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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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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1
추천수 :
408
글자수 :
83,503

작성
16.01.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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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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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 인력거

DUMMY

0037.

“야, 모포가 없어.”


“밤이 되니까 날씨도 꽤 쌀쌀해졌는데.”


“뭐, 엑셀이랑 나는 그냥 자도 상관없어. 꼬마들한테나 이불 덮어주면 그만이지.”


해는 금방 떨어졌다. 금세 캄캄해진 숲 속은 셀리의 반짝이는 머리칼 외에 별다른 것들을 비추지 않았다.


“일단 남은 것들은 내일 생각하지.”


모닥불 가까이에 꼬마들을 눕히고는 반대편에 엑셀과 나란히 앉았다. 이러고 있으려니 괜히 옛날 생각이 더 나기도 했다. 게르뮬트의 미궁에서 보냈던 그 수많은 시간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도 모닥불을 주변에서 동료들과 함께 등을 맞대고 앉아 잠들었다.


“엑셀, 이런 게 평화일까?”


“글쎄. 일반적인 평화로움에서는 괴수가 등장하지 않잖아.”


“그래도 뭐, 마신장급 괴수만 나오지 않는다면 크게 상관없어.”


내 말에 엑셀은 살살 웃었다.


“마신장급 괴수까지 나온다고 해도 엑셀 너만 있으면 큰 걱정도 없고.”


내 말에 엑셀은 조금 쑥스러워했다.


“생각보다 재료가 잘 모이고 있어. 금방 돌아갈지도 모르겠네.”


“브리톨, 넌 다시 마을에 돌아가면 어떡할 거야?”


“어떡하다니?”


“그, 그러니까 말이지..... 살아가는 데는 다 목적이 있잖아? 말하자면 장래희망 말이야!”


“장래희망이라니..... 그건 내 나이쯤 되면 안 쓰는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해놓고도 막상 할 말이 없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난 뭘 해야 할까?


“일단 집은 샀거든. 그럼 돌아가서는 텃밭이라도 좀 가꿀까 싶다. 그래, 돈 벌어서 괜찮은 가구들도 구하고 싶어. 지금은 빈털터리라.”


“그렇구나. 난 혹시나 유치원 원장이라도 할 줄 알고 조금 걱정했는데.....”


“전혀!”


나는 기겁하여 손사래 쳤다. 어서 공수를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는 넌 어쩌려고? 심심해서 일단 따라왔다고는 하는데.”


“나, 나 말이야? 글쎄...... 구, 굳이 따지자면 말이지......”


엑셀은 꽤 오래 망설였다.


“겨, 결혼이라든지......”


“오오, 결혼.”


엑셀은 나보다 한 살 어렸다. 25살. 18세부터 결혼 적령기로 보는 중앙 왕국에서는 상당히 늦어진 편이었다. 늦어도 20대 중반까지는 거의 결혼하는 왕국 기준으로는 곧 노처녀 소리를 들을 때가 온 것이다.


“결혼 상대라면 아주 줄을 설 거야. 상대가 세계를 구한 알파레기온의 용사니까.”


“흥, 난 나보다 약한 남자랑은 살기 싫어.”


엑셀의 말에 나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세상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야, 너보다 센 남자라고 하면 잘 찾아봐야 나 말고는 없잖아.”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엑셀은 소리를 꽥 질렀다. 그 바람에 자던 람델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약간 일그러졌다.


“야, 옆 나라 둘째 왕자는 어때? 그 녀석 너랑 동갑인데다 성격도 좋은데. 해봐야 평범한 기사 수준이기는 해도 나름대로 실력 있는 녀석이야.”


“난 온실 속에서 자란 남자하고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까다롭네. 그럼 도대체 누가 남는데?”


“어..... 글쎄.......”


“어디보자..... 좀 나이가 많긴 해도 펠트 공작가의 막내는 어때? 그 형님이 공작가를 나가 산에서 자란 사람인데 말이야, 그야말로 산에 자라는 잡초 같은 남자야.


“그거 욕 아니야?”


“잡초는 좀 그런가...... 그래, 약초 같은 남자라고 할까? 여자한테는 영 숙맥이긴 해도 좋은 사람이야. 네가 가서 윙크 한 번만 해주면 기절해버릴걸?”


