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셋
“하하, 너 일복이 터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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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상황이야?”
“아까 말했듯이 파편 세 개가 날뛰고 있는 것 같아.”
“흔적들 말고, 다른 단서는?”
“이제 네가 찾아봐야지.”
“내가?”
“보통은 용 셋이 파견되거나, 특수 임무로 빠질 일이지만, 지금은 상주요원이 있으니까.”
평소 여럿이서 빠르게 해치우는 일을 혼자 하겠다는 지원자가 나타난 상황이다.
승호 본인이 지원자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모두가 행복한 일이다.
‘빌어먹을’
레니스는 지구의 상황에 휘말리기 싫었는지, 알려줄 것만 빠르게 알려준 뒤, 텔린에게 승호를 넘겼을 때처럼 도망치듯이 복귀하려 했다.
“잠깐만, 그냥 그렇게 간다고?”
“도와줘? 흔적 하나 추적할 때마다 특임 한 개씩 추가?”
승호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중지를 세워 올렸다.
“당장 꺼져.”
“특임 때는 잘 부탁해~”
분명 그녀는 자기 할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간 것이지만 얄미운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호감은 첫 임무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이제는 의심까지 들 지경이다.
‘원래 외모로 저러고 다니면 처맞을 테니 변신한 거겠지. 저거 여자 아닐지도 몰라.’
레니스의 원래 종족이 뭔지 모르니 합리적인 추측이지만 지금은 그저 허무할 뿐이다.
“에휴, 일이나 하자.”
-
시공 파편의 흔적은 따로 처리하지 않는 한 사라지는 일이 없다.
그 흔적을 찾고, 남아있는 잔재로 문을 만들어 쫓는 것이 관리국 요원들의 파편을 추적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파편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승호가 처음으로 추적한 흔적은 달랐다. 한 번의 이동이 끝이었고, 그 끝에 있는 것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평범한 사내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이나 감각을 열어봤지만 승호와 같은 시간대에서 왔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처음부터 찾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보다 좋겠네. 회귀라니.’
승호가 흔적을 따라 넘어온 세상은 2017년의 지구. 눈앞에 있는 사람은 3년을 회귀한 것이다.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승호가 자신도 20년에서 왔다고 밝히자 회귀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인적 없는 산으로 승호를 이끌었다.
“진짜 초능력자?”
[미약한 텔레파시 정도죠.]
자신을 어떻게 찾았냐는 질문에 용언을 들려주자 회귀자는 의심을 거뒀다.
회귀의 당사자이니, 초능력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참 동안 초능력에 대해 물어보던 회귀자는 승호 같은 사람이 더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질문에 답해주기 시작했다.
“어떻게 과거로 왔는지 전혀 모른다는 거죠?”
“네. 사정이 있어서 좀 심하게 취한 날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2017년이더군요.”
“사정이요?”
혹시나 단서일까 싶어, 승호가 취한 이유를 물어보니, 회귀자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그날 이혼했거든요.”
-
대답을 들은 승호는 곧장 사과를 건넸다.
“어우, 괜한 걸 물어봤네. 미안해요.”
“괜찮아요. 저희 부모님 세대한테나 흉이었지. 요즘은 워낙 흔하니까요.”
그 대화 직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침묵이 이어지는데, 회귀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네요.”
“이상한 점?”
푹
푹 푹
이상한 게 있다며 품 안에 손을 넣은 회귀자는 칼을 꺼내서 무방비로 다가오던 승호의 복부를 마구 찔러댔다.
‘얘 지금 이혼 물어본 것 때문에 기분 상해서 사람 찌른 거야?’
당황해서 가만히 있는 승호를 죽은 것이라 착각했는지, 그를 앞에 두고 회귀자가 지껄인 말은 가관이었다.
“초능력자라고 배때지에 칼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군. 너무 나쁘게 생각 마라. 회귀자는 한 명으로 족하잖아?”
승호는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겨우, 그런 이유로?”
“네가 어디 가서 회귀한 사실을 떠들면 골치 아파져. 그리고 초능력은 너무 큰 불안요소야.”
‘이거 완전 미친새낄세?!’
어이가 없어진 승호는 곧장 회귀자에게 붙어있는 잔재를 모아 2020년으로 돌아가는 문을 만든 뒤, 통과했다.
당연히 회귀자도 끌고 왔고, 상황을 파악한 그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날 다시 돌려보내! 빨리!”
“너라면 보내주겠냐?”
“으아아아아!”
완전히 이성을 잃은 회귀자는 칼을 들고 승호에게 덤벼들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승호가 힘을 줘서 한 번씩 밀칠 때마다 녀석은 바닥을 굴렀다.
“크윽! 너 대체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먼저 공격했다는 사실 따윈 전혀 들어있지 않은 듯했다.
미친놈과 대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승호는 강하게 나갔다.
“지금부터 질문은 나만 할 거야. 넌 대답만 해.”
