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니, 레이드 소설이 꽤 줄어든 것 같습니다. 절대적인 양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평작 이상의 레이드 소설이 줄어든 것 같네요. (무료 한정) 저는 수작 이상의 작품만을 보기에, 현재는 보는 레이드 소설이 단 하나도....는 아니고 하나만 보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수십 작품씩 보았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레이드 소설은 세계관이 똑같습니다. [몬스터의 방어막은 현대 화병기를 완전 무시]나, [몬스터에겐 핵이 있다], [각성자가 생겨나고, 정부는 엄청나게 빠르게 대처를 한다], [과학자가 능력 측정 장치를 발명했다]. 가끔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소재를 버린 세계관도 있지만, 결국에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게임 상태창] 역시 거의 무조건 나오는 편입니다.
회귀하는 레이드 소설의 경우는 거의 99.9%의 확률로 다음과 같은 설정을 가집니다.
[최봉보스에게 죽고, 각성 ‘이전’으로 회귀]라던지, [최종보스를 죽이고, 세계or가족or친구를 구하기 위해 회귀]라던지. 극히 일부의, 0.1%의 소설만이 조금 다른 설정을 보이기는 하지만, 제가 목격한 바로는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소설에서 각성 이전으로 회귀하지, 각성한 이후의 시점으로 회귀하는 주인공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충 말을 무성의하게 던져보자면, 무료 베스트의 모든 레이드 소설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이드 소설들이 줄어든 이유는, 정확히는 무료 베스트 내의 레이드 소설들이 줄어든 이유는, 여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재미도 없고, 식상하고, 필력도 떨어지고. 덕분에 현판을 즐겨보고자 했는데, 그조차도 볼 작품은 많이 없습니다.
제가 스포츠 소설의 모범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있다면, 바로 [테니스의 신]입니다. 필력은 유료 충분히 갈 정도이고, 스토리도, 현실성도, 개연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저건 문자 그대로 “소설의 (반)필수 요소”입니다.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읽게 하기 위한, 작가의 최소 조건. 당연히 유료에 올라가는 (거의) 모든 작품들은 저 요소들을 충족시킵니다.
제가 스포츠 소설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테니스의 신]을 모범으로 보는 이유는, 설명입니다. 작가는 테니스가 국내에선 상당히 마이너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대충 보기에도 축구, 야구, 농구에 비하면 인지도가 형편 없이 낮지요. 제 경우, 어릴 적(초2~3)에 테니스와 배드민턴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작가는 테니스에 대해 자세하게는 물론이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야합니다. 이건 독자가 작품을 읽게 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죠. 만약 테니스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잡다한 기술들을 나열했다면, 보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문피아 스포츠 소설들 중 축구, 야구를 소재로 삼는 작품들이 딱 그렇습니다. 저는 축구와 야구의 룰을 모릅니다. 남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그럴 것이고, 여자들은 상당수가 그러할 겁니다.
스포츠 소설도 일종의 전문 소설입니다. 다만 일반인에게도 문이 열려있다는 점이 다른 전문 분야와는 다를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반인이 그런 전문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운동을 모르는 일반인에게 문피아 내의 스포츠 소설은 “의학 전문 서적”으로 보입니다. 주석 하나 달리지 않은, 영문 서적이기도 하고요.
정말 작가 분들이
“나는 여성 독자와 운동 규칙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을 완전히 버리겠다.”
라고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테니스의 신]에 버금가는 설명력이 필요합니다. 정말 운동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재미있고 정확하게 의미를 깨닫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적으려면, 애초에 작가가 기초지식이 없어서 “아, 이렇게 적어야 나도 이해가 되고, 독자들도 이해가 되겠구나.”하는 식이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에게 전문 지식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러니 지인이 필요합니다. 특히 누나, 엄마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천운이 따라서 여동생과 사이가 좋다면, 여동생에게도 보여주고요. 운동에 관심이 없는 형이나 동생이 있다면, 그들에게 보여주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험 조사를 해본 이후에 연재를 하세요. 그러면 운동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읽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필력이 같다면, 같은 스토리에 같은 소재의 작품이라도, 독자들의 수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겁니다.
음악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기준에서) 수준이 낮은 음악 소설은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 박수.... 마치 밤하늘의 별을 총총 울리듯.... 이건 음악 소설이 아니고, 음악을 “소재로 한” 소설일 뿐입니다.
(역시 제 기준에서) 수준이 높은 소설은 위의 표현은 물론이고, 다음의 표현도 함께 포함합니다. C 코드, 맑고 부드러운 소리부터 A코드, 굵고 웅장한 음율까지.... 이게 음악 소설입니다.
음악 소설은 음악을 소재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힘듭니다. 스포츠 소설은 그냥 다 쓰면 되지만, 음악 소설은 한껏 고양된 독자들의 마음을 폭삭 주저앉지 않게 하면서 전문성을 드러내야 하거든요. 잘못하면 판이 와장창 깨져버려서 독자들이 던져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음악을 소재로 하는 소설은, 필력만 있다면 누구나 씁니다. 정말 말 그대로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당장 레이드 소설에서 주인공이 마력을 섞어 아름다운 음색으로 노래를 불렀다-하는 내용만 삽입해도, 그 화는 음악이 소재가 됩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유료 작가들 거의 모두가 그런 소설은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음악적인 예술성을 드러내는데 약간의 시간을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하지만 스포츠 소설을 누구나 쓰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의학 소설, 법률 소설, 이유가 뭘까요. 바로 전문 지식입니다. 전문 지식이 없으면 그건 전문 소설이 아니고, 전문 지식을 소재로 하는 소설일 뿐입니다. 현대에서 갑질을 하는 대부분의 소설들이 주식으로 돈을 벌지만, 주식 소설이 아닌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전문 지식이 들어가있지 않은 음악 소설은 음악 (전문) 소설이 아니고, 음악을 소재로 할 뿐인 소설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사실 음악 소설들의 경우,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인기는 있고, 독자들도 많습니다. 스포츠와 달리 전문 지식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상당수의 작가들이 표현의 어려움 때문에 그걸 생략해 버리기 때문이죠. 굳이 그런 어려움을 갖고 쓸 이유가, 작가들에겐 없거든요.
