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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의 생각

샴발란(Shambha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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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의생각
작품등록일 :
2013.04.02 21:11
최근연재일 :
2013.04.13 02:5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455
추천수 :
20
글자수 :
24,789

작성
13.04.09 09:33
조회
226
추천
2
글자
8쪽

노스텔지어 프로젝트(3)

DUMMY

- 3. 달과 해가 뜨는 셋째날 -


해발 6,500m.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보통은 칠흑 같은 어둠을 예상하지만, 맑은 하늘 히말라야의 설원은 한밤에도 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과 그 별빛들을 머금은 만년설 때문이었다.

사실 이곳 히말라야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저지대는 겨울 동안 얼었던 얼음이 녹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질퍽거리고, 고지대는 수시로 변하는 기후로 눈과 비가 섞여오거나, 돌풍이 불고, 때로는 만년설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특히나 밤이면 북서풍이 불어, 쌓여있던 눈이 흩날려 눈보라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히말라야의 모든 자연신이 잠을 자는 듯 맑고 고요했다.


정주호 수석은 수시로 산소 호흡기로 호흡해야 했다. 나이는 40대 중반이었지만, 평소 수영과 마라톤, 등산으로 다져진 몸이라 이번 등반에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도 해발 6,000m 이상에서의 산악행군은 무리였던 것 같다. 등반을 시작하면서부터 정주호의 짐은 휴대용 산소 호흡기와 지팡이, 휴대용 고성능 캠코더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행렬을 쫓아가는 것도 벅찰 지경이었다.

셰르파는 태어나서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한다고 해도, 정주호의 눈에 비친 현지우 박사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존재였다.

스노모빌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났지만, 힘든 기색은커녕 호흡도 평상시와 같았다. 오히려 셰르파와 정주호가 지칠 것을 걱정해 두어 번 쉬었고, 그 쉬는 동안에도 일행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정 수석님. 만약 현기증이 나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시면 즉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셰르파 두 명이 견인 썰매로 수석님을 마을까지 모시도록 조치했으니까요. 이런 곳에서 의욕과 오기로 어찌해 보려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셰르파 2명은 조난 시 간단한 구호장비 정도만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현지우가 만약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도록 준비해 둔 인원이었다. 현지우의 말에 정수석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 박사는 어릴 때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셨다고 하더니, 히말라야에서도 머물렀던 적이 있나 봐요?”

“예. 벌써 한 15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현지우는 구화란이 만들어 준 죽을 건네며 대답했다.

“아-. 그래서 이 지방 언어에 능통하셨던 거구나. 하하. 현 박사는 저보다 어리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에요.”


정주호는 따뜻한 죽을 마시며, 과거 현 박사와의 일을 떠올렸다. 미국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전공한 그는 첫 직장을 ‘소더비즈(Sotheby's)’라는 영국의 유명한 미술경매회사에서 근무했다.

주 업무는 위작을 가려내는 일. 즉, 각종 장비를 이용한 고미술품의 연대측정이었다. 또한, 활동적인 것을 좋아한 그는 현장답사를 다니며, 사진과 기록을 남기는 일을 병행했다.

정주호의 자기소개서 내용대로, 전공은 연대측정장비 전문가이고, 부전공이 카메라맨인 셈이었다.


그런 그가 현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뉴욕의 한 경매장에서였다. 당시 소더비즈가 보증하던 페르시아제국 말기의 고문서가 담긴 점토판이 경매에 출품되었는데, 그 점토판의 탄소연대측정을 담당한 사람이 정주호였다.

그러나 현 박사는 그 점토판의 고문서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이고 그 내용에 대한 해석도 작위적이라며, 해당 시기의 점토층에서 그럴듯하게 잘라낸 위작이라는 주장을 했다. 결국, 설전 끝에 재검증을 하게 되었고, 그 점토판은 위작으로 밝혀졌던 사건이었다.

정주호는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젊은 사람이 보수적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그것도 그 시장을 제패한 소더비즈를 당당하게 굴복시킨 카리스마에 매료되었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적군이어야 할 상대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점에서, 자신이 당시에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현 박사와 함께 일해 온 동안만큼은, 자신이 돈이나 명예보다 인류의 역사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셰르파들에게 출발 사인을 보낸 현지우는 정주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앉아 있던 그를 일으켜 세웠다.

“수석님. 너무 오래 쉬면 더 힘들어지실 겁니다.”

“고마워요. 현 박사.”

정주호의 따뜻한 말과 표정에 현지우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선두로 나섰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정주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화란이의 심정은 우리도 잘 알고 있지. 후후-. 하여간 특이한 사람이야.”

정주호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출발하는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자신의 수첩에 이렇게 적어 놓는다.

‘그들은 끝없는 우주를 걷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순수하고 신성한 자연 속. 달과 별, 그리고 만년설이 그들의 시야에 닿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그 숨 막히는 경외감을 애써 외면하며 이상향을 찾아 나서는.... 노스탤지어에 빠져버린 사람들. 그래. 진정 이상향으로의 노스탤지어다.’


반짝이는 별들의 무대를 걷어내는 새벽이 발밑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밤을 꼬박 세워 걷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눈 위를 걷는 것은 두배, 세배의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셰르파들 역시 굳은 표정으로 앞 사람의 발만 보면서 오로지 걷는 것에 모든 집중을 하는 것 같았다.


휴식시간이 되자, 정주호는 그 자리에 엎어지듯 드러누웠다. 산소호흡기를 입에 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쉰다.

“수석님. 괜찮으세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목적지입니다.”

현지우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싸인 완만한 산봉우리였다. 정주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 15KM 정도 남았으니, 지금 속도로 5~6시간만 더 가면 됩니다. 힘들면 말씀하세요. 시간 여유가 좀 있으니, 쉬엄쉬엄 가도 될 것 같습니다.”

현지우는 정주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쥬드락과 이야기를 나누며, 셰르파들의 짐을 다시 재배분했고, 그중 일부는 이곳에 두고 가기 위해 깃발을 세워 한곳에 모아 두었다.

그들이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니, 눈을 머금은 두터운 안개구름이 제법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불과 2~3시간 전에 저곳을 지나왔다고 생각하니, 정주호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우리가 지나올 때는 분명 맑은 날씨였어. 한 번도 눈보라는 만난 적이 없다. 현 박사는 이런 자연의 변화까지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셰르파의 경험일까? 이곳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라고 했는데....’


정주호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해서 어제 이광호 박사의 말을 곱씹었다. 현 박사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을 생각했을 거라는 말. 늘 그래 왔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현 박사의 끝을 알 수 없는 지식과 그것을 근거로 하는 치밀한 계산.

지금껏 일해 오면서 현 박사의 말과 추론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 늘 그의 이야기가 증명되어왔고, 결과가 있었다는 것!

우연에 우연을 더한다 해도 정말 가능할 수 있는 일인가?


정주호의 머릿속은 미로를 만난 것처럼 복잡해지기만 했다.

‘일단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자.’

그는 나중에 현 박사에게 확인해 보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를 갓 넘은 시간이었다. 모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짐을 풀어헤치며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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