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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겸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영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윤지겸智謙
작품등록일 :
2012.11.18 17:01
최근연재일 :
2012.11.13 15:47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98,930
추천수 :
582
글자수 :
41,540

작성
12.11.07 11:07
조회
18,038
추천
50
글자
9쪽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4)

DUMMY

‘증조부는 물론 할아버지께도 못할 짓이 되어버리겠군.’

헤인스는 심한 갈등을 느끼는 듯 한 층 더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할아버지의 이름, 담기령으로서 사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신은 이 집안의 피를 이어받았고, 죽은 할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족보가 살짝 꼬여버리게 되기는 하지만, 헤인스 혼자만 알고 있는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헤인스는 아주 긴 세월 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고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할아버지와 증조부도 문제였지만, 헤인스에게는 고향에서 자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 노심초사하고 있을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였다.

“대공자님,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입구에서 보았던 기응천의 목소리였다.

‘아, 생각할 시간을 안 주는군.’

헤인스는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나가지.”

방을 나서니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응천의 모습이 보였다.

“앞장서게.”

“예, 공자님.”

장원의 구조를 확실하게 모르는 헤인스로서는 안내를 받아야만 찾아갈 수가 있었다. 아까 방을 찾아갈 때도, 이렇게 기응천을 따라 왔었다.

“대공자님 정말 잘 돌아오셨습니다. 제가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십니까?”

기응천의 말에 헤인스는 저도 모르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기응천과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기응천은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그일……. 기억하세요?”

기응천의 아주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헤인스는 저도 모르게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무슨 일?’

“왜 그때, 그러니까 대공자님이 집을 나서시기 한 달 전에 말입니다. 그때 같이 처주부도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 그랬었나?”

“에이, 왜 그러십니까? 그때 같이 기루에 가지 않았습니까요?”

“아!”

순간 헤인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기응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던 이유를 깨달은 탓이었다.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넘어오기 얼마 전이었지, 아마? 그러니까 딱 지금 네 나이쯤이었다. 그때 기응천이라는 세가의 무인 녀석을 데리고 기루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녀석이 난생 처음 아리따운 아가씨들 옆에 앉으니 뻣뻣하게 얼어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술만 마셔대더니, 크허허허!」


이곳저곳 많은 영지에서, 헤인스를 두고 혼담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케르네스 제국의 귀족가에서는 열여덟을 전후로 결혼을 하는 편이었고, 그 가문의 위세가 크면 클수록 그 시기가 빨랐다. 조금 급한 곳은 열다섯에 이미 혼담을 주고받고 아예 약혼을 해 놓는 일도 많은 편이었다.

어쨌든 그 시기에 담기령은 손자인 헤인스에게, 어른들만의 무용담을 들려주기도 했었다.

바로 그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헤인스는 재빨리 기응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하, 그랬지. 그때 내가 자네를 데리고 기루에 갔었지? 아마 그때가 응천이 자네가 처음 기루에 갔었던 때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순간 기응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동시에 헤인스의 얼굴에도 불안이 떠올랐다.

‘뭐지? 그게 아닌가? 분명 맞는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아무리 곱씹어 봐도 자신은 틀리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기루에 처음 가신 건 공자님이시잖아요. 한 번도 못 가보셨다면서, 꼭 한 번 데리고 가달라고…….”

‘아, 할아버지!’

헤인스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잡혔다.

“그, 그랬었나?”

“하하하, 예. 분명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때 모시고 갔더니…….”

물론 헤인스는 그 뒤의 이야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 할아버지와 기응천의 역할이 바뀌겠지만. 어쨌든 더 들을 필요는 없다.

“자자, 어서 가세.”

“예? 아아, 가시지요.”

자신의 말을 끊는 헤인스를 보며, 기응천은 부끄러워서 그러나 보다 하는 생각에 슬며시 이야기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 동안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요? 가주님이 중원은 물론 서역까지 곳곳을 다 뒤지셨습니다. 하다못해 서역 너머 법국(法國:프랑스)이나 덕국(德國:독일)까지 가시겠다는 걸, 둘째 공자님이 겨우 말리셨지요.”

그 말에 헤인스는 갑자기 귀가 번뜩 틔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난감했던 한 가지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말로만 듣던 법국이나 덕국인 줄 알았단다.」

「법국? 덕국? 거긴 어디예요?」

「중원의 서쪽에 있는 서역을 지나면 나오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이 할아버지도 가본 적은 없다만, 그곳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붉거나 노랗고, 파란 눈에 붉은 눈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거든.」


‘일단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되겠군.’

