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러뜨리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그야 물론 왕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죽여 버릴 것이다.”
그의 비열한 미소를 보는 나의 입가에서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그녀’까지도 말인가?”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은 핵심을 찍었지만 그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이다.”
당신은 정말 쓰레기다. 아니,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이다.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분노와 함께 잔뜩 휘저어놓고 있었다. 나의 감정으로 이 병마들을 전부 해치울 수 있었다면 진작부터 모두 없애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라면......
나는 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어보았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내가 지을 수 있는 웃음이겠지. 하지만 나의 결정에 있어서 후회는 없다. 나는 나의 의지로 이러한 운명을 선택했고, 내가 선택한 운명을 그곳으로 던지며 나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알아선 안 되는 일들과 몰랐으면 좋았을 일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며 그것들을 잊지 못하는 내 기억력과 나조차 버겁게 만드는 나의 상념들이다.
나는 애써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녀의 얼굴에 어둠을 불러내어 지워냈다. 검게 물들어버린 나의 검, 루나 니그룸(Luna nigrum)처럼.
“자, 그럼 이제 끝을 보자.”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생을 마무리 지을 시간.
(프롤로그에서 발췌)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들이 모인 어느 한 수도의 가을.
이종족도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세계에서 그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그 가을의 시대 속으로 한 번 빠져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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