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99,439
추천수 :
3,081
글자수 :
301,965

작성
22.05.22 19:16
조회
2,259
추천
74
글자
9쪽

고룡의 조언 (2)

DUMMY

그가 꺼낸 것은 옥수수 하나와 사과 두 알이었다.


-


색이 좀 심하게 푸르뎅뎅한 것이 먹기 위험해 보이고, 크기도 승호가 알고 있던 것과 조금 달랐지만 분명 옥수수와 사과였다.


“옥수수랑 사과네요.”


“내가 알고 있는 명칭이랑 다르지만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것들이 많으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이게 그 먹으면 승천한다는 그런 종류의 열매인가 보죠?”


“아니. 그냥 평범한 열매인데.”


“그냥 과일을 교육비로 받았다고요?”


“이걸 따온 배나비라는 별에서야 흔하겠지만 비두스에서 구하기는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관리국에 말해서 그냥 갖고 와 달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승호는 삼년 가까이 자신을 맡아준 대가가 겨우 과일 세 개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다못해 몇 포대만 됐어도 귀한 과일이라 생각해서 넘어갔겠지만 고작 세 개라니.


“가치는 상대적인 거야. 레니스는 임무 중에 잠깐 짬을 내서 따왔겠지만 여기 있는 나는 구하기 힘든 과일이잖아.”


“그렇게 맛있어요?”


“오래 산다고 음식들이 맛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고급 요리보다 재료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 지거든. 후... 넌 이런거 먹지마라.”


씁쓸한 표정으로 술을 한 모금 마신 텔린은 손에서 불을 피워 옥수수를 굽더니 반을 툭 잘라 바로 먹기 시작했다.


텔린이 유기농 과일을 가지고 담배인 것 마냥 분위기를 잡자, 승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좀 줘봐요.”


“뭐. 갓 딴 상태 그대로니 나쁘지 않을 거다.”


자기가 먹지 말라고 했으면서, 텔린은 순순히 남은 옥수수와 사과를 넘겼다.


“캬읍! 퉷!”


사과는 시큼하고 텁텁한 것이 절로 지구의 새빨간 사과가 그리워지는 맛이었고, 옥수수는 그나마 단 맛이 괜찮았지만 그의 앞에 차려진 음식들에 비교하면 영 아니었다.


“호텔 음식보다 많이 구린데요.”


“그래서 넌 먹지 말라고 했잖아. 진짜 맛있었으면 나도 몇 포대씩 받았겠지.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가끔 참을 수 없이 궁금해지거든.”


“이게 교육비 맞아요? 따로 더 받은 거 없이?”


정말로 그게 다였다.


텔린이 관리국과 거래할 때 주로 받는 물건들은 가본 적이 없거나, 아주 오래전에 가봤던 별들의 식재료였다.


음식을 통해서 새로움을 느끼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 그게 텔린이 긴 시간을 버티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나중에 혹시 나랑 거래할 일 생기면 참고해. 이번 거래는 나쁘지 않았어.”


-


승호는 텔린이 졸업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축하 분위기를 내길래 교육이 끝난 줄 알았지만 그의 가르침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세 개 남았어. 오늘은 그냥 내 취미. 너는 이제 겨우 어딜 가든 괜찮은 수준이 된 거고, 이제 어딘가로 가는 방법을 배워야지.”


관리국에서 통과했던 빛기둥을 만드나 싶어 승호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텔린은 코웃음을 쳤다.


“그걸 시공의 파편 없이 만들려면 용 오백은 있어야 될 거다. 이게 아는 게 없다고, 너무 날로 먹으려 하네.”


“소리나 레니스는 그냥 편하게 만들던데요?”


“그건 걔들이 관리국 소속이라 그렇고, 나도 그게 안돼서 관리국이랑 계속 선을 유지하고 있는 거다. 관리국 도움 없이 별 하나를 특정해서 이동하는 것은 용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야.”


“그래요?”


“용씩이나 돼서 왜 국장이 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겠냐? 다 그만큼의 이득이 있으니, 그놈들도 툴툴대면서 붙어있는 거다.”


