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 7화
<방금 걸었어요.>
[받아요? ㅇ.ㅇ?]
[뭐라고해요?]
[나 맞아요?]
[@.@?}
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전화를 하다보니 이름을 물어보고, 이름도 맞는 거 같고, 대학교도 맞는 거 같고, 집도 맞는 거 같긴 한데. 막 끊어버렸는데.....음......
<맞는 듯 하긴 한데, 시간을 멈췄다는 거 자체가 믿기 힘들어서인지 끊어버리더라구요.>
[하ㅠ.ㅠ 그럼 이제 어떡하죠?]
<근데, 전화를 걸어보니 저도 느끼는 게 이건 솔직히 진짜 안 믿겨요.>
솔직히 진심으로 그렇다. 어떻게 믿는건 그저 내 바람하고 겹쳐져서. 그랬으면. 그랬으면의 연장선으로 믿었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굳게 자리잡은건. 이건 말이 안된다. 이건 거짓말이다. 라는 것이었다. 의심같은 작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멈췄다는 믿음이 의심같은 작은 것이었다. 난 지금 그 작은 의심같은 믿음을 타고 있을 뿐이었다.
[진짠뎅....ㅇ.ㅠ]
일단 그런 말투부터가...좀....안 믿기게 만든단 말이지.
<음. 뭐 확실히 저한테 알려줄 수 있는 건 없을까요? 음....확실히 시간이 멈췄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 같은 거요.>
[음...뭐가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뭐가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췄다면 말이다. 핸드폰도 충전이 되고, 시간을 보는 것? 이건 계속해서 보고 그대로인 것 아닌가? 게다가 어디까지나 조작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 전화는 걸리지도 않는다. 카카오톡을 한다고 해도, 이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멈추지 않은 이곳의 지은씨에게 카톡이 걸릴 것이다. 전부 마찬가지다.
[jpg]
그 때 사진이 하나 왔다. 긴 검은 머리, 하얀 피부. 커다란 눈. 그리고 조금은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는 주민등록증. 그보다 조금은 쑥쓰러워하는 듯한 표정. 그리고 주민등록증에 실려있는 주민번호와 사진. 그리고 바로 위에 있는 그녀의 얼굴.
처음 보고 느꼈던 것은,
아 이지은 씨다. 가 아니었다.
아. 엄청 예쁘다. 였다. 인터넷에도 그녀의 얼굴이 올라와있다. 사실 조금은 그녀를 의심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바로 인터넷을 통해 그녀를 찾았다. 확실히 예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내 컴퓨터 실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학적에 등록된 사진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정형화된 사진 같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자유로운 사진이 온 것이다.
맞는 행동이었다. 이건 시간이 멈췄다는 걸 증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아까 전화를 건 사람의 행동이 조작된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녀가 아마 맞겠지만, 이지은 씨가 맞다고 한다면 시간이 멈췄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나와 너 사이의 무언가 증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나와 너가 될 테니까 말이다.
[ㅋㅋ 이 정도면 증거가 됐으려나? ^3^]
됐긴 됐는데 그건 반말 아닌가?
[아, 또 하나 생각이 났네요. 김검씨 집은 인천 서구 가좌동 돌담아파트 203동 605호죠?]
?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 맞긴 맞는데. 그건 왜...그리고 어떻게?>
[구글링 조금 해보니까 나오던데요? ^3^]
[찾아갈게요]
[증거 찍으러요]
미친? 뭐라고? 잠깐. 잠깐만 멈춰봐. 순간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낚인건가? 역시 속은건가? 내 집 주소를 이렇게 빨리 확실히 찾았다면, 이지은 이라는 사람의 주소도 여러 정보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을까? 그정도라면 주민등록증을 위조하는 것도, 사진을 위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까?
알고 있다. 내가 컴퓨터 해킹을 잘하지. 나 스스로 내 정보를 잘 관리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난 인터넷 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많은 것들을 여러곳에 흘리고 다니는 편이고, 마구마구 올려대는 편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 개인정보를 찾는 것은 누구라도 털 수 있을만큼 완전히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이 생각은 조금 안전불감증적인 생각이다. 확실한 것들을 정리해나가자.
시발 생각이 멈췄다. 아무것도 정리해나가지지가 않는다.
<저기. 잠깐만요. 갑자기 저희 집이라뇨?>
[증거 보내드리는게 좋지 않겠어요? 시간이 멈춘 증거. 멈춰있는 김검씨죠.]
맞는 말이다. 그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있을 수 없다. 나와 너 사이의 증거라면 나 아니면 그리고 너다. 그리고 멈춰있는 나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녀가 멈춰있는 대통령을 찍어온다고 해도 나는 조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녀가 멈춰있는 무언가를 찍어온다고 해도 나는 조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영상을 찍어올리는 게 사이트 기능에 있었던가? 음성은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건 잘 모르겠다. 뭐 어쨌든 올릴 수 있다 하더라도 멈춘 세계에서 무엇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든 나는 조작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면 나와 너 사이에 공유되는 점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녀가 건드는 것 중에서 나도 당연히 알고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타인이고, 처음 보는 사이. 그 무엇도 공유되지 않는다. 오직 공유되는 것은 그녀 자신과 나 자신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를 보여주는 것만큼 완벽한 증거가 있을 리 없다.
근데 시발 이건 아니지?
<믿을게요. 그러니까 안 오셔도 되요.>
어차피 이 사람이 온다고 해도 지금의 내가 아니라 과거의 멈춘시간 속의 나일 것이다. 그래도 시발 그건 아니지?
[싫은데요~~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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