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제2 이동통신
8화
전장 끝날 때쯤 상한가로 말아버린 저 PER 주들은 후장에는 거의 거래가 없을 정도로 매물이 씨가 말라버렸다.
태광기업 종가는 41,800원.
4만 원이 넘었으니 내일부터는 가격제한폭이 ±1,600원이다.
비비양은 +2,000원으로 64,200원.
두 종목 다 상한가 잔량으로 봐서 내일도 강한 상승세가 예상된다.
‘혹시 쩜상(點上:점 상한가)? 가격대가 높아서 그건 좀 어려우려나.’
그래도 은근히 기대되네.
쩜상이란 장 시작과 동시에 상한가를 친 후 온종일 그 자리에서 가격 변동 없이 꼼짝도 안 하는 상태를 말한다.
차트 상 마치 점 하나를 찍은 것 같아서 이렇게 부르는 것.
주식투자자들의 로망이다.
업무를 대충 마감했을 때쯤 배 주임이 다가왔다.
“비비양, 진짜 대단한데요!”
“많이 샀어?”
“에이, 저 돈 얼마 없어요. 시초가에 질렀어야 되는데 망설이다가 보합 찍는 거 보고 그때 잡았죠. 사자마자 상한가 먹은 건 처음이에요.”
“그래도 잘 했네. 배 주임 생각보다 용감하네.”
“강 주임님 덕분이죠 뭐. 근데 강 주임님도 비비양 갖고 계세요? 하긴 그러니까 추천한 거겠죠?”
뭘 또 유도 신문까지 하고 그래.
“글쎄, 그건 배 주임 좋을 대로 생각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 대답이면 내가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겠지.
한결 마음이 놓이고 동지의식까지 느끼지 않았을까.
지점에 내 편이 한 명 늘었다는 생각이 드네.
“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고마워요. 많이 먹으면 한잔 살게요. 크크.”
좋다고 키득거리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장이 열리자마자 객장이 술렁거렸다.
“와~ 씨, 쩜상이네, 쩜상이야!”
“이거 저 PER 주 없는 놈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제기!”
“니미, 증권주 갈 거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뒤로 가네. 씨부랄 것!”
내가 기대했던 대로 저 PER 주들은 일제히 쩜상을 기록했다.
비비양 +2,000원인 66,200원
태광기업 +1,600원으로 43,400원
오늘은 월급의 절반이 넘는 528,000원을 벌었다.
참 날씨도 좋네.
‘헬저널에 나온 것처럼 뒤늦게 국내기관들의 물량 쟁탈전이 벌어진 건가?’
상승세가 최고로 가파른 시세 분출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자제하며 업무를 보는데 영업직원들 쪽은 찬바람이 씽씽 분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이게 원래 반등이 나와야 하는 타이밍인데··· 거참, 이상하네요. 예예 맞습니다. 그럼요, 사모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튼 진짜 죄송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장 자체가 워낙 약세를 보이니까 일단 파시고 다음 기회를 노려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 사장님 저 국도증권, 양 차장입니다. 예, 별일 없으시죠? 딴 게 아니고 지난주에 증권주를 조금 사봤는데 아시다시피 장이 워낙··· 예예 그렇죠. 아무래도 손절을 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는 게···. 예예 그럼요. 감사합니다. 예, 사장님 들어가세요.”
“후유~~~”
이어지는 깊은 한숨.
지난주에 질렀던 증권주를 손절매하는 중이겠지.
보는 내 가슴이 다 쓰리네.
그런데 저쪽 배 주임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은데··· 나의 착시인가.
일을 하는데 아주 날아다니네. 날아다녀.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
한 주를 마감하는 토요일.
이번 주는 거의 매일 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제 목요일 자로 종합지수 600포인트 대가 무너졌다.
저녁 9시 톱뉴스로 나올 정도였으니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전국을 울린 것 아니겠나.
반면 저 PER 주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폭등장의 연속이었다.
월화수목금 5일 중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4연속 상한가.
금요일인 어제는 강보합으로 마감.
마이너스를 보기가 힘들었다.
태광기업은 5만 원을 돌파(50,200원)하여 명실공히 고가주 반열에 올랐고.
비비양은 무려 75,700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내 수익은 11,616,000원(330주 × 35,200원)이 되었다.
1년 치 연봉을 번 셈이다.
희비가 완전히 엇갈린 가운데 열린 토요일 아침 회의.
근데 뜻밖에도 열기를 띠고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ST그룹 제2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전 경제신문의 1면을 장식한 이 기사 때문이다.
어제 장 마감 후 발표된 것.
경제신문이 이걸 크게 다루는 거야 당연하지만 5대 일간지들도 지면을 상당히 할애해 비중 있게 취급했다.
제2 이동통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건 무조건 질러야 돼! 잡기만 하면 노 나는 거라니까. 20세기 마지막 노다지라잖아.”
“근데 잡힐까요? 다들 사자고 덤빌 텐데.”
“아침 동시호가에 상한가로 내야지. ST그룹에 상장사가 몇 개 되니까 살 수는 있을 거야.”
“아 씨, 이럴 줄 알았으면 현금을 가지고 있는 건데.”
ST텔레콤은 물론 ST그룹 전 계열사 주가가 폭등할 거라는 예상.
드디어 떴구나!
뉴스 보고 뛰어들었다가는 좆된다는 그 정보.
근데 회의 분위기가 그쪽으로 가고 있네.
일단 좀 더 지켜보자.
내가 함부로 나설 짬도 아니고.
“까짓것 2.5로 지르자고! 최대한 많이 잡은 다음 상황 봐서 내일이나 모래 미수는 털고 약발이 아주 세다 싶으면 글피에 반대매매로 그냥 내보내도 괜찮을 거 같아.”
