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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약장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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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전공약장수
작품등록일 :
2021.03.01 19:43
최근연재일 :
2022.06.01 21:36
연재수 :
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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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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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1
글자수 :
2,829,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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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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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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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27쪽

3화 밤이 되었습니다

DUMMY

노란 비서를 쓰고 날아온 곳은 숲의 한 가운데.


적어도 마을 어딘가로 올 줄 알았는데 진짜 완벽하게 랜덤인 것 같다.


게임 기준이면 노란 비서를 썼을 때 주막으로 날아갔는데 이쪽 세계에는 주막이란 게 없으니까 그냥 위치가 랜덤으로 간다고 추측하고 있는데...


음...


오히려 잘 된 일인가?


왕을 납치한 상태로 마을 중앙에 나타났으면 바로 병사들이 도착했을지도 모르니까.


“자 그럼 기분이 어때? 숲으로 납치된 기분은?”


“날 어쩔 셈이지.”


“방치할건데?”


나는 다시 한 장의 노란 비서를 꺼냈다.


“잠시 기다려보게! 이런 곳에 날 버려두면 어쩌란 소리인가!”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잖아?”


“뭐가 괜찮단 말인가! 짐의 옥체를 지킬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이딴 숲에 던져두고 방치하겠단 말인가! 숲은 항상 몬스터들이 있단 말이다!”


“그래.”


“그딴 무책임한 소리를!...”


왕은 화를 내면서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어차피 왕은 철저하게 짓밟을 생각이니까.


“다른 세계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 불러다가 처형시키려고 했던 상황보단 더 좋지 않나? 적어도 여긴 본인 세계잖아?”


“그건 네놈이 마나가 없는 게 잘못이다!”


“우와... 아직도 그딴 말이 나오네? 그럼 마나가 쥐뿔도 없는 난 사라져줄 테니 알아서 잘 살아보라고. 여기 있는 몬스터들과 같이 말이지.”


왕의 표정이 얼어붙어갔다.


이렇게 가는 것도 좋지만, 딱 하나만 더 하자.


“그리고 아까 못 했던 거.”


얼어붙은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왕의 앞에 가서 조용히 주먹을 쥐고.


퍽!


전신의 힘을 주먹에 집중시켜서 면상에 한 방 날려줬다.


“크억!”


왕은 코피가 터지면서 나무쪽으로 날아갔고, 내 기분도 좀 상쾌해진 것 같다.


“역시 마법으로 지지는 것보단 직접 때리는 게 타격감이 있지.”


순간 방어막이 생겼었지만, 주먹에 닿는 순간 사라지고 그대로 공격을 허용했다.


아무래도 마나가 다시 회복되면 방어막도 돌아오는 식이겠지.


그리고 공격하면 위치를 안다고 했으니까 이걸로 구조는 올 것이다.


‘그러면 1차 인성질은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고.’


다시 노란 비서를 들고 사용했다.


왕을 숲에 버려둔 채.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왕은 숲에 홀로 3일을 버티다가 구조되었다고 한다.


지금 한 짓의 목적은 단순히 다른 곳에 끌려가서 개고생 하는 걸 경험해보란 정도로 한 것이다.


제대로 엿 먹이려면 나름의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







노란 비서를 사용해서 날아온 곳은 또 숲이었다.


“이야... 무슨 귀환서가 마을 하나를 못 찾아?”


잠깐 불평을 했지만, 숲을 걸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차라리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마을 한 가운데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만큼 수상한 것도 없지.’


빠르게 그런 생각을 하자 좋게 생각하고 그냥 걸었다.


일단 1차 목표는 마을 찾기.


성에서 나가기 전에 하루가 지나서 워프 게이트를 다시 사용하며 확인한 건데.


일단 게임에서는 1일이고, 현실시간으로는 36분이라는 설정의 스킬은 써보니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했다.


정확히는 오전 6시 기준으로 재사용이 가능.


게임에서도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한 스킬들은 죄다 게임 시간 오전 6시를 기준으로 쿨타임이 다시 회복되었는데 그 설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한 번 다시 사용해봤는데 원래 세계의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다.