그제야 승호는 왜 텔린이 직접 과일을 채집하러 가지 않고 거래하는 것인지 이해했다.


-


“얘기 나온 김에 이동하는 법이나 배워보자.”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날아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느 세월에 그 거리를 직접 날아가냐. 일단 시키는 대로 해봐.”


텔린은 승호에게 정보를 흡수할 때, 오로지 별빛에 집중만 하라고 지시했다.


쉬운 일이었기에 승호는 바로 정보를 받아들이다가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이전처럼 세상과 하나 되는 고양감이나 기록을 봤을 때의 압도감과는 달랐다.


애달픈 그리움, 절박한 외침, 그저 가볍게 거기 있냐고 ‘여어~’하는 안부까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느낌.


그중 가벼운 안부 인사가 맘에든 승호가 ‘여어~’라고 화답하려는 순간.


따악!


“아윽! 왜 때려요?”


텔린이 무정보 상태를 펼침과 동시에 승호의 머리에 딱밤을 날렸다.


“내가 그냥 집중만 하라고 했지? 이놈 시키 진짜 습득력은 있네.”


만약 텔린이 승호의 집중을 끊지 않았다면 그는 멀리 있는 어딘가로 이동했을 것이다.


“갔다가 다시 오면 되죠. 아으, 그보다 어떻게 때렸길래 통증이 이리 길어요? 계속 아프네!”


“용이 집중하는 거 끊기가 쉬운 줄 아냐. 그리고 비두스가 부르는 감각을 네가 뭔지 알고 다시 돌아와?”


“아?”


“나는 네가 무슨 별빛을 따라갔는지 어떻게 알고? 너 내가 혹시나 놓쳤으면 그대로 우주 미아 되는 거였어.”


용들의 이동은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다.


따라간 부름이 새로 태어난 별의 외침일 수도 있고, 이미 사라진 별의 잔재일 수도 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직접 우주공간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별빛의 부름을 따라서 떠난다.


그렇게 무한에 가까운 시간동안 온 우주를 떠도는 것이다.


“그렇게 떠돌면서 살다 보면 참 즐겁지. 이만큼 살았는데도, 못 가본 곳이 많거든. 새로운 지식, 새로운 인연. 지치거나 마음에 들면 머무는 것이고, 쉴 만큼 쉬었다 싶으면 다시 떠나는 거야.”


용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얘기하는 텔린은 누가 보기에도 즐거운 표정이었지만 한순간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일초와 천년의 차이가 무의미해지지. 시간의 무의미함을 느끼는 주제에 시간에 잡아먹히는 거다. 매번 새로움을 느낀다지만 매번 느낄 만큼 별 거 없으니...”


지난 삼 년간 같이 생활하면서 승호는 텔린이 가끔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을 봐왔다.


평소였다면 노인네 또 궁상떤다고 놀렸겠지만 지금 승호는 텔린의 무정보공간에 들어와 있는 상태.


완전히 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텔린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아파 죽겠는데, 정보까지 지랄이네! 나도 나중에 이렇게 된다고?’


승호는 레니스가 자신을 맡길 때 왜 도망치듯이 사라졌는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그의 말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에 잠식당하고 침잠한다.


승호가 압박감과 불쾌함에 못 이겨 텔린의 몸에 구멍을 뚫으려고 결심한 순간.


무정보상태가 사라졌다.


텔린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쫄았냐?”


“에이씨!”


그도 민망했는지 바로 사과를 건넸다.


“흐, 미안해.”


“왜 레니스가 바로 튀었는지는 알겠네요.”


“방금 같지는 않더라도, 같이 있다 보면 조금씩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어떤 존재든 오롯이 홀로 존재하지 않는 한 서로 알게모르게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용들도 마찬가지다.


-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텔린은 주제를 돌렸고, 승호도 그 장단에 맞췄다.


“오랜만에 뻘쭘하고 좋기는 한데, 그래도 근본적인 원인은 너 붙잡으려다 그런 거니 좀 봐줘라. 너 진짜로 우주 미아되면 얼마나 막막한지 알아?”


“정말로 자기가 떠나온 별을 찾기가 힘들어요?”


