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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DEF

AFTER Epilogu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cintill.
작품등록일 :
2016.01.13 15:53
최근연재일 :
2016.02.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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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01.1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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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3. 다락방 꼬마

DUMMY

0005.

나는 세계를 구했다. 이런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역사를 조금 더 공부해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시대를 커다란 둘로 쪼개면 멸마 이전, 그리고 멸마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시대를 나누는 ‘멸마’라는 건 단어 그대로 악마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사인 ‘위대한 리안’이라는 사람이 악마에 억압당하던 세상을 구한 첫 번째 사람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위대한’이라고 수식어가 붙었다.


어쨌든 이 위대한 리안이 당시 단신으로 지옥 전체를 격파해버렸고, 무너진 지옥에서 쏟아진 마력에 노출된 인간들 모두가 마력을 훨씬 다루기 쉬운 몸이 되었다. 이 시대가 바로 멸마 이후.


마법이 상용화되어 인간 세계는 폭발적으로 발전했고, 그 번영한 시기가 한참 지속되었다. 중간에 천사라 칭해지던 천공의 괴수가 인간을 공격해온 적이 있었으나, 현명하게 그 시기를 넘긴 인류는 어마어마하게 발달했다.


그렇게 번성한 세계에도 문제가 생겨났으니, 지옥이 무너진 이후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마력이 지상을 떠돌다 특정 계기로 뭉쳐 생겨나는 괴수의 존재였다.


어느 정도 규모의 괴수는 변방의 상비군으로도 손쉽게 진압할 수 있었지만, 그 양이나 힘이 평균치를 웃도는 경우에는 문제가 약간 복잡해졌다.


상비군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마신병급 이하 괴수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마신장급 괴수부터는 상당한 골치였다.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토벌이 필요할 정도였다.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괴수들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심심치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마왕급 괴수가 출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출현할 때마다 도시 서너 개를 초토화하는 수준이었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신출귀몰한 괴수들 때문에 각 나라들은 동맹을 굳건히 했고, 연합 군대를 조성하는 것으로 이 마왕급 괴수들에 대항해 왔다. 그러나 게르뮬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또다시 전세계가 위기에 빠졌다.


과거 지옥의 악마들의 계급을 본뜬 것이 현재 괴수 규모였는데, 흔히 뒤에는 ‘급’이라는 단어가 붙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압도적인 힘과 세력 때문에 게르뮬트는 마왕급 대신 그냥 마왕이라는 수식어로 불렸다. 그만큼 유래가 없었던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다.


마왕 게르뮬트의 토벌을 위해 세계의 실력자를 한대 모아 그중에서도 최강자만 고르고 고른 원정대가 바로 알파 레기온이며, 나는 그 알파 레기온의 대장이었다. 말하자면 공식적으로는 세계 최강자였다.


“.......했다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살게 됐죠.”


그런 거물 중의 거물인 내가 10살 될까 말까한 꼬마에게 ‘상식이 있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참이었다.


“지금 나더러 그걸 믿으라고?”


“저, 정말이라니까요? 그러는 오빠는 어디서 뭐하다 온 사람이에요?”


“나, 나 말이냐? 저기, 그......”


나는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진실끼리는 서로 통하는 법이 아니던가. 내 진심에 감화된 셀리가 눈물로 잘못을 뉘우칠 지도 모른다. 한참 헛기침을 하던 나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세계를 구하고 온 사람이다.”


풉 하는 웃음소리와 딱 하는 경쾌한 타격음이 들리는 건 동시였다. 셀리는 눈물 한 방울을 쭉 빼고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으으..... 그걸 저더러 믿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어허, 이 녀석이. 이 세상에 브리톨레커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금 부동산 할아버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브리톨 오빠, 저 여기서 살고 싶어요!”


“안 돼.”


건너편 대륙에서 공간 이동 마법진을 그려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던 셀리는 문자 하나를 잘못 적는 바람에 이 마을 근방에 떨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마법 실력을 살려 이 집에 몰래 들어와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밤마다 주변 물류 창고에서 음식을 조금씩 훔쳐서 연명했고,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법진에 필요한 물자를 모으고 있다는 게 셀리의 설명이었다.


“왜요? 왜 안 되는 거죠?”


“너 돈 있냐? 그렇다고 일을 잘 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특별한 기술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저, 저기..... 저 마법 잘 써요!”


“써봐야 얼마나 쓰겠니. 아까 싸우는 거 보니까 고작해야 6급 자격증 간신히 딸 수준이잖아.”


“윽.....”


