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분 추천으로 비주류 마법사 초반부를 읽었는데 재미도 있고 정성들여 쓰신 소설이라 느껴지네요.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서 적어 보았습니다.
많은 게임소설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유저들과 다른 유니크한 방식으로 성장하며 편법을 통해 빠른 성장 또는 금전적인 이득을 얻습니다. 비주류 마법사 역시 다른 마법사들이 '절대' 찍지 않는 스킬을 공부해서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소설들이 독특한 플레이스타일을 조명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허구가 아닙니다. '절대' 찍지 않는 스킬이 있는 게임도 현존하고 그런 스킬만을 골라 찍는 유저들도 실제 존재합니다.
하면 망한다고 다들 말리는 스킬을 왜 찍고 하면 망한다고 소문난 직업을 왜 하냐고 이상하게 여기실 분도 있겠지만 게임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효율적으로 게임해서 뒤떨어지지 않게 성장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ex고수한테 스킬루트 추천받아서 검토없이 따라하는 초보유저들) 다른 사람 안하는 것 해서 돋보이고 싶은 욕구도 유저들에게는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데미지에 도움되는 스킬은 안 찍고 찍지 말라는 스킬(데미지 안 나오고 시간 오래 걸리고 심지어 확률발동으로 인해 가뭄에 콩나듯 성공하는 스킬들)만 찍고 던전에서는 몹 한마리 잡는데 천년만년 걸리는 것도 모자라서 툭하면 죽기 일쑤이니 혼자서는 사냥 못하고 주로 파티 플레이로 레벨을 올리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게임하면 욕을 냅다 얻어먹으니 잘 아는 사람들과 노는 데만 끼거나 아예 사냥을 안합니다. 이런 게임 캐릭터는 재미 없어서 금방 게임 접을 것 같지만 그런 캐릭터의 수는 생각외로 많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캐릭터를 돌리는 유저들이 게임소설에서 흔히 묘사되는 것처럼 게임 초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 거 다해보고 재미없으니 이런 시도도 해보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게임 캐릭터는 한 사람이 여러개를 가질 수 있으니 흔히 말하는 본캐(본래 캐릭터. 가장 강하고 가장 주력이 되는 게임캐릭터)를 어느 정도 키우고 더이상 할 게 없어지면 새롭게 캐릭터를 육성하면서는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는 것이지요. 본캐는 정석대로 키울 만큼 키워 놓았으니 재미삼아 이것저것 해보며 초보는 엄두도 못할 금액을 투자하며 계륵스킬들을 찍습니다. 어차피 돈은 넘치는데다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보니 가능한 것이겠지요. 또한 제대로 된 본캐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계륵만 찍었는데 상성이나 전투에 활용을 잘해서 멀쩡한 캐릭터처럼 전투도 가능하고 성장도 남부럽지 않은 고수들도 있고, 오히려 다른 유저들보다 더욱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전 게임소설 주인공이죠.
비주류 마법사를 읽으며 생각난 유저가 바로... 힘 스탯이 늘어날 때마다 무기 데미지를 늘려주기 때문에 힘 스탯 999를 향해 달리는, 그리고 실제 999를 찍은 분들이 종종 존재하는 모 게임에서 스탯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스킬을 다양하게 습득하여 다채로운 전투를 하기로 유명한 실존 유저 P모씨입니다.
