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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2,746
추천수 :
408
글자수 :
83,503

작성
16.01.19 01:00
조회
602
추천
28
글자
13쪽

07. 대륙에서 쫓아온

DUMMY

0018.

“으윽, 신도가 될 생각도 없으면서 둥지를 노리다니..... 당신은 소문으로만 듣던 사악한 인간이 분명합니다!”


뒤로 펄쩍 뛰어오른 람델이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얼굴을 분노로 물들였다. 그래 봤자 성난 꼬마가 볼을 부풀리는 정도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어허..... 무력으로는 나에게 상대가 안 될 텐데?”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는 저에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각오하십시오!”


잔뜩 화난 람델은 지면을 손으로 힘껏 내리쳤다. 어마어마한 파동이 땅을 타며 그대로 쇄도했다. 분명히 상당한 위력을 담은 게 분명했지만, 성채만 한 괴물과 싸워 이긴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그러려니 할 수준의 힘이었다.


단숨에 힘의 차이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처음부터 비장의 수를 쓰기로 했다. 본래 힘을 아끼는 건 악당이나 하는 것이고, 용사는 처음부터 최대한의 힘을 내는 법이었다.


“깨어나라, 아우레올라!”


명령과 동시에 목에 걸고 있던 팬던트에서 밝은 빛이 뿜어졌다. 뻗어 나간 마력이 전신을 뒤덮어 하나의 갑옷을 형성했다. 나는 그대로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강렬한 마력 장벽이 덮쳐오는 지각 붕괴를 그대로 무효화했다.


“상대를 잘못 잡았구나, 람델. 나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다.”


거짓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참말이었다.






0019.

“마, 말도 안 돼.......”


람델은 이후로도 끈질기게 공격해왔지만, 어떠한 공격도 내 손짓 한 번이 없던 일처럼 잠잠해졌다. 실로 굉장한 수준의 마력 장벽을 제한 없이 펼쳐내는 마법 갑옷 아우레올라가 있는 한은 람델 정도 정령은 나를 이길 수 없었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윽..... 패배를 인정합니다......”


람델은 무릎을 풀썩 꿇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을 한 람델은 잠시 후 자리에 정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죽이십시오.”


“아니, 그거 말고. 둥지 주라고 둥지.”


“신에게...... 정령에게 둥지는 생명 그 자체. 한 번 형성된 둥지를 옮길 방법은 없습니다. 임의로 옮겨도 전 죽습니다. 어차피 결과가 같다면 제 둥지가 뜯겨나가는 걸 보기 전에 죽여주십시오.”


“뭐? 그런 게 어딨어?”


“앗, 브리톨 오빠! 정령님을 죽이지 마세요!”


“이런, 곤란하잖아.......”


정령은 그냥 놔두고 둥지만 가져가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네가 죽지 않고 둥지를 옮기는 방법은?”


“둥지는 신이 신도를 만나기 전에 신앙심을 공급받는 일종의 장치. 그렇습니다, 신도가 있으면 저는 둥지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 귀찮은 방법밖에 없는 거냐?”




0020.

잠시 후, 내 손등에는 기묘한 문양이 하나 새겨졌다. 내 부루퉁한 표정이야 어쨌건 람델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와아, 저에게도 드디어 신도가 생겼군요! 그렇다면 어서 소원을 말해보십시오!”


“신도도 못 이기는 신이 무슨 소원을 들어준다고.”


“아, 그건 그렇군요.”


람델은 금세 귀를 축 늘어뜨렸다.


“저, 정령님!”


셀리가 람델을 불렀다.


“정령님, 저하고 놀아요!”


셀리가 눈을 반짝이며 람델에게 말했다. 람델은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그, 그게..... 전 신도님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신입니다.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건 좀.......”


“어딜 봐서 신이야, 완전 하인이잖아? 그런 건 됐고, 빨리 셀리하고 놀아. 저 꼬마가 셀리야.”


“아아, 정말! 저 꼬마 아니라니까요!”


“아무렴. 셀리, 빨리 람델하고 놀아.”


