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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2,748
추천수 :
408
글자수 :
83,503

작성
16.01.27 23:14
조회
514
추천
16
글자
12쪽

10. 마른하늘의

DUMMY

0033.

“세상에나, 정령님! 여자였어요?”


“하하, 그렇다는 것 같군요. 전 아마도 여신이었나 봅니다!”


람델은 덩치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싱글벙글 웃고 있는 셀리와 달리 엑셀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엑셀,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고기를 먹는 수밖에 없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었다.





0034.

“마, 맙소사..... 브리톨 오빠가 그런 야만스러운 짓을......”


“잠깐, 이건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만들어낸 거짓 정보야!”


예로부터 영웅을 죽이는 건 괴수가 아니라 질투라고 하였다. 진정한 영웅은 싸움에서 죽지 않고, 그를 질투하는 세력의 더러운 뒷공작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변절자 취급을 받아가며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마, 람델. 언니가 지켜줄 테니까!”


“저는 독실한 신자들을 위해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솔직히 정황상 믿기 힘들잖아.”


“람델 성격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잖아.”


“우연을 가장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많아.”


“제발!”


내가 흘린 식은땀은 전장에서 흘렸던 것만큼이나 굵었다.





0035.

“음..... 음....... 으으음....... 뭐지. 이상한데?”


아무리 둘러봐도 버려진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제대로 왔다면 이즈음에서 보이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오빠, 정말 제대로 알고 온 거 맞아요?”


“그럼. 내가 출발하기 전에 마법 지도에 표시도 해뒀는데.”


특정 지점을 찾아갈 때 사용하는 마력 지도는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를 각각 붉은 점과 푸른 점으로 나타낸다. 지금 그 두 점이 한 군데에 겹쳐 있었으니 틀림없는 도착이었다.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었다.


“이상하네. 규모가 작긴 해도 500여 명이 살았던 마을인데 터 하나 남아있질 않다니.”


“나무가 자라서 숲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엑셀, 기록에 따르면 버려진 지 10년도 안 된 곳이야. 적어도 흔적은 남았을 텐데.”


나는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마차를 타고 달려온 길 그대로 달라진 게 하나 없는 평범한 숲이었다. 바닥을 몇 번 쓸어보곤 했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왕국의 음모야.”


“저, 정말요?”


“그래. 셀리, 너 누군가한테 원한 살만한 일을 한 적 있니?”


“그, 그건..... 물류 창고에서 커다란 배추 하나를 훔쳤었는데..... 그것 때문에 물류창고 직원 한 명이 동화 한 닢을 배상해야 했다고 하던데요.......”


“이런! 큰일이야. 사실 그 물류창고 직원은 이번 분기 최고의 판매왕인데, 누군가가 고의로 자신의 명예를 깎아내리려 한다고 착각하고 크게 분노한 거지. 그래서 세상에도 없던 마을을 만들어 내게 가르쳐주고는 그 위치에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괴수를 풀어놓.......”


사실 헛소리였다. 그냥 주변을 살피는 동안 셀리도 놀릴 겸 대충 지어낸 말이었는데, 감이 영 좋지 않았다.


“브리톨.”


“그래, 엑셀. 좋지 않군.”


엑셀과 내 시선이 한 차례 교차했다.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뭐, 뭐예요?”


“내가 방금 말한 그대로.”


“정말요?”


“글쎄. 그런 것 같은데. 최고의 판매왕 답게 거물을 섭외한 것 같아.”


갑자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바닥에 커다란 룬 문자가 재빠르게 새겨졌다. 그 위로 불붙은 마력이 한껏 달아오르며 빛을 발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미리 준비한 장치였다.


“저건 폭발의 룬-”


셀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고,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셀리의 앞을 막아섰다.


뒤이어 강렬한 폭발이 솟아났다. 나는 잽싸게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피부 위로 붉게 빛난 기이한 문양이 빠르게 방어막을 형성해 전방의 폭풍을 받아냈다. 일정 시간마다 마법을 흡수하도록 만들어진 룬 방벽이었다.


내가 막아선 덕분에 셀리와 람델은 서로 부둥켜안은 그대로 있을 수 있었지만, 마차에 묶여 있던 말과 짐마차 후미 및 천장 부분은 아쉽게도 내 능력 밖이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나는 크게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말이지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끔찍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멀쩡한 바닥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방금 바닥에서 솟아난 마법 문양의 색으로 보아하니 상대는 흑마법을 부리는 망령 마도사인 게 분명했다. 괴수 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망령형에 속하는데다 마법까지 쓰는 망령 마도사 계열은 많은 용사들에게 기피 대상으로 통하는 종이었다.


