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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소봉 님의 서재입니다.

의천소멸기(倚天消滅記) -백두풍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방소봉
작품등록일 :
2015.03.17 10:43
최근연재일 :
2015.04.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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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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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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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32쪽

아홉; 야율아보기 외전 1--1.거란의 전설

새로운 판타지, 새로운 무협! 발해 멸망 미스터리의 종지부! 백두산 화산의 진실!




DUMMY

공지사항에서 외전으로 보십시오. 공지에는 모두 올라가지가 않아서 여기에 한꺼번에 올립니다.


아홉;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외전(外傳) 1



1. 거란의 전설



야율아보기가 모처럼 임황부(臨潢府-지금의 내몽고 빠린줘치巴林左旗, 나중에 요의 상경이 됨)의 알노타(斡魯朶-거란의 궁전)에서 밖으로 나왔다. 목엽산 밑의 고원에 날발(捺鉢-유목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천막으로 된 임시 행궁)을 쳤다. 야율아보기의 거대한 날발을 중심으로 8부족장의 장막이 빙 둘러 쳐져 있었다. 그 바깥으로는 귀족들의 날발이 펼쳐져 있었다.


장막 바깥에는 부족민들이 오늘을 기리기 위하여 돌, 흙과 나무를 이용하여 삼층으로 쌓은 제오포(祭傲包) 수백여 개가 경마, 궁술, 씨름, 노래와 춤을 추는 곳을 경계 지으며 만들어져 있었다. 제오포란 맨 아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주로 돌을 층층이 쌓아서 돌탑을 만들고 가장 꼭대기에는 각 부족을 상징하는 깃발을 높다랗게 세우는 것이다.


돌, 나무와 흙으로 쌓은 제오포 수백여 개가 이곳 목엽산(木葉山) 일대를 알록달록하게 수놓은 모습이 마치 크나큰 전쟁을 앞두고 군막을 수십만 대군의 병영 같았다.


이렇게 목엽산 일대에서 8부의 부족장이 모두 회동하게 된 것은 오늘이 바로 거란족이 생긴 날이기 때문이었다.


거란의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백마(白馬)를 탄 신인(神人)이 토하(土河) 상류로부터 내려와서 살 곳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흑우차(黑牛車)를 탄 선녀(仙女)도 황하(潢河) 상류로부터 내려와서 자신의 반려를 찾아 다녔다. 두 사람은 하늘의 계시에 따라서 두 강의 합류점인 목엽산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된 그들은 목엽산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아들 여덟을 낳았다. 그 여덟 아들이 바로 팔부족(八部族)의 시조였다.


흰 말을 탄 신인은 퉁구스족 남자이고, 검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선녀가 바로 몽고족 여자이었다. 토하는 지나의 장강도 아닌 조그마한 요하(遼河)이고, 황하(潢河)는 지나의 황하(黃河)에 비하면 싯누런 웅덩이(潢)에 지나지 않는 서랍목륜(西拉木倫-중국말 시라무룬)이었다.


내 세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전설 따위를 선조이기 때문에 기린다는 것이 야율아보기는 싫었다. 자신이 혼혈 잡종이라는 걸 스스로 선전하는 꼴이고, 중원의 변방 이름도 없는 싯누런 웅덩이에서 태어난 민족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짓이었다.


전설을 듣는 것조차 질색하는 야율아보기가 이렇게 날발까지 설치한 것은 군사 한연휘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되도록 지나의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한연휘가 도리어 자신을 설득하고 있으니 더욱 옹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칸이시여! 거란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거란의 풍속을 존중해야 합니다. 거란족이 아직 한족에 편입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신은 무지렁이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긴 적도 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잠시의 굴욕을 참을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란 내부의 안정 없이는 밖의 적을 어떻게 무찌를 수 있겠습니까? 칸이시여! 지금은 거란 8부족을 다독여야 할 시점입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퉁구스와 몽고의 혼혈 잡종이란 전설이 무에 그리 자랑스럽다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내세울 것이라곤 척박한 땅과 추운 날씨뿐인 곳에서 태어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부끄러운 것은 덮어버리고 자랑스러운 것은 크게 떠벌리는 것이 개인이나 민족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 아닌가? 고리타분한 늙은이들은 도대체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한연휘가 다시 고개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칸이시여!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는 데 지나는 수천 년이 걸렸지만, 아직도 갈 길은 까마득합니다. 어찌 하루아침에 지워지기를 바라겠습니까? 칸이 위대한 군주가 되어서 중원을 호령하면 자연히 거란의 위상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높이 솟을 것입니다. 이름난 황제치고 미천하지 않은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니 마음을 넓게 가지옵소서.”


