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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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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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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3.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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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0. 필연적 접근 - 7

DUMMY

주저할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재빨리 은정이 해온 화장 견본을 떠올렸다. 그 후, 유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SMK 계집들 당장 강당에서 해산시켜!"


"왜 내가 그래야 돼?"


"구질하게 나설 생각 없으니까 부탁할게. 같이 스튜디오로 들여보내 줄 테니까."


"정말?"


유나가 반색을 표하며 기뻐할 틈에, 나는 은정의 화장 견본을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떠오르던 요점들을 검토했다. 유나는 내 제안을 받아들여 빠른 시간 안에 SMK를 해산하는 데 성공했다. 유나 뒤를 자리 잡던 은색 네임드의 SMK 완장 계집들도 같이 스튜디오로 들어온다는 조건이 옥에 티였지만, 시간이 촉박한 탓에 마지못해 허락하고 말았다.


"화장대 좀 먼저 사용할게요!"


선유가 화장을 지우던 중이었지만 부원들에게 겨우 양해를 구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후 빈자리에 은정을 앉혔다. 나는 은정의 녹은 화장을 검지 손가락으로 뜬 뒤 엄지 손가락에 맞대어 이리저리 비벼 질감을 확인했다. 제품 부족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는 화장대 앞에 놓인 클렌징 티슈를 이용해 은정의 화장을 닦아냈다. 민낯이 보이자마자 나는 부원들에게 부탁해 여러 화장품들을 화장대에 세팅했다. 나는 머릿속에 생각해 둔 견본대로 은정의 얼굴에 화장을 뜨기 시작했다. 핑크빛 쿠션에 아이섀도, 빨간색 느낌의 틴트라는 키워드에 맞춰 최대한 비슷한 조건으로 적합한 화장품들을 선별해 생각해 둔 견본과 대조했다. 이를 지켜보던 SMK 계집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은정의 화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10여분 뒤, 다른 부분은 얼추 모양을 잡아갔으나 아이섀도는 경험이 적은 탓에 난항을 겪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던 중, 나미 선배가 내 곁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의 손에는 다른 브랜드의 아이섀도가 있었다.


"어떤 색상에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나?"


"네."


"그럼 거울 보고 맞게 하는지 살펴봐줘. 눈화장은 내가 마무리 지을게."


"네, 감사합니다."


나미 선배는 내 말을 조금만 들었음에도 생각하던 눈화장대로 속속 그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는 실력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모양이다. 이를 끝으로 은정의 화장 복원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벽에 몸을 기댔다. 은정은 원래대로 돌아온 화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후, 1학년 대표인 승준이 내게 다가와 거울에 비친 은정의 모습을 가리켰다.


"제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봤던 화장과 똑같아 보이는 걸요?"


"그렇게 보인다면 정말 다행이네."


겨우 완성했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했던 나였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화장이 망가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정의 화장을 만져본 결과, 누군가 세안용 아세톤을 스프레이 용기에 담아 때때마다 은정에게 뿌렸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했다. 외면하다시피 다뤘던 탓에 범인이 누구인지 잡지 못했지만 그런 계집들을 집합해 놓은 대가리들이 주선했을 가능성이 역력했다. 유나를 포함한 계집들은 미로를 사이에 끼고 활발하게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대로 계집들한테 쓴소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미로가 잘 얘기해 줄 거라 믿고 승준이 들고 있던 종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뭐야?"


"아, 이번 축제 때 짤 코너들 1차적으로 리스트 짜 놓고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조만간 축제구나."


승준에게 리스트가 적인 종이를 건네받아 어떤 코너를 준비하고 있는지 둘러보았다. 각종 동아리들과의 합동 공연이 대부분이라 가볍게 훑어볼 수 있던 그 순간, 눈을 의심한 코너가 보여 손가락으로 가리켜 해당 부분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틀림없었다. 축제 후반 파트에 "SMK의 K-Beauty~! 강연의 메이크업 쇼"라는 코너가 후보군에 있었다. 나는 마스크를 다듬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부원들은 내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나는 승준에게 리스트를 돌려주었다.


"이건 아니야. 감각 만으로 화장하는 내가 큰 무대에서까지 이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요? 이건 대표 선배들끼리 얘기해서 무조건 넣을 생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말도 안 돼. 애초부터 오늘 SMK 계집한테 했던 화장도 어울린다는 목적만 믿고 매달린 거지, 계집이 자주 바르던 틴트 자국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보였는데도 난 그 배려를 묵살하고 내 감각에만 신뢰를 표했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만족할 수 없는 화장을 조장할 순 없어."


내 말에 부원들과 SMK 계집들을 비롯한 일동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미 선배는 은정을 자리에서 일으킨 뒤 내게 함께 다가왔다. 동시에 은정을 앞에 세워 화장한 모습을 어필하는 듯 보였다. 나는 이를 외면했다.


"은정이도 제 멋대로 상상한 표본에 그려졌을 뿐이에요."


"웃기지 마!"


은정은 호통 뒤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윽고 내게 다가와 양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다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주변 눈치를 살피다 은정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오빤 정말 바보야! 이렇게 화장했는데 어떻게 아무런 눈길도 안 줄 수 있어!"


"미안. 무대에 정신이 팔렸던 탓에 신경 쓰지 못했어."


"그래 놓고 내 얼굴은 잘만 기억하고, 대체 오빤 날 얼마나 괴롭히려는 거야?"