“돼, 됐어. 난 아직 결혼할 생각 없다고!”


“아니 이 사람이 아까는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괜히 까칠해진 엑셀이었다.






0038.

“흐으응...... 잘 잤어요?”


느지막이 깨어난 셀리가 눈가를 비비며 말을 꺼냈다. 산발한 머리카락과 흘러내린 옷자락이 무방비하기 짝이 없었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래, 잘 잤냐? 네가 늦게 일어나서 아침은 내가 몸소 준비했지.”


“네에...... 네?”


“언제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당근 밀가루 수프!”


“아 정말! 브리톨 오빠, 그거 정말 맛없다고요!”


“까다롭기는..... 원래 금발 벽안 꼬마는 원래 그렇게 다 성격이 까다롭냐?”


“도대체 그 일반화는 뭐죠? 그보다 그거 어제 아침에도 먹었잖아요.”


“무슨 소리야? 잠이 덜 깼니? 그건 밀가루 당근 수프였잖아.”


“맙소사..... 둘이 다른 거였다고요?”


셀리가 기겁하건 말건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는 계속 수프를 저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말도 잘 먹고 사람도 잘 먹는 당근을 가장 많이 챙겨왔고, 막상 말은 죽어버렸으니 우리가 저 많은 당근을 다 먹어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매일 당근을 먹는 게 답이었다.


“와아, 맛있는 냄새.”


“엑셀 언니! 어떻게 이게 맛있다고 할 수 있어요?”


“뭐어? 당근 밀가루 수프 맛있잖아.”


“어제 저녁에도, 어제 아침과 그저께 저녁에도 저걸 먹었다고요!”


“응? 하지만 어제 먹은 건 밀가루 당근 수프였는데.”


“이 사람들 세상은 구했지만 스스로 구하진 못한 모양이야.......”


경악한 셀리를 내버려두고 우리는 수프에 집중했다.


“브리톨, 그냥 돌아가면 음식점을 개업하는 거야.”


“이런, 재능이 너무 많아도 걱정이군.”





0039.

“그런데 말이야. 아까 우리가 지나친 던전이 조금 수상해.”


수프를 세 그릇째 비우며 말을 꺼냈다. 수프를 먹는 셀리의 표정이 조금 창백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방금 잡은 망령 마도사의 거점은 어디일까?”


정말 어지간히 약한 녀석이나 아니라면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현재 괴수의 능력을 기준으로 나눈 계통 기준 중급 이하의 괴수를 제외하면 모두가 스스로 거점을 구축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등급은 흔히 약한 녀석부터 하급, 중급, 상급, 악마급, 마신병급, 마신장급, 마왕급의 7단계로 나뉘는데, 방금 처치한 녀석은 마신병 급이었다. 전혀 약한 종류가 아니라는 말이다.


“분명히 주변에 놈의 거점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내 생각에는 아까 그 던전이 망령 마도사의 거점인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동굴 문에도 마법적인 장치가 있던 걸로 봐서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부류의 괴수가 만들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니까.”


엑셀이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만약 그게 정말로 놈의 던전이었다면 무혈입성이 가능하다. 그리고 안에 있는 건 전부 내 재산이 된다는 말이다.


“훌륭해...... 어차피 이 주변에는 마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으니 일단 왔던 길을 거슬러서 그곳부터 들러보자.”


나는 자신 있게 말하고는 남은 수프를 몽땅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제발 아침에 일찍 깨워주세요......”


울먹이는 셀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음 번에는 바라는 데로 해줄 생각이었다.






0040.

“흐읍..... 신도님,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아주 좋아. 그런데 조금 더 빠르게 가능할까?”


“으으...... 이, 이것보다 빠르게 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이라서 그런가?”


람델이 마차의 바퀴 부분만 경사로 만들어 마차를 미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별로 움직인 것 같지도 않은데 람델이 숨을 헥헥 몰아쉬며 마차 바닥에 축 늘어진 것이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군.”


목표는 정했건만 생각해보니 이동 수단이 없었다. 죽어버린 말은 람델이 땅에 잘 묻어버렸고, 남은 건 이 커다란 짐마차를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에 달려있었다. 람델의 대지 마법으로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셀리, 너 마법 못 쓰냐?”


