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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2,740
추천수 :
408
글자수 :
83,503

작성
16.01.24 02:47
조회
1,050
추천
20
글자
10쪽

09. 길 가는 일행

DUMMY

0030.

“음, 절벽이 나오려면 아직 한참인데. 천둥번개 치는 날이나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도 있고..... 하나는 바다로 가야 하나? 여긴 산지니까....”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구한다면 유니콘의 뿔, 히드라의 비늘, 맨드레이크 혹은 요정 정도였다. 도대체 올빼미 곰이나 푸른색 심장류는 어떤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으니 일단은 아는 것부터 노리기로 했다.


문제는 노린다고 나타날 물건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얼마나 멀리 떨어진 대륙이면 이렇게 거창한 준비가 필요한 거지.”


바다 건너건너에 다른 대륙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둘 사이의 왕래는 잦지 않았다. 거리가 문제였다. 이동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살인적인 물량의 마법 재료가 필요했으니 당연했다.


“그나저나 브리톨, 이 정령은 어디서 발견한 거야?”


“람델 말이야? 글쎄, 그냥 갑자기 솟아났다고밖에는 못하겠네.”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기이한 정령은 지금 내 무릎 위에 앉아 빈둥거리고 있었다. 엑셀은 부럽다는 눈치였다. 가능하다면 엑셀에게 이 혹을 옮겨 붙이고 나는 둥지만 챙기고 싶었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었다.


“앞으로가 걱정이야. 식량이든 위험한 괴물이든 다 상관없는데, 여행이 길어질 것 같아.”


“그, 그래? 브리톨 생각에는 얼마나 길어질 것 같아?”


“글쎄. 최소한 석 달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최소한이야. 운 나쁘면 6개월 내내 모아야 할 수도 있지.”


“어마어마하네. 그럼 그동안 내내 같이 다녀야 하겠네?”


“뭐 그렇게 되겠지.”


엑셀은 괜히 입가에 물결 모양의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 보면 엑셀은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모험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내 소식을 듣고 황급히 쫓아온 건 그런 계기와 함께할 동료가 필요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한 명이라도 많은 쪽이 즐겁겠지. 여행이 길어질지도 모르니까.”


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브리톨, 어쩌다가 셀리를 도와주기로 한 거야? 이렇게 선뜻 나서기 힘들었을 텐데. 내가 봐도 그 재료들은 좀처럼 모으기 힘들 것 같아.”


“그, 그냥...... 불쌍해서 도와주기로 했지.”


“정말 그것뿐이야?”


엑셀은 눈매를 좁히면서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이, 이봐 엑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저런 꼬마한테 흑심을 품을 리가 없잖아! 나를 못 믿는 거야?”


“아, 아니..... 그래도! 그래도 브리톨 너, 옛날부터 귀여운 것만 보면 어마어마하게 챙겨줬었잖아!”


“윽......”


실제로 훈련장 골목에 있는 작은 고양이를 먹여 살리거나, 날개 부러진 새를 주워와서 키우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기사로 정식 임관한 뒤에도 게르뮬트의 잔당을 소탕하는 과정에 꼬마를 여럿 살렸다. 그 탓에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기게 나였다.


“나는 걱정돼!”


“도대체 뭐가?”


“설마하니 브리톨한테 이상한 도착증이 있을까.......”


“야!”


나는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다. 엑셀은 황급히 입을 가리며 모른척했다.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그러나 엑셀이 막 말한 것을 들어보니 어딘가 모르게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 힘든 여정은 분명히 넙죽 받아들일 만한 게 아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 그래! 만약 나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취향이 있었다면 분명히 릴리 공주하고 일찌감치 결혼했을 거라고!”


“세상에..... 릴리 공주님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라니......”


엑셀은 이제 입을 가린 채 무섭다는 표정으로 나를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옆으로 움직여 나와 거리를 벌렸다.


“아니야, 엑셀! 그건 착각이야!”





0031.

“브리톨 오빠, 이건 뭐예요?”


“전혀! 난 네가 여자로 보이지 않거든?”


“뭐라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엄청 실례잖아요!”


셀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미안..... 딴 생각 중이었어.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나는 흠칫해서 잽싸게 사과했다. 엑셀은 장난으로 그랬지만, 나는 자승자박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 날카로운 지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몸부림쳤다. 자기합리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더는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대로 나는 신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셀리.”


“네?”


“넌 작고 귀여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최악이죠.”


“그, 그래? 어째서?”


“귀여운 것보다는 예쁜 게 더 좋잖아요.”


“그, 그렇지?”


“분명히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여자나 남자나 공통으로요.”


“그, 그럼! 그렇고 말고.”


내 어깨가 축 처졌다. 나는 아무래도 비정상인 모양이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빨리 이 버섯에 대해 말해주라니까요?”


“야, 난 생물박사가 아니야. 그냥 버섯 아니야? 굳이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버섯류는 위험한 경우가 꽤 많으니까 그냥 채소류 쪽으로 찾아보는 게 좋아.”


“에이..... 채소만 먹으면 허전하잖아요.”


“확실히 버섯을 넣은 수프 쪽이 조금 든든하지. 그래도 일단은 보류하겠어. 자칫 잘못해서 독을 먹었다가는 끔찍한 꼴을 볼 테니까.”


