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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C

메카지옥에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완결

WGC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3
최근연재일 :
2024.01.17 21:35
연재수 :
1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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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0
추천수 :
191
글자수 :
853,659

작성
23.12.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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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CHAPTER 5: 일탈 (1)

DUMMY

페튜니아의 집에서 벗어나 다시 아발란체로 돌아갔다. 통신도 다시 활성화해서 로바의 위치도 빠르게 파악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정된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일이 나쁘게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페튜니아의 말을 듣고, 스승님을 얼마나 존경해왔는지 비로소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아는 스승님이라면 분명히 날 혼내면서도 결국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시겠지.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다시 날아올라 로바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로바는 내가 떠났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로바에 가까워지자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스승님이 만약 내게 크게 실망했다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페튜니아의 말대로 내가 생각하는 스승님이라면 날 다독여주지 않을까. 어느덧 로바의 화물칸에 도착했고, 나는 그저 조종석에서 내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듀온 씨, 무사히 도착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래."


사라는 늘 그랬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날 반갑게 맞이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로.


나도 그녀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은 없었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스승님의 방이었고, 그것만이 내 목적이었으니까.


쿵, 쿵, 쿵.


그리고 늘 그랬듯이 스승님의 방문을 두드린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어 괜히 긴장되는 것만 같았다.


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이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는데.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미 문은 자동으로 열린다.


"스, 스승님..."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냐."


스승님은 냉랭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그녀에게 뭐라고 말할까 싶다가도, 이내 아까 일부터 사과한다.


"그... 급한 일 때문에 먼저 가서 죄송해요...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하... 꼬라지하고는... 너란 녀석은 정말이지..."


그래도 스승님은 애써 침착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그 노력에 배신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렸다.


"그럼 이야기해보거라. 뭘 말하고 싶은 건데."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면 되는 걸까. 애초에 스승님은 화가 풀리신 게 맞는 걸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대답하는 게 좋겠지.


"언제부턴가... 제가 죽인 사람들이 떠올라요... 세피르들도 그렇고... 아직도 제 귀에 목소리가 맴도는 것만 같아요... 지금 눈앞에도..."


천천히 고개를 들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세피르의 거대한 붉은 눈이 스승님의 뒤에 서서 날 지켜보고 있다.


저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차마 이 사실을 내뱉을 수 없어 고개를 다시 숙인다.


스승님은 이를 악물며 날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승님도 이런 나에게 실망하셨겠지.


이런 나약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약간의 침묵 끝에 마침내 스승님이 입을 열었다.


"아듀온, 우리는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너는 너 자신과 너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지. 만약 네가 해내지 못했더라면 기업에서는 이를 빌미로 삼아, 널 그대로 끌어내리려고 했을 거야.

너만 그렇게 되는 줄 알아? 아마 나를 포함해서 분홍 머리나 선글라스도 함께 끝장을 보고 말았겠지. 네가 원하는 게 정녕 그런 일인 게냐."


"하지만 아카데미의... 수많은 학생도 가족이나 꿈이 있었을 테지요... 저는 괴물이에요..."


쾅!!


내 마지막 단어 한 마디가 스승님의 역린을 건드린 것인지, 의자를 발로 차내며 성큼성큼 걸어온다.


나도 스승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흠칫 놀랐다. 스승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매서운 눈으로 날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현실을 직시해, 아듀온. 자기 연민이나 그 약점이 널 구하진 않을 테니까. 아니, 우리 모두를 구하지 않을 거야.

네가 선택한 일이다, 아듀온. 넌 어린 애도 아니고 무고하지도 않아. 어떻게 보면 저기 더러운 기업들이 휘두르는 살인자이자, 도구이자, 무기라고.

그거 알아, 아듀온? 이 더러운 일은 결국 네가 선택하고, 또 선택한 일이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마라."


"스승님... 저는..."


"그럼 끝내라고! 너무 한심해서 스스로 선택한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면 당장 꺼져버려. 창문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 바로 저기 눈앞에 있다고.

아니면 내가 대신 밀어 넣어줄까? 그래서 이게 다인 거냐? 내가 너의 비참한 삶을 끝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겨주면 되는 거냐고!"


몸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내 몸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죄책감과 자기 혐오가 밀려온다.


