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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2,751
추천수 :
408
글자수 :
83,503

작성
16.02.09 17:22
조회
1,016
추천
19
글자
11쪽

15. 둘로 나뉜

DUMMY

0053.

“저, 정말이에요?”


“내가 거짓말할 사람이 없어서 너희한테 거짓말을 하겠냐?”


일단 펠리아를 조심스럽게 안아들고 격벽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셀리와 람델에게 간략한 현재 상홍을 설명했다. 언제 펠리아가 깨날지 몰랐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라니......”


“저기 엑셀 몸 상태를 봐. 아주 너덜너덜하잖아. 엑셀의 실력은 너희도 잘 알테고.”


“이런 끔찍한 사람이 왜 이런 동굴에 있는 거죠?”


“내가 제일 궁금해.”


셀리와 람델은 서로 부둥켜안고 벌벌 떨었다.


“신도님, 믿음으로 해결합시다!”


람델은 사이비 교주 같은 소리나 더듬더듬 외치고 있었으니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죽이는 건 안 돼. 나도 죽거든. 이 한 몸 바쳐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기꺼이 그러겠는데, 사실 일격에 죽을지도 의문이라서.”


괜히 화를 북돋았다가 정말로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용히 제과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마왕도 한 명 있다지만, 내가 보기에 펠리아는 제과점 하나로 만족할 부류가 아니었다.


“그, 그래요! 이럴 땐 구속의 룬으로......”


“네 실력으로 묶일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신체를 구속한다고 해도 이 녀석은 그림자 촉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니까 결과적으로는 무용지물이지.”


각자의 긴장감이 조금씩 심장을 조이는 동안,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언제까지나 펠리아가 기절한 채로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 증거로 펠리아는 조금씩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큰일이야...... 깨날 것 같아!”


“브리톨! 차라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 자리에 내버려두는 건 어때?”


“불가능해. 그 자리에는 흑요석과 대리석이 겹겹이 장식된 제단이 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잠깐 기절한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어.”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단 말인가?


“아앙...... 브리톨레커...... 그렇게 대담한......”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달콤한 한숨을 내쉬기 시작한 펠리아 옆으로 엑셀의 눈빛이 더없이 냉담해졌다.


“엑셀, 이성적으로 생각해!”


“그냥 저 여자랑 평생 같이 살아!”


“이건 다시 한 번 세상을 구하는 선택이라니까!”


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최대한 빨리, 어서 빨리, 지금 당장.






0054.

“머, 머리만 빼놓고 땅에 묻는 겁니다.”


“깨나자마자 기어나올걸.”


“그렇다면 세뇌의 룬으로......”


“대마법사가 와도 저 녀석을 세뇌할 수는 없어.”


해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선택권이 극히 제한된 상태였다.


죽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제대로 속박할 방법도 없었다. 말하자면 펠리아는 도화선에 불붙은 화약과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 손발이 묶인 채로 꿈틀거리는 인질이었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은 도래하고 말았다.


“어, 어떡해! 깨나고 있잖아!”


“이런.”


나는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입술을 한 차례 핥았지만, 혓바닥까지 말끔하게 긴장감으로 타버린 뒤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외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왼쪽 눈만 살짝 실눈으로 떠서는 상황을 살폈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려고 하는 걸까.


펠리아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곳한 몸짓으로 얌전히 앉아서는 주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죄, 죄송합니다!”






0055.

“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에겐 인격이 두 개 있어요.”


얌전히 앉은 펠리아와 마주하여 잔뜩 긴장한 우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펠리아의 행동을 경계했다.


설명에 따르면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펠리아와 유순한 성격의 라임, 두 개별적인 인격체가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둘은 항상 깨어있지만,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인격은 한 번에 하나뿐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방금까지 깨어있던 건 매우 파괴적이고 불온한 펠리아였고, 지금 눈앞에 얌전히 앉아서는 부끄럼을 타고 있는 게 라임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펠.... 라임, 너하고 펠리아하고는 전혀 별개라는 말이야?”


“말하자면 그렇죠.”


“그러면 펠리아가 없다면 널 놔두고 가도 될까?”


“아니요.”


생각 외로 단호했다.


“비록 인격은 둘이라 해도 몸은 하나. 펠리아의 계약자는 제 계약자라는 말이에요.”


“맙소사...... 라임, 네가 잠들면 또 펠리아가 깨나서 우릴 공격할 거야.”


“아니요, 그것만큼은 제가 꼭 막아드릴게요.”


“한쪽이 깨어있는 동안 반대쪽에는 통제권이 없다며?”


“네. 하지만 제 몸에 ‘제약의 룬’을 새겨서 금기를 걸어놓는다면 펠리아가 깨어나도 괜찮을 거예요.”


생긋 웃으며 말하는 라임은 후광이 반짝이는 신의 사도처럼 보였다.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그보다도 일단 라임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듯했다.


“죄송해요. 펠리아가 조금 공격적인 면이 있긴 하거든요. 그래도 솔직하고 착한 아이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착한 아이......”


아무리 많이 봐줘도 착한 아이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자, 여기 제약의 룬을 새겼어요. 제가 조건을 말한 뒤, 룬이 빛나면 이 위에 각자 피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세요.”


라임은 손등 위에 오밀조밀한 모양의 복잡한 룬을 하나 그려넣고는 다른 일행에게 손을 쑥 내밀었다.


