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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99,442
추천수 :
3,081
글자수 :
301,965

작성
22.06.19 01:06
조회
1,464
추천
45
글자
10쪽

지구의 파편사용자 (1)

DUMMY

그날이 오늘은 아니다.


-


“어서 와~”


콜린이 호들갑을 떨며 지구로 돌아온 승호를 맞이했다.


승호는 떠난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자신을 빼놓고 흔적을 추적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설마 나 빼고 추적한 건 아니겠지?”


“확인할 게 있어서 잠깐 관리국 다녀온 거야. 몸 상태는 괜찮아?”


괜찮다 못해 힘이 넘치는 상태일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공치사가 듣고 싶어 물어봤더니 승호의 기대를 벗어난 대답이 돌아온다.


“가슴이 엄청 커졌어!”


“아, 그래.”


추궁과혈할 때 흉부를 들이밀거나 신음을 내뱉는 식의 장난을 치길래 그쪽은 건드리지도 않았더니, 빠지지 않은 노폐물이나 남은 탁기가 그리 몰렸나 보다.


승호가 보기에도 조금 달라진 태가 났다.


‘어차피 몸속에 있던 거니까 문제는 없겠지.’


“키가 조금 늘어났고, 피부도 깨끗해졌지. 근력도 조금 강해진 것 같아. 몸 상태는 최고야. 고마워.”


“그거부터 먼저 말하라고. 당황하잖아.”


“히히”


배시시 웃던 콜린은 기운이 넘치는지, 바로 다음 흔적을 추적하자며 승호를 재촉했다.


-


“뭔, 죄다 코인이야. 재미없다고.”


흔적 두 개의 추적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콜린의 감상이다.


그들이 흔적을 쫓아 넘어간 시간은 각각 2009년과 2017년.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지 잔재가 묻어있던 두 사람 모두 코인 대박을 꿈꾸는 회귀자였다.


본인들이야 인생 역전으로 즐겁겠지만 큰 사건을 기대하던 콜린에게는 김새는 일.


각 시간대를 여유롭게 둘러보긴 했지만,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가고 싶은 시간대라도 있어?”


“굳이 하나만 꼽자면 빅토리아 시대. 근데 지금 같아서는 21세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아. 이제 두 번밖에 안 남았는데, 계속 코인 대박이나 보고 싶진 않다고.”


승호와 콜린의 동행은 영국에서 마무리하기로 처음부터 동의한 상황.


영국의 흔적은 이제 두 개만 남은 상태였고, 그건 그녀의 시간 여행도 두 번 남았다는 뜻이다.


프랑스나 벨기에, 네덜란드같이 거리가 가까운 나라의 흔적을 조사할 경우 한번은 같이 가기로 약속했지만, 승호가 유럽으로 흔적을 추적하러 올 때쯤이면 콜린은 죽어있을 확률이 높다.


“안 되겠어. 우리 성부터 들리자.”


“맛있는 건 나중에 먹겠다며?”


남은 두 개의 흔적 중 하나는 런던의 동쪽 외곽. 다른 하나는 윈저성에 있었다.


윈저성은 영국의 왕족들이 머무는 거처 중 하나.


다른 흔적들과는 뭔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감에 가장 마지막으로 조사할 생각이었지만, 실망스러운 여행이 계속되자 콜린이 생각을 바꾼 것이다.


“에피타이저나 식전주인 줄 알고 먹은 게 죄다 맹물이었잖아. 배고프다고!”


“알았어. 나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성으로 가자.”


-


2016년 6월 23일. 콜린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성에서 흔적을 찾아 넘어온 시간이다.


둘은 시간대를 확인하기 위해 근처의 신문 가판대를 찾았고, 콜린은 날짜를 확인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화를 터트렸다.


“또 코인이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누구를?”


“누구든! 진짜 왕족이 코인 하겠다고 넘어온 거면 한 대는 때려줄래.”


“그래도 큰 사건이 있기는 하네. 브렉시트 투표일이 오늘인데? 근데 이거 2020년까지 질질 끌지 않았어?”