옆에 시립하고 있던 왕후 술율평(述律平), 세자 배(倍-정식 명은 야율요골耶律堯骨)도 같이 머리를 조아리고 야율아보기를 채근하였다.


“칸! 소첩이 보기에도 한 군사의 말이 옳은 것 같아요. 까짓 얼굴 한 번 내미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랍니까?”


“아버님! 그렇게 하시옵소서. 번거로운 일은 모두 소자가 감당할 것이니 아버님은 그저 위렵(圍獵)이나 즐기십시오.”


위렵이란 제사 지낼 짐승을 사냥하는 것으로 몰이꾼이 몰아주는 사냥감을 잡는 방법이라 번거로울 리가 없었다. 원래 흰 말과 검은 소를 잡아서 신인과 선녀를 즐겁게 하는 것이지만, 그 동안 제식도 변하여 이제는 흰 말 대신에 사슴, 검은 소 대신에 야생 거위를 잡아서 바친다.


위렵 말고도 이날 벌어지는 행사는 헌합달(獻哈達-직접 짠 옷감을 바치는 의식). 나달모(那達慕-경마, 궁술, 씨름, 노래, 춤 등의 놀이)와 낙인(烙印-말, 소, 양, 낙타 등의 뿔에 주인의 이름을 새기는 의식)이 있다.


한연휘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칸이시여! 헌합달은 왕후, 나달모는 태자가 거행할 것입니다. 낙인의 의식은 신이 할 것이오니 칸은 사냥한 사슴과 거위를 제단에 바치는 의식만 하시옵소서.”


왕후 술율평이 야율아보기를 보고 한 소리하였다.


“칸! 그렇게 뚱한 얼굴로 부족장들을 맞이할 것인가요? 하얗지는 않지만, 누런 이빨이라도 드러내고 웃으시오. 오늘은 호통 치는 날이 아니라 웃고 즐기는 날이니 그 점 잊지 마세요.”


누런 이빨이라는 말에 야율아보기가 동경을 꺼내어 입을 옆으로 가로 찢어서 자신의 이빨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봐도 이빨이 희지 못하자, 소금을 찍어서 이빨에 쓱싹 바르면서 싱긋이 웃었다.


“왕후! 이 정도면 하얗지 않소? 하하하!”


“호호호! 칸, 그렇게 웃으니 찡그릴 때보다 훨씬 보기 좋군요. 희면 어떻고 누리끼리 하면 또 어때요? 밑에 것들은 상전이 입을 벌리고 이빨만 보여도 웃는 것이라 여길 겁니다. 호호호!”


***


드디어 5월 13일에 펼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왕후 술율평이 양의 털로 짠 옷감을 신의 제단에 바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합달은 손수 짠 것이어야 하지, 짐승으로부터 얻은 모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길이가 십여 장, 폭이 아홉 자 아홉 치인 새하얀 옷감이 제단 위의 장대에 높다랗게 걸렸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옷감이 허공중에 펄럭이는 모습이 선녀가 하강하는 것 같자, 그걸 바라보던 거란 부족민들이 큰소리로 신을 불렀다.


“신인(神人)의 현신이다. 선녀(仙女)가 하강한다!”


술율평이 몸을 돌려서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신인과 선녀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우리 거란을 위하여 천하를 줄 것이오. 거란의 백성은 들어라!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겠느냐?”


거란의 남녀노소 모두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가 목엽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신인과 선녀시여! 우리의 목숨은 그대들이 주신 것이오. 언제든 민족을 위하여 바칠 것이오. 바칠 것이오! 바칠 것이오!”


주위가 조용해질 때까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술율평이 다시 소리쳤다.