마치 그녀 앞에서 벌거벗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앞에 있는 건 세피르의 눈이 아니었다.


절망의 구덩이 그 자체. 나를 추락시키고, 고통을 끝내기 위한 곳이나 다름없었다.


"개자식... 돌아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그딴 쓰레기 같은 소리였다니... 그딴 소리를 내뱉으려고 내 앞으로 기어와?

네 놈에게 실망했다, 아듀온. 그 짐을 견딜 수 없다면 여기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셈이니."


아,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난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돌아온 걸까. 애초에 페튜니아의 말대로 돌아오는 게 아니었어.


"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제게 경멸의 표시밖에 하지 않으시네요..."


"그럼 널 안아주면서 다독여주길 바란 거냐, 한심한 놈아."


어쩌면 스승님은 늘 내게 보여줬던 페이스로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녀의 매도가 너무나도 끔찍했다.


"너만 그런 걸 느꼈다고 생각하지 마... 하아, 아니. 이걸 말해줘서 뭘 하냐. 이야기 나누다가 바로 떠나 버린 새끼한테."


마치 배신당했다는 뉘앙스로 말하더니, 이윽고 나를 경멸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그 눈빛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인다.


하지만 스승님, 전 이미 당신에게 배신당했어요. 심장이 너무 두근거린다. 지금 이 순간 머리가 터져서 죽을 것만 같이 지끈거린다.


"제가...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길 바라는 거죠..."


스승님은 그런 나를 돌아보고는 여전히 경멸하는 눈빛으로 째릿 노려본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참으려는 듯 두 손가락을 꽉 오므리고 있었다.


"그래, 지금 당장."


끝났다. 스승님과의 관계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이곳에 있어봤자, 내게 돌아오는 건 그저 파멸뿐이었다.


더 이상 스승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 방 밖으로 나간다. 스승님은 그런 내 모습이 더욱 비참해지길 바라는 듯이 소리친다.


"하, 도망치는 게냐. 이젠 필요 없다, 아듀온. 당장 꺼져버려라. 적어도 내 눈앞에서 뒈질 각오가 없다면, 다른 곳에서 뒈져있기를 바라마."


비틀거리면서 방을 빠져나온 후, 고통의 도가니에 들어가 있는 느낌만이 가득했다. 복도는 끝없이 뻗어 있었고, 공허함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점점 절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창밖의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내야만 하는가. 창문의 손잡이는 마치 유혹적인 손짓을 하는 것처럼 유독 눈에 띄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두운 복도와 넓은 방을 넘어 도착한 곳은 심연이었다. 나는 그 어두운 심연 속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떨리는 손으로 조종대를 꽉 잡으면서, 출격할 준비를 마친다. 이윽고 HUD가 번쩍이면서 조종석 안을 환하게 비춘다.


"듀크... 문 열어..."


[마리골드: 기어이 떠난다는 거냐? 지, 진심으로 그러는 거 아니지?]


스승님도 내 통신을 들은 건지,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내 몸이 떨리는 것만 같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듀크: 둘이 무슨 일 있어? 아까도 이렇게 나가더니 또 나가려는 거야?]


[마리골드: 당장 그 녀석 떠나지 못하게 막아!]


"듀크, 닥치고 문이나 열어."


[듀크: 아잇 참... 양쪽에서 그러면 내가 뭘 어쩌라는 거야.]


듀크도 갑자기 두 명이 서로 반대 의견을 내뱉고, 그 사이에 있으려니 죽을 맛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듀크, 네 고용주가 누구지."


[듀크: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형씨지... 미안, 누님. 이번에는 아듀온 형씨 말이 맞아.]


덜컹! 우우우우우우우우─


[마리골드: 젠장, 돌아오라고, 아듀온! 돌아...]


푸아아아아!!


이윽고 발진하면서 로바와 멀리 떨어진다. 그리고 로바의 통신을 그대로 단절하고, 있는 힘껏 앞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로바와 멀어져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느낌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듯이 아프고,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진정해, 진정하라고. 진정...


콰과과과과과곽!!


로바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고, 지면에 착지하면서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조종대를 꽉 붙잡은 채로 크게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악!!"


버림받은 느낌이다. 이 세상 모든 것에서부터 버림받은 느낌.


