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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블랑 님의 서재입니다.

염병! 빌어먹을 헌터들이 다 내 뒤로 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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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1:14
최근연재일 :
2023.09.19 22:21
연재수 :
1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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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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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4,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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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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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마지막화 - 또 다른 시작

DUMMY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다시 삼 년이 흘렀다.


군에서 제대한 이준이는 올해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한 녀석은 가끔 하고 싶은 일을 주혁에게 줄줄이 나열하곤 했다.

그런 녀석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주혁은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인가 하는 생각에 문득문득 뜨거운 감동의 불덩어리가 그의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의 선을 넘었던 자식을 되찾을 수 있는 부모가 자신 이외에 또 있을 수 있는가? 그를 제외한 타인의 경우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황금의 기회를 그에게 베풀어 준 신에게 가끔은 남들 모르게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이렇게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돌려주신 대가로 그의 목숨은 그때 그냥 거둬가셔도 좋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런 은혜를 베푼 신의 부름이라면 몇 번이라도 신의 발치에서 목숨을 바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미래의 부푼 꿈을 안고 설렘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아들 녀석이 공항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양쪽 입꼬리는 귀에 걸려있고 가늘어진 눈 속의 눈동자는 한없이 반짝거렸다.


출국 전, 아들 녀석을 부둥켜안고 가슴 속 저 아래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그는 제어할 수 없었다.


“아빠! 성공해서 올게요.”

“몸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다가 와.”


녀석이 말하는 성공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주혁에게는 안개 속의 물체처럼 모호했다.

하지만 녀석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신만의 큰 포부가 있을 터.


“엄마하고 연락 자주 하면서 잘 화해해봐요. 엄마도 설마 아빠하고 진짜 헤어지고 싶겠어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녀석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래. 그래도 우리 아들 다 컸네?”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지만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가 녀석의 어깨를 ‘툭’하고 쳤다.

그러자, 아들 녀석이 다시 한번 그의 손을 힘껏 쥐어 보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출국 심사로 이어지는 통로로 사라지기 전 고개를 돌리고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당신,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냐.”


다시 강주혁으로 돌아온 후, 그녀가 그에게 한 말이었다.

그와는 달리 아들이 익사 직전까지 갔었다는 사실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던 그녀는 주혁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의 변화도 이상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의 아들은 물론이고 그도 그녀에게 그 일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이준이의 사고에 대해서 알아봤자 좋을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일부러 알려서 힘들게 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 사건은 부자만 아는 것으로 조용히 묻어 놓았다.


그리고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 이상 증상.

밤마다 끊임없이 그를 엄습하는 똑같은 악몽.


다시 댄의 모습으로 최전선의 선두에 선 자신.

떼로 몰려오는 적들에게 마석 구슬을 던져 어그로를 끈 그가 새까맣게 자신에게 덤벼오는 놈들을 향해 호기롭게 창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몰려오는 적을 아무리 막아내도, 놈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도, 또 어느새 그만큼 그의 시야를 뒤덮고 있는 적들.


시간이 갈수록 무뎌지고 무거워지는 몸.

어느 한순간 그의 몸이 마치 무너지는 벽처럼 주저앉았다.

동시에 그의 귓속에 날카롭게 번지는 헌터들의 비명과 단말마.


“.....으으으으으으으!!!”


창대를 쥔 팔에 온 힘을 싣지만, 그의 의지와 달리 모든 힘이 빠져나간 그의 몸은 그를 배신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헌터들의 도륙된 모습.

그들 모두 하나같이 그를 향해 시선을 두고 있다.

생명이 빠져나간 그들의 눈동자에 원망의 빛만은 여전히 남아있는 채로...


“....안돼애애애애애!!”


식은땀에 흠뻑 젖은 몸을 벌떡 일으키는 그의 입 밖으로 온 집안이 떠나갈 듯 기함이 터져 나왔다.


쿤, 제니스, 니시가와 한, 패트릭....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헌터들.

자신을 믿고 니힐러스 행성으로 원정을 떠났던, 그를 따르던 소중한 그의 사람들.


사라지지 않는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곧, 그의 삶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피폐해져 갔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어느 순간 그것을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다.






구로디지탈단지 역 근처의 JH 소프트웨어사로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친구인 지한이와 술 한잔 기울이기로 약속을 한 터.


차는 집에 세워두고 일찌감치 그는 서울로 출발했다.


전철에 빈자리는 꽤 눈에 띄었지만, 그는 도어의 구석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섰다.

창밖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어느 순간 그의 머릿속은 과거를 향하고 있었다.


한밤중, 강우주가 사라진 암흑 속에서 곧이어 나타난 경찰들.