“오늘은 위대한 민족 거란이 하늘에서 내려온 경사스러운 날이오.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시오! 거란 만세! 팔 부족 만세! 야율아보기 대한 만세!”


단순히 알로타를 지키는 온순한 왕후가 아니었다. 여장부의 만세 삼창에 모든 백성이 열광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거란 만세! 팔부족 만세! 야율아보기 만세!”


***


곧이어 왕세자 야율요골이 등단하여 소리쳤다.


“거란의 신인이여! 그리고 거란의 선녀여! 모두 나오라! 나달모를 열 것이오.”


단 아래 백성이 모두 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였다. 야율요골이 다시 외쳤다.


“거란의 신인이여! 기마대의 장군이 되고 싶은가?”


“예!”


“빨간 깃발이 꽂힌 제오포로 가서 말을 타고 승부에서 이겨라! 그럼 그대는 기마대의 장군이 될 것이다. 가라!”


“가자! 빨간 깃발로!”


말을 탄 일단의 젊은이들이 우르르 빨간 깃발이 꽂힌 제오포로 달려갔다. 야골요골이 다시 외쳤다.


“거란의 신인이여! 궁술대의 장수가 되고 싶은가?”


“예! 궁술대의 장수가 되겠습니다.”


“노란 깃발로 가라!”


어깨에 활을 메고 말을 탄 거란의 젊은이들이 노란 깃발로 달려갔다.


“거란의 젊은 신인이여! 보병대의 장수가 되고 싶은가? 파란 깃발로 가라!”


남은 것은 젊은 여자들이었다. 야율요골의 외침이 들판을 가득 수놓았다. 여자라고 싸움터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거란의 젊은 선녀들이여! 장수의 부인이 되고 싶은가? 왕실의 부인이 되고 싶은가? 희고 까만 깃발로 가서 마음껏 그대들의 기량을 뽐내어서 전장에 나가는 그대들의 신인을 즐겁게 하라!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가라!”


“가자! 전장에 나가는 낭군을 위하여!”


모든 것은 전쟁에 맞추어져 있었다.





2. 위렵(圍獵)



야율아보기가 군사 한연휘를 돌아보고 넌지시 물었다.


“한 군사, 오늘 낙인 행사에 동원된 축생이 얼마나 되는가?”


“칸! 병사가 먹을 양식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곳곳에 간세의 눈이 번득이고 있으나, 군량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거란족 전통의 낙인 찍기 의식일 뿐입니다.”


야율아보기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기분 좋을 때는 이렇게 웃는다.


“하하하! 정말 절묘한 전쟁 준비로다. 이제 출정할 날만 받으면 되겠구먼. 하하하!”


“그렇습니다. 칸이시여!”


옆에 쭉 늘어앉은 부족장들도 의식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올해의 수확도 넉넉하니 모두들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술(述) 부족장이 옆의 숙(肅) 부족장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었다.


“야율아보기가 전통의식을 기피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소이다.”


“소문이 과장되었겠지요. 하는 양을 보니 누구보다 전통의식에 통달한 것 같소만?”


그러자 옆에 있던 손(孫) 부족장도 한 마디 거들고 나섰다.


“나는 또 전쟁에 필요한 물자나 왕창 내라고 할까 봐서 노심초사하였다오.”


“그러게 말입니다. 전쟁물자 얘기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의 우려가 너무 과한 듯싶소이다.”


이(李) 부족장까지 맞장구를 치자 나머지 팔 부족장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곧이어 나달모에서 관(冠-일등), 아(亞-이등), 차(次-삼등)에 든 열 다섯이 제단 위에 도열하였다. 아홉의 신인과 여섯의 선녀가 도열하여 먼저 단상의 왕과 귀족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예는 오른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에 얹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야율아보기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장하다. 거란의 신인과 선녀들이여! 민족이 그대들의 피를 원하면 기꺼이 줄 것인가?”


열다섯 모두가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오. 신인과 선녀가 주신 것이니 언제든 민족을 위하여 바칠 것이오! 바칠 것이오! 바칠 것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그대들이 어디에 누군지 묻지 않겠다. 오늘부터 그대들은 궁장군의 장수와 그 부인이 될 것이다.”


“대한 만세! 거란 만세! 팔 부족 만세!”