대충 말하면 여기서 한참동안 여행을 다녀도 저쪽에서는 며칠의 일이니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


그러니 여유롭게 걸으면서 상쾌한 공기나 마시고 있었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닥불 연기가 올라오고 있으니까 저쪽에 가면 사람도 있겠지.








**








부스슥 부스슥


울창한 나무 사이를 헤집고 나왔더니 한 명의 젊은 남성과 마주치게 되었다.


모닥불에 냄비 하나 올리고 스프를 끓이고 있는 모습이 딱 점심 먹으려고 하는 타이밍에 마주친 모양인데.


남성의 모습은 경계보단 호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착하게 보이는 인상의 시골청년 같은 사람이 슬며시 웃고 있으니 나도 큰 경계를 하지 않게 되었다.


“......혹시 다른 세계 분이신가요?”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아셨나요?”


“마을에 있는 의사와 의상이 비슷했으니 알아봤습니다. 혹시 점심식사가 아직이시면 스프 한 그릇 어떠십니까?”


남성은 웃으면서 스프 한 그릇을 떠서 내게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끓인 스프가 1인분 정도였으니 사실상 반 그릇인 수준.


“혼자 먹으려고 끓인 스프를 받기는 미안하니 마음만 받겠습니다.”


꼬르륵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었는데 배에서 배고프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 것도 안 먹었구나...’


어제 성에 있었을 때도 제대로 된 식사는 주지 않았다.


준 건 빵 몇 개랑 다 식은 스프 정도가 다였는데 그나마도 안 먹었다.


어제는 로그인 능력 연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오늘은 터득한 능력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재미있을지 고민하다가 왕한테 인성질하고 나오기까지...


가끔씩 인벤토리에서 에너지바를 하나씩 꺼내서 먹긴 했지만, 제대로 된 걸 하나도 안 먹은 상태.


배고픈 게 당연하긴 했다.


“역시 받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양이 좀 적지만 허기 정도는 해결될 것입니다.”


“하하...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결국 스프를 받아 근처에 앉았다.


그리고 한 입 떠먹었는데...


“맛이 괜찮은지 모르겠군요.”


“......괜찮네요.”


예의상으로도 맛있다고는 못 말할 수준이었다.


어떤 맛이냐고 하면...


그냥 간이란 게 전혀 안 되어있어서 상당히 밍밍한 맛이랄까?


적어도 조미료나 같이 먹을 것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인벤토리”


허공에 인벤토리 하나가 생겼고, 그 안에서 소금과 후추 그리고 핫바 2개를 꺼냈다.


인벤토리는 기본 인벤토리와 ‘바다의 나라’ 캐릭터 인벤토리 2개가 열리긴 했는데...


‘바다의 나라’ 게임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에 마땅히 꺼낼 게 없었다.


‘나중에 음식이 괜찮은 게 많은 게임도 좀 생각해봐야겠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스프에 소금이랑 후추를 뿌렸다.


적당히 간 조절을 해주니 이제야 좀 먹을 만해졌다.


그리고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니 남성 쪽은 신기하게 쳐다봤는데.


“허공에서 물건들이 나오다니 그게 특수능력인가 보네요.”


“그런 셈이죠. 이것 좀 뿌려볼래요? 조금씩 넣으면 맛이 괜찮아질 것 같은데.”


“하얀 가루랑 검은 가루라... 좀 신기한 유리병에 담겨있네요. 이렇게 뿌리면 되는 건가요?”


소금과 후추통을 받아든 남성은 스프에 내가 했던 것처럼 가볍게 흩뿌리면서 수저로 휘저었다.


그리고 한 입 떠먹자 상당히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 짠맛... 설마 소금입니까?!”


“맞는데 너무 짠가요?”


“그건 아니지만... 이렇게 비싼 걸 그냥 막 주셔도 되는 겁니까?”


“소금이 비싼 거였나 보네요. 아직 여기 온 지 하루라서 잘 모르거든요.”


“아주 귀합니다. 하지만 이 검은 가루는 아예 뭔지도 모르겠군요.”


“그건 후추라는 건데 혹시 아십니까?”


“전혀 들어본 적 없군요. 그렇다면 이것도 상당히 귀한 물건이겠네요.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남성으로부터 소금과 후추통을 다시 받았다.