하지만 그런 작가들은 위, 위의 문단을 보시고,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건 음악 소설이되, 음악 전문 소설이 아닌, 음악을 소재로 할 뿐인 소설이라는 것을요.
현대에서 주인공이 돈을 왕창 번다 - 의 내용의 작품은 굳이 주식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히는, 작품에서 들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하루에 수십 배씩 주식이 폭등한다던지, 하는 비논리성만 주의하면 됩니다. 주식 전문 소설이 아니고, 주식을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소재이나 도구로만 사용하기 때문이죠. 작중에서의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고요.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소설을 잘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소설을 쓰기 위한 조건들 중 하나인 [전문 지식]만이 갖추어졌을 뿐입니다. 순위권 레이드 소설의 작가 역시 전문 소설을 쓰기 위한 조건들 중 [대중성], [필력] 등의 요소들만 갖추어졌을 뿐이고요. 전문 소설을 쓰기 위해선 전문가가 다독, 다작을 하거나, 기존 작가가 전문 지식을 획득하거나, 초보자가 다독 다작을 하고 전문 지식까지 얻거나. 이 세 가지 뿐입니다.
실패.... 라기 보다는 아쉬운 소설들 몇 가지를 뽑아보겠습니다.
[코더 이용호]라는 작품은 전문가만이 그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비전문)작품들이 가진 재미의 최대치를 100이라고 하자면, 일반인들은 약 80 내외의 재미를, 속독가들은 70 내외, 정독가들은 90 내외, 숙력된 전문 비평가들은 100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설은 아닙니다. 특히 [코더 이용호]의 경우, 더더욱 아닙니다.
일반인들은 40 내외의 재미를, 속독가는 30, 정독가는 50, 전문 지식을 가진 일반인들부터가 80, 전문지식을 가진 속독가가 70, 전문지식을 가진 정독가는 80, 전문 지식을 가진데다 숙련된 전문 비평가이기까지 해야 100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컴퓨터, 특히 코딩 쪽에 지식이 없다면, 이 작품의 재미의 절반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그럼에도 재미가 있으시다면, 당신은 절반의 재미만으로도 큰 충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봅니다.
문제의 근원은 전문 지식입니다. 이 경우, 작가가 전문 지식을 풀어내는데 실패했습니다. 사실 코딩이라는 소재 자체가 글로 풀어내면 더 이상해지기 쉬운 소재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자들에게 많은 재미를 주기에는 실패했습니다. 필력도, 스토리도, 개연성도 우수하나 전문 지식을 풀어내는데 있어선 아쉬움이 많은 작품입니다.
[마왕의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은 게임 소설입니다. (거의 확실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약간 변형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크래프트를 기반으로 하다보니 이 작품은 스타크래프트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완벽한 재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이렇게 저렇게 유닛을 움직인다고 해도 독자들은 그게 뭐가 우수한지, 뭐가 불가능한지를 알 수 없습니다. 당연히 게임 전개에 있어선 피드백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요.
역시 이 작품을 일반인인데도 즐겨 보신다면, 당신은 절반의 재미만으로도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봅니다.
반면 [테니스의 신]은 작가가 제목 짓기에는 실패(?)했지만, 전문가와 일반인이 느끼는 재미 사이의 갭(차이)가 적은 편입니다. 물론 전문가가 느끼는 재미를 완전히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다른 작품들이 30만큼의 갭을 가질 때, 이 작품은 10 정도의 갭만을 가집니다.
[요리의 신], [신의 연기]도 대강 그렇습니다. 후자는 전문 지식이 거의 필요가 없는 것인지,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작가가 잘 모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기 분야에 있어서 전문 지식은 쓰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영화의 경우, [페이드 아웃] 같은 촬영 편집 기법들이 쓰이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한 번 등장하지 않았네요.
전자는 전문 지식이 드러났다, 가려졌다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부분에서 그 과정이 세세하게 드러날 때도 있지만, 그냥 생략될 때도 있습니다. 주요 비중은 요리에 매겨지는 점수에 대해서인데, 아직 작품 초반이라 주인공이 그것에 대해 분석하고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니, [야구 레전드]라는 작품은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타율, 타수, 패전 처리 투수 등등]의 용어들은 운동에 관심이 없으면 거의 절대로 알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 역시 대충 간과하고 넘겨버리는 부분인데, 저는 이런 부분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정리하자면....
전문 소설이라면 전문 지식을 갖추는 것은 [필수 요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당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었을 때에도 잘 이해가 되고,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야 좋은 작품이고, 소설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대다수의 스포츠 / 음악 소설들은 일반 문외한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도, 좋은 소설도 아닙니다. 그저 소설이라는 FORM형식을 가진, 하나의 지루하고 어려운 서적일 뿐이지요.
(제가 스포츠 소설을 약하게나마 혐오했던 이유도 이거고요.)
Comment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