“람델, 셀리와 짐마차 주변을 보호할 수 있겠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도님!”


람델이 힘차게 바닥을 몇 번 두드리자 흙이 솟아나며 사방으로 높은 격벽이 세워졌다. 람델과 계약한 게 나름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엑셀, 단숨에 처리하자.”


“좋아.”


굳이 역할을 자세히 분담할 필요도 없었다. 엑셀은 나와 2년간 최전선에서 호흡을 맞추던 동료였다. 말하지 않아도 누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감히 이 몸의 안식처에 발을 들이다니, 죽음으로 사죄하라!]


스산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놈의 몸 주변 허공으로 솟아나는 수십 개의 마법진을 보아하니 상당히 실력 있는 망령 마도사인 게 분명했다. 저 정도 수준이면 한 시간 안에 시골 마을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수준의 마신병급 괴수였다.


반쯤 썩어버린 몸체를 누더기에 가까운 후드로 가린 망령 마도사는 불길한 검은 기운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점멸하는 눈동자는 흉흉하게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부 길목에 이만큼 강한 녀석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놈이 마을을 전부 불살라버리고 자연으로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깨어나라, 아우레올라!”


“깨어나라, 람파스!”


나도 엑셀도 나란히 명령어를 외쳤다. 순식간에 전신을 뒤덮는 황금빛 갑옷과 함께 내 몸은 앞으로 쏘아졌다. 그와 나란하게 전진하는 은빛 기사가 옆으로 한 명 더 있었다.


검신으로 굵직한 마력의 기운이 나선형으로 힘차게 뿜어졌다. 옆에서 나아가는 엑셀의 검에서도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은은한 마력의 힘이 연녹색으로 휘감기는 게 보였다. 신이 내린 힘이라 일컬어지는 신검의 경지였다.


마력을 빨아들인 검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전방으로 떨어졌다. 그 힘찬 타격을 막아낸 건 눈앞의 망령 마도사가 펼친 강력한 방패 마법이었다.


“윽, 꽤 단단한 녀석이군.”


내 검을 막아선 사이로 엑셀이 파고들었다. 힘찬 찌르기가 놈의 목덜미를 노렸지만, 그 역시 놈이 소환한 방패 마법에 가로막혀 옆으로 미끄러져버렸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격노한 망령 마도사가 주변에 새겨진 모든 마법진을 연쇄적으로 폭발시켰다. 좌우에서 날아드는 통렬한 충격은 수많은 파편을 동반했지만, 마법 갑옷 아우레올라가 형성하는 두꺼운 방벽을 뚫을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후로도 나는 엑셀과 함께 연이은 공세를 펼쳤다. 놈을 좌우로 포위하여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고, 점차 녀석이 펼치는 방패는 검을 막기 힘겨울 정도로 얇아지고 있었다.


분명히 이 녀석은 강한 적이었지만, 정상급 용사 둘의 힘을 이겨내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마침내 엑셀이 적의 다리를 베어내는 데 성공했다. 놈의 흐트러진 자세 사이로 내 검은 교묘한 위치를 노렸다. 떨어진 마력으로 동일한 방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이 작아진 놈의 방패 마법을 피해 검을 찔러넣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녹색 기운이 빈틈으로 빨려가는 것처럼 날렵하게 흘렀고, 그 검격은 순식간에 망령 마도사의 어깻죽지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직선 상에 통렬한 자상을 남겼다.


[허어-]


망령 마도사에게서 바람 빠지는 허무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뒤이어 상처가 갈라지며 검은색의 지저분한 체액이 사방으로 쏟아져나왔다. 천천히 갈라지는 놈의 몸을 뒤로하며 멋들어진 자세로 검을 검집에 꽂아넣었다.


“브리톨, 아직도 겉멋에 집착하는 거야?”


“전투에서 우아함은 실력의 상징이니까.”


내가 마법 갑옷 아우레올라의 화려한 붉은색 망토가 펄럭이도록 뒤로 한 번 쳐내는 사이, 망령 마도사의 몸은 완전히 분해되어 더러운 덩어리 하나만을 남기고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이게 정상급 용사의 위용이지.”


“그래, 너 잘난 건 내가 잘 알아.”