“일단 별의 의지 존재 유무부터가 문제지. 지성체가 살아가는 별이면 대부분 있기는 한데, 없는 별도 있어. 그런데 지구는 실재하는 신이나 정령 같은 거 없다며?”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이야기들은 많은데, 지금은 없다고 봐야죠.”


승호가 본인이 알고 있는 신화나 설화들에 대해서 썰을 풀자, 텔린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 정도로 넘쳐나면 의지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자고 있는 것 같네.”


“다 용이었을까요?”


“신선이나 부처가 되었다는 것들은 용 맞는 것 같고, 처음부터 신이라고 나선 것들은 단순히 방문객일 수도 있어. 그런데 지금 활동하고 있는 것들은 아무도 없다라...”


텔린은 갑자기 혼자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뭐 짚이는 거 있어요?”


“아니. 네가 말한 내용의 십분의 일만 진짜라고 쳐도, 그것들 다 미아됬을거라 생각하니 웃겨서.”


한참을 더 웃어대던 텔린은 승호가 같이 웃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헛기침을 하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큼! 그래도 널 용으로 만든 놈이 땡땡이치려고 숨어든 걸 생각하면 아마 아예 없지는 않을 거야.”


“아! 그 아저씨!”


자신이 용이된 원인을 떠올린 승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덕분에 승천해서 용이되었으니 분명 고마운 일이다.


머리는 그를 보자마자 일단 감사의 큰절부터 박으라고 외친다.


하지만 처음 눈떴을 때의 지독한 두통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휘말린 사건들을 생각하니, 절을 한번 더하고 일어나서 이단옆차기를 날리라고 가슴이 시킨다.


‘어쩌지?’


일단 한 대 때려주기는 해야 할 것 같다.


“텔린. 아까 나한테 날렸던 딱밤.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제로 초월당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침식 (1) +3 22.07.03 1,069 36 10쪽
35 아발론 (3) +2 22.07.01 1,134 37 10쪽
34 아발론 (2) +2 22.06.29 1,252 44 9쪽
33 아발론 (1) +2 22.06.28 1,328 56 10쪽
32 방벽과 영국의 마지막 흔적 +5 22.06.26 1,516 56 10쪽
31 지구의 파편사용자 (4) +1 22.06.23 1,432 52 11쪽
30 지구의 파편사용자 (3) +2 22.06.19 1,399 45 11쪽
29 지구의 파편사용자 (2) +1 22.06.19 1,395 45 10쪽
28 지구의 파편사용자 (1) +1 22.06.19 1,464 45 10쪽
27 관리국의 일상 (2) +1 22.06.18 1,467 46 10쪽
26 관리국의 일상 (1) +3 22.06.17 1,523 49 10쪽
25 동행 (3) +3 22.06.16 1,518 50 10쪽
24 동행 (2) +2 22.06.15 1,543 48 10쪽
23 동행 (1) +4 22.06.12 1,618 50 11쪽
22 당근과 채찍 (2) +3 22.06.11 1,634 51 11쪽
21 당근과 채찍 (1) +2 22.06.10 1,664 65 11쪽
20 나태의 악마 (2) +3 22.06.08 1,729 60 10쪽
19 나태의 악마 (1) +1 22.06.05 1,884 62 11쪽
18 귀환자 둘 (2) +1 22.06.04 1,871 63 9쪽
17 귀환자 둘 (1) +5 22.06.03 1,903 61 9쪽
16 회귀자 셋 +4 22.06.02 1,987 60 10쪽
15 집으로 (3) 22.05.31 2,085 60 10쪽
14 집으로 (2) +2 22.05.29 2,121 64 9쪽
13 집으로 (1) 22.05.27 2,174 65 12쪽
12 고룡의 조언 (4) +5 22.05.27 2,122 78 10쪽
11 고룡의 조언 (3) +2 22.05.25 2,176 73 9쪽
» 고룡의 조언 (2) +3 22.05.22 2,260 74 9쪽
9 고룡의 조언 (1) +1 22.05.21 2,412 73 10쪽
8 보호 관찰 종료 22.05.21 2,633 68 9쪽
7 첫 임무(2) +4 22.05.19 2,867 8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