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기를 조금 오래 거슬러 올라가서 하자면...
전 초등학교 2학년, 그 당시엔 국민학교 였지만 어쨌건 그 시절 같은 건물에 사는 형이
드래곤볼을 모으고 있던 터라 그 형네 집에 놀러가서 만화책이란 걸 접하게 된 게 계기였던 것 같네요. 그 나이대는 하루하루 뭐하고 놀까, 뭐 재밌는 거 없을까.. 그런 고민만 하던 때라 티비에서 만화라도 나오는 시간대면 꼭꼭 챙겨보던 때였죠. 그러던 중 정해진 시간에 제한적으로 방영해주는 만화와는 달리 더 풍부한 내용과 시간 제약이 없는 만화책의 존재는 저에게 굉장히 큰 발견이었죠.
그리고 물어물어 만화방이라는 장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던 것 같네요. 종일 책방에서 서성이며 주머니에 얼마 없는 동전을 매만지면서 뭘 빌려가지 뭐가 더 재밌지 몇 시간을 고민하고...그러다 주인 아주머니 한테 눈치 좀 받고 그렇게 제 소년시절를 보냈더랬죠.
수년을 그리 살다가...중2 때였을까 싶네요. 책방에 있는 모든 만화책을 섭렵해 이젠 더 이상 읽을 게 없구나 하는 아쉬움에 별 소득없이 책방에서 나오는 나날들이 늘어나던 건...
버릇이 되어 책방을 가기는 가는데, 가서 볼 건 없고... 그렇게 하루하루 그냥 빈손으로 나오다 제가 본래 소극적인 성격이라 말을 붙이지를 않는데도 문득 책방 누나에게 이리 물었죠. 뭐 재밌는 거 없을까요? 그때 그 책방 누나도 제가 만화책을 많이 읽은 걸 아니 만화책 쪽에서는 더 추천할 만한게 없고, 소설책 쪽을 추천해주더군요. 전 책방을 수천번을 들락달락 거렸어도 소설 책장 쪽은 그전까지 쳐다보지도 않았거든요. 그전까지 읽은 소설책 자체가 갈매기의 꿈 한권이었나 그정도였을 겁니다.
그러다 누나가 추천도 하고 정말 더는 읽을 게 없다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책을 빌렸죠. 그때 추천 받은 책이 사이케델리아 였습니다. 정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1권을 다 보고 그 주에 전권을 다 빌려봤드랬죠. 그림이 없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던 제 선입견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글자 하나, 단어 하나, 문장 들로 이루어진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장면을 그리는 재미는 만화책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렇게 데로드 앤드 데블랑, 다크 문, 드래곤 레이디, 드래곤 라자, 카르세아린, 세월의 돌, 기타 등등등 등등등....많이도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별로 없네요. 그 시절이 딱 대세가 정통판타지가 포문을 열고 차원이동물이 확 떴다가 영지물로 넘어가는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영지물 차원 이동물 이런 말도 몰랐죠. 나중에 가서 돌이켜보니 대세가 그렇게 흘렀구나 하는 걸 알았지..)
한 고2때까지 그렇게 읽으니...점점 그 책이 저 책 같고 이 책이 그 책 같고 그러더군요.
내용이 다 똑같더라구요.
슬슬 장르 소설도 질려갈 무렵, 친구가 소개해준 책이 룬의 아이들 윈터러였습니다. 어우, 재밌더라구요. 역시 잘 쓰는 작가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중,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잽싸게 봤습니다. 데모닉이죠. 그리고 판타지 소설에서 전투 장면 없이 이렇게 몰입시킬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닫게 되었죠. 제가 처음으로 책방에서 안 빌려보고 돈 주고 산 책이 됐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은 판타지가 됐고요.
데모닉 이후로는 뭘 읽어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1,2 권만 읽고 말기를 계속 반복하다 어느순간부터 장르소설 자체를 아예 안 읽게 되더군요...
전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항상 기승전데모닉으로 끝나는지라 별로 안 하는데, 아무튼 제 경우엔 이랬지요. 쓰다보니 되게 기네요. 글 쓸 때는 이렇게 쭉쭉 안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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