“죄, 죄송한데 손 좀 잡아도 되나요? 룬 제약의 조건이 있어서요.”


“그래?”


처음에 펠리아가 아니라 라임을 만났다면 덥석 계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라임은 여성으로 따지자면 완전체나 다름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을 잡는 모습이 이 상황에서도 설렐 정도였다.


“제약의 대상은 룬이 새겨진 개체. 제약의 내용은 계약한 자를 향한 모든 공격 행위. 제약의 이행 조건은......”


라임이 천천히 조건을 읊었다. 펠리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라임은 펠리아의 걱정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 맞닿은 자, 브리톨레커 주변 반경 100단위 안쪽 거리로의 접근.”


“어..... 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라임을 쳐다봤다. 라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리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지금 수줍어할 때가 아니잖아. 조건이......”


“네? 조건이 어때서요?”


“100단위 안쪽으로의 접근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제약을 맺을 때 이행 조건을 벗어난다면 제약은 효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죠. 한마디로 100단위 안쪽에 접근하면 공격할 거예요.”


“야, 100단위면 서로 소리 질러야 간신히 의사소통할 거리잖아.”


“네. 하지만 브리톨레커님 주변에 여자는 적을수록 좋잖아요?”


“세상에나, 펠리아나 라임이나 똑같잖아!”


잠자코 상황을 살피던 엑셀이 질겁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다른 분들은 조용해 주시겠어요?”


라임은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쏘아보며 외쳤다. 인격이 둘이라고 해봐야 말투와 접근 방식만 조금 다르지 본질적으로는 하나였다. 펠리아나 라임이나 정말 똑같았다.


“전 펠리아와 다르게 최대한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걸 좋아해요. 굳이 여러분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냥 브리톨레커님 주변에서 말끔히 사라지셨으면 좋겠네요.”


무척 아름답게, 또한 무척 살벌하게 웃는 라임의 미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내가 대신 대답하겠다.”


나는 검집에서 검을 냉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그 검을 라임을 향해 겨누었다.


“널 죽이고 평화를 되찾겠어.”


“브, 브리톨레커님, 그게 무슨 말이죠?”


당황한 라임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 때문에 동료와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다. 이 한목숨 바쳐 구원을 이룩하겠어!”


나는 검을 거꾸로 들어서는 주저 없이 내 목을 겨누었다.









0056.

잠시 후, 우리는 평화로운 일행이 되어 다시 한 번 마차 위에 오를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도 식은땀을 많이 흘려서 물벼락을 맞은 꼴이 된 정도가 유일했다.


“저리 가세요. 전 여러분이 영 탐탁지 않으니까.”


내 팔에 바싹 달라붙은 라임이 냉기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엑셀 일행 쪽을 쏘아봤다. 엑셀도 팔짱을 끼고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라임을 노려봤다.


“흥, 브리톨레커가 그렇게 쉬운 남자인 줄 알아?”


“으윽...... 특히 당신이 가장 마음에 안 들어요!”


라임이 내 팔을 으스러지도록 껴안으며 부들거렸다. 나는 비명도 마음대로 지르지 못하고 눈물만 삼켰다.


다행히 내 목숨을 인질로 한 일인 인질극을 끝으로 라임과 극적인 계약을 타결했다. 조건 없는 불가침 선언이었다. 라임의 거센 반발에도 꿈쩍하지 않고 내 목을 위협한 결과, 라임으로부터 엑셀, 람델, 셀리 셋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제약을 무조건으로 새겼다.


그 과정에서 결국 라임이 훌쩍거리며 울긴 했으나, 아무렴 괜찮았다. 그 정도는 내가 조그마한 죄책감을 떠안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게 뭐야? 혹 때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가고 있잖아.”


엑셀이 퉁명스럽게 말을 툭 내뱉었다. 그 말에 다시 한 번 라임이 분노로 내 팔을 가득 껴안았다. 나는 다시 눈물을 삼켰다.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어.... ”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라임의 혼잣말이 무척이나 기괴하고 소름 돋았으나,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라임, 그러지 말고 다른 녀석들하고 친하게 지내. 너 혼자 수십 년을 기다렸다면서? 외로웠을 텐데.”


“저한테는 브리톨레커님만 있으면 돼요.”


라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런 불온한 여성 무리는 당장에라도 잿더미로 만들어야......”


그리고는 언제 그렇게 웃었느냐는 듯 초점 없이 풀린 동공으로 엑셀을 응시했다. 그 모습은 그 어떤 흉물스러운 괴수보다도 더욱 두려웠다.


“그, 그만해..... 이왕 이렇게 된 거 친구라고 생각하고 잘 지내면 좋잖아.”


“브리톨레커님은 저보다 저런 못난 여자, 덜 자란 꼬마 따위가 더 좋다는 건가요?”


내 말에 라임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 글쎄..... 저 녀석들은 최소한 공격적이지는 않거든.”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흥! 이렇게 된 이상, 제가 브리톨레커님을 저한테 완전히 반하게 해보겠어요!”


“그거야 얼마든지. 난 아직 애인 없거든.”


그나마 건전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된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작가의말

설 시즌 바빠서 글 못 썼습니다. 설 끝나고 나면 시간 많이 비니까 그 기간 열심히 쓸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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