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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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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156

작성
20.10.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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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로카 네르미아나 (4)

DUMMY

눈물이 스며든다.


로카의 눈물.


진혁의 가슴 속에 있던 자그마한 가시에 눈물이 스며들어, 가시는 몸을 키워가 하나의 덤불이 된다.


진혁의 가슴에 가시덤불이 커져갈수록, 로카의 가슴에 가시덤불은 사라져간다.


이야기가 들려온다.


“로카 네르미아나? 그런 아들은 둔 적이 없네.”


죽어서 억울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것은 분명히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통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한이 될 정도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었다.

억울하기는 하여도 화가 치밀지는 않았었으니까.


-자업자득이거든.


그래, 자업자득이다.

아무리 세상이 빠름을 추구하고, 마음이 급해진다고 했어도 악마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마음이 급하다고 하여서 악마가 되었기에 목숨을 잃었고, 그것을 원통하다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한테 거부당한 것은 원통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한테 없는 아들 취급당한 것은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아버지가. 나를.


“······왜 그러셨습니까.”


원통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을 없는 아들 취급한 아버지에게 화를 풀기 위해서.

네르미아나의 가족들을 모두 잡아먹고, 끝내 아버지의 심장에 화살을 꽂아 넣을 때.


“왜,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하셨습니까.”


치밀어 오른 화 때문에 떨리는 것을 막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대로 그렇게 물었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네르미아나를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또 노력을 하고, 하찮게 고블린만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안 되려고 애썼는데.


그런 나를 아들 취급도 안 해주다니.


“대체 왜 그랬냐고 묻지 않습니까, 어째서 답이 없습니까.”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답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심장에 화살이 박힌 순간에 이미 숨이 끊어졌으니까.


-아.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이고, 심장에 화살을 박고 싶어서 박은 것인데 후련하지가 않았다.

비틀린 미소가 입에 피어오른다.


그 미소가 비틀린 이유는,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이 감정이 솔직하게 얼굴에 드러난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마을도 부수려고 내려갔었다.

마을 자체가 나를 망가트리는데 기여하였다고 생각했으므로.


-아니지, 그게 아니지.

-너는 사실 알고 있잖아.

-그 감정이 뭔지.


가시덤불이 사라진다.

가시덤불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커져있었나.

진혁이 가져가기 전까지는 눈치채지도 못 했던 가시덤불이었다.


자신을 아프게 했기 때문에, 남을 아프게 하려고 만들어낸 가시덤불.

하지만 이 가시덤불은 결국 자신의 아픈 부위를 숨기려고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로카는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로 가시덤불이 감추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화살이 울고 있었다.


-인정받고 싶었겠지, 너의 화살을.


“화살···”


언제부터였을까.

마음에 화살을 품고 있었던 때는.


“아, 맞아.”


기억이 났어.


“아버지··· 아버지의 재능은 활이지.”


어릴 때의 이야기였다.

언제나 멋있어서 믿고 등에 몸을 맡기고 싶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등에 로카가 매달려오면, 등에 메고 있던 활을 벗으면서 업어주고는 하였다.

꽃이 만개하는 봄에도, 푸르른 숲이 펼쳐지는 여름에도, 불그스름한 풍경이 펼쳐지는 가을에도, 새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가는 겨울에도.


로카는 아버지에게 업혀서, 아버지의 뒤에서, 언제나 아버지의 화살을 봐왔다.


“아들아, 이 아비는 화살이 제일 좋다. 왜인지 아느냐?”


이 세상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있지. 하지만 그 무기들에게는 기회가 많다.


공격을 하다가 빗나가거나 막히면,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 공격을 재개하면 되니까. 인생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기에 그들은 철로 만들어졌음에도 가볍다.


하지만 화살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최초의 목적지인 적의 심장에 도착하든, 실패해서 허공을 가르다 바닥에 떨어지든, 화살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그 한 번을 살려주기 위해 빨라야 한다. 빠르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한 번의 기회를 살려주는 힘이다. 그래서 아비는 화살이 인생과 같으니 좋구나. 참으로 가벼운데도 무겁지 않느냐.


그리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멋지고, 듬직했지만, 한편으로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같아서 허전해보였다.


그 허전함은 서글픔으로 다가왔고, 로카는 아버지에게 화살의 다른 면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화살은 느리게 나아간다고 해도 어딘가에 도착하기 마련입니다.


그 도착점이 최초에 계획했던 도착점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틀림없는 도착점입니다.


그리고 그 화살이 느리게라도 나아갔던 길 때문에 목표는 피하려고 이동을 할 것이고, 그 점을 이용해 다른 화살이 목표에 도착할 것입니다.