나는 두 꼬마를 한데 묶어놓고 수프를 다시 끓이기로 했다. 그래도 정령의 둥지를 손에 넣었으니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었다. 벌써 재료를 두 가지나 모았다. 재료를 모을 때마다 무언가 돌봐야 하는 존재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섰지만, 오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 경우가 특별했을 뿐이다.


“내일은 천둥번개가 좀 치면 좋겠어.”


그런 바람으로 수프를 저었다.




0021.

“브리톨 오빠...... 수프에 뭐 넣었어요?”


“물하고 당근.”


“고작 그거 두 개요?”


“설마. 균형 잡힌 영양분 습득을 위해 밀가루도 넣었지.”


“세상에......”


셀리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람델은 호기심에 수프를 한 숟가락 먹은 게 전부였다.


“왜? 난 괜찮은데.”


지금껏 먹었던 기괴한 수프에 비하면 꽤 괜찮은 맛이었다. 빈말로도 맛있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리 나쁘지만도 않았다.


“요리는 이제부터 제가 할게요.”


“너 요리도 할 줄 아냐?”


“저 19살이거든요! 졸업만 하면 당장 결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요!”


셀리는 의외라는 듯한 내 말투에 기분이 상한 모양인지 소리를 꽥 지르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나는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는 남은 당근 밀가루 수프를 마저 뱃속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괜찮은 맛이었다. 하루에 한 번 먹어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침침한 모닥불에 의지해 재료 목록을 노려본다고 해서 없는 재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게 최선이었다.


“예상외의 인원이 하나 생겨서 잠자리 배정이 곤란해졌다.”


깔개가 하나, 모포는 둘 뿐이다. 한정된 자원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이야 2년 동안 사지에서 구르며 신 나게 배웠지만, 지금처럼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칼 같은 판단은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람델, 자연으로 돌아가서 대기할 수 있어? 내 친구는 그렇게 하던데.”


“저는 아직 신앙심을 많이 모으지 못해서 그런 고급 신력은 발휘할 수 없습니다.”


“너도 참 만능이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럼 둘이 같이 안쪽에서 자. 여기 알도 끼고 자야 하니까 자리가 꽤 좁을 거야.”


“그럼 브리톨 오빠는요?”


“난 마차 안장에 앉아서 자도 무방해. 난 여차하면 나무에 기댄 채로도 잘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쓸데없는 허세, 과도한 온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나에게는 별 거부감 없는 취침 방식이었다. 사실상 게르뮬트의 미궁에 들어간 이후로는 누워서 자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앉아서 자도, 서서 자도 별 불편함을 못 느낄 수준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면 제가 너무 미안한데요......”


셀리는 실제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나처럼 처음 만난 짐덩어리 꼬마를 위해 연금술 재료 수집부터 의식주 전반을 해결해주는 그야말로 신처럼 자비로운 용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럼 나하고 같이 자게?”


“네에? 그, 그치만...... 전 19살 숙녀라고요!”


“그럼 네가 앉아서 자고 내가 누워서 자는 건 어때?”


셀리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정말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오랜만에 누워서 자고 싶긴 해.”


지금껏 너무 오랜 세월을 불편하게 지냈다. 튼튼한 신체가 있으니 무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은 늘 편하게 살고 싶은 법이었다.


“야, 람델. 너 남자냐 여자냐?”


“아니, 딱 보시면 모르시겠습니까? 전 이렇게나 듬직한 남성입니다!”


“뭘 딱 봐? 딱 맞아야 할 녀석이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보기 힘든 유아형 체형 때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남자로 보자면 귀여운 남자아이였고, 여자로 보자면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남자라고 하니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람델 네가 가운데 자도록 해.”


“좋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그냥 자는 것조차도 믿으라는 녀석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셀리 너도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빨리 자. 내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세상에 막을 사람이 하나 없는데 뭘 지금 걱정이야.”


“아, 아뇨, 전 그냥......”


셀리는 말을 더듬었다.


“나한테 그렇게 감사할 것도 없어. 나도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렇다. 순수한 봉사가 아니다. 서로의 이해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경우였다.


“이 막대한 신앙심!”


그 사이에 혼자 득을 보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0022.

