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장량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식솔을 그리는 사사로운 정이라는 것은, 신자가 군주를 생각하는 뜻에 비길 바가 못 됩니다."
"그것은."
유방은 빙긋이 웃었다.
"공께서 그렇게 믿고 계시기 때문이오."
"......"
장량은 의아하다는 듯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유방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학식이 짧아서 잘은 모르겠소.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요. 나라는 식솔에 앞서고 충은 효보다 먼저라고. 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어째서 제대로 얼굴을 본 적도 없는 군주 따위가 피를 나눈 형제보다 중할 수 있으며, 살을 붙이고 사는 처자식보다 귀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유방은 장량을 바라보았다.
"저들 또한, 그리고 이 사람 또한, 돌아가고픈 것들을 버려둔 채 여기 있는 것이오. 귀공이 그러하듯이."
"......"
장량은 속으로 가만히 혀를 찼다. 이런 사람이라니. 어찌 다른 자의 머리 된 사람의 입에서 피를 나눈 식솔이 섬기는 군주보다 중하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수하들 또한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의 그런 언사는 이상하게도 장량의 마음 한구석을 휘저어 놓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한 말씀이시군요."
장량이 미소지었다.
"허면 대장군께서는 저 장막 속의 두 분이 장군보다 그 식솔되는 이들을 더욱 중히 여기신다 해도 용인(容認)하신다는 뜻이십니까?"
"할 수 없지 않소?"
유방이 되물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까."
"......"
인지상정. 그 짧은 대답은 장량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잠시 망연해져 눈만을 깜박이는 장량을 향해, 유방은 빙긋이 미소지어 보였다.
"이 사람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소."
"...허면"
장량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대장군께서 이 사람의 자리에 있다면, 어찌 행동하시겠습니까?"
"나라면?"
유방은 가볍게 되물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곧 유쾌하게 대답했다.
"이 사람이라면, 가고 싶은 대로 가겠소. 다만,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뜬구름잡는 이유가 아닌, 진정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
장량은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유방의 어찌 들으면 조리 없는 몇마디 말은, 그간 쌓아온 그의 신념 자체를 흔들어놓고 있었다. 그는 표나지 않게 입술을 깨물며, 동요하고 있는 자신을 추스르려 애썼다. 유방은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곁을 스쳐 지나가 다시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인생은 짧소, 자방...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기에는."
그것이, 유방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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