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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해결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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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WGC
작품등록일 :
2021.05.12 10:00
최근연재일 :
2022.04.13 10:05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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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03
추천수 :
1,933
글자수 :
1,494,302

작성
21.06.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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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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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에반델 성 연쇄살인사건 (3)

DUMMY

우리는 계단을 올라 알현실 앞에 서 있었다. 물론 내가 계급을 크게 신경 안 쓰고, 이 순간이 별거 아니게 느껴지더라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궁전 특유의 분위기와 우리의 옷차림이 지금 상황을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까 말한 대로 인사만 잘하면 돼. 나머지 이야기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할 테니까."


이윽고 병사들이 문을 열자 알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현실에 들어오자 다소 검소한 듯한 모습이 나타났고, 바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 옛날에 비슷한 곳에 온 적이 있어서인가. 옛날에도 다른 차원의 알현실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땐 엄청 휘황찬란했었다.


"에페토나디아 왕국의 재상 레비옥이 마히델 2세 폐하께 아뢰옵니다..."


레비옥은 말끝을 흐리며 앞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두 왕좌에는 왕비만이 앉아있었고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왕비는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을 살짝 올리자, 레비옥은 고개를 숙이고는 우리와 함께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 문이 벌컥 열리더니, 상당한 풍채의 남성이 호위기사와 함께 거만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의상을 보니 누가 봐도 국왕이었다.


레벨은 국왕의 모습을 보고는 약간 실망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만한 게 우리는 국왕의 모습을 실제로 마주한 적이 없었고, 나름의 상상을 펼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그 기대에 못 미치면 당연히 레벨처럼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고위층들은 대개 먹고살기 편하니까 저런 모습일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국왕이 왕좌에 앉자 레비옥은 다시 한 번 인사를 올리며 절을 했고, 우리도 그에 따라 절을 했다. 나는 절을 하면서 뒤에 있는 동료들이 잘 하나 힐끔 쳐다보았다.


포드는 익숙하다는 듯 꽤 잘 해주었고, 나름 걱정되었던 레벨과 마리아 역시 잘 따라 해주었다. 의외로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미린이었다.


마히델 2세가 손짓하자 우리는 천천히 허리를 펴 서로를 마주보았다. 왕비는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표정에 불만 섞인 느낌이 가득했다.


국왕은 천천히 우리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뒤에 있는 동료들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딱였고, 미린과 마리아는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예쁘장한 게 마음에 드는군. 아까 맛본 여자들보다 훨씬 나은데 내가 지금은 허리가 아파서 말이지. 한 3시간 뒤에 만나면 안 되나?"


왕비가 옆에서 헛기침을 했고 레비옥도 고개를 저었다. 국왕은 두 사람을 번갈아보고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챘는지, 다시 뒤로 가라며 손짓하고는 말을 이었다.


"크흠, 아무래도 내가 착각한 것 같군. 그래서 무슨 일로 왔다고 했지?"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이번 살인사건을 해결해 줄 해결사 길드원들입니다."


"으음... 우리 왕국에 길드원이 남아있던가? 이전에 다 나가서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하지 않았었나?"


"네, 다행스럽게도 근처 여관에 묵고 있는 걸 제가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흔쾌히 의뢰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하인에게 손짓했다. 하인이 술을 따른 잔을 건네자 국왕은 잽싸게 낚아채며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크후우우... 그래, 그래. 길드 이름이 뭐라고?"

"해결사입니다."

"우리 일을 해결하러 온 건 알겠으니까 길드 이름이나 대라고."

"해결사 길드입니다."


국왕과 레비옥은 서로를 마주보고는 한참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국왕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니 레비옥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건가 싶었을 거다.


레비옥이 다시 한 번 말하려고 하던 찰나, 옆에 앉아있던 왕비가 국왕에게 다시 설명했다. 그제야 국왕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그래, 그렇다면 뭐.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이번 일은 왕국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왕 폐하께서 직접 의뢰를 발주해야만 성립이 됩니다. 그래서..."


"서류 같은 걸 써야하나? 거 귀찮군, 그래. 어차피 몇 명 뒈져도 상관없잖아. 범인도 제풀에 지쳐 알아서 멈출 테니까 당장 꺼지라고 해."


······?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동료들의 표정을 읽었지만 하나같이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레비옥은 애써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며 다시 한 번 말했다.


"하지만 지금 민심이 매우 흉흉합니다. 이번 범인을 잡기 위해서 여기 있는 길드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대가 빠른 시일 내로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외부와의 출입도 금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 성과는 전혀 없었지. 그렇다면 저 길드를 고용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지?"


"도움을 청하면..."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네는 우리의 병사들이 살인자 새끼 하나를 못 잡는 호구들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거 아닌가?"


"아뇨,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지금 치안도 좋지 않고 민심도 흉흉하니 작은 도움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레비옥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처했는지 쩔쩔매며 말했지만 국왕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넌 지금 우리 왕국을 욕보이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야. 그놈의 살인자 하나를 못 잡아서 우리까지 벌벌 떨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다 들춰 보일 셈인 게냐!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저 길드원들을 당장 내쫓아라."


설마 이대로 떠나야 한다는 건가? 레비옥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어떻게든 회유하려고 애쓰는 사이, 뒤에서 병사들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왕비는 한숨을 푹 쉬더니 뒤에 걸어오고 있는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병사들은 잠시 걸음을 멈췄고, 국왕도 왕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늘 그런 식이었죠. 독단적이고, 우유부단하고. 우리의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을 이렇게 내쫓는 건 정말 예의가 없는 행동이에요. 하긴, 그러니 아들을 낳을 때도 곁에 없었지."