판타지 세계에서 흔히 귀한 취급을 받는 설정이라 예상은 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남성은 소금과 후추를 뿌린 스프를 먹는 것도 꺼려하고 있었다.


“이거야 원... 이 스프를 제가 먹어도 될지 모르겠군요.”


“스프 값이라고 하죠. 이것도 하나 어떻습니까?”


핫바 2개를 익히면서 말했다.


모닥불에 잠깐 구웠더니 냄새도 괜찮게 풍기는 게 먹음직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이미 너무 큰 걸 받아서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러면 마을까지 안내해주는 비용이라는 걸로 어떻습니까? 지금 마을을 찾고 있거든요.”


“저희 마을이라면... 안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으니 다른 마을은 어떠십니까? 안내할 수 있는 건 방향 정도지만요.”


“안 오는 게 좋다니... 무슨 일 있습니까?”


“위험한 자가 있다고만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목숨이 아깝거든 저희 마을은 안 오시는 게 좋습니다.”


위험한 자라...


“혹시 인간이 대적조차 하지 못 하는 수준입니까?”


“대부분은 무리겠군요... 제국의 자랑인 기사단이 오거나, 제국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는 레우스님께서 오신다면 모르겠지만, 평범한 병사나, 모험가들로는 무리일 것입니다.”


기사단이나 레우스라는 마법사라...


생각해보면 왕이 제국 최고의 마법사라며 떠들었는데 그 사람 이름이 레우스였구나.


말하는 거 보니까 레우스의 항복을 받아낸 나라면 간단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그 정도면 제가 가도 문제없겠네요. 안내해주세요.”


“......진심이십니까?”


“네. 마을도 찾고 있었지만, 저와 옷이 비슷한 다른 세계 사람도 관심이 있으니까요. 만나러 가고 싶네요.”


마을도 마을이지만, 나랑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는 다른 세계 사람의 존재를 들었을 때부터 거절해도 갈 작정이었다.


“후회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전투는 자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다 익은 핫바 하나를 들이밀며 말했다.


“식으면 맛없으니 하나 어떠십니까.”


“......”


남성은 어이없어 하다가 살며시 웃으면서 핫바를 받았다.


“한스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해주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네요.”


“최현석입니다. 그저 선의에는 선의로 갚는 것뿐이니 너무 부담가지지 마세요.”









**








한스의 소개를 받아 도착한 마을은 대충 봐도 허름한 농촌의 느낌이 드는 마을이었다.


허름한 나무집에 농작물들이 자라는 밭 그리고...


그런 농촌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저택 하나가 마을 중앙에 보이고 있어서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스씨. 저 저택만 유독 고급스럽네요.”


“위험한 자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이왕이면 모른 척 해주세요.”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알겠습니다.”


여기에 오기 전에 한스가 하나만큼은 당부했던 게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저택에 관여하지 말고, 위험해 보이는 자와도 연관되려고 하지 말라고.


그렇기에 나도 적극적인 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


최소한 행동을 하는 건 상대방에 대해서 파악한 뒤의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한 명의 청년이 와서 인사하며 다가왔다.


“한스. 오늘 수확은 어떤가?”


“오늘은 나쁘지 않았어. 한아는 항상 있던 곳이지?”


“그래. 그런데 옆에 있는 형씨는 누군가?”


“근처에서 길을 잃었던 나그네. 잠시 쉬었다간다기에 데려왔다.”


“그런가?... 거기 형씨. 잠시 쉬는 건 좋지만 오래 있지는 말라고. 최근에도 시끄러운 일이 있었으니까.”


“주의하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채 방금 전의 청년을 뒤로 하고 한 건물을 향했다.


시끄러운 일이라는 게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우선 나 이외의 소환된 사람을 보고 싶으니 그냥 조용히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른 나무집처럼 허름한 곳이었지만, 문 앞에 십자 모양으로 빨갛게 칠한 표식이 있었다.


나름 병원 표식이라고 해둔 것 같은데...


다른 색도 많은데 굳이 빨간색으로 거칠게 칠해져서 핏자국 같은 느낌을 받아 이게 병원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 건물에 의사가 있습니다. 들어가시죠.”