엑셀은 내 옆을 나란히 걸으며 살풋 웃었다.






0036.

“와아..... 브리톨 오빠랑 엑셀 언니는 정말 용사였군요? 엄청 멋져요!”


“그걸 이제야 믿냐?”


셀리의 눈이 이제야 존경과 경외로 가득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내 말을 완전히 믿지 않은 것이다.


“그나저나 이 손해는 도대체 어떡하지?”


말 두 마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몸은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마차 역시 귀퉁이가 쓸려나가고 천장이 몽땅 부스러져 있는 꼴이 영 좋지 않았다. 마차 뒤쪽은 폭발의 여파로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분명히 짐마차 뒤쪽에 보관했던 이불 두 개 중 하나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이런 망할 거렁뱅이 망령 하나 때문에...... 그런데 이거 완전 검은색 발광체 아니냐?”


죽어버린 말과 쓸려나간 짐마차 천장을 보고 격노했던 내 마음은 부관참시에 나선 순간 눈 녹듯이 풀려버렸다. 다름이 아니라 망령 마도사가 죽어서 남긴 건 검은색 발광체였다.


“이건 객관적으로 큰 발광체야. 그러니 하나로도 충분해.”


“네? 그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죠?”


“음...... 딱 봐도 크잖아!”


그 발광체는 고작 주먹 크기였지만, 마신병급 괴수가 남긴 것이었으니 분명히 충분할 것이다.


“좀 역겹긴 했지만 돌아올 때 게르뮬트의 촉수 한 조각이라도 들고 올걸. 사실상 그거 하나면 거의 모든 재료를 대신할 수 있었을 텐데.”


분명히 마왕급이었던 게르뮬트의 몸 조각이라면 어마어마한 연금 재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다만 인간들 사이에서 게르뮬트란 파멸의 상징이었으므로 누구도 그 파멸의 몸 조각을 연금 재료로 쓰고 싶어하지 않을 게 분명해 가져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기동력을 책임질 말들이 죽어버렸으니 이를 어쩐다.”


의외로 검은색 발광체도 빨리 얻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움직일 수단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었다. 내가 열심히 끌어당기면 짐수레가 움직이기야 하겠지만, 그건 아주 조금만 움직일 때나 유효한 방법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도님! 제가 신도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람델이 바닥을 열심히 쓸어내렸다. 람델의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볼록하게 솟아나더니, 솟아난 바닥은 점차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오오..... 이것은.....!”


람델이 한참 고생한 끝에 눈앞에는 흙으로 만든 한 쌍의 준마가 멋들어진 모습을 자랑하게 되었다. 실로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말 도자기! 전혀 쓸모 없어!”


그러나 별로 쓸모는 없었다. 그냥 잘 만든 말 도자기였지, 움직이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도님이 분명히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람델은 실망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실망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인근을 둘러보자. 마을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한 괴수가 거점으로 삼고 있었으니 분명히 무언가 생활 기반이 있을 거야.”


이대로는 드래곤이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기다린 뒤 드래곤이 마차를 끌게 해야 할 판이었다. 마차가 아닌 용차를 타는 것도 꽤 재밌는 경험이 되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이 숲에서 한 해 꼬박 노숙해도 모자랄 것이다. 일단은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작가의말

람델 도자기 장인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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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둘로 나뉜 +6 16.02.09 1,016 19 11쪽
14 14. 삼각 전투 +8 16.02.03 546 21 13쪽
13 13. 공주를 깨우는 +11 16.02.02 558 22 13쪽
12 12. 잠자는 동굴 속의 +12 16.01.31 563 19 12쪽
11 11. 인력거 +8 16.01.30 536 20 12쪽
» 10. 마른하늘의 +17 16.01.27 514 16 12쪽
9 09. 길 가는 일행 +14 16.01.24 1,052 20 10쪽
8 08. 부화뇌동 +6 16.01.21 654 23 11쪽
7 07. 대륙에서 쫓아온 +5 16.01.19 603 28 13쪽
6 06. 땅 속에서 나타난 +8 16.01.17 897 33 13쪽
5 05. 출발 +7 16.01.16 796 31 11쪽
4 04. 기묘한 만남 +12 16.01.15 887 35 13쪽
3 03. 다락방 꼬마 +14 16.01.14 1,115 32 13쪽
2 02. AFTER Epilogue +19 16.01.13 1,176 37 14쪽
1 01. 에필로그 : 마지막 전장 +8 16.01.13 1,151 2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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