"아직도 그 소리인가... 분명 말했잖나! 그 땐 망할 전쟁 중이었다고!! 눈앞의 전투를 두고 애새끼 하나 보기 위해 후퇴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그래서 이겼나요?"


그 말을 들은 국왕은 표정이 붉어지더니 이내 지쳤다는 듯 손사래 쳤다. 왕비는 이에 지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 전투는 지원군 없이 승리란 불가능했어요. 고작 수도와 하루거리도 안 되는 곳이었는데 전투를 강행하는 바람에 패배를 겪었죠. 그리고 이후에 너도나도 다 독립하게 되었잖아요."


"조용! 왕비의 말을 듣고 있다간 하루가 다 가겠군. 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신하들 앞에서 그딴 식으로 날 욕보였다간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국왕은 이를 악물고는 잔을 쭉 들이마셨다. 그러나 잔이 비어있자 이내 짜증을 내며 옆으로 내팽개쳤고, 잔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구르는 소리가 알현실 안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뒤로 나가려던 찰나, 멈칫하고는 뒤돌아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 어이, 네 놈들이 이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건 신경 쓰지 않겠다만 이거 하나는 명심해라. 만약 살인사건의 범인을 못 찾아내면 죽는 건 너희들이야. 시간은 일주일 주도록 하지."


호위기사는 왕비와 잠시 눈빛을 나누더니 다시 국왕을 따라 들어갔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왕비는 한숨을 쉬며 우리를 향해 나긋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일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그래도 덕분에 길드원들에게 기회를 줬잖습니까."


"목숨을 담보로 기회를 주는 건 썩 보기 좋지는 않은데 말이죠."


왕비는 레비옥에게 미소를 살짝 지어보이고는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내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코에 손을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 지긋지긋한 향기 때문에 저도 이성을 잃었던 것 같네요. 정말이지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냄새예요."


레비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왕비의 말을 듣고 냄새를 살짝 맡아봤지만, 국왕에게서 났던 냄새는 약간 달콤한 과일향 같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왕비가 싫어하는 향수라도 뿌린 건가.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서로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역시 내 기준으로 궁정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이만 돌아가 봐요. 앞으로 부디 좋은 소식이 들어오길 바라죠."


우리는 왕비에게 절하고 알현실 바깥으로 나왔다. 처음 알현실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옷이 두꺼워서인지 이 안은 몹시 덥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까 호위기사를 슬쩍 봤을 때 강력한 보호마법이 둘러져 있는 것을 보았었다. 마법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스템도 구식으로 바꿨으면서 정작 호위기사에게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아무래도 이건 계급 구조의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사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던 마법사는 이제 더 아래 구조로 내려가는 일종의 변혁인 셈이었다.


이런 걸 보면 아무리 마법이 하대 받더라도 결코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 차원에서 마법은 상당히 깊숙이 뿌리박혀 있고 제아무리 바보라도 마법의 편안함을 무시할 순 없을 테니까.


"어이, 맥과이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냐. 그냥 이것저것 생각나는 게 좀 많았거든. 그나저나 넌 괜찮아?"


"흥, 내 미모를 보고 그런 말을 해줬으니 기분 나쁘더라도 감사히 여겨야겠지. 아님 뭐, 내가 반항해서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주길 바랬니?"


마리아도 기분 나빴을 텐데 이렇게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인배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연륜이 있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리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바깥으로 나오자 다시 추위가 매섭게 들어왔다. 따뜻한 곳에 있다가 갑자기 찬 공기를 맡으니 생각보다 추웠다.


"일단 옷을 갈아입도록 하는 게 좋겠네. 궁전으로 들어갈 일은 많지 않겠지만 이번처럼 알현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그래, 일단 빨리 돌아가서 옷이나 갈아입자고. 으으, 추워 죽겠네."


먼저 여자들의 환복을 기다린 후, 우리도 들어가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도 이렇게 특별할 때 입는 옷보다 평상시에 입는 옷이 확실히 편하긴 했다.


"근처 여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쉬면 될 거야. 의뢰대금으로 여관비 정도는 우리가 마련하도록 하지."


"그럼 이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뭘 말이지?"


레비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뭐겠어요. 지금까지 당한 피해자들을 한 번 봐야죠."


"아, 난 오늘 푹 쉬고 내일쯤 해결하려고 할 줄 알았지."


대체 이놈들은 살인사건을 빠르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나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저희들 목이 일주일 뒤면 날아가거든요? 그 전에 빨리 찾는 게 좋겠죠."


"뭐, 폐하께서 일주일이라고 하셨지만 오늘 지나면 금방 잊을 일이니까. 정 안 되면 내가 간곡히 부탁드려 기간을 늘릴 수도 있을 테고. 어쨌든 너희들이 바란다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날 따라오도록."


레비옥은 곧바로 우리를 시신이 있는 곳을 향해 안내했고 우리는 레비옥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지하 묘지 쪽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제는 레비옥과 우리를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우리는 사제를 따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마침내 시신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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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에반델 성 연쇄살인사건 (6) 21.06.24 15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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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에반델 성 연쇄살인사건 (4) 21.06.22 166 9 12쪽
» 에반델 성 연쇄살인사건 (3) 21.06.21 176 8 12쪽
47 에반델 성 연쇄살인사건 (2) 21.06.20 178 8 13쪽
46 에반델 성 연쇄살인사건 (1) 21.06.19 185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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