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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2,737
추천수 :
408
글자수 :
83,503

작성
16.01.21 22:24
조회
652
추천
23
글자
11쪽

08. 부화뇌동

DUMMY

0024.

“꼬마야, 넌 이름이 뭐니?”


“저 꼬마 아닌데요.”


셀리가 엑셀의 질문에 퉁명스럽게 답했다. 셀리는 갑자기 나타난 엑셀을 경계하는 것 같았고, 엑셀은 귀여운 셀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엑셀은 지금 손을 가슴팍에 모은채 언제 셀리를 끌어안을까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깨끗한 금발에 투명한 파란색 눈동자라니......”


엑셀은 좋아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예쁘고 귀여운 것에 우호적이기 마련이었다.


“언니는 누구세요?”


“엑셀은 나와 함께 세계를 구한 용사 중 하나야.”


굉장히 거짓말 같은 참말이었다.


“이 하늘하늘한 언니가요?”


“겉보기에는 그냥 젊은 아가씨 같아도 엑셀은 정말 강한 기사야.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걸?”


“으음.....”


셀리는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듯이 눈매를 가늘게 하고는 엑셀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엑셀은 이제 거의 셀리를 덮칠 것처럼 손을 살살 떨고 있었다.


“좋아, 내가 전부 소개해주겠어.”


나는 엑셀이 일을 벌이기 전에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0025.

각자가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눌 즈음, 천천히 나아가는 짐마차는 상당히 소란스러워졌다. 처음 두 명으로 출발했던 인원이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늘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두 마리의 드래곤이 가족에 추가될 참이었다.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걱정하지 마! 내가 꼭 그 재료들을 다 모아줄게!”


성격 좋은 엑셀은 셀리의 이야기에 감동해서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다들 대화로 바쁜 가운데 점심식사를 준비하던 나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역시 요리를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어.”





0026.

“솔직히 맛있지 않냐?”


“브리톨, 너 기사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요리사가 되었을 거야.”


나는 그 칭찬에 흡족해져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셀리의 어이없다는 표정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 건 아무렴 좋았다. 아무리 훌륭한 음식이라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하물며 입맛이 극히 까다로운 금발 꼬마의 비위를 맞추는 건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엑셀, 아까는 좀 소란스러워서 물어보지 못했는데, 왜 나를 쫓아온 거야?”


내 깊은 의문에 엑셀은 딴청을 부렸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는 수프를 한 입 더 먹은 엑셀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바람에 나도 그냥 넘어갈 뻔했다.


“아니야, 수프가 맛있는 건 나도 알아! 빨리 내 질문에 대답해.”


“그, 그건 말이지......”


엑셀은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는 어색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 나도 요즘 한가하거든!”


“뭐라고?”


“나도 할 일이 없어서 쫓아온 거라니까?”


“그럼 왜 가까이 있는 루인은 내버려두고 굳이 멀리 떠나는 내 쪽으로 온 건데?”


“그..... 그냥.”


나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엑셀을 살폈지만, 딱히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지 않았다. 본래 엑셀도 우직한 무인으로, 거짓말을 하면 아주 쉽게 눈치챌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냥 심심한 참에 친구가 떠난다니 쫓아온 것으로 보였다.


“엑셀 언니, 브리톨 오빠 좋아해요?”


셀리의 물음표가 질문으로 변해 밖으로 던져진 순간, 엑셀은 대답 대신 입에 들어있던 수프를 뿜어냈다. 그 재앙은 마주앉은 나에게 옮았다.


“어, 어떡해! 브리톨, 괜찮아?”


“전혀.......”


나는 괜히 물어봤다 싶어 울상을 지었다. 조만간 셀리에게 복수해야 할 것 같았다.






0027.

“간단히 내 계획을 말해주겠어.”


시끌벅적한 가운데 나는 일단 말을 꺼냈다.


“이대로 쭉 남부로 가다 보면 아마도 버려진 마을이 하나 있을 거야. 예전에는 왕국 관할이었는데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관리가 끊겼다는 것 같아. 지금에 와서는 사람이 살진 않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물건 몇몇은 있겠지. 이즈음에서 물자를 보급하고 갈 생각이야.”


“혹시...... 오래된 비전 마법서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셀리의 열띈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단순히 오래된 마을이야. 비전 마법서 같은 건 왕립 도서관이나 마법사 협회에 가는 쪽이 훨씬 빨라.”


셀리는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더 많은 신도를 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람델! 정령은 한 번에 한 명의 계약자만 둘 수 있다고.”


람델까지 실망 속에 떨어뜨리고 나자 별다른 질문은 없었다.


“불만은 없지? 사실 선택지도 이것뿐이지만.”


마차는 계속 움직였다.





0028.

“브리톨 오빠, 여긴 꼭 탐색해야 할 것처럼 생겼어요!”


“네 말에는 동의하지만,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과연...... 이게 말로만 듣던 지하 신전입니까? 매주 사람들이 모여 신에게 신앙심을 바치던.....”


“아니야, 이건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던전이라고.”