“음..... 이럴 때는 아마도 초동력 마법진으로!”


“아니야, 그냥 하지 마.”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잘못했다가는 말도 잃고 마차도 잃을 것만 같았다.


“어떡하지. 내가 밀어서 간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텐데.”


돌아갈 길이 한참 멀었다. 그러나 딱히 다른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곤란한데. 그냥 마차를 내버려두고 가야 하나.”


“그래도 맨몸으로 움직이는 건 힘들지 않을까? 장기 여행을 위해서라면 마차를 가지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으윽...... 루인을 데리고 왔어야 했어.”


마법사 루인이 있었다면 짐마차가 아니라 마력으로 달리는 동력차를 타고 시원하게 다닐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가 데리고 있는 건 반쪽짜리 마법사 셀리였다.


“왜,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 아쉬운 눈빛에 셀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숨만 깊어갔다.


마차가 없다면 던전에서 물품을 잔뜩 들고 나와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나 말이 없는데 마차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 모르겠다. 그냥 밀어서 가자.”


나는 마차 뒤에 섰다.


“세계 제일 용사의 힘을 보여주겠어.”






0041.

“오빠, 괜찮아요?”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내가 괜찮지 않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무거운 마차를 사람 혼자서 밀고 가는 건 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속도는 얼마나 느린지 반나절 만에 왔던 거리를 되돌아가는 데 하루가 꼬박 다 걸렸다.


“윽..... 어서 당근 수프 밀가루...... 아니 밀가루 당근 수프를 먹어야 해.”


너무 힘든 나머지 말까지 헛나왔다.


“그런 이상한 음식 말고 제대로 된 걸 먹자고요.”


셀리는 얼른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엑셀은 나를 위해 바닥에 요를 깔아주었다.


“브리톨, 괜찮아? 필요한 거라도 있어?”


“베개가 있으면 좋겠어.”


“무, 무릎 베개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부끄럽잖아!”


“아니, 그냥 베개부터 떠올리란 말이야!”


나는 마침내 짐가방 중 하나를 베고 누울 수 있었다.


“던전은 내일 생각하자.”








004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온통 부스러질 것처럼 쑤시던 몸도 말끔히 다 나은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내 원래 실력의 100% 정도를 낼 수 있을 듯했다.


엑셀은 근처 나무에 기대 자고 있었고, 남은 두 꼬마는 엑셀의 다리를 베고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이 좋은 자매처럼 보였다.


“하긴, 다른 녀석들도 피곤했겠지.”


내가 가장 무거운 마차를 밀기로 했고, 남은 인원은 마차의 짐을 덜어 짊어지고 나를 따라왔다. 내가 제일 힘들긴 했어도 엑셀과 꼬마들 역시 고생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수밖에.”






0043.

“언니는 정말 이게 맛있다고 생각해요?”


“이상하네. 셀리는 당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아니 당근 이전에..... 이 반죽도 아니고 수프도 아닌 묽은 밀가루 물에 당근이 멀거니 떠 있는 이 음식이 좋다니......”


셀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원래 용사들은 이런 음식을 좋아하나요?”


“아니. 그래도 알파 레기온의 단원들이라면 꽤 좋아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 역겨운 핏덩이 따위보단 맛있잖아.”


그에 비하면 당근이 들어간 수프는 산해진미였다.


“그런데 브리톨 오빠랑 엑셀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 용사가 되신 거죠? 두 분 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말도 마라. 최고의 용사가 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데.”


“그래. 정말 힘든 시절이었어.”


“도, 도대체 어떤 훈련을 받은 거죠?”


“국가 기밀이라 발설할 수 없어.”


“그렇군요......”


“어쨌든 그 훈련을 7년만 받으면 누구나 정상급 기사가 될 수 있어. 대신 100명이 시작하면 끝에는 100명이 탈락하는 게 문제였을 뿐.”


셀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무튼 그 훈련을 마치고 나면 험지에서 마차도 끌 수 있는 수준의 힘을 손에 넣게 되지.”


람델은 감탄하며 내 설명을 납득했지만, 셀리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멍한 표정만 지었다.


작가의말

당근을 자루 단위로 샀으니 당근 수프만 먹을 수밖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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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8. 부화뇌동 +6 16.01.21 653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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