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인 적 없다고 말하지 않을게.”
파란 눈이 그곳에 있었다. 그 푸르름이 아름다웠다.
“타인의 숨을 밟고 살아난 적 없다고 말하지 않을게.”
그래서 라무르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 눈을 타고 태어난 루트를 사랑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국왕 폐하를 위해서였다고 정당화하지도 않을게. 그래, 그랬어. 무수히 많은 너를, 너희를 죽였어.”
그래서 너를 사랑했다.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 박애주의자는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범민족적 증오가 정당화되어 전장에 선 고결한 흑사자 두 마리는 그대로 살인의 증명서가 된다. 칼이 떨어지고 말이 우짖었다. 국기를 높이 든 기수병 뒤로 내 나라가 아닌 자는 모두 적이다. 다만 미워하라는 혐오의 미덕. 인륜을 비웃고 짓밟고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전장에서 정의는 없다.
잔인하고 구슬프다. 소란스럽다.
“네 손엔 칼이 있고, 눈 앞엔 적이 있다.”
살고 싶은 자는 죽인다. 삶을 사랑하는 자, 헤어짐 또한 사랑하라. 뒤따르지 않는 자, 죽음을 경멸치 말라. 지금 피 흘리는 자는 너의 경멸을 받을 만큼 우매하지 않았다. 피눈물로 살았던 인생 흩어진다. 그의 삶을 외면함에 죽음을 단죄하지 말라. 그와의 헤어짐에 눈물 흘릴 사람이 있건만 너, 그를 죽임으로써 한 종족의 숨을 끊는 것을 아는가.
“시작된 전쟁에 칭얼거리지 마라.”
수십이 죽는다. 그러나 혹자에겐 시시한 전투. 시시한 목숨에 슬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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