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오광유리
21화
“제가 볼 때 동진조선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실적도 받쳐주는 것 같고.”
막내답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같은데’ ‘같고’를 동원해 이런 종목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가급적 표나지 않게.
어이, 헬 시스템님아 잘 기억해둬라.
난 분명히 말했어.
“동진조선, 하긴 요즘 조선업종이 잘 나가긴 하더라고.”
짬뽕 멤버인 박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최근에 너무 올랐잖아? 지금 들어가기에는 위험해. 내 생각에는 조정 받을 때가 된 거 같아.”
박 차장과 마주 보고 앉은 양 차장이 옆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래야지.
고마워. 혹시라도 니가 그 말 안 할까 봐 걱정했잖아.
이제 조정 없이 계속 날아갈 일만 남았구나.
“강 주임 추천종목은 동진조선이고, 다음은 이 주임이 말해봐.”
지점장이 이상태 주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동갑이고, 처음 지점에 왔을 때부터 서로 소 닭 보듯 지내온 친구.
원래 성격이 무뚝뚝한 건지 아니면 양 차장처럼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음에 혹시 화이트 칩이 생기면 이 친구 마음을 좀 읽어봐야겠다.
“저는 오광유리를 추천합니다.”
나와는 다르게 확신에 찬 어조로 추천하네.
그런데.
잉? 오광유리라고? 잠깐만.
몇 달 전에 배영만 주임이 작전주라서 들어갔다가 하마터면 뒤질 뻔했다는 그거잖아.
그거 작전 실패한 거 아니었어?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 거야?
별 관심이 없어 안 쳐다봤더니 현재 가격은 얼만지,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네.
일단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작전은 이런 식으로 오래 끌지 않는다던데.
“오광유리? 그거 작전 실패했다고 들었는데?”
박 차장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구나.
“아닙니다. 지금 진행 중이고요. 분위기가 안 좋아서 연기 된 것 뿐이지 곧 시세 터지게 돼 있습니다.”
이상태 주임이 눈에 불을 켜고 강변했다.
“그거 이미 끝났다는 얘기 나도 들은 것 같은데. 진행 중이란 거 확실해?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아니거든요. 성 대리님이 잘못 들은 거에요. 금강증권 마포지점 정 차장과도 연락하고 있고 제일증권 압구정지점 오 대리하고도 어제 통화했거든요. 다들 물량 그대로 들고 있고 곧 다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이거 진짜 확실한 정보에요!”
완전 거품을 무네.
쟤가 원래 저렇게 말 많은 친구가 아닌 걸로 아는데.
자기가 가진 주식이 안 된다고 하니까 아주 길길이 날뛰는구만.
그런데 상식적으로.
주식 판에서 작전이라는 건 비밀엄수가 생명 아닌가?
마포지점 정 차장이니, 압구정지점 오대리니 하며 작전 멤버가 다 드러났다면 그게 무슨 작전이 되나.
이 대리가 작전의 주포는 분명 아닐 텐데.
내가 아직 경험이 별로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
“야, 이 주임, 상태야.”
양 차장이 주특기인 똥폼을 잡으며 입을 터네.
그래 니가 빠지면 섭섭하지.
이번엔 무슨 산뜻한 개소리를 하는지 어디 들어보자.
“투자 격언에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란 말이 있어. 오로지 한 종목에 빠지다 보면 그게 너무너무 좋게 보여서 객관적인 판단을 못 한다는 소리야. 니가 가진 계좌 중에서 구찌 좀 되는 건 전부 오광유리에 물려 있지? 그게 다시 세력을 규합해서 니 말대로 치고 나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심해야 돼. 작전주가 잘 되면 대박이지만 아차 하면 신세 조지는 거 잘 알잖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조심해라.”
웬일이래.
니가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살짝 다시 봐야겠네.
근데 이 당시에도 대박이라는 말을 썼던가?
잘 모르겠다.
“차장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아니, 일단 알겠습니다.”
이상태 주임이 상당히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반발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이 주임이라는 건 나도 안다.
양 차장 말대로 구찌 큰 계좌에 전부 오광유리를 실었다면 몇 달 간 약정도 거의 못했다는 소리다.
사실 진짜 문제는 약정이 아니지.
결국 작전이 실패하면 엄청 손해 본 고객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잘 돼서 벌면 ‘아이고 우리 이 주임님’하겠지만 잘못 돼서 돈 날리면 ‘야 이 개새끼야, 내 돈 물어내’로 순식간에 돌변할 거다.