눈에 모래 뿌려 경직시키기, 불붙여 일정 시간 화상 입히기 등등... 보조계열 스킬들은 대부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낮은 데미지를 입히기 때문에 찍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지만 당시 P모씨는 해당 스킬들을 죄다 섭렵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맞는 스타일의 전투를 할 수 있으며 어디 굴려도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었죠. 모자란 데미지는 크리티컬(일정 확률로 몇 배나 되는 데미지를 입힘)확률을 극단적으로 늘려 매 타수마다 크리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충한다고 들었는데 건너건너 들은 소문이라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방해없이 샌드백에 스킬을 시전한다고 할 때 단위시간 데미지를 비교하면 아무래도 힘 999의 캐릭터에 비해 초라하지만 강력한 몹들이 대량으로 출현하는 곳에서 힘 999의 캐릭터들이 스킬을 시전할 틈도 찾지 못하고 즉사할 때 P모씨의 강한 생존력은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실제 전투에서 힘 999를 찍고 최고의 무기 데미지을 가진 캐릭터라면 걍 멀뚱멀뚱 선 단순한 몹보다는 AI가 복잡하고 위험한 고레벨몹들을 잡을 일이 더욱 많으며, 그런 몹들은 매우 강력해 사소한 실수에 캐릭터가 죽어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끈질긴 생존력을 자랑하는 P모의 캐릭터는 이득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스킬수련의 지루함과 스킬을 사용하는데 많은 준비(눈에 뿌릴 모래 등 준비물을 직접 재료를 채집하여 일일이 제작해야 함. 확률제작이기 때문에 더욱 짜증이 배가되며 인벤토리를 대량으로 차지하는 데다 방대한 맵 중에서 제작이 가능한 곳은 단 한 마을뿐)및 재료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이 부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P씨의 스타일을 모방하려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힘 스탯만 봐서는 막 시작한 캐릭터나 다름없으니 신기하지요. P씨 힘 얼마세요? 네 15인데요. 헐 그래갖고 어떻게 사냥해요? 다 하는 방법이 있죠 훗훗훗.... 뭐 이런 대화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군요.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정말 소설 캐릭터 같지요. 실존 유저입니다. 다크 게이머 아니에요.
이에 더해 게임 소설에서 등장하는 폭렙과 대박득템, 버그 이야기도 해보죠.
소설에서 폭렙이래봐야 뭐 20렙 정도지만 현실에서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여 하루에 200렙을 올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지요. 당일이 휴일이었기 때문에 운영진의 조처가 늦어졌고 그 결과는... 상상에 맡길 뿐이죠. 게임사에서는 이후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를 취했지만 이미 얻은 경험치를 회수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우연한 득템 이야기. 통장에 거액이 떡 하니 입금되는 영화처럼 일정조건에서 자신의 소지금이 한도숫자까지 올라가는 버그를 발견한 유저가 있었습니다. 이게 농담이 아니고 실화라는 점이 아찔합니다. 해당 유저는 재빠른 판단으로 그 돈을 사용해 현거래가 활발한 아이템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싼 가격에 현거래시장을 통해 처분합니다. 버그로 발생한 소지금은 재빠르게 회수되었으나 이미 거래된 현금은 회수할 수 없었죠. 그 유저가 얼마나 벌었는지는 본인밖에 모릅니다. 해당 계정은 정지되었으나 유저는 계정에는 미련이 없다고 하며 돈을 벌게 되어 기뻐했다고 하는군요. 이게 의도적으로 버그를 유발한 다크 게이머라면 소설 답겠지만 그냥 우연히 얻게 된 평범한 유저라는 점에서 현실은 너무나 개연성이 없지요. 이런 스토리의 소설을 쓴다면 사람들이 비웃겠지만 현실은...
황당하지만 던전의 벽을 뚫는 버그를 발견하여 던전에 침입, 보물상자만 털어 떼돈을 벌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설 같지만 현실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유저들(여러명 가담함)은 버그를 몰래 공유하면서 집단으로 던전 벽을 뚫고 개당 수십만원(현금기준) 상당의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대량으로 획득하여 엄청난 금전적인 이득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비밀은 단단히 입단속을 했음에도 새어나가고 마침내 운영진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버그를 이용한 사람 중 버그를 신고한 인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계정이 영구정지되었지만 중간에 얻은 이득은 고스란히 그들 손에 남게 되었죠. 이 실화는 사소한 발견을 이용한 응용, 집단행동, 이익분배 등으로 발전해 나간 점에서 조금 다크 게이머 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신고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하는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만약 최초에 이 버그를 발견, 집단을 조직한 우두머리가 모두를 배신한다든가 하는 영화같은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한데,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지요.