만세를 마친 열다섯에게 아보기가 자, 청, 백의 합달을 목에 걸어주고, 목엽산 신인과 선녀가 그려진 반월도(半月刀)를 하사하였다. 신인과 선녀가 새겨진 반월도는 궁장군(宮帳軍-행궁의 장막을 지키는 군으로 거란의 최정예군이다. 주로 왕의 호위임무를 맡지만, 전장에서는 장수의 역할을 한다)의 장군을 상징한다.


야율아보기가 열다섯에게 물었다.


“거란이 무슨 뜻인가?”


말 타고 활쏘기에서 관을 거머쥔 야율덕광(耶律德光)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하였다.


“거란은 단단하고 강한 철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둘째 아들이 설마 나달모에서 관을 거머쥘 줄을 몰랐던 야율아보기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경마에서 관을 거머쥔 술율정(述律正)이 부연 설명하였다.


“검과 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야율아보기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다시 질문하였다.


“도검(刀劍)을 어떻게 단련하는가?”


씨름에서 관을 한 손만수(孫萬壽)가 오른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면서 외쳤다.


“대한! 그야 물론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수련하지요.”


“옳은 말이다. 지금부터 나와 같이 위렵을 갈 것이니 어디 너희가 진정한 거란족인지 증명해 보라!”


열다섯 청년이 모두 외쳤다.


“거란은 강철이오, 도검으로 말한다.”


***


목엽산을 조금 벗어난 곳에 홍산(紅山-홍산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함)이라는 제법 높은 산이 있다. 역시 대흥안령 산맥의 일부라 호랑이, 표범, 멧돼지, 사슴, 여우 등 사냥감이 널린 곳이다. 위렵은 바로 이곳 홍산에서 이루어진다. 목엽산은 신성한 곳이므로 사냥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냥감은 암사슴과 야생 거위이다. 암사슴을 잡는 데는 수사슴 흉내를 내는 사냥 몰이꾼이 필요하다. 이는 주로 여진족이 맡고 있었다. 거란족에게 여진족은 그저 부려먹어도 좋은 하층 민족일 따름이었다.


모두 활과 도검을 들고 있지만, 암사슴을 결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번 위렵의 원칙이다. 신인과 선녀에게 바칠 제물(祭物)은 신선해야 한다. 죽은 것을 바칠 수는 더더구나 없는 법이다.


야생 거위를 잡는 방법도 화살이 아니라 독수리를 이용한다. 독수리를 훈련시켜서 거위를 잡되 절대로 몸에 상처를 내어서는 안 된다. 만약 독수리가 제물에 상처를 내면 그 독수리는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린다. 주인인 여진족 역시 목이 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진족 몰이꾼이 수사슴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정말 수사슴과 똑 같은 소리로 암컷을 불렀다.


“메에에에! 음메에에에! 매에에에!”


그러자 숲 속에서 몇 마리의 암사슴이 몰이꾼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이제 아보기가 정하면 그 암사슴을 상처 하나 없이 잡아야 한다. 잡는 사람은 큰 상을 받을 것이지만, 실수로라도 암사슴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면 그 사람의 목숨도 없다.


“왼쪽에 있는 사슴이 가장 잘 생겼구나. 누가 잡겠는가?”


야율덕광과 솔율정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그러나 아보기는 두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다. 잘 잡으면 좋겠지만, 잘못하면 자신의 아들과 왕후의 동생이 죽는다. 야율아보기의 손이 두 사람보다 늦게 손을 든 손만수를 가리켰다.


“손만수! 그대가 잡아라!”


손만수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지만, 손만수의 아비 손 부족장은 눈을 감아버렸다. 평소에도 사사건건 야율아보기와 부딪친 자신의 부족을 이 기회에 응징하려는 생각이라 겉잡았다.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었다. 모든 거란족으로부터 비겁한 부족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느니만 못하였다.


‘야율아보기! 드디어 이빨을 드러내는가? 그래, 어디까지 갈 것인지 보자!’


눈을 감은 이유는 신인과 선녀에게 비는 것도 있지만, 차마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야율아보기의 손에 죽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대대로 자손이 귀하여 이름까지 오래 살라는 뜻으로 만수로 지은 아들이었다.