양 차장이 거품을 물었다.
드디어 미수 주문까지 등장했다.
자기 돈이 100만 원 있으면 주식을 250만 원까지 살 수 있다.
단 부족한 150만 원을 모레까지는 입금해야 한다.
안 그러면 글피 아침 동시호가에 부족한 금액만큼 하한가로 매도 주문이 나간다.
1~3개월 여유가 있는 신용거래와 달리 단 2일밖에 여유가 없다.
지점에 할당된 신용거래 한도는 이미 다 찼다.
따라서 주식을 더 사고 싶으면 미수로 질러야 하는 수밖에.
2.5배로 먹든지, 2.5배로 깨지든지.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이번 달 우리 지점 실적이 부진하다는 건 다들 잘 알 거고. 양 차장 말대로 이번 기회를 한번 제대로 살려보자고. 잘만 되면 약정도 하고 돈도 벌고, 내 생각에도 상당히 좋은 기횐 것 같아. 다들 어때?”
지점장까지 나섰다.
하긴 우리 지점만 이런 건 아닐 거다.
아마 전국의 증권사 지점이 지금쯤 비슷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 않을까.
그만큼 제2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은 핵폭탄 급 재료다.
훗날 ST텔레콤의 주가가 어떻게 됐는지 떠올려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양 차장 생각은 이미 말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의견을 말해 봐. 박 차장은 어떻게 생각해?”
지점장이 박 차장을 지목했다.
두 명의 차장 의견이 같다면 나머지는 거의 들으나 마나일 테니까.
“저도 양 차장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니죠. 다만 ST텔레콤은 틀림없이 쩜상일 테니 잡기 힘들 거고 ST화학이나 ST상사, ST정유 이런 쪽으로 주문을 내야 그나마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 차장도 전적으로 동감하며 구체적인 매수 전략까지 언급했다.
“그렇겠지. ST텔레콤에다 주문을 쪼개서 넣든지 아니면 박 차장 말마따나 ST 계열사 주식을 노려야 할 거야.”
매도 물량은 별로 없는데 매수가 월등히 많을 경우 100주씩 나눠주기 때문이다.
1,000주짜리 주문보다는 500주씩 두 번에 나눠 매수주문을 넣으면 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혹시 딴 생각 가진 사람 있어?”
지점장의 시선이 둘러앉은 사람들의 면면을 쭉 훑었다.
아무도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들 동감한다는 표정.
나는 계속 고민, 고민, 고민···.
“좋아, 다들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으니까 한번 총력을 기울여 보자고. 계좌에 남은 총알들 확인해서 동시호가에 지르는 거야. 2.5로 하든 말든 그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고. 일임 계좌는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손님들한테 빨리 전화···.”
“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지점장의 말을 끊고 드디어 내가 나섰다.
고민 끝에 드디어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응? 강 주임, 왜?”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일개 신입이 감히 끼어들자 다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제가 잘 몰라서 한번 여쭤보려고요.”
일단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는 반대입니다.’하고 바로 들이대면 무지 지랄할 테니까.
벌써 양 차장 이맛살 찌푸려지는 것 좀 보소.
“두 가진데요, 첫째는 증권 격언에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근데 이건 신문에 나서 다들 아는 정보가 아닌가 해서요.”
“야, 이건 다르지. ST그룹에 사업권이 떨어질지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뉴스에 났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정보라 이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성질 급한 양 차장.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점장의 말투를 흉내 내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오케이, 됐고.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
“아, 예. 제가 잘 몰라서··· 두 번째는 이게 특혜 시비가 날 수 있다고 신문에 쓰여있던데요. 그럼 매수하는 게 좀 위험하지 않나요?”
이 정도면 상당히 초짜스럽게 보였겠지.
솔직히 난 이들이 단체로 절벽 다이빙을 하겠다는 걸 막을 생각이 전혀 없다.
막을 방법도 없고.
사면 완전 좆된다고 헬저널이 그랬거든요 라고 할 수는 없잖나.
다만 내가 노리는 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자세를 보여줬잖아. 이게 주식 영업맨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 아닌가?’
지점장을 비롯한 영업직원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켜줬다.
“하하하, 야, 강 주임!”
또 양 차장 얘가 나서네.
진짜 나한테 뭔 유감이 그렇게 많나.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안 든다, 뭐 그런 거겠지.
“예!”
그러든지 말든지 난 씩씩하게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해서 안 되는 일 봤어? 이건 대통령이 결정한 거라고. 그것도 군바리 출신 대통령이 말이야. 아무리 언론에서 사돈에 대한 특혜니 뭐니 떠들어봤자 안 돼. 대통령이 명령한 거면 그냥 게임 끝이라고.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어차피 답을 들을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단박에 수긍하자 양 차장이 ‘새끼, 당연히 그래야지’하는 표정을 짓는다.
꼬라지 보니 아마 너가 이번에 가장 큰좆이 될 것 같다.
“자, 결정했으니까 다들 나가서 고객들한테 전화해! 혹시 돈 가지고 오겠다는 사람 있으면 선입금 잡고 주문 넣어. 빨리빨리 서둘러!”
지점장이 최후의 진군나팔을 불었다.
선(先)입금이란 계좌에 아직 돈이 안 들어왔는데도 들어온 것처럼 입금처리를 먼저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믿을 수 있는 고객한테만 해주는 거지만 엄연한 불법이다.
우루루.
나팔 소리에 발맞춰 전부 비장한 표정으로 지점장실을 빠져나갔다.
결과를 아는 나로서는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거로 보이지만.
자~ 이제 난 모르겠다. 잘 알아서 하셈.
어쨌든 분명히 경고했으니까.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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