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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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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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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3.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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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필연적 접근 - 6

DUMMY

나는 문을 지고 유나와 마주 섰다. 내 덤덤한 표정에 유나는 양손 주먹을 꽉 쥔 채 눈살을 찌푸렸다.


"배신자! 날 갖고 놀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하! 조은정 저 계집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못 들었나 보네?"


감정적인 어투만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유나 너머로 날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두루 보였다. 나는 관객석 너머 은정 쪽으로 가볍게 시선을 흘겨보았다.


"착각도 유분수지. 쟤는 내 소꿉친구일 뿐이야. 너랑 관계 지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날 뭘로 보는 거야! 저 계집이 오빠 좋아한다고 우리 앞에서 말했다고!"


"그럼 내가 지금 은정이하고 사귀는 거야?"


유나는 말문이 막혔으나, 입술을 헐뜯기 바빴다. 화를 잠재우지 못했는지 내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툭툭 쳐댔다. 바로 뒤쪽으로 유나 못지않게 화려한 장식을 두른 SMK 완장을 찬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미동 없이 유나 곁을 지킬 뿐이었다.


이 상황을 내버려 두면 그동안 컨테이너에서 받은 고통을 돌려받는 것 같아 통쾌할 지도 모르지만, 유나를 제지해 과열 양상이 되는 걸 막아야만 했다. 나는 유나의 양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이거 놔!"


"실망이다. 심증 갖고 질투나 일삼고. 내가 가볍게 밖에 안 보이는 거야?"


나는 쥐던 손에 힘을 실어 유나와 가까이 대면했다. 유나는 놀란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나는 유나의 손을 놓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주변을 바라보던 관객들이 웅성이던 터, 나는 문을 닫은 뒤 조심히 미로 옆에 다가섰다.


"저러면 좀 가만히 있을까?"


미로는 힘 빠진 실소를 내보냈다.


"지금 이 상황, 밀당이라고 해야겠죠?"


행사 시작 시간에 맞게 나는 관객들 앞에 나와 사용할 마이크를 정비했다. 인파는 저번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SMK 쪽으로 야유 섞인 조롱들이 쉼 없이 쏟아졌다. 그 순간 누군가 무대 쪽으로 날계란을 던져 바닥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나는 뒤늦게 정면을 봐 계란이 내쪽으로 날아오는 걸 확인했다. 생각보다 멀리서 던졌는지 계란은 힘없이 궤적을 그려 내 양손 위로 사뿐히 들어왔다. 내 맹한 표정에 주변 관객들은 말만 할 뿐, 더 이상 계란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관객과 계란 쪽으로 시선을 바꿔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일수록 짓궂은 대처가 효과적이기 마련이었다. 나는 모자챙으로 계란 껍데기를 올려쳐 까기 좋게 실금을 만들어냈다. 그걸 보던 관객들과 SMK는 놀란 듯 웅성거렸다. 그동안 나는 재빨리 뒤돌아 한 손으로 귀에 걸어놓은 마스크 고리를 풀어낸 뒤 머리 위로 양손 번쩍 들어 덜 깨진 계란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관객들이 내 기행에 눈을 떼지 못한 순간, 나는 목을 뒤로 젖혀 계란 껍데기를 반쪽으로 갈라 그대로 떨어지는 날계란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내가 오물거리다 꿀꺽 삼키는 과정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짧은 비명 후 적막한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나는 다시 마스크를 찬 뒤 원래 자세로 돌아섰다. 입속에 남아있는 날계란이 무척이나 메스껍고 비린내가 감돌았지만 겨우 참아내며 마이크 테스트를 이어갔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날계란 잘 먹었다. 꾸읍."