손만수는 씨름 선수이다. 부족 내에서는 물론 거란에서 자신의 적수가 없다 여기고 있었다. 사슴 정도는 눈을 감고도 잡을 수 있었다. 손만수가 살금살금 사슴 곁으로 다가갔다.


여진족 몰이꾼은 사슴을 붙잡아 두기 위하여 계속하여 수사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드디어 손만수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이르렀다. 모두 손만수와 사슴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거란에서 씨름을 가장 잘하는 손만수이니 그가 실수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손만수가 사슴을 덮치고 여진족 몰이꾼의 입에서 기침소리가 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찰나의 순간에 사슴이 화들짝 놀라서 튀어 올랐고, 때마침 사슴의 허리를 껴안은 손만수와 사슴은 데굴데굴 산 밑으로 굴러갔다.


“어, 어, 어? 어찌 저런 일이?”




3. 제물(祭物)



모두가 의아하게 현장을 바라보았다. 여진족은 목을 움켜쥐고 켁켁 거리고 있었고, 다른 암사슴은 모두 산지사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손만수와 사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진 사람들이 산 밑으로 우루루 달려갔다.


사람들이 산 아래에 이르니 손만수는 사슴을 꼭 껴안은 채 기절해 있고, 사슴은 죽어 있었다. 밑으로 구르면서 뾰족한 나뭇가지에 찔린 듯 목에 나무깽이가 꽂혀 있었다.


야율덕광이 소리쳤다.


“아, 제물이 죽었다!”


술율정도 맞장구를 쳤다.


“제물이 죽었으니 손만수도 죽겠지? 속이 다 후련하군.”


“왜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야율덕광의 물음에 술율정이 가까이 다가와서 귀엣말을 하였다.


“왜는 무슨 왜야? 부족민 떼거리가 많다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나서니 미운 털이 박힌 것이지.”


야율덕광이 저만치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손 부족장을 흘깃 보고


“손 늙은이의 꼬락서니가 볼 만하겠어. 하하하!”


뒤늦게 도착하여 사슴이 죽은 것을 본 손 부족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들을 안았다. 야율아보기와 다른 부족장들도 현장에 도착하였다. 야율아보기의 뒤에 한연휘가 따르고 있었다.


술율정이 몸을 돌리려는 손 부족장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갈 수 없습니다. 제물이 죽었으니 손만수도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손 부족장이 앞을 막은 술율정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싸늘한 어조로 소리쳤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아들을 안은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죽여도 내 손으로 죽일 것이야. 그것보다 사슴 몰이꾼이 왜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어서 사슴을 놀라게 했는지 밝혀야 될 것이다. 몰이꾼은 어디에 속한 놈이냐?”


야율아보기가 술율정을 밀어내고 손 부족장에게 물었다.


“손 공! 손 공은 누가 만수를 해치기 위하여 일부러 몰이꾼을 해하였다고 생각합니까?”


“칸! 그렇소이다! 몰이꾼이 갑자기 목을 움켜쥐고 다른 소리를 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오. 내 아들을 죽이는 것은 그 다음에 할 것이오.”


야율아보기가 오늘 행사를 주관한 한연휘를 보고 명령하였다.


“한 군사! 몰이꾼을 조사하라!”


“예, 칸!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그것보다 신인과 선녀에게 바칠 제물이 죽었으니 다른 사슴을 잡아서 의식을 마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백성의 동요부터 잠재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 사슴을 잡을 사람은 아직 열넷이나 있으니 서두르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부족장들은 나를 따르시오.”


야율아보기가 부족장들과 같이 의식을 행하는 목엽산으로 가고, 야율요골이 열 넷을 데리고 제물 사냥을 떠났다.


현장에는 한연휘와 그의 수하들만 남았다. 한연휘가 큰 소리로 수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샅샅이 조사해서 보고하라!”