뭐.... 그건 의사 본인한테 물어보고 일단 들어가자.








**







허름한 건물을 보며 생각은 했지만, 내부도 참 열악한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허름한 침대 몇 개가 있을 뿐이지 도저히 병원이라고는 못 말할 수준이다.


그런 건물 안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연약한 인상의 작은 체구를 가진 남자애 한 명이 앉아서 여러 가지 약초를 유리병에서 끓이며 지내던 중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앗! 당신도 소환된 용사인가요?!”


“그렇긴 한데...”


갑자기 놀라워하면서 얼굴을 들이미니 뭐라고 반응해줘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일단 추측이지만 대충 한국인의 모습에 의사가운까지 입고 있어서 진짜 의사 같긴 한데...


의사치곤 꽤 어린 편으로 보인다.


얼굴도 어설프게 보면 여자로 오해할 정도인 부드러운 인상의 미소년.


대략적인 첫인상은 그랬다.


“여기서 다른 용사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반가워요.”


“저도 반갑습니다.”


일단 저쪽에서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가볍게 했다.


“이름은 서한아. 의대 3학년생이라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특수능력 덕분에 의사노릇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 최현석입니다. 27살이고 소환된 지 얼마 안 지나서 특별히 하는 건 없습니다.”


“아... 소환된 지 얼마 안 되었다라... 그런데 이름이 사성그룹의 전설이라 불린 사람과 같네요?”


“그 말 자주 들어요.”


이름은 유명한데 얼굴 자체는 유명하지 않은 편이다.


내 이야기는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기보단 다른 유명인들이 언급해서 아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사성그룹의 최현석보단 그냥 최현석이 되고 싶었으니 기자들을 피하기도 했고.


“그래도 같은 한국인을 봐서 반갑네요. 아! 내 정신 좀 봐... 한스 형도 매번 고마워.”


“우리가 더 고맙지. 자 여기 받아.”


한스는 들고 다니던 주머니 하나를 서한아에게 넘겼다.


그 안에 있던 건 풀... 아니 약초인 것 같다.


“이번에도 좋은 약초들이네. 잘 쓸게.”


“받았으면 난 가본다. 둘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한스는 가볍게 미소 지으면서 방을 나갔다.


“활기찬 사람이네요.”


“좋은 형이죠. 농사도 쉬지 않고 지으면서 제가 필요한 약초까지 채집해주고 있으니까요.”


“그걸로 약을 만들고 있군요.”


처음 봤을 때도 약초를 끓이고 있었으니까 만드는 건 약이겠지.


“맞아요. 약초를 끓이고, 마나를 불어넣고, 마법으로 효과를 조정하는 걸로 다양한 약을 만들 수 있는 게 제 능력이거든요.”


“소환될 때 받은 특수 능력이 그건가요?”


“네... 처음에는 이런 능력이라 불만이었지만, 만든 약이 사람을 구해주니까 이제는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확실히 판타지 쪽을 동경했으면 불만이었을 능력이긴 하네요.”


“맞아요. 소환되었을 때 용사라고 했으면서 이런 능력이니까 바로 추방해버리더라고요. 그 때문에 고생도 참 많... 아 피차 같은 처지니까 말 안 해도 알겠군요.”


뭔가 이것저것 말하려는 도중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서한아.


“고생이라...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심정 잘 알고 있어요. 황제인지 뭔지는 몰라도 정말 너무하잖아요? 이런 외지까지 돌아다닐 정도로 힘들게 떠돌아다녔단 거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심지어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울먹이고 있는데...


“소환되고 돈은 없지... 힘도 없지... 식량도 떨어져서 굶고 다니지... 정말 저도 한스 형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그러니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부담가지지 말고 말해주세요. 어려울 때는 돕고 살아야죠.”


음...


돈은 일단 모르겠지만, 최강의 마법사를 항복시킬 힘도 있고, 식량도 집에서 챙겨왔고, 부족하면 다른 게임에서 꺼내먹으면 되니까...


서한아의 상황과는 달리 난 모든 게 풍족한 상태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공감이지.


그러니 대충 공감해주자.