승호는 질문에 착실히 대답하면 다시 보내준다는 말로 그를 진정시키고 대답을 뜯어냈다.
하지만 쓸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고, 승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답해주면 다시 보내준다며! 날 다시 돌려보내라고! 이 개새끼야!”
혹시나 쓸만한 단서가 있었다 해도 약속을 지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승호가 그냥 떠나려는 기색을 보이자 회귀자는 갖고 있던 칼로 자살을 시도했다.
“이 자식, 가지가지하네.”
어쩔 수 없이 승호는 레니스가 알려준 방법으로 그의 기억을 지웠다.
하지만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인지, 혹은 실수가 있었는지 몇 번이나 기억을 지워도, 녀석은 정신을 차릴 때마다 자살을 시도했고, 승호는 그의 기억을 모두 날리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쓰레기지만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 두기는 찝찝했다.
승호는 백치가 된 녀석을 근처 파출소 앞에 던져놓고 다음 흔적으로 이동했다.
‘죄다 이런 놈들이면 레니스가 학을 뗄만하네.’
-
걱정과 달리 두 번째와 세 번째 회귀자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파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
우연히 휘말린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눈떠보니 17년이었다?”
“네...”
승호랑 이야기하고 있는 남자 또한 20년에서 넘어온 세 번째 회귀자.
처음에는 완강하게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기파를 몇 번 보여주니 굉장히 협조적으로 변했다.
“17년에 뭐 꿀 발라놨나. 셋 다 똑같네.”
“그 코인이라고 아세요? 요때쯤 사놓으면 확 뜨거든요.”
“알아요. 나도 이맘때였나 언제였나 백만 원 정도 했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저씨도 술 먹고 잠들었는데, 눈떠보니 그냥 17년이었다? 그 전 상황은 기억 안 나시고?”
먼저 만난 두 명도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승호의 질문은 상투적으로 들렸다.
“옙. 근데 셋이라는 거 보면 나 말고도 회귀한 사람이 둘이나 더 있나 보네요.”
“제가 확인한 사람만 세명인 거고,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죠. 그보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할게요.”
앞선 질문들과 달리 마지막 질문은 승호를 조금 머뭇거리게 했다.
“그... 여기로 오기 전에 아내분이랑 갈라서신 거죠?”
두 번째 회귀자도 이혼 후 술독에 빠져 살다 회귀했는데,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는 말없이 라이터를 꺼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칙칙
“후. 그 나쁜 년...”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
담배 연기와 함께 승호와 회귀자 사이에 정적이 내린다.
머쓱해진 승호가 막혀버린 탐색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회귀자가 그를 부른다.
그새 마음 정리를 했는지, 딱딱하게 굳었던 표정이 풀려있었다.
“저기,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저한테 보여주셨던 초능력 있잖아요. 정말 저도 쓸 수 있나요?”
“아, 그럼요. 제 앞에 등 돌리고 앉으세요. 가부좌도 틀어주면 더 좋고요.”
미심쩍을 만도 하지만, 남자는 초능력을 배운다는 사실에 홀렸는지, 순순히 승호의 앞에 앉는다.
“머리가 따끔하실 거예요. 자, 따끔~”
“끄윽!”
첫 번째한테 여러 번, 두 번째 회귀자에게도 한번 쓰면서 완전히 감을 잡은 기억 제거술.
첫 번째처럼 다시 2020년으로 데려갈 생각은 아니다.
혹시나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자신에 대한 기억만 날릴 목적이었다.
상대의 머릿속을 기로 샤워시키는 것처럼. 하지만 씻는다기보다는 지운다는 느낌으로 살짝, 아주 살짝.
눈을 뜨면 세 번째 회귀자의 기억은 하루에서 한 달 정도 지워져 있을 것이고, 영문도 모른 채 17년도로 돌아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로또나 회귀나, 아무튼 잘 먹고 잘 사시길...”
승호는 회귀자의 행복을 빌어준 뒤, 그에게 남아있던 잔재를 모아 2020년으로 돌아가는 빛기둥을 만들고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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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회귀자의 공통점은 2017년으로의 회귀, 음주로 인한 블랙아웃, 이혼 남성이라는 것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의미한 요인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세 흔적 모두 하나의 파편이 일으킨 일이라는 것.
‘혹시 모르니까, 가정법원 앞에 방을 잡아야 하나...’
이제 겨우 흔적 세 개를 해결했을 뿐인데, 피곤함을 느낀다.
‘이게 다 첫 번째 놈 때문이야.’
승호는 마음을 다잡고 가장 가까이 있는 흔적부터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당장은 막막하지만, 하나씩 지워 가다 보면 언젠가 끝이 올 것이다.
그런데 네 번째 흔적은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다.
굳이 표현하자면 방향성.
앞선 세 흔적이 안에서 밖으로 향했다면, 네 번째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설마 2023년에 이혼하고 회귀한 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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