그 후, SMK의 입들이 쏙 들어가 분위기 반전을 이끄는 데 성공했다. 무대에 떨어진 날계란도 1개에 불과해 무대 정비 부원이 금방 치울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침을 쥐어짜 남은 계란 찌꺼기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침이 고여 입 밖으로 조금씩 빠져나왔지만 검은색 마스크 덕분에 그 누구에게도 표가 나지 않았다. Q&A 코너에 들어서자 저번에 문제 되던 부분들을 개선해 3명으로 이어지는 어정쩡한 콩트에서 선유와 미로가 기존처럼 콩트를 다루고, 나는 내 컨셉을 극단적으로 살려 로테이션을 돌리도록 무대를 이끌었다. 거기에 부원들이 내게 맞는 사연들로 선별한 덕분에 진행하는 데 한 결 편해졌다. 저번 화장 관련 이슈가 들끓었던 탓인지 내가 받은 사연 종이에는 화장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연 오빠가 화장을 잘 안다고 들었어! 그래서 요즘 어떤 틴트가 나한테 맞을지 몰라 이렇게 글을 보내. 프루티스트로베리랑 러블리 로즈 중 어떤 게 요즘 스타일에 맞을까?"


사연을 읽은 후, 여기저기서 파벌이 나뉘어 각기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관객들이 보였다.


나는 프루티라든가 러블리라든가 눈에 보일 리 없었다.


"사연자 무대 앞으로 와 봐! 10초 내로 안 나오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10! 9!"


그러자 가운데쯤에서 누군가 박차고 나와 무대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SMK 계집으로 보이는 학생이 조명이 비치는 지점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워 계집의 앞으로 다가섰다. 통제 부원들은 재빨리 주변을 막아 제지에 나섰다. 나는 계집에게 조명이 밝게 빛나는 곳까지 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계집은 잠깐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이다 대중들의 시선에 결국 앞으로 다가와 내게 얼굴을 보여주었다. 입 주위를 보니 이미 질문에 나온 색감의 틴트를 바른 부분이 보였다. 이는 정해진 답을 위한 계획적인 질문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계집과 그 틴트는 영 맞지 않아 보였다. 나는 뒤돌아 무대 중앙을 바라보았다.


"무대 정비 부원 중 한 명만 스튜디오 화장대 가서 틴트 모아놓은 통 좀 가져와줘."


이에 스튜디오 문쪽에 있던 여학생 부원이 그대로 스튜디오로 들어가 틴트가 담긴 통을 내게 갖다주었다. 내 감사의 손짓 뒤로 그녀는 원위치로 돌아갔다. 가져온 틴트의 색상의 네이밍이나 일부 틴트에 적힌 번호가 뭔지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이 계집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맞는 색상들이 어떤지는 알 수 있었다. 선택지를 미루어 보아 성숙미와 자연미의 기로에 놓였던 걸로 보이지만, 그냥 유명한 브랜드를 대충 따라 쓰려는 느낌도 적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선택지와 관련된 색감은 철저하게 배제해갔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여러 틴트를 꺼내 확인해 본 결과, 단품으로 맞는 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무대 중앙으로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선유야 틴트 여는 것 좀 도와줘."


"어!"


나는 선유에게 3개의 틴트를 받은 뒤 브러시를 다른 한 손에 쥐어들었다. 그 후 내 왼쪽 손등을 팔레트 삼아 색감을 섞기 시작했다. 마침 스페어 브러시가 있어 틴트 간에 색감이 섞이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나는 섞인 색감의 틴트를 계집의 입술로 내어 보였다. 계집은 몸을 움츠리며 나를 거부하는 듯 보였다.


"눈감고 있어. 금방 끝나니까."


계집은 또다시 대중의 시선 후로 조심히 입술에 힘을 풀어갔다. 나는 빠르고 간결하게 계집의 입술에 틴트를 발라주었다. 복숭아 빛이 감도는 핑크색 틴트로 밝은 핑크색 베이스에 마젠타와 레드가 7:3 정도로 섞인 색상의 틴트를 조금 섞어둔 색감이었다.


"거울 보거나 셀카 찍어두고 이 색상 비슷한 틴트 사면 돼. 이상!"


"네!"