오 년 동안의 행적을 얼버무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거기에도 아페리온 대륙인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까, 딱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있었노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받아들이기도 쉬울 것이다.

기응천을 따라 도착한 곳은, 장원 내부에 지어진 가산(假山)이었다. 정확하게는 가산의 연못가에 지어진 혜심정이라는 정자 안이었다.

“자, 받거라.”

헤인스가 자리에 앉자마자 담고성이 대뜸 술병을 내밀며 말했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헤인스가 황급히 술잔을 들어 올린다.

쪼로로록!

맑은 소리와 함께 호박색 투명한 액체가 차분하게 술잔을 채웠다.

“네가 사라진 후에 가장 한스러웠던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헤인스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그러니 대답할 말도 없다. 아무 말없이 술잔만 들고 있는 헤인스의 모습에, 담고성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너와 기명이, 그리고 이 애비까지 삼부자가 모여서 술잔 한 번 기울인 적이 없었다는 거다. 자, 어서 마셔라.”

“예.”

술잔을 기울이니 호박색 투명한 액체가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크으!”

그리고 그 뒤에 갑자기 치솟는 화끈한 기운. 하지만 곧바로 짙은 향이 뒤따르며 화끈한 기운을 감싼다.

저쪽 세상에서 마셨던 맥주나 와인, 혹은 그것들을 증류한 브랜디나 위스키와는 또 다른 향취가 느껴졌다.

“뭘 하느냐? 이 아비에게도 따라 주어야지.”

“예, 받으세요.”

헤인스는 담고성의 술잔을 채운 후, 담기명에게도 술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 세 부자 사이에 말없이 술잔이 오고간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돈 후, 담고성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간 어디에 있었던 것이냐?”

“그것이……. 법국에 가 있었습니다.”

“뭐, 뭐라고? 법국이라면 분명…….”

“예, 서역 너머에 있는 나라입니다.”

담담한 헤인스의 표정과는 달리, 담고성은 말문이 막힐 이야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오 년 만에 돌아와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그 먼 타국까지 가서 뭘 했단 말이냐?”

“그것이……. 세상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서신 한 통 없이, 기별 한 번 주지 않고 이 애비가 속을 끓이게 만든 이유란 말이냐!”

“죄송합니다.”

담고성의 얼굴에 섭섭함과 노기가 함께 떠올랐다. 하지만 그 보다는 이렇게 무사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어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하아, 그래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괜찮다. 이렇게 돌아왔으니 되었어.”

담고성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담기명이 말했다.

“그럼 형님은 그곳에 가서 무얼 하신 겁니까?”

“응?”

“가서 무얼 하셨는지 그 이야기나 한 번 해주십시오.”

“궁금하더냐?”

“아, 그럼 안 궁금하게 생겼습니까?”

헤인스의 시선이 슬쩍 담고성에게로 향했다. 담고성 역시 몹시 궁금한 듯,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어쩌면 그것이 증조부에게 할아버지의 소식을 알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빠지는 것도, 더하는 것도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헤인스는 머릿속으로 어려서부터 들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법국에 들어섰을 때……. 하필이면 그곳은 전장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지요.”

헤인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담고성과 담기명은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함께 손에 땀을 쥐고, 걱정을 하고, 화를 내고, 웃으며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그리고 세 부자는 새벽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질 때까지 술잔을 나누었다.


작가의말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 가지셨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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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장. 할아버지의 이름으로(3) +9 12.11.13 15,131 55 10쪽
10 3장. 할아버지의 이름으로(2) +8 12.11.12 15,183 43 9쪽
9 3장. 할아버지의 이름으로(1) +7 12.11.11 15,288 47 9쪽
8 2장. 담씨세가의 묘한 풍경(3) +11 12.11.10 15,524 46 9쪽
7 2장. 담씨세가의 묘한 풍경(2) +13 12.11.09 15,822 55 7쪽
6 2장. 담씨세가의 묘한 풍경(1) +11 12.11.08 17,316 53 12쪽
»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4) +12 12.11.07 18,039 50 9쪽
4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3) +7 12.11.07 18,555 55 7쪽
3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2) +13 12.11.06 19,917 57 8쪽
2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1) +9 12.11.06 22,725 63 8쪽
1 서장 +11 12.11.06 24,479 58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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