수하들이 떠나자 한연휘 앞에 있던 흙더미가 꿈틀거렸다. 흙더미를 장식했던 나무와 풀이 스멀스멀 녹아내리고 누런 흙이 드러나자 시궁창 냄새가 주위에 만판 퍼졌다 한연휘가 부지불식간에 코를 틀어막았다. 위에 있던 흙이 흘러내리고 점차 사람의 형상을 갖추더니 두 팔이 나오고,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은 누리끼리하고, 눈은 반쯤 감은 상태였다. 두 다리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누런 입을 벌려서 한숨을 토했다.


“후유! 중토신공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


한연휘의 인상이 험상궂게 변하면서 나직하면서 묵직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중토! 몰이꾼은 왜 죽인 거야? 그냥 수사슴 소리만 내지 못하게 하라고 일렀잖아.”


“한 대인! 수하의 보고가 너무 황당하여 나도 모르게 그만 힘이 들어간 것 같소이다. 대인! 그것보다 큰일 났소이다. 알선동 석굴이 발칵 뒤집혔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알선동 석굴을 누가 알고 침입하였다는 거야?”


“풍백과 우사가 침입하였습니다. 네 존자가 반년은 족히 요상을 해야 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풍백과 우사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이야?”


“풍백과 우사가 재료에 장난을 친 줄도 모르고 기운을 흡수했는데 상극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답니다. 또한, 우리가 모르는 비밀 무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졸개들의 보고로는 풍백은 공중 바람개비라는 무기를 어기어검처럼 조종하였고, 우사는 빙백신공을 극성으로 펼쳤다고 합니다.”


“풍백이 이기어검의 경지에 이르렀다? 네 존자가 중상을 입을 정도라면 둘도 무사하지는 못하였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대?”


“양패구상(兩敗俱傷-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한 모양인데 둘은 풍쟁(風箏)을 타고 날아갔답니다.”


“사람이 풍쟁을 타고 날아? 무슨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니 내가 놀라서 몰이꾼에게 힘을 과하게 쓴 것이오.”


“핑계 한 번 그럴듯하구먼. 그나저나 수천 명이나 되는 재료는 어떻게 되는 거야?”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거의 못쓴다고 봐야 할 것이오. 청목의 말로는 목기를 흡수하는데 목기의 상극인 화기가 같이 딸려 나와서 청목신공을 마음껏 펼치지도 못하였답니다. 아무래도 난 알선동으로 가봐야 할 것 같소이다. 이곳의 일은 한 대인이 적당히 꾸며대십시오.”


“중토! 어쨌든 그 재료가 마지막이니까 최대한 사용하도록 해봐.”


“현장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대인, 그럼!”


말과 함께 몸이 점점 옆으로 퍼지더니 마침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두더지가 땅속을 기어가듯이 흙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고, 밭고랑 같은 길이 길게 이어졌다. 나무나 바위와 같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옆으로 우회하여 길게 꼬리를 남기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연휘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우! 역시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이렇게 되면 고우리를 모조리 말살하려던 계획은 접어야 되겠지? 어쩐지 너무 쉽다고 생각했더니 풍백은 역시 대단해. 오행존자 없이 거사를 하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겠군.”


***


목엽산 제단에는 야율덕광이 잡은 사슴과 야생 거위가 올라 있고, 그 앞에 야율아보기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검은 여우의 모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코 밑에 반백의 팔자수염, 뾰족한 턱에는 세 가닥의 염소수염으로 멋을 내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얼굴상은 사막의 청랑(靑狼)을 닮았다.


“거란의 백성이여! 오늘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성스러운 날이다. 비록 척박한 변방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 이제까지 뿔뿔이 흩어져서 다른 민족의 홀대를 받았지만, 우린 하나가 되었다. 하나가 된 우리는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쳐부술 힘이 있다. 나 야율아보기와 같이 민족의 염원을 위하여 같이 가시밭길을 해쳐나가겠는가?”


“민족의 염원을 위하여! 거란을 위하여! 대한을 위하여!”


오른손에 반월도를 들고 사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반월도를 높이 들고 외쳤다.


“거란을 위하여 죽기를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목엽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야율아보기가 높이 들었던 칼로 사슴의 목을 댕강 자르며 외쳤다.


“신인의 제단에 피로서 맹세한 것을 잊지 마라.”


다시 거위를 들고 외쳤다.