습관처럼 아침 일찍 깼다. 청량한 새들의 지저귐이 새벽부터 듣기 좋았다.


람델은 내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헤벌쭉 웃고 있었고, 밤새 이불을 걷어찼는지 모포는 멀리 날려버리고 혼자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셀리는 불쌍한 표정이었다.


“세상을 구한 뒤에 어린이나 돌보고 있다니...... 참 세상일이라는 게 오묘하구만.”


나는 셀리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중얼거렸다.


나도 한때는 보육원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게 희망 사항이었다. 조용히 군인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뒤에는 나처럼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 갑자기 전투에 엄청난 재능을 빛내지만 않았다면 20년 정도 후에는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기묘하게도 전사로서의 재능이 폭발한 결과, 나는 20년 정도 빨리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둘의 본질은 꽤 달랐지만, 하는 일은 비슷한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


“뭐, 다들 당근 밀가루 수프를 좋아하지 않겠어?”


나는 확고한 믿음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0023.

“네? 브리톨 오빠, 부탁이에요.”


“글쎄......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요, 저를 위해서건 오빠를 위해서건 이건 최고의 선택이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넌 아직 어리잖아.”


“저 19살이거든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나이라고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당근 밀가루 수프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있긴 있었다. 셀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지만, 나는 나름 즐거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차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오늘부터 꼬박 나아가면 남부 숲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흔히 남부 숲은 미지의 세계라는 말로 가장 잘 통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부 숲까지 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지도도 없고, 밝혀진 생태계도 없었다. 단지 상당히 위험할 것이라는 정도가 유일한 정보였다.


다행히 나는 이 대륙 제일의 전사였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자, 그럼 출발하자. 나도 남부 숲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상당히 궁금하거든.”


어쩌면 몸에 사과를 주렁주렁 메달고 다니는 기괴한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동화에서나 나오던 난쟁이족이라든가, 절세 미녀가 가득한 요정족 부락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오늘은 벼락이 칠 것 같지 않군.”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괜한 바람은 접어두고 마차에 올라 고삐를 잡았다.


“----”


내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멀리서 메아리가 서너 번 울린 것처럼 뭉게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무언가가 달음박질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브-리-톨-”


잘 들어보니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추격자가 있었나?”


상대는 말 한 마리를 타고 질주하고 있었고, 이쪽은 식구가 주렁주렁 딸린 짐마차였다. 벗어날 방도는 없었다.


“브리톨!”


마침내 긴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추격자는 다름 아닌 엑셀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주소지를 남기며 내 연락을 기다리겠다는 듯한 행동을 취한 녀석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 지났다고 득달같이 쫓아온단 말인가.


“엑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야 아예 남부 숲으로 가버렸다길레......”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꿈꾸는 제과점 점장님한테.”


“아, 그 어리숙한 마왕이 결국은......”


떠나기 전에 갑자기 급히 달려와서는 드래곤 먹이라며 무언가를 한 자루 가득 안겨주고 달아난 류아라는 마왕이 엑셀에게 쓸데없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 같았다.


“엑셀, 왜 나를 쫓아온 거야?”


“그건..... 바, 바보야! 누가 널 걱정해서 따라온 줄 알아? 어차피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녀석인데 걱정 같은 건 안 해!”


“잠깐, 아무도 걱정 이야기는.....”


나는 이 대화가 어디까지 지루하게 이어질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야, 그냥 너도 같이 가자.”


2년 같이 다닌 동료인데다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실력 있는 기사였다.


“어어.... 으응......”


엑셀은 괜히 버벅거리다 말고 냉큼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점점 내 계획과 멀어지는 것 같아.”


혼자 조용히 보내려던 시간이 상당히 시끌벅적해질 것 같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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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9. 길 가는 일행 +14 16.01.24 1,052 20 10쪽
8 08. 부화뇌동 +6 16.01.21 654 23 11쪽
» 07. 대륙에서 쫓아온 +5 16.01.19 603 28 13쪽
6 06. 땅 속에서 나타난 +8 16.01.17 897 33 13쪽
5 05. 출발 +7 16.01.16 796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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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2. AFTER Epilogue +19 16.01.13 1,176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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