다만 아쉬운 것은, 게임소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모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긴 한데 게임 소설에서의 묘사를 보면 터무니없는 일을 해내는 유일한 인물처럼 묘사한다는 점입니다. 현실에서 이러한 버그 플레이를 하거나 편법을 통해 이상성장을 하거나 별난 플레이를 하는 유저는 의외로 많습니다. 사람들이 게임 소설 읽으며 뭐 저리 운이 좋냐고 저런 캐릭이 어딨냐고 욕할만한 행운성 버그도 현실에서는 연중행사입니다. 위의 모든 버그는 단 하나의 게임에서 1년 동안 일어난 일들이고 그 외에도 버그는 허다하니까요.
비주류 마법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위화감은 너무 원론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게임이 서비스된지 몇년이 지나서야 발견한 것에 대한 의아함입니다. 주인공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이 개연성이 없어서가 아니고 오히려 더욱 많을법한, 이미 충분히 연구가 되어 있을 법한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몬스터 상성에 의한 초반 폭렙 플레이를 게임이 서비스된 지 ㅤㅁㅓㅊ 년이 지나서야 발견한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이야기죠.
90년대 초반부터 많은 어르신들이 진지하게 텍스트 머드(이것도 온라인 게임이긴 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턴당 데미지를 최대화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계셨고 극단적인 캐릭터 메이크업부터 서버 해킹까지 별별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계승되어 많은 사람들이 최대 효율! 최고의 전술! .... 보다는 버그 발견을 외치며 게임 플레이를 다양화(?)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템 복사(아이템이 오류로 여러개로 늘어나는 현상)야 말로 현금복사이고 꿈의 버그이죠.
대부분의 게임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러한 빈틈을 혼자만 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 버그를 찾아헤매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허다하죠. 주인공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버그를 통한 득템의 꿈에 부풀어서 말도 안되는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실제 위와같은 모델이 실존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의 경우 버그를 발견하여 대박 득템을 하게 된다면 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유혹입니다. 이건 농담이 아니고 현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죠. 게임에서 버그를 찾아 헤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게임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은 게임 클라이언트를 분해하여 아직 게임에 적용되지 않은 스킬의 데이터까지도 미리 입수, 활용계획을 짤 정도로 치밀하며 0.2%의 이벤트확률을 확신하기 위해 1만번의 실험을 할 만큼 성실합니다. 새로운 컨텐츠가 업데이트되면 대부분 당일, 길어봐야 2, 3일 이내로 버그가 발견되고 편법을 통한 폭렙, 득템 등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재빨리 발견됩니다.
다시 한번 쓰지만 대부분의 버그가 시스템이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아 발견되고 수정됩니다. 캐릭터 양성론은 대부분 게임 서비스 초기에 결정되고, 큰 버그는 큰 패치 후에 발생합니다. 석화 마법이 추가된 당일, 석화를 통해 어마어마한 던전을 솔플할 수 있는 문제점이 발견하고 급하게 버그를 수정했으나 이미 일부 유저들은 엄청난 이득을 얻어 현금화한 후였다... 라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이미 현실 이야기죠. 농담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입니다.
그런 의미로, 새로운 육성법이나 버그 발견은 게임 서비스 직후나 대패치, 커다란 컨텐츠 도입 후로 잡는 것이 적절합니다. 게임을 ??년 서비스해서 세계 최고의 게임이 되었는데 새로 시작한 초보자가 우연히 새로운 스타일을 발견했다는 건 위화감이 있습니다. 특히 스킬에 표시되어 있는 상성을 이용한 것이라면 더욱 시도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드래곤에게 효과 라는 속성의 칼이 효과가 있나 없나를 시험하기 위해 지렁이도 잡아보는 것이 우리나라 유저들이기 때문입니다.
쓰고 보니 너무 길어진 것 같네요. 유달리 버그가 많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울분 탓인지 너무 길어졌네요. 저는 다시 비주류 마법사를 읽으러 갑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리고 게임소설상의 우연에 대해서는 조금 관대해지셔도 괜찮습니다. 실제 일어나는 일들이 정말 기가 막히니까요. 농담 아니고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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