“민족을 위하는데 남녀노소의 구분은 없다. 전사가 아닐 지라도 거란을 위하여 죽기를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거위의 목을 댕강 잘라서 그 피로 제단에 이상한 기호를 그렸다.


“선녀의 제단에 피로서 맹세한 것을 잊지 마라!”


팔 부족의 장과 야율아보기가 제단을 향하여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돌아서서 손에 손을 맞잡고 만세를 불렀다.


“거란 만세! 팔 부족 만세! 칸 만세!”


모든 백성이 따라서 만세 삼창을 부르니 그 소리가 목엽산을 울렸다.




4. 통일(統一)



의식이 끝나자 팔 부족장은 각자의 날발로 들어갔다. 이제부터가 이 대회합의 진정한 의식이 진행되는 것이다. 모든 결정은 팔 부족장의 협의에 의거하여 칸이 내리게 되는 것이니 사전 의견 조율이 필요한 것이었다.


야율 부족과 술 부족이야 어차피 지금 거란의 실세이니 야율아보기의 정책에 반대를 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나머지 여섯 부족들이 모두 야율아보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있었다. 원래 부족회의에서 선출한 칸은 임기가 3년이었다. 3년이 끝나면 물러나고 다른 부족장이 칸이 되는 것이 이제까지의 관례였다.


그 관례를 깨뜨린 사람이 바로 야율아보기였다. 무려 9년 동안이나 칸으로 있은 것도 모자라 여섯 부족이 일치단결하여 손만영의 후손인 손만철을 차기 칸으로 추대하자 아예 부족회의를 탈퇴해 버렸다.


워낙 힘으로 상대가 되지 않은 상태라 응징도 못한 채 손만철이 칸으로 행세하고 있었으나, 야율과 술 부족이 빠진 여섯 부족이 추대한 칸이 권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야율아보기는 자체적으로 당이 멸망하고 제후국이 모두 황제를 칭하면서 난립하는 틈새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하북의 북쪽과 산서 일대의 많은 성을 빼앗고 한족을 노비로 삼았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산염(山鹽)을 확보하기에 이르자 거기에서 생기는 막대한 자금을 무기를 장만하고 병사를 키우는데 쏟아 부었다. 힘이 생긴 야율아보기가 다시 거란의 여섯 부족을 모조리 힘으로 굴복시키고 자신을 칸으로 추대하게 하였다.


이런 구원(舊怨)에 이번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손만수까지 잃을 위기에 놓인 손만철은 지금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다른 부족과 연합하여 야율아보기에 대항하려 해도 이미 힘으로 태부족인 상태이니 날발 안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기절했다 깨어난 손만수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란 최고의 씨름꾼인 자신이 어떻게 그깟 사슴 한 마리를 감당 못하여 아버지에게 막대한 짐을 지웠으니 지금이라도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둘이서 울가망한 기분을 달래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밖이 시끄러워지더니 비명소리가 들렸다.


손만철이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호위대장이 호위 몇을 데리고 급히 날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웬 놈들이냐?”


“자객이다. 주군을 호위하라!”


밖으로 뛰쳐나가야 할 궁장군 숙위가 칼을 든 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장막의 입구에서 숙위를 몰아붙이며 서서히 안으로 들어오는 놈들은 모두 눈만 내놓고 새카만 옷을 입고 있었다. 복면을 한 십여 명의 자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부라리며 손만철 부자를 노려보고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손만철이 그들의 복장을 보더니 소리쳤다.


“발해 병사가 아닌가? 발해 병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단 말인가? 날발을 지키던 숙위는 모두 어디에 있느냐?”


손만철이 거대한 반월도(半月刀)를 들고 호위의 뒤에 서서 싸움을 독려하자, 손만수도 호위와 같이 싸움에 가담하였다. 장막 안은 물론 밖에서도 칼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자객 중의 한 놈이 다른 자객과 맞잡이하고 있는 손만철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자 숙위(宿衛) 병사가 몸을 던지면서 겨우 막아내었다. 숙위를 처치하느라 주춤하는 자객을 손만수의 반월도가 목을 베었다.


부족군 중에서도 최정예인 숙위의 무예로도 자객들을 쉽사리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자객들의 무공이 뛰어났다. 손만철 부자의 칼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자객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자객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칼을 맞으면 한 칼을 찌르거나 베었다. 손만철 부자의 몸에도 몇 군데 생채기가 생겼다.