"왜!!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에!!"


스승님의 말을 무시하고, 페튜니아를 만나러 간 게 잘못인 걸까?

애초에 날 몰아붙인 건 스승님이잖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카데미의 사람들을 학살한 게 잘못인 걸까?

애초에 기업에서 다 죽이라고 의뢰를 준 거잖아. 왜 내가 고통받아야 하는 건데.


지하의 엘더를 내 손으로 죽인 게 잘못인 걸까?

지금까지 내가 죽인 파일럿, 사람들조차 모두 내 손으로 죽였다. 그것도 남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어쩌면 처음부터 내가 파일럿이 된 게 잘못인 걸까?

세피르를 쓰러뜨리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할 때는 언제고, 수많은 죄를 일삼았다면서 내게 죄책감을 묻는다.


모든 게 증오스럽다. 내가 대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는 믿을 수 있는 게 여기 앉아 있는 세피르가 전부라니.


생각할수록 내 존재 자체가 죄악으로 가득한 비극적인 오류로만 보였다. 기업에게 있어서 도구이자, 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존재.


"제발... 아무나... 아무나..."


아무나 날 도와줘. 제발 아무나 도와줘.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아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


[튜베로즈: 정말이지, 이렇게 바로 올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오늘따라 정말 날 놀라게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 아듀온.]


"페튜니아...?"


고개를 들어 보니 튜베로즈가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었다. 튜베로즈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이내 내 앞에 착지하면서 천천히 다가온다.


[튜베로즈: 여기에 서서 뭐 하는 거야.]


그녀의 눈에도 내가 한심하게 보이겠지. 세피르에 타서 혼자 미친 듯이 방황하고 있는 꼴을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모르겠어... 이젠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이제 지쳤어... 차라리 날 죽여줘... 너무 고통스러워 미칠 것만 같아..."


스스로 죽는 건 두렵지만, 적어도 그녀의 손에 죽을 수 있다면 나은 인생이 아닌 걸까. 하지만 그녀는 날 죽이지 않고, 그저 내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튜베로즈: 난 널 죽이지 않아, 아듀온. 애초에 네 잘못은 없어. 그저 널 이용하고 방치한 기업이나 주위 사람들의 문제지.

이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싸우지 마. 너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싸우도록 노력하는 건 어때? 내가 너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페튜니아는 내가 듣고 싶었던 달콤한 말을 내뱉는다. 그녀는 내 상황이 어떤지 짐작하고 있는 듯이,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과연 그녀를 따라가는 게 맞는 걸까. 나 역시 천천히 그녀를 마주 본 채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살려줘... 페튜니아..."


[튜베로즈: 그 말을 기다렸어, 아듀온. 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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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EPILOGUE: 생지옥 24.01.17 38 0 4쪽
154 ENDING 3: 종막 24.01.17 32 0 6쪽
153 CHAPTER 6: 진혼 (2) 24.01.16 18 0 12쪽
152 CHAPTER 6: 진혼 (1) 24.01.15 17 0 12쪽
151 CHAPTER 6: 심판 24.01.11 19 0 12쪽
150 CHAPTER 6: 징벌 (2) 24.01.10 17 0 13쪽
149 CHAPTER 6: 징벌 (1) 24.01.09 19 0 13쪽
148 INTERLUDE: 막간 24.01.09 21 0 8쪽
147 CHAPTER 5: 진실 (2) 24.01.08 20 0 12쪽
146 CHAPTER 5: 진실 (1) 24.01.04 20 0 12쪽
145 CHAPTER 5: 기습 (2) 24.01.03 16 0 13쪽
144 CHAPTER 5: 기습 (1) 24.01.02 22 0 12쪽
143 CHAPTER 5: 일탈 (4) 24.01.01 20 0 13쪽
142 CHAPTER 5: 일탈 (3) 23.12.30 21 0 12쪽
141 CHAPTER 5: 청소 (2) 23.12.29 24 0 12쪽
140 CHAPTER 5: 청소 (1) 23.12.28 24 0 12쪽
139 CHAPTER 5: 일탈 (2) 23.12.27 24 0 13쪽
» CHAPTER 5: 일탈 (1) 23.12.26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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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CHAPTER 6: 아스트랄포르티스 (3) 23.12.21 2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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