그들 뒤로 들것을 들고 달려오던 119 메딕들.


주혁이 119에 신고한 직후에 그들은 그곳에 도착해서 현장을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에는 물론 아직 이준이가 입수하기도 전.

현장을 모두 확인한 그들은 그의 신고를 장난 전화로 치부해 버렸던 것.

나중에 이준이의 일행 중 누군가가 다시 건 신고 전화에 그들은 또다시 출동한 것이었다.



그 이후, 강우주는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 뿐.

이젠, 그에게 벌어진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터무니없는 꿈이었을 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흐른 후 아내의 손에 끌려 찾은 정신과.

자신과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한다는 그녀의 마지막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믿어지지 않는 ‘지구를 지키려고 노력한 영웅담’을 힘들게 꺼낸 그의 말에 눈가에 희미한 빛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정신과 의사.

과도한 스트레스로 현대인 중, 그런 비현실적인 경험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며 도피하려는 의도가 본능적으로 그러한 환상을 만들고, 또 그 덕분에 자신의 정신이 와해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보호되는 것이라 했다.


그의 말이 옳다.

그런 일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인간의 몸속에 마나라는 것이 흐르며 그 마력의 힘으로 초인적인 괴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부족해서 자신이 신의 부름을 받았다니. 자신과 같은, 더 이상 진부할 수도 없는 평범한 인간 중의 하나가.

그렇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의사의 진단 결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도 않은 일에 끊임없이 매달려 있는 자신을 이제는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한다.

그는 예전에도 평범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주-욱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어?”


어느새 시야에 들어오는 창밖이 깜깜하다.

전철은 이제 지하 속을 달리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그가 내려야 할 신도림역을 한참 지나 이제 서울역을 통과했다는 말이다.


- 이번 역은 종각, 종각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어이없는 한숨을 흘린 주혁이 하차하기 위해 반대편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오후 네 시 삼십 분.

맞은편 개찰구로 들어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하건만.

어쩐 일인지 그의 다리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터덜거리며 지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4번 출구의 밖에 있었다.

주위를 돌아본 그의 시야에 <별박스> 카페가 들어왔다.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그가 얼핏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 도로에 멈추어 선 고급 리무진.

어느새 그의 앞에 나타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리무진의 뒷문을 열고 옆에 서서 손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타십시오. 선생님.“

”...네? 저요?“


당황해하는 주혁을 바라보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언뜻 그가 상체를 숙이고 차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

이마 위를 흘러내리는 금발 사이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한순간 그를 압도했다.


”어서 차에 오르세요. 선생님.“

”....린다 블레어...“


화들짝 놀라 화등잔 만해진 눈으로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오우? 절 알아요?“

”......“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그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환상이라 치부하려던 것이 한순간 현실로 되돌아왔다.


”...흐음.“


똥그란 눈으로 여전히 입을 떼지 못하는 그를 주시하던 그녀가 낮은 침음을 흘렸다.


”좋아요. 그건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죠.“


입꼬리에 희미한 웃음을 흘린 그녀가 손가락을 올리고 스냅을 하자 리무진이 출발한다.




* * *




광화문 미국 대사관 뒷골목 건물 앞에서 차가 멈췄다.

열린 리무진의 문밖으로 주혁이 발을 내밀었다.


”어서 오세요. 강주혁 선생님.“


차량의 밖으로 몸을 일으키는 그의 앞에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깍듯하게 인사하는 젊은 여성.

검은 정장을 입은 그녀가 그를 보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부국장님 비서 임수아라고 합니다. 안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예. 오랜만....“


입 밖으로 나오던 말을 삼킨 그가 순간 붉어진 얼굴로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반짝였다.


”아! 제가 알고 있는 분과 많이 닮아서...“

”...예. 그러시군요.“


옅은 웃음을 보인 그녀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혹시...이곳에 강우주가....“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이면서 그가 임수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외출 중인데 잠시 후에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그에게 ID 카드를 건넸다.

무엇인가 설명하려고 입을 열던 그녀. 아무 말 없이 받아 들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미래에서 왔다더니....’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지하 3층에 내린 강주혁.

조금씩 두근거리던 그의 심장이, 그의 마음 가득 알 수 없는 설렘으로 넘치자, 점점 더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색대 옆, 빳빳한 군복을 입은 험상궂은 표정의 떡대 둘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먼저 검색대를 통과한 비서를 따라 그도 센서기 위에 자신의 ID를 올려놓았다.


‘VIP 방문객’


직선으로 뚫린 통로를 따라 그녀가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그런 그녀가 발을 멈춘 곳은 오른쪽에 있는 센터 보안시설의 문 앞.

