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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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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67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3.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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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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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1. 합법적 잣대 - 1

DUMMY

청순한 얼굴에 긴 신장과 마른 몸 비율, 검고 긴 머릿결에 하얀 피부, 오른쪽 아래에 찍힌 눈물점까지 어디 하나 뺄 거 없이 내가 기억하던 망할 아줌마와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제자리에 얼어붙어 질겁했으나, 모자와 마스크가 가려준 덕분에 어느 정도 신원을 가릴 수 있었다. 은정이 자연스레 망할 아줌마한테 들러붙어 얘기를 청하는 모습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모자챙을 매만진 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은정과 망할 아줌마끼리 나누는 대화는 그대로 내 귓가에 들려왔다.


"이거 SMK 오빠가 해준 화장인데 어때?"


"무슨 소리야? 이거 엄마가 가르쳐준 화장이잖아."


"화장이 지워지는 바람에 저기 뒤에 있던 오빠가 고쳐줬어."


대화만으로 은정이 망할 아줌마와 함께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고 예측했다. 큰일이었다. 만일 은정이 내 이름을 말하는 순간 감정이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성을 차리고 조금씩 몸을 가다듬었다.


"대개 우중충하게 입고 다니네. 쟤가 그 SMK 일원이라고?"


"맞다니까. 그래서 이름이..."


"잠깐만!"


언성 높게 소리친 덕분에 은정이 내쪽으로 시선을 돌려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발 빠르게 은정에게 다가갔다.


"그, 갑자기 선약이 생겨서 그런데 먼저 가봐도 될까? 식사 거리가 다 떨어졌다고 문자가 와서."


"그럼 우리 아파트 근처에서 사는 게. 안에 식자재 마트도 있는데."


"그게, 전등도 다 나가서 대형 마트에서 함께 사가려고. 여기서 좀 멀리 있잖아."


은정은 이해한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은정은 망할 아줌마의 자동차에 탑승해 근처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집 근처 상가까지 죽을 기세로 달려갔다. 마스크로 인해 호흡이 불균형했으나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저 망할 아줌마 곁에서 벗어나 이성을 다잡아야만 했다. 아파트 앞 상가 구석, 나는 지하로 들어가 지친 몸을 풀어갔다. 모자와 마스크는 모두 벗어 한 손에 꼭 쥔 상황이었다. 숨이 가쁜 것이 아닌 눈이 썩어 들어가는 것만 같아 몸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세간을 통해 어렴풋이 접한 소식을 눈앞에서 직접 보니 이성의 고삐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메슥거리는 속을 참아낸 채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 후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해 상가에서 아파트 입구까지 발길을 재촉했다. 억한 심정으로 인해 매캐한 괴성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망할 아줌마가 나타났다는 것과 은정이 그 망할 아줌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부정하려고만 했다. 그럼에도 명백해지는 사실에 이성이 점점 무너져갔다.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그대로 침대에 얼굴을 박았다. 그제야 양손에 힘을 꽉 준 채 이 괴로운 상황을 직면할 수 있었다. 평안히 살고 있던 우리 가족 사이로 망할 아줌마가 다시 침투할 수 있단 사실이 이 집을 더 이상 편한 곳으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불어 누나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망할 아줌마를 찾아 나설 게 당연지사였다. 나는 답답한 심정을 억눌러 조심히 숨만 고르고 있어야만 했다.


밤이 깊어질 즈음,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려 방안을 나왔다.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로 주방을 살펴보니 플러그가 꽂힌 전기 포트에 물이 조금 차있던 걸 확인했다.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했다.


실제로 찬거리를 비롯해 간편식 키트조차 없을 정도로 냉장고가 텅텅 빈 상태였다. 나는 주방 싱크대 선반에 컵라면 하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둔 후, 포트 물의 전원을 켰다. 나는 끓는점 따라 솟는 기포들에 뚱해진 표정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오늘 있던 일들이 하나같이 믿을 수 없어 지금 이 순간마저 꿈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포트 너머로 올라오는 따뜻하고 촉촉한 김이 내 감각을 자극했다. 은정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는 데는 성공해 현재까지는 개인적인 문제로 넘어갈 상황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낙심을 감출 수 없던 나였다. 오늘 일은 밖에 나가면 없었던 일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평정심을 찾아갔다. 컵라면에 물을 붓는 내 모습이 포트의 투명한 유리 부분에 비쳐 보였다.


다음날 아침, 미로는 어김없이 SMK의 채팅창 스샷을 내게 보내주었다. 간추린 내용 만으로도 정신없는 채팅방 분위기를 짐작했다. 나는 미로 쪽으로 채팅방을 돌려 자판을 두들겼다.


'어째 아침부터 어수선하다.'


'선배가 짠 계획 덕분에요... 어제 일로 선배 반대파가 대대적으로 생긴 것 같아요'


'윗대가리는 묵묵히 상황만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하나같이 엉망이네.'


미로가 말한 대로 현 SMK는 나를 퇴출하자는 여론이 격상해 반대하는 파가 여럿 생겨났다. 현 SMK 채팅창은 다른 입장의 계집들과 말다툼이 붙어 늪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은정과의 계획 방향과는 부합한 상태였으나 유나에게 세게 어필한다는 생각이 들어 후폭풍이 어떨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끄고 침대판 근처에 던져두었다. 나 또한 침대에 앉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뭉게구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성이 풀려 눈이 침침해질 즈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뒤집힌 휴대폰을 집어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오빠, 나 유나야."