비록, 나라는 화살은 느려서 이상한 목적지에 갈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화살이 올바른 목적지로 갈 수도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을 꼭 올바르게, 빠르게 나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느리게 나아간 화살에게도 도착지는 있고, 다른 화살을 도와줄 힘 정도는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그런데 죽여버렸다.

악마의 힘으로 얻어낸 빠른 화살로.

그토록 아버지한테서 빼내고 싶었던 빠른 화살로, 아버지의 심장을.


“어쩔 수 없잖냐. 가시덤불이 아픈데.”


-그래도 내가, 그 아픔을 약간은 아니까 덜어줄 수 있어.


“혼자 아파하지 마. 네 가시덤불은 내가 가져가고.”


-너라는 화살을 내가 품어줄 테니까. 앞으로도 함께 울자.


울고 있는 화살을 향해 진혁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로카는 화살 앞을 막아섰다.


“네가 뭔데 품어준다는 거냐? 네가 나한테 뭐가 된다고···”


“아무 것도 아니니까. 너에 대해 모르니까. 아는 거라고는 같은 아픔뿐이니까 함께할 수 있는 거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아픔을 아픔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아파해도 너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타이르게 되고, 그 아픔을 진심으로 함께 해줄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낯선 자이기에, 잘 모르는 자이기에 친절을 베푸는 것이 가능하다.

선입견 없이.


“안 줄 거면 말고. 그렇게 혼자 비명 지르다가 킹 네크로맨서 죽어서 사라지시든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킹 네크로맨서의 마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어차피 로카는 사라지게 될 운명.


“자, 어쩔래.”


아픔을 나에게 덜어주고, 편안하게 떠날래.

아니면 그 비명 속에서 끝까지 아파하며 사라질래.


“다른 화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은 거 아니야?”


나를 다른 화살로 만들면 증명되는 거잖아.


“망설일 필요가 있나?”


-그래,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참으로,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삶이었다.

느려터진 화살이 나아간 곳은 바닥조차 아닌, 그 바닥 아래의 바닥, 지하, 지옥이었으니까.

그런 삶을 아무리 뒤돌아봐도 남는 것은 후회와 원한, 그리고 아픔뿐이었기에.


-네 동병상련에 내 화살을 맡기고 갈게.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 다음 생에는 꼭, 느려도 되는 달팽이 같은 거로 환생해라.”


─내가 네 아픔을 인정할 테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로카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모두 진혁의 가시에 맡기고 사라졌으니까.


“그럼 어디···”


진혁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네가 한 번 끝내봐라, 로카.”


익스퍼트 비기.


동병상련(同病相憐).


로카의 가시, 언젠가 도착할 화살.



* * *



“주입식 교육.”


마스터에게 있어서 규칙은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규칙과 반면교사 삼고 싶은 규칙.

스테민에게 배움을 멈추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호(好)였으나, 주입식은 정해진 지식만 넣는 교육이기에 불호(不好)였다.


하지만 반면교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규칙의 빛을 잃기 때문에, 마스터가 되는 자라면 자고로 상반된 규칙을 쓸 수 있어야 했다.


비록 그 탓에 킹 네크로맨서가 배움의 규칙에서 벗어났지만, 주입식 교육의 규칙에 묶여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거슬리는 능력이군. 감히 이 몸에게 하찮은 지식을 가르치려드는가?


킹 네크로맨서는 지금 주입식 교육의 규칙에 묶여서 끝없이 지식을 주입받고 있었다.

주입식 교육이란 무엇인가.

아무런 지식도 없는 자에게 주입식 교육은 도움이 된다.

그렇게 지식이 쌓이고 나서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스테민의 주입식 교육은 주입식 교육만으로 끝나버리는 교육.


킹 네크로맨서는 배우고 싶어함에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지식만 무한하게 끝없이 반복하여 머릿속에 들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지식을 망각했다가 다시 배우는 형식이기에, 힘이 되돌아왔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힘이 돌아오는 타이밍을 익히고 싶음에도 주입식 교육만이 한정되는 규칙이라 학습이 불가능했다.


-이딴 규칙을 쓸 수 있는 녀석은 5백 년 동안 살았지만 처음 보았도다.


“당연하지. 스터디 마스터는 역사상 나 한 명뿐이니까.”


학습과 교육이 재능이었다.

그런 재능은 비전투적이니까 그 누구도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배우고 싶었던 스테민은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배웠다.


그리고 끝내 마스터가 된 스테민은, 단순하게 규칙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력이라는 것은 심장에서 출발되지만, 결국 몸 전체에 흐르는 것이지.”