돈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비겁하고 약한 존재거든.
이 주임이 입 다물자 차례대로 추천 종목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낙폭과대주였는데 그중에서 양 차장이 내놓은 종목이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왜냐.
내가 잘 아는 종목이었거든.
일동종합상사
아니, 이런 개잡주를 추천하다니.
그럼 그렇지 양 차장 니가 어쩐 일인가 했다.
그런데 또 말빨은 있어서 듣는 나까지 솔깃하게 하네.
그래서 아직까지 증권사 지점에서 버틸 수 있는 건가.
“노통이 북방정책을 계속 추진해 온 잘 알려진 사실이잖아. 소련과 동구권에 이어 올해 들어서는 중국과도 수교를 했어. 12월에는 베트남하고도 외교 관계를 맺는다는 거야. 그럼 뭐겠어? 무역주지! 안 그래도 많이 빠졌는데 이런 호재들이 본격적으로 반영된다면 제 자리 찾아가는 건 물론이고 신고가도 한번 노려볼 수 있는 거라고.”
흠~ 글쎄.
논리상으로는 너무 그럴듯하긴 한데.
일동은 내가 워낙 개잡주로 찍은 종목이라 전혀 마음이 안 가네.
또 나한테는 이미 열심히 날아가고 있는 귀요미들이 있으니까.
양 차장 말 듣고 살 사람은 사든지.
하여튼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여전히 중요한 건 내가 동진조선을 추천했다는 사실.
〈당신의 추천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으므로 OO칩 하나가 지급되었습니다〉
내가 노리는 건 바로 이거거든.
왕성한 실험정신이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할 텐데.
지점장실을 나온 난 배 주임에게로 갔다.
“와~ 진짜 막 날아가는데요. 이거 어디까지 보세요?”
모니터에 동진조선 차트를 띄운 채 보고 있던 배 주임.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냥 니가 알아서 잘 하셈.
그건 그거고 내가 궁금한 건.
“도대체 이 주임이 오광유리를 저렇게 믿는 이유가 뭐야?”
넌 이 주임하고 친하니까 잘 알 거 아냐.
이 주임이 오광유리 사라고 해서 샀다가 홍콩 갔다 왔다며.
“그게··· 세력들이 아직 안 털었데요.”
“그걸 어떻게 알아? 세력들이 이 주임한테 우리 그만 털고 나갑니다. 보고하고 나가나?”
“그건 아니지만 거래소 단말기로 매일 체크하는데 매집했던 물량을 턴 흔적이 없거든요.”
“무슨 소리야? 알기 쉽게 말해봐.”
배 주임은 비비양에 이어 이번에 또 동진조선을 점지해 준 바람에 거의 나의 똘마니가 됐다.
“이리로 와 보세요.”
배 주임이 내게 보여준 건 지점에 한 대 있는 일명 거래소 단말기.
증권거래소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여기에 종목 코드를 치면 일자별로 각 증권사를 통해 거래된 주식 수가 나오거든요.”
훗날 현재가 창에 함께 뜨는 매수, 매도 상위 증권사 목록을 이 당시는 이 거래소 단말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배 주임이 직접 시연해 주었다.
화면을 보니 오래 전에 금강증권과 제일증권이 오광유리를 집중적으로 매수한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증권사에서 나온 매도물량은 없다 이 말이지?”
“그렇죠. 몇 십만 주를 샀는데 판 건 얼마 안 되잖아요.”
1,000개를 샀으니 1,000개를 팔았어야 하는데 아직 안 그랬으니 계속 물량을 쥐고 있다. 따라서 작전은 진행중이다 뭐 이런 논린데.
“야, 그게 말이 되냐? 대체출고해서 다른 증권사 통해 팔 수도 있는 거잖아?”
“음~ 그건··· 그렇죠.”
하~ 이런 멍청이들이 있나.
경험이 얼마 없는 나도 생각할 수 있는 건데.
증권출납업무를 안 해봤을 리는 없고.
어떻게 그걸 모르지.
대충 짐작은 간다.
이 주임과 연락하는 놈들이 걱정마라, 무조건 된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런 식으로 계속 말했겠지.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런 걸 확증편향이라고 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 대목에서 ‘이건 실패 같다’에 한 표.
“그리고 내가 찾아보니까 오광유리는 재무구조도 영 별로던데 도대체 작전을 걸만한 재료가 뭐야?”