아무래도 맞춘 것 같았다. 1급 마법사 둘과 함께 다니던 몸이었다. 셀리 수준의 마법은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말 잘 들을 게요. 네?”


“야, 네 입장에서도 여기서 사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엄마한테 모르는 아저씨 따라가지 말라는 것도 안 배웠냐?”


“괜찮아요! 여차하면 제 놀라운 마법 실력으로......”


이 녀석이 왜 생판 처음 보는 남자가 등장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지 이제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녀석의 실력으로는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었다. 방금 그렇게 당해놓고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었다. 이 꼬마는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너 사회생활은 해봤니?”


“사회 생활이라면.......”


“다른 사람들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쓴다거나, 주어진 임무를 팀원들과 함께 열심히 수행하는 것 등등 말이야.”


“그, 글쎄요? 일단은 지금까지 혼자만 지냈는데요......”


우물쭈물 대답하는 모양세가 딱 봐도 순진한 동네 꼬마였다. 만약 셀리가 한 배경 설명이 다 사실이라면 또 문제가 복잡했다. 내가 내쫓았다가는 어수룩하게 돌아다니다 납치당해서 별 안 좋은 꼴은 다 봐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답답하네...... 여기 살면서 이룰 네 궁극적인 목표는 뭐야?”


“그야 당연히 공간 이동진의 완성이죠! 촉매만 다 모으면 떠날 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재료는?”


“악마의 피 조금, 유니콘의 뿔 가루, 히드라의 비늘 세 조각, 맨드레이크의 비명 소리에 노출된 석영, 드래곤의 유치.......”


“야, 그딴 것들을 어디서 구하냐!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물건 천지네.”


신 나서 설명하던 셀리는 내 호통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게 문제에요.......”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셀리는 한참 땅바닥만 쳐다보더니,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히잉......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이 많은 재료, 제가 죽을 때까지 힘내도 못 모을 거라는 건 저도 알고 있다고요...... 하,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겨우 지낼 곳을 찾았는데...... 또 숲 속에서 자는 건 무서우니까......”


본래 약자의 눈물이란 강력한 무기인 법이었다. 그러나 이미 무수한 살육의 현장에서 심장을 연마한 나에게는 티끌만큼의 타격도 가할 수 없었다. 난 원래 툭 하면 울어버리는 꼬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렸다. 집으로 못 돌아가는 꼬마가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목숨 바쳐 인류를 한 번 구했으면 됐지. 그런 내가 집 잃은 꼬마 하나 박대한다고 해도 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실랑이를 벌일 수는 없었다.


“재료만 모으면 나갈 거지?”


“네에......?”


“제발 그 우는 얼굴 좀 치워. 나 애들 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세계도 구했는데, 꼬마 한 명 더 구하는 게 대수인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난 별로 바쁘지도 않았다.




난 가끔 이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가 얼마나 평화롭게 살았을지 떠올려보고는 한다.








0006.

브리톨레커. 지금은 우는 아이나 상대하고 있는 평범한 청년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객관적으로 봐도 아주 강한 전사였다. 태생 고아로 어릴 때부터 국가에서 키워진 나는 5살부터 군사 교육을 받았다. 흔히 국가에서 맡은 고아들은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의무 군인으로 살아가기 마련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출난 재능, 끈질긴 근성을 함께 갖춘 경우였다. 거기에 운 좋게도 스승까지 잘 만나 이렇게 대성하게 되었다.


내 대단함을 모르는 셀리는 감히 세기의 대 영웅 브리톨레커를 동네 오빠 보듯이 했다. 그러나 고작 꼬마 상대로 내 위대함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람 잘 만나서 다행인 줄 알아.”


“흥, 꿀밤도 때려놓고.”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꿍한 눈빛을 보아하니 내가 조금 세게 때려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난 여기 정식 거주자로 등록했으니까 앞으로 주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너도 거주자로 등록해야 돼.”


“저도요? 그럼 저도 아침에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요?”


“뭐 당연한 걸.”


그 말에 셀리는 크게 감동한 것 같았다. 밝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에서는 마법 광선이라도 쏘아질 것만 같았다.


“어디 보자, 너는 10살 정도니까 조카라고 해둘까? 그게 좋겠군.”


“네에? 저 19살이라고요!”


“시끄러워. 아, 그런데 어린 조카랑 단둘이 사는 건 좀 좋지 않게 볼 것 같기도 한데...... 그래, 그냥 나이 차가 많은 친동생이라고 하자.”