“합의해야 할 내용이 엄청 많다더라고. 내년에도 이견조율만 하고 있을 수 있어.”


정보 흡수로 문자까지 바로 습득하는 것은 아직 무리였기 때문에, 승호는 콜린에게 대독을 부탁했다.


하지만 신문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한참 동안 신문을 뒤적였다.


“왜 그래?”


“우리가 아는 그 브렉시트가 아니야.”


- 브리튼 공화국 세 갈래로 갈라지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독립, 오늘 투표로 결정! 웨일스의 향후 행방은?


콜린이 읽어준 브렉시트란 기사의 소제목이었다.


-


파편 추적은 급한 것이 없었기에, 승호와 콜린은 이 세상이 원래의 지구와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승호는 평행세계의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완전히 신나서 기세가 오른 콜린의 의지를 꺾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 조사를 이어갔고, 일주일이 지난 뒤 결론을 내렸다.


“분기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역사가 달라지는 시작점을 찾았어.”


“드디어!”


승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지난 일주일간 점심 겸 저녁으로 피시 앤 칩스만 처먹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은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정신이 팔려서 도서관에만 처박혀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콜린은 그런 승호의 불만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알아낸 사실을 말했다.


“1999년에 여왕이 죽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아.”


“그 할머니 2020년에도 정정했잖아?”


“찾을 수 있는 자료에는 다 노환이라고 나와 있는데, 과거로 넘어온 왕실 인사가 있으니 암살일 수도 있겠지.”


“그 할배 왕자가 범인이려나?”


아직도 왕이 되지 못한 왕자라면서 가끔 TV나 유튜브에 소개되곤 했기에 승호도 찰스 왕세자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고구려의 장수왕과 쪼다 왕자로 비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그 사정도 대충은 알고 있다.


“추적해보면 알게 되겠지. 아무튼 여왕이 죽은 뒤, 찰스 왕세자가 즉위하면서 공화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2011년에 군주제를 폐지했네. 그 상태에서 아일랜드랑 스코틀랜드가 난장판을 벌이니까 지난주에 각자 찢어져서 살자고 결정 났어.”


콜린의 역사 해설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승호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궁금해졌다.


영국이 이 정도로 개판이니, 다른 나라는 얼마나 난장판일지 기대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은? 뭐 달라진 것 없어?”


“내가 외국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 영연방은 조금 시끄럽긴 했어도, 지구 전체로 보면 전쟁같이 눈에 띄는 이슈는 없었어.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네 말대로 사람 하나 죽은 정도로는 크게 달라질 것도 없나 봐.”


“좋아. 그럼 이제 흔적을 찾아보자고.”


-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칠십여 년간 계승 서열 1위를 지키고 있는 왕자.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의 어머니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고, 정상적으로 즉위한다고 해도 즉위식에서 쓰러져 죽을 가능성이 있는 계승자.


농담이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


‘빌어먹을 인터넷!’


예전에는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농담조로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밈이 퍼지면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 상황이다.


그의 예전 행실이 지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긴 했어도, 어머니의 장수라는 축복이 조롱이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접견 약속도 잡지 않은, 처음 보는 사내가 그의 앞에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관련 농담을 지껄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대체 다들 어디 있는 거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윈저성에 잠깐 들렀는데, 맞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내의 접근에 놀라서 호출한 경호 인력들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봐. 왕이 되고 싶지 않냐니까? 왜 대답을 안 해?”


“예의를 지키시오.”


“예의는 무슨. 이것저것 따지면 당신이 나한테 예의를 지켜야 해. 우리 편하게 가자고.”


무례한 사내는 허공에 불덩이를 여러 개 만들어내더니, 마술 공연이라도 하는 것처럼 공으로 삼아서는 저글링을 보여준다.


그 나름대로 긴장을 풀어주려는 행동이었지만 왕자는 기겁할 노릇.


“당신 정체가 뭐야?!”


그는 한순간 사라졌다가 왕자의 옆에 나타나서는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중요하지.”