“여기가 맥주병 만드는 회산데요. 맥주병이 전부 갈색이잖아요. 근데 이번에 하늘색 맥주병을 개발했데요. 거기에 맥주를 담으면 신선함이 오래가고 향도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에 팔리는 맥주가 몇 병이겠어요? 셀 수도 없잖아요. 그걸 다 하늘색 맥주병으로 교체한다면 완전 어마어마하잖아요?”
뭐, 하늘색 맥주병.
쌩구라를 깠구만.
내가 2024년까지 살면서 초록색은 봤어도 하늘색 맥주병은 못 봤단다.
쯔쯧.
그냥 혀를 찰 수밖에.
*****
오늘은 일요일.
「꼬꼬 치킨」
오늘은 우리 식구가 이곳에 다 모였다.
드디어 아버지가 개발한 신제품을 시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엄마가 잘 튀겨진 치킨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오~ 스멜!
아버지가 한 말씀.
“물결무늬가 나오도록 튀김옷을 좀 두껍게 해봤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흠~ 강렬하긴 한데, 왜 어디서 들어본 듯한 느낌이···.
대신 엄마가 보충설명을 한다.
“우리가 지금 파는 치킨의 튀김옷은 두께가 한 1mm쯤 되는데 이건 너희들이 보다시피 훨씬 두꺼워. 한 2~3mm 정도. 그리고 기존에는 밀가루만 가지고 만들었는데 거기에다 옥수숫가루, 쌀가루, 감자 전분을 추가했거든. 맛을 한번 봐봐 더 바삭하고 고소한 느낌이 드나 안 드나.”
굉장히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시네.
이건 자신 있다는 거다.
좋았어. 어디 맛을 볼까.
나는 닭 다리 하나를 들어 와그작 한 입 깨물었다.
괜춘한데!
전생에 먹었던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꽤 비스무리한 느낌이다.
100점 만점에 80점은 될 듯.
“엄마, 아빠 이거 빠삭거리는 식감이 아주 좋아요! 맛도 더 고소하고. 지금 파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앞으로 이렇게 해서 팔면 잘 팔리겠어요!”
여동생이 엄지를 세우며 칭찬, 칭찬.
“그치? 좋지? 잘 팔리겠지?”
엄마가 활짝 웃는데 아버지는 표정 관리를 하는지 무덤덤.
에헤이~ 엄마처럼 좋아해도 되겠구만 뭘 그렇게 무게 잡으시나.
“자 이번에 이거.”
엄마가 또 한 접시의 치킨을 내왔다.
“엄마, 이건 뭐야? 생긴 건 똑같은데?”
여동생이 물었다.
나는 알~지.
“일단 한번 먹어봐. 아까 거와는 맛이 다를 거야.”
맞아. 백문이 불여일식이지.
“어머~ 이거 맵다! 근데··· 매운데도 맛있네! 은근히 땡기는 맛이 있어. 이거는 어떻게 만든 거야?”
얘가 맛을 쫌 아네.
“그거는 핫 크리스피 치킨이라고 너희 아버지가 몇 달을 고생해서 만든 거야. 물론 준혁이가 힌트를 주긴 했지만.”
“오빠가?”
“그래, 매운맛이 앞으로 대세가 될 거니까 한번 만들어 보라고. 그래서 너희 아버지하고 나하고 맨날 가게 끝나면 늦게까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것도 넣어보고 저것도 넣어보고 하면서 만든 거지.”
아버지가 한 마디도 안 하니까 대신 엄마가 두 마디를 하시는구나.
하긴 그래야 평균 내면 한 마디가 되지.
어쨌든 우리 부모님 고생 많이 하셨네.
일 년에 고작 설날하고 추석 이틀밖에 안 쉬시는데 야근까지 하셨으니.
내가 너무 고생시켜 드린 건 아닌가 모르겠다.
“오빠는 매운맛이 유행할지 어떻게 알아?”
많이 처먹어 봤단다.
치킨뿐만 아니라 라면에 떡볶이에 짬뽕까지.
미래 음식은 전부 매워야 잘 팔리더라.
그래서 점점 더 매워지더라.
“이게 잘 나가야 할 텐데···. 손님들이 맛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듯 말하지만 엄마 얼굴에 기대감이 잔뜩이네.
됩니다. 이건 될 수밖에 없다니까요.
솔직히 나도 기대 만땅이다.
이걸로 우리 부모님 벌떡 일어나셔야 할 텐데.
딩동!
앗, 이 경쾌한 알람 소리는.
〈가족에게 의욕을 준 기념으로 옐로칩(Yellow chip) 하나가 지급되었습니다〉
〈처음 한 번만 적용됩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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