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오 형 내가 모를 줄 아시오? 오 씨 삼 형제 중 오이만 배 다른 형제란 사실을 내가 몰랐을 것 같소? 듣기로 연로한 오 노가주께서는 차기 가주를 당신이 아닌 오이로 낙점했다는 소문까지 들리더군.. 그래서 내 손을 빌려 오이를 제거한 것 아니냔 말이오"
" 차 형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차 형의 오해요. "
오일은 끝까지 발뺌을 하고 있었고 차상호는 오일 대신 오삼을 바라봤다. 그러자 오삼이 흠칫 놀라며 차상호의 눈을 피해버렸다.
그 모습에 관산은 차상호의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 정말 이 세계나 지구나 인간들의 권력 욕은 피보다 진하구나 '
오일과 오삼은 사전에 오늘 일을 미리 계획한 게 틀림없었다.
" 어쩐지 하늘문 좌표가 너무 쉽게 우리 손에 들어온다 했더니.. 이게 모두 오일 당신이 꾸민 일이었군.. 오일 경고하는데 이런 식으로 날 이용한 댓가는 반드시 치뤄드리리다. "
" 차 형이 자꾸만 오해를 하시는데 난 이미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핍박을 하시니 난감하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 드릴까요? "
차상호는 당장에라도 오일을 쳐 죽이고 싶었지만 이미 오이와의 대결에서 많은 기운을 허비한 상태라 이대로 오일과 격돌을 벌였다가는 득보다 실이 많음을 알기에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흥 누구 좋으라고. 난 남의 가문 집안 싸움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이만 가겠소. 그리고. 약속대로 트럭도 내가 가져가겠소 "
" 좋으실 대로 "
오일과 오삼 역시 이미 목적를 달성해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이유가 없던 탓에 차 씨 남매들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 가자 "
차 씨 남매가 오 씨 형제들을 스쳐 지나가자 관산도 빠르게 그들의 뒤에 붙었다. 이곳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 잠깐! "
오일이 자신을 바라보며 차상호를 불러 세웠기 때문이다. 관산은 차상호의 눈빛에서 진한 죽음의 향기가 느껴져왔다.
'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
" 차 형 그 소년은 두고 가셔야겠습니다. "
차상호 역시 오일의 모습에서 그가 소년을 살려두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그 조차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 우리완 상관없는 아이요 "
[ 하 정말 의리라고는 없는 잡놈들이로고 ]
차 씨 남매들이 매몰차게 몸을 돌려버렸다. 관산은 쌍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들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둬서 그런지 자꾸만 사고가 흩어지고 심장이 요동치면서 혈액이 머리로 쏠려 생각을 방해했지만 관산은 포기하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는 차 씨 남매가 절대 자신을 두고 가지 못할 상황을 생각해 냈다.
" 그 약으로는 절대 상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
갑작스런 관산의 외침에 정말 차상호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히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 무슨 말이야? "
" 며칠 전 하늘문에서 떨어진 약은 아주 작은 상처들에나 효과가 있는 약들입니다. 무슨 약을 찾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제가 제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
관산의 말에 차 씨 남매들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 너 설마 그 약들이 어떤 약인지 알아본 것이냐? "
" 예! 전 수많은 약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 데려가 주십시오 그럼 최선을 다해 상족을 돕겠습니다. "
관산은 차상호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지는 걸 보고 자신의 모험이 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차상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좋다. 널 데려가 주겠다. 대신 넌 우리가 원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 동의 하겠느냐? "
" 알겠습니다 "
" 좋다 이리 와라 "
차상호가 관산을 챙기려고 하자 오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갔다.
" 무슨 영문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차 형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신들을 보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
오일이 작정하고 각성력을 끌어올리자 이번에는 차상호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기운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대신 저기 트럭 4대를 남겨 놓고 갈 테니 더 이상 아무 말하지 마시오 "
" 정말 저 많은 재물을 포기하고 소년을 택하신단 말입니까? "
" 그렇소. "
뜻밖의 제안에 오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생 오삼에게 의견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 나쁘지 않은 제안 같습니다 형님 "
" 흐음
오일과 오삼은 차상호가 왜 많은 재물 대신 관산을 선택했는지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재물에 눈이 흔들렸다.
' 대인배인척 하지만 다시 없을 소인배다. '
관산은 오일의 망설이는 눈빛을 보고 그의 그릇을 재단했고 역시나 그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선심 쓰는 척 차상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좋습니다. 재물이 문제가 아니라 차 형이 그렇게 원하시는데 마땅히 따라 드려야지요. "
" 고맙소 "
차수현과 차종호는 오일의 태도에 배알이 꼴렸지만 차상호는 아무말 하지 않고 관산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차 씨 남매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오삼이 오일에게 다가와 물었다.