악마의 탑이 무너진 멸마 이후 세계에는 세계가 막대한 마력으로 가득찼다. 그 불순한 마력은 세계를 떠돌다 어딘가에 뭉쳐 마물로 태어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태어난 마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터전을 만들어냈고, 그 마물들이 만들어낸 생태계가 흔히 던전이라 불리는 눈앞의 동굴 따위였다.


“제법 힘 있는 녀석이 만들어낸 것 같아. 위험할 수도 있으니 돌아서 가는 게 좋겠어.”


“네에?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동굴을 놔두고 가라니.....”


“나 혼자라면 가겠지만, 너희를 다 지킬 자신이 없어서 하는 말이잖아. 그리고 이 마차는 또 어떡하고?”


“그, 그건 그렇네요.....”


내가 보기에도 저 우람한 던전 입구를 건너가면 수많은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았지만, 그중에 크라켄의 빨판이나 맨드레이크 등등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마법진 연성에 필요한 재료만 챙기는 거야. 어차피 다른 건 별로 필요가......”


나는 마차를 돌리려 바닥에 내렸다. 문득 발에 밟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낡은 은화 한 잎이었다.


“돈......”


짐마차, 생필품, 집.


“생각해보니 나에게 돈이 없다.”


화폐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가치를 매겨놓은 일종의 ‘신용’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노동했는지, 얼마나 가치를 창출했는지 등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그 가치는 타인의 가치와 교환할 수 있는 단위였고, 나는 금으로 집 한 채를 지을만한 돈을 손에 쥔 적이 있었다. 물론 한 순간에 다 날려버렸다.


“그래, 난 빈털털이잖아.......”


손만 벌린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게 돈이었지만, 그랬다가는 또 그게 내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때 또다시 나몰라라 도망치면 우리 알파 레기온 전체의 위상도 깎이고 만다.


“당장 저 던전으로 들어가자.”


“뭐? 브리톨, 갑자기 왜.....”


“저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어!”


엑셀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그야 아무렴 셀리와 람델은 환호성을 질렀다.






0029.

세상에 돈이 되는 물건은 많았지만, 가볍고 보관이 용이하며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연금 마법 재료가 최고였다. 틈만 나면 재료를 수집하던 마법사들과 함께 2년을 보낸 덕분에 어느 정도 잡다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음..... 게르뮬트 때가 생각나는군.”


불과 몇 주 전이다. 어째서인지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어서 가자. 막대한 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실제 던전만 전문적으로 탐험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자원은 부를 원하는 자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 가치와 비례한 위험도가 늘 문제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세계 최강의 실력자였고, 옆에 있는 엑셀은 그 다음 실력자였다.


동굴의 구조는 상당히 기묘했다. 입구는 자연 동굴처럼 생겼지만, 내부는 벽돌을 쌓은 것처럼 반들반들했다. 밖에서 애써 횃불을 만들고 들어왔더니 막상 내부에는 발광성 광석이 박혀 있어 별로 어둡지 않았다.


“시, 신도님! 저에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람델은 내 다리에 딱 매달려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녀석을 밖에 놔두고 갈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어떤 종의 던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심각하게 강한 녀석이 나타나지는 않을 거야. 예전에 들은 건데 정말 강한 녀석은 던전에 자신만의 표식을 새겨둔다고 했거든.”


실제 게르뮬트의 미궁 입구 앞쪽에 떡하니 새겨져 있던 흉물스러운 음각 조각은 그야말로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긴 뭐 그럭저럭 보통인 녀석의 던전.......”


나는 문득 바닥이 울퉁불퉁한 것을 눈치챘다. 슬쩍 살펴보니 무언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이라는 건데...... 나가자.”


나는 잽싸게 발을 돌려 던전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린 모양이었다.


“앗! 문이 닫히고 있어요!”


“물러서!”


나는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었다. 힘찬 기운이 검을 감쌌고, 나는 주저 없이 검을 앞으로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따라 연녹색 궤적이 빠르게 그어졌다. 상당히 두꺼운 석재 장벽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져내렸다.


“나가자. 나하고 엑셀만 간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너희 둘까지 데리고 가기에는 조금 위험할 것 같아.”


“히잉..... 잔뜩 기대했는데......”


셀리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람델도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엑셀은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러고 보니 엑셀도 있잖아?”


문득 둘이 따로 움직인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엑셀, 애들 좀 봐줘. 나는 안에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좀 살피고 올게.”


“앗, 브리톨! 여긴 문장이 새겨진 던전이야. 혼자 가면 분명 위험할 거라고!”


“음...... 하긴,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겠지.”


전투력이 생존력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검술 실력이 함정을 피할 능력을 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나아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최소한 등을 맡길 동료가 한 명은 있어야 던전 탐색이 수월할 텐데......”


나는 머리를 몇 번 더 굴려봤지만, 역시 결론은 부정형이었다.


“괜찮아.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고, 재료는 저기에 없을 거야.”


우리는 마지막 결론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사실상 맥거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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