“악마?”


“그렇게 불린 적도 몇 번 있긴 해.”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냐?”


“내가 원하는 거? 그냥 재미.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네 얘기가 들리더라고. 그래서 생각해봤지. 당신이 왕이 되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서 물어보러 왔어.”


왕이 되고 싶냐고?


솔직히 그런 생각은 반쯤 버린 지 오래다.


어머니와 달리 찰스는 과거의 일들로 인해 지지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낮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하지만 가장 지지도가 낮았을 때는 그가 왕이 되면 왕실은 무조건 폐지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왕자로서 벌려놓은 일들이 많은데,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되면 모두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건너뛰고 아들에게 바로 왕위가 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을 때는 내심 반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반쯤 버렸다는 말은 반 정도는 왕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것.


“어머니에게 손을 대겠다는 소리냐?”


“오우,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손을 대는 건 너지 내가 아냐.”


“흥! 내 나이가 이미 70이다. 다 늙어서 패륜을 저지르라고?”


“나도 그 정도로 야박하진 않아. 젊었던 시절로 가야지. 지금 왕이 되는 걸 봐서 뭐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냐?”


“깔끔하게 20세기 마지막 날로 보내줄까? 인심 조금 더 써서 구십년대로 보내줄 수도 있어.”


왕자는 악마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이런 제안을 받았던 걸까.


“내 영혼이라도 노리는 건가.”


“불렸던 적이 몇 번 있는 거지. 악마 아니거든. 영혼을 받는 방법도 모르고, 받는다 쳐도 그게 쓸데가 있을까?”


사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그의 마음은 기울었다.


당연한 일이다. 왕자란 왕이 되기 위한 존재니까.


“좋아. 계약을 받아들이지.”


“계약 아니라니까. 그냥 보내주는 거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머리에 가득 찼다고 느낀 한순간.


왕자는 1999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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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발론 (1) +2 22.06.28 1,328 56 10쪽
32 방벽과 영국의 마지막 흔적 +5 22.06.26 1,516 56 10쪽
31 지구의 파편사용자 (4) +1 22.06.23 1,432 52 11쪽
30 지구의 파편사용자 (3) +2 22.06.19 1,399 45 11쪽
29 지구의 파편사용자 (2) +1 22.06.19 1,395 45 10쪽
» 지구의 파편사용자 (1) +1 22.06.19 1,465 45 10쪽
27 관리국의 일상 (2) +1 22.06.18 1,467 46 10쪽
26 관리국의 일상 (1) +3 22.06.17 1,523 49 10쪽
25 동행 (3) +3 22.06.16 1,518 50 10쪽
24 동행 (2) +2 22.06.15 1,543 48 10쪽
23 동행 (1) +4 22.06.12 1,619 50 11쪽
22 당근과 채찍 (2) +3 22.06.11 1,634 51 11쪽
21 당근과 채찍 (1) +2 22.06.10 1,664 65 11쪽
20 나태의 악마 (2) +3 22.06.08 1,729 60 10쪽
19 나태의 악마 (1) +1 22.06.05 1,884 62 11쪽
18 귀환자 둘 (2) +1 22.06.04 1,871 63 9쪽
17 귀환자 둘 (1) +5 22.06.03 1,903 61 9쪽
16 회귀자 셋 +4 22.06.02 1,988 60 10쪽
15 집으로 (3) 22.05.31 2,085 60 10쪽
14 집으로 (2) +2 22.05.29 2,121 64 9쪽
13 집으로 (1) 22.05.27 2,174 65 12쪽
12 고룡의 조언 (4) +5 22.05.27 2,122 78 10쪽
11 고룡의 조언 (3) +2 22.05.25 2,176 73 9쪽
10 고룡의 조언 (2) +3 22.05.22 2,260 74 9쪽
9 고룡의 조언 (1) +1 22.05.21 2,412 73 10쪽
8 보호 관찰 종료 22.05.21 2,633 68 9쪽
7 첫 임무(2) +4 22.05.19 2,867 8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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