셀리만큼 화사한 금발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어두운 금발이긴 했다. 적당히 말을 맞춰두면 다들 믿을 것 같았다.


“야, 밖에서는 나하고 아주 친한 척 하도록 해. 방금 급조한 설정에 따르면 넌 귀여운 늦둥이 동생이고, 난 무역상을 하는 부모님이 먼 곳에 다녀오는 동안 너를 맡은 것으로 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거, 걱정 말아요! 연기는 제 주특기거든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기는 했으나 별로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나이는 10살로 속이는 게 좋겠어. 정식 시민 등록증이 나오는 건 15살부터니까 공식 서류가 없어도 넘어갈 수 있을 거야. 재료만 모으면 돌아간다고 했지? 재료 모으는 것도 내가 도와줄 테니까 빨리빨리 끝내버리자. 그 다음은 뭐...... 부모님 댁에 돌아갔다고만 하면 만사형통이겠군.”


나는 셀리를 앞에 두고는 반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와아, 고마워요! 오빠는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역시 이 녀석은 너무 순진했다. 빨리 원래 살던 곳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0007.

“이게 도대체 다 뭐야........”


나는 셀리가 내민 두루마리를 읽어 내리며 혀를 내둘렀다. 방금 셀리가 말한 것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는데, 전부 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절벽 황금새 둥지의 나뭇가지? 도대체 이런 게 왜 필요한 거야?”


“헤헤......”


난처하게 웃는 셀리의 동글동글한 이마를 딱 때리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본래 공간 이동 마법은 짧은 거리라면 그리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다. 숙련된 마법사라면 회피 기술로 단거리 이동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동할 거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난이도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건너편 대륙까지 이동하려면 상당량의 마력을 저장할 촉매가 필요했는데, 정말 절대 못 구할 극상의 재료를 제외하고 요구량을 충족시키려면 이만한 촉매들은 있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건너편 대륙까지 올 정도로 거창한 촉매를 쓴 거야?”


“시, 실수로...... 평범한 수인족의 깃털인줄 알고 쓴 게 대천사의 깃털이었거든요......”


“뭐어? 그런 어마어마한 물건은 또 어디서 난 거야?”


설마하니 그 '정말 절대 못 구할 극상의 재료'를 써서 날아왔다는 것이다.


“아빠 실험실이요......”


“이 녀석 부잣집 따님인가......”


아득한 두루마리의 재료 리스트를 보고 있으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맨 아래쪽 몇몇은 삭제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동안 아주 놀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중형 민달팽이 수액, 발광 딱정벌레의 뿔.....? 거의 놀고 있었던 수준이잖아?”


모아놓은 재료는 아주 단순한 것 몇몇 밖에 없었다. 내가 눈매를 좁히고 있으려니 셀리는 더욱 어깨를 수그리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히, 힘들긴 해도 못 구할 수준은 아니군...... 기, 길어야 석 달 정도면 다 모으겠는걸?”


더듬거리는 내 말에 셀리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불쌍한 것과 귀여운 건 지나치지 못하는 내 저주받은 체질이 원망스러웠다.


“진짜 사람 잘 만난 줄 알아......”


선량하고 능력 있으며 한가하기까지 한 사람은 세상에 나 딱 한 사람뿐일 게 분명했다.


작가의말

그리하여 시작된 가벼운 일상 모험물입니다.

글 분위기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쓰고 싶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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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둘로 나뉜 +6 16.02.09 1,016 19 11쪽
14 14. 삼각 전투 +8 16.02.03 546 21 13쪽
13 13. 공주를 깨우는 +11 16.02.02 558 22 13쪽
12 12. 잠자는 동굴 속의 +12 16.01.31 563 19 12쪽
11 11. 인력거 +8 16.01.30 536 20 12쪽
10 10. 마른하늘의 +17 16.01.27 514 16 12쪽
9 09. 길 가는 일행 +14 16.01.24 1,052 20 10쪽
8 08. 부화뇌동 +6 16.01.21 654 23 11쪽
7 07. 대륙에서 쫓아온 +5 16.01.19 603 28 13쪽
6 06. 땅 속에서 나타난 +8 16.01.17 897 33 13쪽
5 05. 출발 +7 16.01.16 796 31 11쪽
4 04. 기묘한 만남 +12 16.01.15 887 35 13쪽
» 03. 다락방 꼬마 +14 16.01.14 1,115 32 13쪽
2 02. AFTER Epilogue +19 16.01.13 1,176 37 14쪽
1 01. 에필로그 : 마지막 전장 +8 16.01.13 1,151 2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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