“소환되고 마나가 0이라면서 정말 취급이 괴팍하긴 했어요. 마나를 측정하자마자 바로 태도는 돌변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서 처형하려고 했었다니까요?”


거짓말은 안 했다.


태도는 돌변했고, 안내역이 날 처형할 계획이었으니까.


그 뒤의 결과가 그쪽 계획대로 안 되었을 뿐이지.


“처형까지 하려고 하다니 정말 인권이라는 게 없다는 걸 세삼 깨닫네요. 그보다 마나가 0이면 저보다 더 힘들었겠네요.”


“가지고 있는 게 많아서 괜찮습니다.”


“그건 좀 부럽네요. 전 방학 중에 실험실에 있다가 소환당해서 가진 게 없었거든요.”


“그럼 그 옷은 의사가운이 아니라 실험복이었군요.”


“네. 저도 대학 오기 전까지는 실험복으로 이런 걸 쓸 줄은 몰랐는데 이게 실험복이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저 옷은 의사들만 쓰는 게 아니라, 실험실에서도 자주 쓰고 있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의사일 뿐이지.


“그럼 이왕 들은 김에 문 앞의 빨간 십자모양은...”


“아... 저도 초록색의 십자가를 그리고 싶었는데, 칠할 색이 빨강색밖에 없더라고요. 여기 와서 처음으로 색의 차이로도 가격이 수천배가 난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 하긴...”


색에 따라 가격이 차이나지 않는 건 기술이 발전해서 나온 결과물.


대표적인 일화로 중세 시대에는 사파이어를 갈아서 만든 파랑색 물감이 있었다고 한다.


즉 물감 값은 보석 값과 동일한 수준이란 거지.


다른 색도 마찬가지로 재료에 따라 색의 가격이 정해질 수밖에 없으니 구하기 쉬운 색을 주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래도 저 색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보면 피밖에 연상되지 않으니...”


“그...렇죠?...하하...”








**








서한아와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이쪽 세계에 관련된 거지만, 거의 중세 시대에 마법만 추가된 정도라고 생각해도 무난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소환된 용사들이 특정 기술을 전파해서 약간 발전한 게 있는 정도.


덤으로 이 마을은 위험한 3명이 지배하고 있으며, 그 3명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다는데...


위험한 3명이 누구인지는 그냥 넘겨버려서, 기술 쪽을 더 물어보게 되었다.


“음... 그러면 소금이 귀하던데 염전을 만든 용사는 없었나요?”


“그 생각 다들 한 번쯤은 하죠. 하지만 안 하는 게 좋아요.”


“네?”


“이쪽 세계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는 건 산에서 암염을 캐거나,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얻는 식이거든요.”


“암염은 그렇다 치고, 바닷물을 이용하는 게 염전 아닌가요?”


“차이가 있다면 여긴 마법으로 바닷물에서 물을 증발시켜서 소금을 얻어요.”


“오... 그거 꽤나 효율적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네.


여긴 마법이 있는 세계였지?


역시 마법이 사기였어.


“아니요. 상당히 비효율적이라 나오는 소금양이 적어요. 그냥 모닥불에 끓여서 얻는 것보다 나은 정도일걸요?”


는 마법 허접이었네.


“그러면 염전을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투자금 정도는 가볍게 회수할 사업아이템이 있는데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만든 뒤에 인건비는 좀 빠져나가겠지만, 그거 생각해도 돈이 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


“효율만 생각하면 그런데... 소금은 마법사의 주 수입원 중 하나거든요.”


“아...”


이해했다.


마나가 높을수록 대우받는 세계관.


그런 곳에서 마법사면 당연히 상위계층이다.


그 상황에 마나를 쓰지 않고 소금을 대량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팔리는 거야 잘 팔리겠지.


하지만 마법사들 눈에는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


마음만 먹는다면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처음으로 염전 사업을 벌인 용사는 암살당하고, 비슷한 방식의 소금제조는 사형이라고 발표하더라고요. 정말 사람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건 그러네요.”


방식은 다르지만 비슷한 일은 우리 세계에서도 있었다.


물건을 팔아먹는데 그보다 완벽한 상위호환이 나온다?