" 형님 혹시 신평이 오늘 일을 발설하는 건 아니겠죠? "
" 후후후 걱정하지 마라 도망쳐 봐야 독 안에 든 쥐다. 놈이 어디로 도망가겠느냐 그러니 지금은 보내줘도 된다.. "
"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
" 시간은 많다. 일단 혼란스러운 가문부터 수습하고 나서 나머지 일을 처리해도 늦지 않아.. 오이가 차 씨 남매들에게 목숨을 잃은 지금.. 네 역할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걸 명심해라 "
" 알겠습니다. 형님 "
평소 오일의 야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오삼은 잔인하게 번뜩이는 오일의 눈빛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오일의 빙심(氷心)으로 봤을 때 자신이 아무리 그의 친동생이라도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 생각 들면 언제든 독수를 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할 일이 많다. 우리도 움직이자 "
" 네 형님 "
경계의 문
정말 삼 개월 같은 삼 일을 보내고 다시 돌아오게 되자 관산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도대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당분간 경계 밖에는 얼씬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 곧 문이 열립니다 "
문을 지키는 자들이 알리는 개문(開門)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관산은 차 씨 남매를 따라온 덕분에 가장 먼저 경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차상호가 문을 통과하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하인들이 황급히 달려와 그의 앞에 도열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 큰 도련님 수고하셨습니다 "
" 물건은? "
" 좀 전에 갈섬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6대 모두 100프로 회수했고 지금 창천시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
" 좋다. 수희는? "
" 아가씨는...여전히 그 상태입니다 "
" 알겠다. 물건이 도착하면 적당히 값나가는것을 골라 창천시장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암시장에 내다 팔아 금석(金石)으로 교환해 놓아라 "
" 명대로 하겠습니다 "
" 난 이곳에서 볼일을 좀 보고 난 후에 본가로 돌아 갈 테니 너희들은 먼저 떠나라 "
" 예 도련님 "
하인들이 물러가고 차상호는 동생들과 관산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식당 중 가장 호화로워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 어서 오십시오 상족.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
" 오랜만이다. "
그곳의 내부는 밖에서 본 것보다 더욱 화려했는데 나름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어서 마치 지구의 잘 꾸며진 레스토랑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었다.
차 씨 남매들이 자리에 착석하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 뭐로 준비해 드릴까요? "
차상호는 메뉴판도 쳐다보지도 않은 체 본인 마음대로 주문을 마쳐 버렸다.
" 우리는 항상 먹던 걸로 주고..이 녀석은 대충 먹다 남은 만두 있으면 가져와? "
" 알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
관산은 자신을 보며 피식 웃고있는 종업원을 노려봤지만 그는 그런 관산에게 다시 비릿한 미소를 날리며 돌아가 버렸다.
' 조금만 약하게 보여도 언제나 이런 식이지 이곳은 '
[ 참 인정머리 없는 곳이다 ]
' 맞습니다. 이곳은 그런 곳입니다 '
관산이 묵묵히 앉아 있을 때 차상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부디 네가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닐 길 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널 데려오기 위해 막대한 손해까지 감수한 상태이니까 "
" 거짓말 아니에요 "
" 좋아. 오늘은 평안시에서 쉬었다 내일 창천시로 떠날 테니 식사를 마치면 수현이를 따라가라 수현이는 신평의 숙소를 잡아주고 '
" 네 오빠 "
" 신평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굳이 도망치려고 힘 빼지 말아라. 네가 성실히 우리 일을 도와준다면 내 이름을 걸고 널 안전하게 돌려 보내주겠다. "
" 저 역시 상족들 손에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
" 잘 아는구나. 그리고 너희들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준비할게 많다. "
" 네 오빠 "
" 알겠습니다 형님. 그런데 오 씨 형제들이 허튼짓을 꾸미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
" 걱정할 것 없다. 오일은 당분간 그럴 정신이 없을 테니까 "
" 혹시 뭐 계획하고 있으신 거라도.. "
차종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차상호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
그때 기다리던 음식이 도착했다. 차 씨 남매들 앞으로는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가 놓여졌고 관산 앞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만두 세 개가 담긴 접시가 내려졌다.
" 잘 먹겠습니다 "
어찌 됐든 배가 고팠던 관산은 음식을 내어준 차상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고 허겁지겁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차상호와 차종호는 다녀온다는 말만 남겨 놓고 어딘 가로 가버렸고 관산은 차수현에게 반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한 여관에 도착했다.
그녀는 관산을 자신이 머무는 방 바로 옆 칸에 마련해 주었고 허락 없이 밖으로 나오면 다리를 부러트려 버린다는 협박도 아끼지 않았다.
" 오줌이 마려우면 어쩝니까? "
" 옷에 싸 "
" 똥은? "
" 옷에! "
' 마귀 같은 년 '
뭘 어떻게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차수현의 모습에 관산은 처량하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야 했다.
[ 너도 참 구질구질하다 남자가 꼭 그렇게 소심하게 반항을 하고 싶냐? 본좌가 다 부끄럽다. ]
" 자꾸만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어쩝니까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그런데 어르신 혹시 빼앗긴 12년치 생명력을 돌려 받을 방법은 없는 겁니까? "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틀리다고 일단 위험에서 확실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자 관산은 관천주에게 빼앗긴 수명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관천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는 마음으로 주머니 속에서 관천주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는 관천령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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