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윤지겸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영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윤지겸智謙
작품등록일 :
2012.11.18 17:01
최근연재일 :
2012.11.13 15:47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98,931
추천수 :
582
글자수 :
41,540

작성
12.11.07 11:05
조회
18,555
추천
55
글자
7쪽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3)

DUMMY

‘아, 뭔가 실수 한 것 같은데…….’

헤인스는 답답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어색하게 담기명의 어깨에 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 그래. 그 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괜찮습니다. 이제 돌아오시지 않았습니까?”

담기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담고성이 두 아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들어가서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다오. 어디 있었기에 이 아비를 그리 마음고생을 시켰는지.”

헤인스는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위험한데? 아직 제대로 생각이 정리가 안 됐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뭔가 허점이 드러날 지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앞뒤를 맞출 시간이, 그리고 한 가지 언뜻 머릿속을 스쳤던 한 가지 가설을 확인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 죄송하지만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해서 그러는데 일단은 좀 쉬고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버릇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싸한 요구였다. 헤인스의 말에 담고성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허, 그래 내 경황이 없어 그걸 미처 생각 못했구나. 자자, 일단은 들어가자. 네 방은, 네가 떠날 때 그대로 있으니 어여 들어가자꾸나.”


“후우!”

방으로 들어온 헤인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기응천이 자신을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고, 스스로 아버지라 밝힌 사람과 종조할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으로 인사를 한 남자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이 짧아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다.

‘함정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지?’

헤인스는 일단 함정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배제하기로 했다. 자신이 이곳으로 온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 리가 없는데, 할아버지의 고향집인 담씨세가에서 어떻게 함정을 판단 말인가.

그럴 만한 이유도 없을뿐더러, 자신이 다른 세계로 가버린 담기령의 손자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절대 함정은 아니야.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이곳 중원에서는 할아버지가 저쪽 세상으로 떠난 시점을 기준으로 겨우 오 년의 세월 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건데…….’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세상으로 갑자기 떨어져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아예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헤인스가 서둘러 이 방으로 온 것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저분들이 진짜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동생, 그러니까 증조부님과 종조할아버지라면 분명 있을 것이다.’

헤인스는 재빨리 방 안을 훑은 후, 방문 맞은편에 있는 서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각의 뒤편으로 손을 뻗어 아래쪽으로 밀어 넣었다. 서각 아랫부분의 문갑 공간의 뒤쪽.

‘분명 이쯤이라고 하셨는데……. 이, 있다!’

헤인스의 손가락 끝에 각진 나뭇조각이 걸렸다.

달칵!

나뭇조각을 옆으로 돌리자 문갑 뒤쪽의 나무판이 열렸다. 담기령에게 들었던, 그의 일기를 숨겨두는 비밀 공간이었다. 그리고 손끝에 닿는 몇 권의 책.

설마 했던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흐으읍!”

헤인스는 연거푸 숨을 들이마시며 떨리는 손으로 책들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신중한 표정으로 꺼낸 책을 펼쳤다.

“컥!”

헤인스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눈꼬리에 파르르 경련이 일어나고, 눈동자는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이, 이건!’

헤인스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다른 책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꺼낸 모든 책들을 확인한 후, 헤인스의 입에서 탁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우리 할아버지 취향도 참 고상하셨네.’

비밀 공간에 있던 책은 모두 다섯 권. 그 중 두 권이 춘화도였고, 두 권은 음서, 그리고 겨우 한 권만이 일기였다.

헤인스는 저쪽 세상 자신의 방에 숨겨져 있는 비슷한 책들을 떠올리며 잠시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역시 저분들은…….’

담기령의 물건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명백했다. 지금이 정말로 담기령이 실종 된지 오 년이 흐른 시점이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아까 만든 그들이 틀림없는 헤인스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의 동생이라는 말이다.

만약 오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면, 이 방의 주인은 분명 바뀌었을 터. 옛날 주인의 물건이 남아있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오십여 년이 지나도 일기가 남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헤인스를 담기령으로 생각하는 담고성과 담기명이 있었고, 먼저 달려와 아는 척하는 기응천도 있었다.

가능성이 낮은 여러 가지 일들이 이렇게까지 겹치기는 힘든 법이었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지금이 할아버지가 사라진 지 오 년이 지난 시점이라면, 실종 당시 할아버지의 나이가 열일곱이니 현재는 스물둘이고 지금의 내 나이 역시 스물둘이다. 오 년 동안 못 봤는데 이 정도로 닮은 얼굴이라면 충분히 나를 할아버지로 오해할 만해.’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담기령 실종으로부터 오 년 후라고 가정하면 아귀가 척척 들어맞는다.

“그러고 보니 기응천이라는 이름도 언젠가 한 번 들어 본 것도 같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던 헤인스가 갑자기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급히 목에 걸고 있던 적옥패를 꺼내 들고는 중얼거렸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이 물건까지 있으니, 아니라고 우기면 오히려 미친놈 취급 받게 생겼네? 크흐흐흐…….”

너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한 탓에 헤인스는 저도 모르게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피식거리며 웃어대던 헤인스의 얼굴에 잠시 표정이 사라지는 듯하더니, 이내 안쓰럽고 죄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증조부의 애처로운 얼굴과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떠오른 탓이었다.

‘내가 사실을 말한다면?’

헤인스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저었다. 믿어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랬다가는 증조부의 가슴에 그야 말로 대못을 박는 격이다.


「아버지……. 그러니까 헤인스 너에게는 증조부가 되시겠지. 내가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흐르는 바람에 아버지께 본의 아니게 죄를 짓게 되었단다. 이 할아버지는 그것이 평생 한으로 남는구나.」


헤인스가 철이 들 무렵, 담기령은 종종 아련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증조부는 물론 할아버지께도 못할 짓이 되어버리겠군.’

헤인스는 심한 갈등을 느끼는 듯 한 층 더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영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 무림영주 출간공지 입니다. +2 13.03.05 1,356 0 -
11 3장. 할아버지의 이름으로(3) +9 12.11.13 15,131 55 10쪽
10 3장. 할아버지의 이름으로(2) +8 12.11.12 15,183 43 9쪽
9 3장. 할아버지의 이름으로(1) +7 12.11.11 15,288 47 9쪽
8 2장. 담씨세가의 묘한 풍경(3) +11 12.11.10 15,524 46 9쪽
7 2장. 담씨세가의 묘한 풍경(2) +13 12.11.09 15,822 55 7쪽
6 2장. 담씨세가의 묘한 풍경(1) +11 12.11.08 17,316 53 12쪽
5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4) +12 12.11.07 18,039 50 9쪽
»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3) +7 12.11.07 18,556 55 7쪽
3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2) +13 12.11.06 19,917 57 8쪽
2 1장. 천하제일 세가, 담씨세가(1) +9 12.11.06 22,725 63 8쪽
1 서장 +11 12.11.06 24,479 58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