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2
너는 천재다.
너는 천재가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두가지 말을 꼽아보라면, 아마 저 둘이 되리라.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천재면서 천재가 아니라니. 너무 노골적인 모순이 아닌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순은 꽤 정확히 내 상황을 표현하는 편이었다. 나는 천재다. 천재였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덕분에 걸음마를 떼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피아노의 건반을 뚱땅거리기 시작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이미 나만의 리사이틀을 개최할 정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에게 어울릴 법한 그런 유년 시절이었다.
문제는 내 천재성은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이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점점 나의 단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영혼 없는 연주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미는 말이었지만, 옳은 말이었다. 나의 연주에는 영혼이 없었다. 내가 영혼 없이 연주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원작자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나만의 해석과 감성을 쌓아보아도, 정작 그 모든 것들은 내 손가락 끝에서 막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난이도로 유명한 리스트의 초절기교를 미스 없이 쳐내는 깔끔한 타건을 해내면서도, 그 연주는 초등학생의 연주만큼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똑같은 연주를 어릴 적에 해냈을 때는, 어린 아이가 이토록 기교가 좋다는 것만으로도 청중들은 흐뭇하게 미소지었지만, 고등학생쯤 되니 그들의 얼굴 위로는 흐뭇함 대신 지루함만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천재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내게서 희망을 끊은 건, 내가 그가 교수로 있는 반포 음악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피아노를 그만두라 말했고, 그에 싫다고 외치던 나를 그대로 다른 교수에게 넘겨버렸다.
당시에는 강한 척을 하긴 했었지만, 사실 그 때 나는 나의 인생이 끝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발을 헛디딘 이 절벽에서 어떻게든 기어올라가야겠다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던 사람이 떠나가버렸다.
모두가 내가 끝났다 말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확실해진 건,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반포 음악회. 교내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연주해야 했던 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경계에 선 브람스의 서주가 울린 후, 나의 파트가 다가왔을 때······ 나는 연주하지 못했다.
그저 건반에 손을 올린 채, 귀를 가득 메웠던 브람스의 선율이 멀어져가는 걸, 그 빈자리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채우는 걸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피아니스트로서, 짧지만 격렬했던 나의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음 날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선 간호사의 목소리가 튤립 같은 색깔로 빛날 때, 나는 자연스럽게 깨닫고 말았다.
천재였고, 천재가 아니었던 나는,
비로소 천재가 될 가능성을 쥐었다는 걸.
€
─ 한정우 씨가 경험하고 있는 건 공감각증이에요.
내 증세를 말했을 때,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소리에서 색을 느끼고, 맛을 느끼며, 촉감과 냄새를 느낀다. 보통은 소리로부터 오감 모두가 자극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말을 덧붙이며, 의사는 은빛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 보통 공감각은 선천적으로 갖게 되는 편이지만······ 이렇게 후천적인 쇼크로 얻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아요. 겁 먹을 필요는 없어요. 공감각은 병이 아니니까. 사람에 따라 귀찮게 여길 수도 있지만······ 한정우 씨는 피아니스트잖아요?
의사의 말이 맞았다. 공감각을 깨닫고,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내 머릿속을 맴도는 건 피아노밖에 없었다. 내가 쓰러진 탓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망가졌다는 것조차 그 때는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연주를 해보고 싶었다. 내 손끝에서 어떤 색과 맛이 피어오르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처음에 건반에 손을 댔을 때는, 선율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온갖 종류의 냄새와 충격, 무게감 때문에 나는 채 몇 분도 연주하지 못한 채 녹초가 되어버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오감의 자극을 이겨내다 보니 내가 어떤 연주를 하게 되는지도 잊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음악원에는 휴학계를 내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분명 무대 공포증을 앓고 있는 것일 거라 얘기했다. 그리고 내가 피아니스트로서 끝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뭐라 말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이대로 몇 분만에 녹초가 되는 게 계속된다면, 피아니스트로서의 내 삶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운동을 했다. 식단을 관리했고, 시간을 관리했다. 하루에서 일분조차 낭비하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다.
나의 지난 인생과는 다르게, 구멍난 독에 물을 붓듯 허망하게 사라지기만 하던 나의 노력은, 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5분만 지나도 떨리기 시작하던 손가락이 더 굳건해졌고, 오감의 자극에 그저 휘둘리기만 하던 정신은 그 감각 하나하나에 스며들은 소리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알고 있다 착각했던 것들을 진짜로 알게 되었고, 나는 나의 소리에서 내가 원하는 맛과 감촉, 모양과 색, 그리고 냄새를 풍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병아리처럼 짹짹거리던 연주가 며칠이 지나면 수탉처럼 우렁차게 세상을 울렸고, 증기기관차처럼 덜컹거리던 연주는 곧 전기차처럼 안정적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무너질 것 같았다. 몇 주, 몇 달을 사람들과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으며 보냈다. 나의 귀를 채운 건 그저 음악뿐이었다. 베토벤의, 브람스의, 하이든의 목소리가 그들의 곡을 통해 나에게 닿았다. 때때로 그들의 곡을 연주하다 보면, 피아노의 프레임 위로 그들의 뒷모습이 투영될 때도 있었다.
소리쳤다. 악을 질렀고, 고함을 질렀다. 입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나는 이 천재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부디 나를 돌아봐달라고. 내게 부족한 게 뭔지 알려달라고. 나는 이 세상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흔하디 흔한 피아니스트로 끝나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당신들의 음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답은 곧바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공감각을 얻은 후, 나의 연주는 분명 예전과는 달랐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껍데기뿐이었던 연주가 보다 입체적인 껍데기로 변했을 뿐이었다. 맛도 나고, 냄새도 나는 껍데기로.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피아노를 쳤다. 결국 손가락이 탱탱 불어서 건반을 만지기만 해도 손이 아파올 정도가 되어서야, 하루에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6시간으로 제한을 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흘러갔다.
나는 나의 연주가 쵸콜릿보다 달아질 수도, 자몽보다 새콤해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솜이불보다도 부드럽고 쇳덩이보다 단단해질 수 있으며, 바다가 될 수도 있고 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토록 찾았던 알맹이가, 어느새 내 연주 속에 들어가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해가 떠오를 즈음이었다.
나는 더이상 가짜가 아니었다.
나의 전주곡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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