"그런 게 아니야."


은정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공감했다. 내 시선이 없던 덕분에 은정은 수없이 화장이 지워지는 수모에도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내가 무척이나 싫었을 것이다. 은정이 지금 안도했는지 더 화를 부추겼는지 알 순 없지만 지금 은정에게 동정의 손길을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었다. 나는 나미 선배에게 은정을 맡긴 뒤, SMK 계집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미로가 내게 다가와 가벼운 말들로 타이르려 했으나 이번에는 소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다. 나는 유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유나.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멋대로 오해해서 은정이를 괴롭혔네."


"잠깐만! 내가 시켜서 한 게 아니야 오빠!"


"그럼 아까 방송실 앞에서 떠들어 댄 건 뭔지 설명해 봐."


유나는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유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눈동자만 보이도록 유나와 대면했다. 유나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피하거나 눈을 감으려 함에 나는 마스크를 조금 내려 콧바람으로 유나의 눈가에 쉴 새 없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결국 유나는 내 굳은 표정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은정이한테 들러리 같은 계집이 왜 집착하고 자빠졌냐면서 실실 쪼갰잖아. 내가 마이크 잡으면서 못 들었을 것 같아?"


"그, 그건..."


"잠깐 만나자고 약속 잡아놓은 거 멋대로 끼어들어 온 것도 모자라서 오해랑 잣대로 이런 짓이나 벌여놓고 나한테 의지하려 들었으니."


마음 같으면 그냥 여기서 분위기 잡고 계집들을 내치고 싶었다. 그러나, 미로가 때를 보자고 신신당부한 걸 기억하고 있어 겨우 감정을 추슬러 유나에게 떨어졌다. 은정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되면 다 나올 일들이라 사실상 이 이상으로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유나를 비롯한 계집들을 확실히 견제해 본 것에 마음속으로 통쾌한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나가 계집들을 이끌고 볼품없는 뒷모습을 보인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상황을 모면한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은정은 그런 내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하굣길에 접어들어, 나는 은정과 호수 공원 쪽으로 길게 경로를 틀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은정은 하나같이 오늘 있던 내 행동들에 대한 질문들만 주야장천 내뱉었다. 유나에 관련된 일은 내게 회의감을 주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그렇게 어필했음에도 은정은 자신에게 보인 모습이 미덥지 못했는지 이를 계속 부정했다.


"언제까지 말해줘야 날 믿어줄 거냐?"


"오빠가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빈말로 밖에 안 들리니까요."


"그러면 내가 작전을 짜고 그랬겠어? 변수가 꼬이니까 이 꼴이 난 거잖아."


"오빠 과실도 있잖아요."


나는 할 말이 없어 말없이 은정과 발을 맞추었다.


"그래도..."


"응?"


"그래도 남보다 먼저 나서서 제 화장을 고쳐줬을 때는 좀, 멋있었던 것 같아요."


"이성의 본능적인 호감은 부정할 수 없다는 거네."


"그렇게 안 말했거든요?"


은정은 내 시선을 외면해 인상을 지었다. 그래도 험악한 분위기가 아닌 툴툴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번 일로 SMK 계집들이 뒤따라 올까 봐 나는 미리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날이 점점 더워지는 건지 모자 곳곳마다 땀이 맺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젠 모자도 구멍 뚫린 하계 모자 써야 되나 봐. 힘들다."


"왜 오빠는 항상 모자랑 마스크를 차고 다니는 거죠? 여름까지 마스크를 차고 다닐 순 없잖아요."


"알고는 있어. 하지만 유나의 시선이 보이는 앞에서 아직은 그럴 수 없어. 이것도 작전의 일환이라고."


"그 작전이 도대체 뭐라고."


은정의 얼굴 화장은 변하지 않고 모양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주변에 다니는 사람들도 은정의 얼굴에 반색을 표하는 등 구성 자체가 무난해 나름 보는 맛이 있었다. 내 시선에 은정은 토라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오늘 나랑 만났을 때 했던 화장은 누가 해줬던 거야?"


"알아서 뭐 하게요?"


"차갑네. 칭찬하고 싶어서 물어봤던 거야."


"오빠랑 별 상관없는 사람일 걸요."


은정의 매정한 어투가 썩 좋진 않았으나 솔직히 맞는 말이기도 해 대꾸할 생각은 없었다. 호수 공원을 넘어 아파트 단지가 늘어설 즈음, 은정은 휴대폰을 보며 말수를 줄여갔다. 나도 슬슬 곁을 떠나려던 차, 어디선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발걸음을 멈추니 은정 근처로 빨간색 자동차 한 대가 들어섰다. 은정은 자동차 창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도 완장 차고 다녀오나 보네."


"엄마! 그렇게 말하지 말랬지!"


은정이 부끄러워한 채 고개 숙이는 모습에 나는 제갈길을 청해 은정을 가로질러 가려했다. 그 순간.


'???'


옆 시선만으로도 느껴지는 불안한 기운. 찰나의 순간 만으로 나는 주변 공기를 읽어냈다. 옆으로 고개를 트니 망할 아줌마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윤미로.png

캐릭터 프로필 04. 윤미로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파트는 7부작으로 완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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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2. 불편한 만남 - 2 20.01.23 214 4 10쪽
2 01. 불편한 만남 - 1 20.01.22 329 5 10쪽
1 Prolouge 20.01.17 36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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