마력학에 담긴 지식을 끝까지 공부하면, 상대방의 마력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로지 마력으로만 존재하는 흑마법사, 킹 네크로맨서에게는 그것이 치명적인 공격이 된다.


스테민은 네크로맨서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이토록 접근하고 어깨를 붙잡는 것은 위험하지만, 지금의 네 마력을 막아버리는 것 정도는 문제없겠지.”


스테민은 자신의 마력을 네크로맨서에 불어넣었다.

한때 주입식 교육을 당했던 기억이 자신을 괴롭혀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심장이 없는 네크로맨서의 마력은 어디에서 출발되는가.

어딘가에 숨겨둔 코어에서 출발된다.

하지만 그 코어가 어디에 있는지 스테민이 지금 당장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게 되면 마력을 와해시킬 수밖에.


-그런데 한 가지 착각하는 것 아닌가?


500년이나 산 네크로맨서의 마력 흐름은 일반적이지 않다.


-주입식 교육의 지식으로 감히 해결할 수 있는지?


맞는 말이었다.

주입식 교육의 규칙은 시전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힘이 돌아오는 타이밍을 잘 맞춰도, 아예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규칙을 해제하면, 어깨를 붙잡은 상태이니 위험해질 것이고.


-나를 묶어둘 수는 있겠지만, 죽이지는 못 한다. 알겠느냐?


네크로맨서의 말에 반박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화살이 보였다.

그 화살은 너무나도 느려서 화살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화살이 품고 있는 강렬한 의지는 지켜보는 스테민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다.


‘네크로맨서를 제거하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


그 의지를 느낀 것은 네크로맨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의지는 대체 무엇이냐. 어디에서 이리도 강렬한 의지가 나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냐.


머지않아 네크로맨서는 그것이 로카의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야! 원통함을 담은 진혼곡을 세상에 울부짖으라 하였거늘, 어째서 나의 뒤를 노리느냐!


네크로맨서는 위기를 느끼고 스테민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마력의 움직임에 어느 정도 관여를 받아 벗어나지를 못 하고 있었다.


“묶어두기만 해도 이기겠는데.”


-아아아, 500년이나 살아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네크로맨서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느리더라도 언젠가 닿고 말겠다는 로카의 의지는, 네크로맨서의 죽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코어가 있는 네크로맨서의 허리에 닿아 마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를 관통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은 여기가 목표점이라는 듯 사라졌고, 코어를 파괴당한 네크로맨서도 힘없이 쓰러졌다.


마을에 나타난 언데드들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언데드가 사라진 것으로 네크로맨서의 죽음을 확신한 진혁은, 자기 가슴 속에 자리 잡은 로카의 화살에게 말했다.


“편하게 잠들어라.”


느리더라도 목표에 닿으면 그만이라는 것은, 네 화살로 내가 평생토록 증명해줄 테니까.


작가의말

체기를 이용한 스킬 대신에 마력을 이용한 공격을 익히고 있습니다.


안 통하는 적들이 많이 나올 테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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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몬스터 사냥권 20.11.02 418 8 12쪽
41 로스트 +4 20.11.01 463 11 13쪽
40 리릴 이프 +2 20.10.31 458 9 12쪽
» 로카 네르미아나 (4) +4 20.10.30 489 14 13쪽
38 로카 네르미아나 (3) +4 20.10.29 516 13 12쪽
37 로카 네르미아나 (2) 20.10.28 532 11 12쪽
36 로카 네르미아나 (1) 20.10.27 624 14 12쪽
35 F급의 훈련장 (2) 20.10.26 630 12 12쪽
34 F급의 훈련장 (1) 20.10.25 675 11 13쪽
33 안전성 평가 (4) 20.10.24 680 13 13쪽
32 안전성 평가 (3) 20.10.23 684 10 12쪽
31 안전성 평가 (2) 20.10.22 700 12 12쪽
30 안전성 평가 (1) 20.10.21 764 13 12쪽
29 성진혁개론 +2 20.10.20 753 15 12쪽
28 소환학개론 (3) 20.10.19 753 12 12쪽
27 소환학개론 (2) +2 20.10.18 759 14 13쪽
26 소환학개론 (1) 20.10.17 788 16 12쪽
25 배치고사 (4) +2 20.10.16 821 16 13쪽
24 배치고사 (3) +2 20.10.16 807 13 12쪽
23 배치고사 (2) +2 20.10.15 832 13 13쪽
22 배치고사 (1) +2 20.10.14 871 15 12쪽
21 이름을 남길 가능성 20.10.13 859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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