냐?”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떨던 다라나가 벌떡 일어섰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휘청이던 다라나는 겨우 두발로 서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림마담(武林魔潭) 소심(素心), 당신마저도 나를 못 믿는가?”
방주의 뒤쪽에 서있던 소심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언뜻 눈물이 비치는 듯도 했
다.
“좋아, 좋아, 내 금고에 있던 음악이 어떻게 초영 낭자에게 갔는지 나는 모른다고
해도 소용없겠군. 그래, 신독, 당신이 원하는 게 뭔가?”
“내가 원하다니? 무슨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당신은 지은 죄
에 대한 벌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방주, 어서 결론을 내려주시오.”
“강호가 어지러울 때 적으로 의심되는 자와 내통한 죄는 극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
나 다라나 장로는 월인지겁 때 쌓은 공로도 있고, 그동안 개방을 위해 노력한 점을
감안해... 무공을 폐하고 추방하기로 한다.”
“방주!” 무림마담 소심이 핼쓱해진 얼굴로 외쳤다. 안타까운 눈길이 방주에게서 다
라나 장로에게로 다시 방주로 옮겨갔다. 잠시 소심의 눈길을 받아내던 방주는 결국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시행하라!”
무사는 죽이되 욕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만, 내 비록 어둠 속에서 귀계와 암투가
휘몰아치는 곳에 있었지만 항상 무사로서 강호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건
만, 전부 혼자만의 생각이었구나. 허탈하기 그지없도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성현들의
말씀은 과연 거짓이 아니구나. 그러나 내 어찌 이런 누명을 쓰고 이대로 가만 있을
수 있으리오. 반드시 누명을 벗겨내고 신독을 갈아마시고 말리라.
사지로 몰아넣는 나를 용서하시오, 장로. 하지만 초객대마왕의 눈을 속이려면 이 수
밖에 없었소.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오. 나 신독. 그때는 목숨으로 사죄하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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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하루에 한편씩 올리고 싶은데… 잘 될라나 모르겠습니다.
동도들의 많은 도움 바랍니다.
우리 이벤트에 불 함 땡겨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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