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부타이 작가님의 만고지애, 이길조 작가님의 숭인문을 읽으며 정통 무협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가 두 작품 모두 출판 관계로 연재가 중지되면서 갈증을 느끼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어제 다른 분의 소개로 만고지애와 숭인문에 비할 만한 훌륭한 작품 하나를 알게 되어서 저도 추천하고자 합니다.
바로 빳떼리 작가님의 희번득이란 작품입니다.
작가님은 이 작품을 쓰시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에 유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첫째, 먼치킨을 쓰지 말 것, 둘째, 뒤가 뻔한 이야기는 쓰지 말 것, 세째, 무공만으로 서열을 정하지 말 것, 네째, 인세에 없는 특이 체질에 기대지 말 것.
독자들이 희번득을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작가님이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글에서 직접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만 들어보더라도 작가님의 작금의 마공서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탁월한지 단박에 알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희번득이 현문의 정종 서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희번득이란 가볍게 들리는 제목 때문에 마공서로 오해를 받는다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희번득 1권의 1장엔 '강호의 기인들 그리고 시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 같은 장인데, 강호의 기인들 중에서 귀신 같은 변장술을 가진 왕고모란 인물과 뛰어난 검술을 가진 검노(劍奴)라는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빳떼리 작가님의 글 솜씨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검노 에피소드의 한 대목을 옮겨 보겠습니다.
[ 여기 스스로 검노(劍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당대 강호의 검을 잡는 사람 중에 이처럼 검에 미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출신이나 행색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검노를 만난 사람 중에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의 상대는 죽기 직전에야만 그의 이름을 물어 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넌 누구냐? 무명소졸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의 상대는 하나 같이 이렇게 소리쳤지만 들을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난 검노다."
"검노가 뭐하는 놈이냐?"
그들은 이자의 이름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목구멍에서 나오지 못했다. 이미 목숨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검노의 손에 죽은 자 가운데 적지 않은 명성을 가진 자들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가 살인을 하는 목적을 남겨서 전하지 못했다. ]
정말 글 참 좋지 않습니까. 이 검노가 희씨 성을 가진 어떤 인물을 찾아 데려오기 위해서 황석진이라는 마을로 가게 되지요.
그런데 순금 이백만 냥을 수송하던 대륙표국의 표사들이 황석진에서 이 막대한 표물을 도둑맞고 이 사건에 희씨 성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이 휘말리면서 드디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희번득은 무협이면서 옴니버스 식 추리 소설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본의아니게 말려든 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꼬일 수록 등장 인물들 간에도, 그리고 작가님과 우리 독자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집니다. 때문에 이런 점에선 만고지애나 숭인문하곤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김용과 고룡의 소설이 같지 아니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옴니버스라고 한 것은 작가님이 각권마다 하나의 에피소드(대륙 표국 표물 도난 사건 같은)를 담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희번득엔 남녀 간의 애틋한 로맨스는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은 만난 지 하루도 안된 여인과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정혼자가 있는 명문의 규수와 거리낌없이 키스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공이 약하던 정파의 협사가 기연을 차례로 얻어 점점 무공이 증강되는 그런 모습도 없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정도 완성된 무공을 지니고 원수를 피해 황석진에 잠적해 있는 걸로 나옵니다.
이야기 들으면 마치 고룡의 한 소설 같지요? 작가님은 최소한 6,7 권 이상의 분량을 구상하고 계신 것 같던데, 어쩌면 우리는 고룡에 버금가는 소설을 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제 소개 같지 않은 소개는 여기서 접고, 희번득의 1장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희번득의 어떤 면을 잘 보여주면서도 독자 여러분들의 흥미를 강하게 유발시키는 부분인 것 같아서 이 대목을 골랐습니다.
[이 일화들은 강호 기인들과 얽힌 수많은 얘기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만약 여러분이 강호를 거닐게 된다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발생하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지 곧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그렇다. 신묘한 계략과 음흉한 음모가 내포된 무림의 신기한 사건들을 뛰어난 재치와 기지로 파헤쳐가는 젊은 고수들의 활약상을 담은 얘기다. 한번 듣게 되면 저절로 깊이 빠져들게 되는,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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