나는 곧바로 귀를 떼 휴대폰 화면을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유나의 전화번호였다. 동아리 축제 관련 전화일 거라 생각한 게 방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나는 휴대폰 너머로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웬일이야?"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유나의 톤은 평소보다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유나의 얘기를 듣고 응해주는 입장이 되었다. 유나는 내가 SMK 채팅창 정보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용들이 아까 채팅창에서 본 내용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유나가 저번 일에 기가 죽어 날 계속해서 의식하려 들었던 것이다.


"마침 오빠가 나하고 같은 아파트에서 살잖아. 직접 얘기를 나눠보고 풀 건 풀고 싶어서. 어디 동 호인지 알려줘."


"내가 너네 집에 갈게. 부를 때 열어줘."


"왜? 사과의 선물도 사갈 겸 내가 갈게!"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자물쇠 버튼을 눌러 문을 여는 시늉을 보였다. 문 주변은 삐리릭 소리를 내어 휴대폰까지 전해졌다.


"이미 나왔어. 그러니까 두 번 다니게 하지 마."


"알겠어. 오빠 좋을 대로 해."


나는 연락을 끝낸 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외출을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준비했다. 대충 매무새를 갖추어 방을 나오던 중, 나는 누나와 눈이 마주쳐 제자리에 멈춰 섰다. 누나는 나를 지그시 노려보며 민트색 코끼리 쿠션을 꼭 안고 있었다.


"누나, 샌드위치 만들어놨으니까 식탁에 있는 거 먹으면 돼."


누나는 말없이 쿠션 쪽으로 시선을 내려 이리저리 쿠션을 쓰다듬었다. 정적 속에서 나는 어제 일들을 떠올렸다. 저녁때 아무 말도 없이 방에 있었던 것과 저녁을 해주지 못한 것까지 잘못한 점은 분명히 있었다. 어떻게 나갈지 생각하던 중, 누나는 다시 내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강연아."


"어?"


"올 때 민초 아이스크림 사다 줘."


나는 잠시 멍해질 뻔했지만, 대충 이해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꼭 사 올게."


그 후, 나는 아파트 건너 주상복합 상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이는 유나 쪽으로 보낼 아이스크림으로 오는 길에 누나 아이스크림을 따로 구매할 예정이었다. 나는 유나의 문자 따라 아파트 보안 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엘리베이터로 13층까지 올라갔다. 목적지에 다다를 터, 유나는 일찌감치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서 와 오빠!"


"이제 보니까 옷이 세트였네."


오늘은 지난번에 입었던 후드와 옆에 흰색 줄무늬 패턴이 들어간 검은색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익숙한 브랜드의 옷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유나는 옆으로 몸을 돌려 손가락으로 바지 패턴을 가리켰다.


"오빠 이 브랜드 옷 좋아하지?"


"많이 입긴 하지."


"그치그치. 선유 오빠랑 같이 다닐 때 보니까 이 브랜드 바람막이 입고 다녔잖아."


"그랬지."


다시 생각해 봐도 이 망할 계집은 비호감 투성이었다. 선유가 있었다면 진작에 지적할 상황일 것이다. 덕분에 초심을 갖추고 유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기 앞서, 나는 들고 온 아이스크림 봉투를 흔들어 유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이스크림 먹고 들어가자."


"언제 사 온 거야?"


"방금. 기분이 꿀꿀할 땐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잖아."


유나는 잠시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다소 덤덤했던 표정에 미소를 보였다.


"센스 있네."


유나는 거실 쪽으로 방향을 돌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아이스크림 통을 올려두었다. 유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 표정을 풀어갔다. 나는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유나에게 보여주었다. 보자마자 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아 기쁜 마음에 유나의 모습을 본 순간.


'?'


뭔가 이상했다. 방금까지 기대에 찬 유나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 언짢은 시선으로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이게 뭐야?"


"뭐긴 민트 초코잖아."


나는 딸려온 아이스크림 스푼을 꺼내 유나에게 건네주었다. 유나는 바로 포장 봉투를 뜯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통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아이스크림은 이곳저곳 뒤집혀 뒤틀린 층을 형성했다. 나는 화를 내려했으나 유나의 창백한 시선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 왜 다 민트 초코인 거야..."


유나는 아이스크림 통에 스푼을 꽂은 채 이마에 양손을 댔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문을 표했다. 유나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이윽고 아이스크림 통을 가리켰다.


"저딴 맛 왜 사 온 거야?"


"왜? 민트 초코 싫어해?"


"당연한 거 아냐! 저딴 치약 맛을 대체 누가 좋아한다고 사 먹는 거야?"


"말이 심하네. 저거 우리 동네에서 1,2위를 다투는 인기 맛이야. 설마 싫어할 줄은 몰랐지."


"너무 이기적이야!"


유나는 아예 고개를 돌려 아이스크림을 등졌다. 나는 여러 감정이 겉돌아 모자챙을 긁적였다.


"그럼, 이건 우리 집에서 먹게 잠깐 냉동실에 맡겨줘. 지금이라도 다른 맛으로 바꿔 사 올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으로 구입했던 아이스크림 가게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유나가 먹을 맛을 찾아보려는 순간, 유나는 내 손을 붙잡아 가던 길을 가로막았다. 빈정 상했을까 싶어 멈춰섬에, 유나는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 후, 왼팔을 양팔로 끌어안아 얼굴을 내 삼두 쪽에 갖다 붙였다.


"미안해. 나 먹으라고 사온 건데 내가 너무 흥분했어."


나는 흐름을 파악해 몸에 힘을 풀어갔다.


"나한테 할 말들이나 들어보자."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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