센서기에 손바닥을 올린 그녀가 언뜻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았다.


”이곳이 한국 헌터협회의 뇌라고 할 수 있는 컨트롤 센터입니다.“

”...예에.“


열린 문 안으로 그녀를 따라 들어선 강주혁.

허공에 홀로그램 화면을 띄우고 전면 패널로 된 밖을 확인하고 있던 금발의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다.


‘...존’


틀림없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그가 임 비서와 강주혁을 돌아보았다.

환한 웃음을 얼굴에 담고 가까이 다가온 중년의 남성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 존이라고 합니다.“

”...강주혁입니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강주혁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간 스캔을 마친 존이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초면에 실례인 건 잘 알고 있지만 얼마나 건강하신지 한번 잠깐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그가 강주혁에게 훈련실 안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켰다.

무슨 의미인지 주혁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댄’이 아니다. 그저 오십이 다 되어가는 배 나온 평범한 아저씨일 뿐.

그래도 궁금해진 탓에 그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는 존을 따라 그가 안쪽 계단을 내려갔다.

커다란 미러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가 언뜻 옆을 돌아봤을 때였다.


제2 훈련실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띄었다.


”검을 역수로 쥐고 회전을 걸 때 너무 힘을 주니까 팔꿈치가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는 거 아냐.“

”그게, 고치려고 해도 쉽게 고쳐지질 않는단 말예요.“


교관의 지적에 뾰로통한 표정으로 새침하게 내뱉는 소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손을 들어 긴 머리를 거칠게 이마 뒤로 넘겼다.


”......쿤!“


진정하려고 해도 절대로 진정할 수가 없다.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한 주혁의 입 밖으로 낮은 신음이 터져나왔다.

한순간 붉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꼬리엔 이미 눈물이 잔뜩 고여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 그녀.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야에 중년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의 눈동자에 비친 남자의 행동에 쿤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사내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도노반의 시선도 사내를 향했다.


”혹시...저 아세요?“


자신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눈빛.

그녀의 말에 강주혁이 간신이 숨을 고르고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하고 너무 닮아서...“

”...아.“


다시 한번 흘끗 그를 본 소녀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보조를 맞추던 도노반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됐습니다. 수고했어요.“


은빛 건틀릿으로 허공에 펼쳐져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확인하던 존이 그를 향해 웃음 지었다.


”이곳을 돌아가시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존의 말이 끝나기도 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주혁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서는 그의 시선에 들어온 젊은 사내를 보는 주혁의 눈에 환한 빛이 번졌다.


”강우주!“

”오래 기다리셨어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주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선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묻고 싶으신 것도 많을 텐데.“


그렇게 말한 그가 손을 내민 주혁을 잡아끌었다.






”어떻게.....“


휴게실 안에 들어와 마주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우주를 빤히 응시하던 강주혁.

할 말이 많지만, 무엇을 어디부터 어떻게 꺼낼지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내가....꿈을 꾼 것이...환영이 아니었....“

”물론입니다. 선생님.“


진지한 표정을 짓는 젊은 사내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댄’으로 계시는 동안 저도 소멸하지 않고 뇌의 한쪽에 남아있었어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오른쪽 머리를 가리켰다.


”절망과 피폐 속에서 부정적인 면만 보던 제게 선생님이 모두 보여주셨어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모든 것이 끝나고 선생님이 제 몸에서 떠나셨을 때,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가야 할 길을...“

”......“

”보잘 것 없지만, 선생님께서 하신 일을 제가 모두 조금씩 앞당겼어요. 한국 헌터협회 발족이나 앞으로 빛을 볼 전세계 헌터들의 발굴 같은 거라던가, 아공간에 나올 괴생물체 리스트를 작성한다던가. 쌤의 일과 관련된 것도 미리 해결하고...“


놀란 얼굴로 그의 말을 경청하던 주혁이 쌤의 이름이 언급되자 표정이 바뀌었다.


”쌤은 괜찮은가? 그땐 오른팔을 잃었었는데...“

”그럼요. 과거로 왔으니까요.“

”제니스는? 니시가와 한은?“

”모두 다 괜찮아요. 다만...“

”다만....?“


어두워진 그의 표정에 강주혁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선생님이 목숨 걸고 이루신 모든 일이 모두 지워진 것이... 이 세상 아무도 선생님의 업적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 목숨을 바쳐 지구를 구하셨는데...“

”아들을 구했네.“


그의 말에 젊은 사내가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난 그거면 됐어. 그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신에게 감사했는지 모르네. 다만 내가 헌터들을 구해내지 못했기에 악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사내는 그런 강주혁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가 지구를 구했노라고, 수십억 인류뿐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그의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라 그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주혁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닐 터.