계집을 내보낸 후 주변이 웅성거렸다. 이를 보던 선유와 미로는 잠시 감상에 잠겨 있다 미로가 갈채를 보내 무대에 호응을 이끌었다. 의연하게 무대 중앙에 돌아가니 방금 맡았던 계집 쪽으로 검은색 완장들이 여럿 모여 잡담하는 게 보였다. 감각 따라 그린 거라 계집의 욕심이나 스타일을 고려하진 않았지만 계집이 불평하지 않는 거 보니 대충 넘어가나 싶었다. 그렇게 오늘의 무대 행사도 문제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나는 스튜디오 화장대에 앉아 방금 전에 사용했던 틴트들을 확인했다. 아까 전 계집의 입술을 자세히 보면 고집하던 색상으로 인해 변색된 흔적을 봤음에도 내 기준에 어울릴 거란 생각이 앞서고 말았다.


때마침 여성 레미 부원들이 하나둘씩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나는 의도적인 한숨을 쉬어 내쪽으로 시선이 가게끔 유도했다.


"틴트 화장 잘된 건지 모르겠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배! 정말 멋있었어요."


"바로 그 관점이 문제야. 폼만 너무 잡아서 실리적으로 굴어버렸잖아."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요?"


목소리 따라 시선을 트니 미로가 스튜디오로 들어와 내 뒤에 서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유도 미로 옆으로 다가왔다. 미로는 매서운 눈초리로 내 양쪽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선배 엄청 답답했던 사실, 알고 있었어요?"


"이거 말고 또 뭐가 문제길, 아아악!"


미로는 갑자기 내 어깨를 꼬집 듯 세게 쥐어잡았다. 나는 겨우 몸을 떨쳐 미로를 바라보았다. 미로는 허탈한 표정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은정이가 그렇게 꾸미고 왔는데 선배가 눈길 한 번도 안 줬던 거 얘기하고 있었어요!"


"아!"


미로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파악했다. 원래대로라면 무대에서 내 차례가 오면 관객 반응 따라 은정과 시선을 맞추어 유나의 속을 더욱 뒤집어 놓는 작전이 있었다. 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단 생각으로 인해 무대에 집중한 채 이 사실을 잊은 것이었다.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고개를 숙였다.


"오늘 완전히 꼬였네! 왜 그랬지?"


그때 누군가 다시 양쪽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돌려놓고 보니 선유가 고개 숙인 채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괜찮아. 무대에 선지 얼마 안 됐잖아. 실수할 수 있어."


"이제 3주 차인데 부끄럽네. 긴장을 너무 하나 봐."


나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손에 묻은 틴트들을 잠시 보다 아세톤으로 자국들을 하나둘씩 지워갔다. 그때, 바깥문 쪽으로 웅성이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점점 규모가 커짐에 미로를 비롯한 스튜디오 부원들이 스튜디오 바깥쪽 문으로 시선을 모았다. 새어 나오는 얘기들을 경청하니 SMK 계집들이 통제 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처럼 들려왔다.


"이 계집들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했거늘."


나는 자국을 다 닦지도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대 쪽 문으로 이동했다. 주변 부원들이 내게 다가와 말리려 했으나, SMK에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윈 없었다. 나는 무대 중앙으로 나와 스튜디오 바깥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중앙 마이크가 배치된 곳 너머로 SMK 계집들이 바깥문에 들러붙어 농성을 벌이는 걸 발견했다. 나는 마이크 전원을 켜 계집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만하지 못해!!!"


감정적인 외침에 길고 따가운 노이즈가 강당 곳곳에 퍼져나갔다. 이로써 SMK의 움직임을 멈추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고개만 움직여 확인해 보니 바깥문 바로 근처에 유나가 서있던 걸 발견했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와 계집들로 이루어진 군중 앞에서 손을 흔들며 비켜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지만, 마이크를 다시 입에 대니 하나둘씩 길을 트기 시작했다. 나는 발단 지점에 도착해 스튜디오 문 앞에 유나와 은정이 있던 걸 발견했다. 나는 마이크를 끈 뒤, 트인 길 따라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유나는 다짜고짜 내 옆에 안겨 얼굴을 허구리에 붙이려 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은정이 어떻게 된 건지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었다.


"뭐야..."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화장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 민낯과 화장이 뒤섞인 흉측한 모습 만이 보였다. 울먹거리는 은정의 얼굴에 나는 할 말을 잃어 잠시 동안 경직되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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