“여차하면 제 해독 마법으로.......”


“뭐 사람 죽일 일 있냐? 내가 고기를 구해올 테니 넌 엑셀이랑 괜찮은 종류로 모아둬. 엑셀도 산야에서 살아남는 법을 꽤 잘 알고 있으니까 도움이 될 거야.”


“와아, 사냥할 수 있어요? 오빠는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요!”


“세상을 구했다고 했을 때 그런 말을 해야지.......”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마차에서 장비를 챙겼다. 검 한 자루면 내가 잡지 못할 동물은 없었다.


“신도님! 사냥에 나서는 건가요?”


“그래. 셀리가 당근 밀가루 수프만 먹기는 싫다고 그러네.”


“과연. 그렇다면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은데.”


“사양하지 마십시오. 제가 신도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너 나한테 지잖아.”


“저만 믿으십시오! 대지의 가호가 함께할 겁니다!”


“예. 그냥 조용히 따라오십쇼.”


나는 귀찮은 람델을 번쩍 들어 옆에 내려놓았다. 기껏해야 내 하반신 수준에 머무는 조그마한 덩치 주제에 나를 지키겠다고 하는 꼴이 우스우면서도 귀여웠다.


“아니, 난 귀여운 거엔 전혀 관심 없어!”


“앗,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윽......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빨리 가자. 숲에서는 해가 금방 떨어지니까.”


람델을 잡아끌었다.






0032.

조그마한 사슴 하나를 잡고 돌아가려는 참에 물소리가 들려왔다.


“음, 강이네?”


물은 아주 깨끗했다. 맑은 밑바닥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투명했고, 깊이도 그리 깊지 않았다. 물은 천천히 흐르고 있어서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잘 됐다. 이런 장거리 여행에서 씻을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지. 람델, 여기서 씻고 가자.”


“아하! 물에 죄를 씻고 가는 것이군요! 좋습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이젠 람델의 말을 지적하는 것도 지쳤다. 그냥 행복한 신으로 살게 놔둘 생각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옷을 벗어 던졌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아무렴 좋았다. 옆에 선 람델도 싱글벙글 웃으며 옷을 휙휙 벗어 던졌다.


“잠깐.”


“무슨 일이십니까?”


“너 남자잖아.”


“그렇습니다. 대게 신격은 남성이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서 그게 네가 남자인 이유라도 돼냐?”


“물론입니다! 물론 신에게는 성별이 없다고 일컬어지지만, 주로 묘사나 정황 등등을 살펴보면 신은 틀림없는 남성성을 띄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뭐야 그 말같지도 않은 소리는. 넌 나중에 셀리하고 같이 씻어.”


나는 남자라면 응당 달려야 할 게 달리지 않은 람델에게 다시 옷을 집어 던지고는 몸을 물에 담갔다.


“죄를 씻어내리는 데 순번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도의 시련을 눈앞에서 그냥 보고 넘길 수는 없는 법,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람델은 그렇게 내 무릎 위로 뛰어들었다.


“야! 물 튀잖아!”


“저희의 유대가 더욱 돈독해진 기분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람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미묘한 상황과 대사가 영 거북했다.


“뭐, 사람이 정령하고 같이 목욕하는 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


암컷 강아지와 함께 목욕한다고 이상한 시선을 보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정령이라면 아무렴 괜찮다고 생각했다.


“브리톨, 브리톨-”


“아니, 잠깐만..... 이거 왜 엑셀이 여기서..... 이건 음모야! 안 돼, 난 여길 나가겠어! 람델, 비켜!”


나는 허겁지겁 람델을 밀쳤다. 그러나 내 팔뚝에 매달린 람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급하게 일어서던 나는 그만 무게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브리톨! 우리가 방금 바닥에서 기묘한 채소...... 브리톨?”


나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 과연 엑셀이 환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손에는 정말이지 이상하게 생긴 식물 뿌리를 쥐고 있었는데, 푸른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분명히 특별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굳어버린 엑셀 옆으로 발가벗은 나와 람델이 얕은 물가를 뒹굴고 있었다.


“윽, 신도님! 갑자기 이렇게 난폭하게 움직이시면 곤란합니다!”


아주 시기적절하게 좋은 말을 꺼낸 람델이 내 허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녀석 딴에는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겠지만, 그게 타인의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었다.


엑셀은 뿌리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나는 고개를 떨궜다.


작가의말

브리톨레커 의문의 2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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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마른하늘의 +17 16.01.27 514 16 12쪽
» 09. 길 가는 일행 +14 16.01.24 1,051 20 10쪽
8 08. 부화뇌동 +6 16.01.21 653 23 11쪽
7 07. 대륙에서 쫓아온 +5 16.01.19 602 28 13쪽
6 06. 땅 속에서 나타난 +8 16.01.17 897 33 13쪽
5 05. 출발 +7 16.01.16 796 31 11쪽
4 04. 기묘한 만남 +12 16.01.15 887 35 13쪽
3 03. 다락방 꼬마 +14 16.01.14 1,114 32 13쪽
2 02. AFTER Epilogue +19 16.01.13 1,176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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