그럼에도, 강주혁은 자신이 이끌던 헌터들을 구하지 못한 것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조심스럽게 젊은 사내가 말을 꺼냈다.


”이번엔 그 헌터들을 모두 구해주세요. 하나도 빠뜨리지 마시고요.“

”....뭐?“


뜻밖의 말에 주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댄이 아니다, 젊음도 사라졌고 남은 건 마흔아홉의 나이 든 몸뚱이뿐.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환상으로 느껴질 뿐이다.


”저는 선생님이....“


그가 입을 여는 순간 그의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 화면을 확인한 그가 한쪽 눈썹을 슬며시 치켜올렸다.


”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머니께서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가 얼마 전에 이혼하셨거든요. 사직동 집에서 저와 같이 사세요. 선생님이 계셨던 바로 그 집에서요.“

”....아!“

”죄송합니다. 아드님을 위해서 그 집 구하신 건데 의도치 않게 제가 중간에 가로챈 게 돼버렸네요.“

”아냐. 정말 다행이네.“

”고맙습니다. 서류하나 때문에 집에 들렀다가 올게요. 먼저 가시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한 젊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기다리시면서 반가운 얼굴을 모두 만나보시고요.“


그렇게 말한 후 우주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혼자서도 센터의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이 내부의 모든 곳, 구석구석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은 이방인일 뿐이다.


”...휴우.“


낮은 한숨을 쉰 그가 탁자 위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 식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잡혔을 때 다시 슬며시 문이 열렸다.


”...야아옹!“


고양이 한 마리가 슬며시 들어왔다.

예의 그 거들먹거리는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본 녀석이 소파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고 슬며시 자신을 내려다보는 주혁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마치 눈치를 살피듯 한참을 올려다보던 녀석이 한쪽 발을 들어 주혁의 허벅지에 올렸다.


”나쁜 놈!“


녀석을 저지는 하지 않지만 그런 레오를 바라보는 그의 입에서 험상궂은 말이 튀어나왔다.


”끝끝내 우리를 배신할 섀도우베일족의 못된 염탐꾼!“


그런 그의 말에도 마치 못 알아듣는 척 녀석이 두 발을 모두 그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슬며시 뛰어오른 후, 몸을 말아 편안하게 누워 눈까지 감는다.


”...레오!“


밝은 여성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곧, 열린 문 사이로 젊은 여성이 모습을 나타냈다.


‘..씰비.’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 씰비가 그의 허벅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를 녀석이네. 낯선 사람한테는 하악질이나 해대던 놈이 얌전하게....“


그렇게 녀석을 보고 중얼거린 그녀가 주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부국장인 린다 블레어의 사무실 안.

그녀가 존과 함께 화면에 떠 있는 누군가의 자료를 훑어보고 있다.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자료를 읽어보던 그녀가 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정말 그 강주혁이란 사람의 신체 자료 맞나요?“

”예, 확실합니다.“

”체내 마나 양이 26.8% 이란 게 가능한 일이라고요?“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시 자료화면을 훑어보는 그녀를 향해 존이 입을 열었다.


”저도 믿기지 않아서 두세 번 확인 했는데 확실합니다.“

”....흐음.“

”어떻게 하실건가요?“

”지금까지 체내 마나 양이 가장 높은 건 강우주 아니었나요?“

”예. 12.05 % 인데, 그것도 대단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26.8 이라는 수치가 나왔단 말이죠? 내년이면 50이 될 중년에게서요?“

”체내에 넘쳐나는 마력으로 치환하면 체력이야 쉽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설득해서 진행해 보도록 하죠.“

”그런데..“

”뭐죠?“


다시 입맛을 다시는 존을 바라보며 부국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다른 문제라도...“

”이름이 좀...“

”.......“

”직원들이 주혁이라는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 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직원들 대부분이 아직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니까요.“

”그럼, 뭐 새로운 이름을 ID에 넣도록 하죠. 편하고 간단한 걸로요.“

”그렇다면, ‘댄’ 어떻습니까?“

”댄요?“


그의 말에 블레어 부국장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제가 예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지구를 구하는 영웅에 관련된 조금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그렇게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 * *




친구와의 약속이 틀어져 버렸다.


갑자기 생긴 일로 오늘은 친구와의 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지만, 곧 날을 다시 잡으면 될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그가 아파트의 거실 창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11시가 넘은 시각.

몸을 돌린 그가 걸음을 옮겨 소파에 앉았다.