당연히 그 상위호환인 걸 쓰고, 과거에 쓰던 건 구시대의 유물이 된다.


예를 들면 피처폰과 스마트폰


피처폰도 마찬가지고, 그 이전에 쓰던 삐삐도 마찬가지다.


그 시대에 잘 팔린 것이라도 더 좋은 물건이 나오면 그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살아남을 방법이라면 더 싸게 파는 정도?


일명 가성비라는 거지.


그리고 그 외의 방법이라면...


상대방의 회사를 부수는 거다.


상대방이 아직 제대로 크지 않았다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집단의 힘이 더 크니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냥 더 싸게 팔아서 가성비로 승부하는 쪽이 이익이지만, 그건 소비자 시점이고, 기업 시점은 아니지.


기업은 과정이야 뭐가 되었든 돈 버는 게 목적이니까.


최근에도 비슷한 상황이 한 번 터졌었다.


카풀과 택시업계의 대립이 딱 그런 부류지.


카풀이라는 건 목적지가 같은 사람끼리 같은 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스마트폰 앱의 발달로 앱을 통해 목적지가 같은 사람끼리 모이고 이동한다.


차를 가진 사람은 어차피 갈 길인데 돈을 받고 가는 거니 좋고, 다른 탑승자는 택시보다 싸게 타고 가서 서로 이득인 구조.


하지만 이 사업이 확산되면 택시를 타는 인원이 줄어드는 건 명확하다.


그렇기에 택시업체가 대규모의 파업을 벌였던 것.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택시 값을 내려서 카풀과 가격경쟁을 하는 게 좋지만, 택시업계는 그랬다간 수익률이 떨어지고 결국 파산하는 사람도 나올 테니까.


그러니 한 일은 두 번째 방법.


아까 말했듯이 상대방을 부수는 거다.


그 방법이 현대사회에서는 단체로 파업하거나, 시위하는 거였고, 이세계에서는 암살일 뿐.


원인도 과정도 차이는 있지만 결론만 말하면 밥그릇 싸움이란 소리다.


나도 많이 했었지...


처음 생에서는 그 싸움에 졌고, 다음 생에서는 이겼을 뿐인 이야기지만.


“결과만 두고 보면 마법사들이 관여하는 사업은 안 하는 게 좋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그런 셈이네요.”


“일단 알아둘게요.”


딱히 어느 쪽을 편들 생각은 없었다.


염전을 만든 사람이나 마법사들이나 생판 남이나 다름없으니까.


마법사들의 수단이 더럽단 생각을 하긴 해도 지금의 감상은 딱 그 정도다.


게다가 최초로 염전을 만든 사람은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니 편을 도와줄 방법조차 없다.


“그리고 하나 드릴게 있는데... 어디...”


서한아는 잠시 서랍을 열고 뒤적거리면서 찾다가 낡은 종이 하나를 내게 건네줬다.


“이건?”


“좀 낡긴 했지만 근처의 지도입니다. 예전에 제가 쓰긴 했는데 전 마을에 정착한 상태라 쓸 일이 없거든요. 그러니 드릴게요.”


지도라...


펼쳐보니까 대략적이긴 해도 국가와 각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다.


‘확실히 제일 필요했던 것 중 하나가 지도였지.’


식량은 풍족한데 길을 모르는 상태라면 제대로 된 여행이 되지 않으니까.


“이건 큰 도움이 되겠네요. 하지만 이런 세계면 지도도 귀한 물건 아닌가요?”


게다가 각종 필기가 되어 있는 지도.


분명 본인이 여행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추가해둔 것일 텐데...


지도가 귀한 시대인 것을 넘어서 자신의 모험이 담겨있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했던 말인데, 물건은 써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늘 말해줬어요. 그러니 부담 없이 써주세요.”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내심 지도를 주면서 아쉬운 마음이 있다는 게 보였다.


누구에게나 주기 아까운 물건이 있지.


본인이 소중하게 써왔던 물건, 추억이 깃든 물건이면 더욱 그렇고...


“다시 여행하지는 않는 건가요?...”


“무리거든요. 이 마을에 사는 위험한 자들이 마을에서 나간 자는 다 죽이니까요.”