한꺼번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 하루였다.

환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줄로 알고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다니.

그래도 그들 모두의 안위를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낮은 한숨을 쉬며 그가 숨을 고를 때였다.


- 띵동


청아한 소리가 언뜻 그의 귀에 들려왔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 그의 시야에 펼쳐진 글자.


[시스템 재부팅으로 인한 임무 수행 확인을 위해 본인 확인 절차가 시작됩니다]


“....뭐?”


[완결하지 못한 임무를 확인 중입니다......0%]


다시 한번 갑작스레 닥쳐온 비현실적인 상황에 그의 입 밖으로 낮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스물 다섯 번째 미션 : 네뷸리시어스 신을 영접하고 신격의 능력을 얻으시오.]


“네뷸리시어스.....”


마치 홀린 듯 주혁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신의 이름.


다음 순간,

환한 빛무리가 폭발하듯 그의 눈앞에서 휘날리기 시작했다.

똥그래진 그의 눈에 찬란하게 빛나는 커다란 날개가 펼쳐지더니 무지갯빛 오라 속에서 거대한 풍채를 띤 눈부신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끝-


작가의말

지금까지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인사 드립니다.


깡초보 작가 지망생으로 지난해 12월 부터 시작해서 이제 두 번째 소설을 끝냈습니다(첫 소설은 보시다시피 42화에서 멈추었습니다). 좌충우돌하면서 중도에 그만두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쓸 수있을까 하는 자신감 부족에서 나오는 불안감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예상했던 분량대로 제 나름 끝맺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의 절을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지낸 후, 다음 소설에 좀 더 나은 필력과 플롯, 내용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속 깊이 크나 큰 감사를 전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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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22 mj*****
    작성일
    23.09.20 09:39
    No. 1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화네요. 한동안 댄에빠져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렇게 좋은 소설을 무료로 읽을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마지막화도 완벽하네요.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드는 여지도 남아있어 살짝 기대도 해봅니다 ㅎㅎ. 고생 많이 하셨고 푹쉬시다 좋은 글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화이팅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20 13:36
    No. 2

    행복하고 재밌게 읽었고 저는 첫 소설을 쓰면서 함께 계속 해왔던 애정이 있는 작가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행복하게 댄의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완결까지 이어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작품이나 시즌2도 정말 기대됩니다. 언제나 작가님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편안한 명절 보내시고 또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작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ap******..
    작성일
    24.08.13 22:04
    No. 3

    잘봤습니다. 저도 지구를 구하는 용사가 되고 싶습니다 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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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화 - 또 다른 시작 +3 23.09.19 145 9 22쪽
123 122화 회귀 +1 23.09.18 105 5 13쪽
122 121화 희생 +2 23.09.15 112 4 21쪽
121 120화 배신(4) +1 23.09.14 106 4 14쪽
120 119화 배신(3) +1 23.09.13 110 5 12쪽
119 118화 배신(2) +1 23.09.12 107 4 12쪽
118 117화 배신(1) +1 23.09.11 113 4 10쪽
117 116화 이클립시아(3) +1 23.09.08 108 5 11쪽
116 115화 이클립시아(2) +1 23.09.07 107 4 11쪽
115 114화 이클립시아(1) +1 23.09.06 109 4 10쪽
114 113화 지하요새 잠입(5) +1 23.09.05 103 4 11쪽
113 112화 지하요새 잠입(4) +1 23.09.04 110 5 11쪽
112 111화 지하요새 잠입(3) +1 23.09.01 104 5 10쪽
111 110화 지하요새 잠입(2) +1 23.08.31 105 5 10쪽
110 109화 지하요새 잠입(1) +1 23.08.30 120 4 10쪽
109 108화 흑마법 연구소(18) +1 23.08.29 118 4 10쪽
108 107화 흑마법 연구소(17) +2 23.08.28 121 4 13쪽
107 106화 흑마법 연구소(16) +1 23.08.27 125 5 10쪽
106 105화 흑마법 연구소(15) +2 23.08.26 123 4 10쪽
105 104화 흑마법 연구소(14) +1 23.08.25 122 5 10쪽
104 103화 흑마법 연구소(13) +1 23.08.24 125 4 10쪽
103 102화 흑마법 연구소(12) +1 23.08.23 126 4 10쪽
102 101화 흑마법 연구소(11) +1 23.08.18 122 5 10쪽
101 100화 흑마법 연구소(10) +1 23.08.17 127 4 10쪽
100 99화 흑마법 연구소(9) +1 23.08.16 161 5 10쪽
99 98화 흑마법 연구소(8) +1 23.08.14 13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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