“죽인다니!... 그럼 설마...”


“위험한 자들이 힘으로 지배하고 있는 마을... 저희 마을은 그런 곳이에요. 그러니 오래 머물지 마세요.”


말하면서 약간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힘들게 살고 있다는 시점에서 악덕 영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말은 탈출하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고, 탈출한 사람은 죽었다는 이야기...


악의에는 악의로.


선의에는 선의로.


그게 내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방향성.


한스가 보여준 선의와 서한아가 보여준 선의 정도면 마을 하나 구해주는 정도는 해줘도 괜찮을 정도다.


힘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구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못 할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소중하게 쓸 게요. 그리고...”


말하려는 순간 밖에서 문을 큰소리로 열면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의사님! 큰일 났습니다! 한스가!...”








**








한스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간 곳은 마을 광장.


거기서 한스는 복부가 뚫린 채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한스 형!!!”


“이게 무슨...”


서한아가 서둘러서 약을 한스에게 먹였지만,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꺼져가는 불꽃과 같은 상태...


마법으로 만든 약의 효능이라고 해봤자 그 불꽃을 몇 초 정도 더 붙잡고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저놈인가? 이 멍청이가 데려온 이방인이?”


그리고 한스를 이렇게 만든 범인도 분명하게 있었다.


“......너희구나. 한스씨의 배를 뚫은 놈들이.”


“그렇다면 어쩔 건가? 덤벼볼 건가? 나약한 인간놈들이 반항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유흥거리지.”


그렇게 3명이 날 비웃고 있었다.


검푸른 피부에 긴 귀를 지닌 유사 인간들이.


“유언은 그게 끝이냐? 유사 인간놈들아.”


“......벌레 놈이 명예로운 마족을 인간 따위에 비유하는 구나. 너무 가소로워서 웃음밖에 안 나오네. 푸하하하하하!”


“마족? 그딴 건 내 알바 아니야.”


“아하! 가끔 있었지. 소환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마족 무서운 줄 모르는 한심한 용사들이.”


마족 3명 중 1명이 손에 푸른 불길을 내뿜으며 사악하게 웃고 있는데.


대충은 파악했다.


어중간한 병사나 모험가로는 못 이길 위험한 자는 이 3명을 말하는 거겠지.


“한스형... 제발...”


서한아는 한스를 붙잡고 다른 약들을 써보지만 한스의 온기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스와 서한아는 나한테 선의를 베푼 사람.


그리고 지금 앞에 있는 마족은 그 사람들과 나한테 악의를 내뿜는 것들.


내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서한아씨. 혹시 마피아 게임 알고 있어요?”


“그건 알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알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반드시 한스씨를 살려주세요.”


“그게 무슨...”


“이럴 거라서요. 로그인.”


다시 한 번 수많은 화면들이 나오면서 그 중 하나의 게임에 로그인했다.


그러자 한참 밟게 빛나던 햇빛이 사라지면서 한없이 어둡게 물들어가고...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작가의말

마피아 : ......

사회자 : 야 니가 마피아야.

마피아 : 아? 나였어?


-이 게임은 망한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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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한국의 민속놀이로 불린 그 게임 +3 21.03.07 2,223 34 16쪽
11 10화 준비된 모험의 시작 +2 21.03.06 2,269 36 15쪽
10 9화 강민과 최현석 +3 21.03.05 2,421 39 20쪽
9 8화 까망이 넌 내꺼야 +3 21.03.04 2,523 40 24쪽
8 7화 이제 이건 제껍니다. +2 21.03.03 2,728 41 12쪽
7 6화 너의 이름은? +4 21.03.02 2,940 46 19쪽
6 5화 걸어다니는 식당 +2 21.03.01 3,260 51 28쪽
5 4화 공정한 1표를 저 마족에게! +6 21.03.01 3,462 57 23쪽
» 3화 밤이 되었습니다 +1 21.03.01 4,089 54 27쪽
3 2화 최초의 RPG게임 +5 21.03.01 4,320 60 19쪽
2 1화 회귀한 뒤는 이세계 소환이냐?! +4 21.03.01 6,239 69 25쪽
1 프롤로그 +6 21.03.01 7,444 7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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