주군 부자의 부상이 심상치 않은 것을 겉잡은 숙위 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죽기를 각오하고 주군을 보호하라!”


원래 거란의 궁장군(宮帳軍)에 뽑히면 말 세필이 주어지고, 말을 돌보고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장정 한 사람을 준다. 궁장군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주군을 호위하는 일에만 전념한다. 밥 먹고 호위하는 일 이외 시간이 날 때마다 무예를 닦는 것이 궁장군의 일과이다. 이런 궁장군이 밀리고 있으니 자객들의 무공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알고도 남았다.


손만철은 아들 손만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만수야!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은 날이다. 여차하면 내가 놈들을 막을 테니까 너는 뒤로 빠져나가라. 집안의 대를 끊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손만수도 아버지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안 됩니다. 차라리 아버님이 뒤로 나가세요.-


-만수야! 젊은 네가 나가야 우리 부족의 미래가 있다. 아비 말을 들어라-


부자가 서로 희생하려고 망설이고, 밀고 들어오려는 자객과 막으려는 숙위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 밖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몇 사람의 거란 병사가 장막으로 뛰어 들었다.


“자객들을 모조리 죽여라.”


갑자기 들이닥친 거란 병사로 말미암아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세가 확연히 한 쪽으로 기울었다. 새로 달려온 거란 병사들의 칼에는 추호의 인정도 없었다. 상대의 무공을 꿰뚫고 있는 듯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각이 지나지 않아서 안팎에서 싸우던 자객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나자빠졌다.


손만철 부자가 그제야 긴 숨을 토해내고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을 때 밖에서 한연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처치하였느냐?”


그러자 안에서 맹활약을 펼쳐서 자객들을 주살한 거란 병사가 반월도를 칼집에 넣으면서 군례를 취했다.


“예, 군사! 한 놈도 남김없이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한연휘가 장막 안으로 들어와서 손만철에게 예를 올렸다. 칸의 군사지만 부족장에게는 깍듯이 예를 올리는 한연휘였다.


“손 대인! 놀라셨지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마침 부족장 회의 개시를 알리려고 오는 중이라 제 때에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한 군사! 고맙네. 한 군사 덕분에 구차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네. 정말 제 때에 잘 와주었네.”


손만철이 예를 올리려 하자 손사래를 쳐서 만류하고 한연휘가 주위를 휙 둘러보고 말했다.


“그것보다 제가 손 대인과 할 얘기가 있으니 주위를 좀 물려주시지요.”


손만철이 눈짓을 하자 손만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장막 밖으로 나가고 둘만 남았다.


“한 군사! 만수 일인가? 그래,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한연휘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손 대인! 사안을 조사한 결과 이놈들의 짓이었습니다. 거란의 내분을 일으키려는 속셈이었던 거지요. 행사를 주관하는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군사, 아닙니다. 열 사람의 숙위가 한 사람의 자객을 감당하기 어려운 일 아닙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손 대인! 그러나 내부 사정을 모르는 백성이 볼 때는 아무래도 아드님의 죄가 크다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 .”


손만철은 이미 이 모든 것이 야율아보기와 한연휘가 꾸민 짓이라는 걸 겉잡고 있었다. 아무리 발해의 병사가 무공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거란 깊숙이 칸의 날발에까지 침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규모 군대라면 모를까 고작 스물 남짓한 숫자로 침입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칸도 아닌 자신을 노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 부자를 죽일 수 있음에도 이쯤에서 그친 것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고 겉잡았다.


“한 군사! 발해의 자객까지 막아 주었으니 내가 협조할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시오.”


“아시다시피 여섯 부족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분은 대인밖에 없기에 무례인 줄 알면서도,….”


“한 군사! 잘 알겠소이다. 내 적극 돕도록 하지요.”


“손 대인! 역시 대인다우십니다. 체면을 세워주어서 고맙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한연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장막을 나서며 성긋이 웃었고, 어쩔 수 없이 대세를 따르기로 한 손만철도 다시 한 번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님! 모두 저 놈들이 꾸민 간계입니다. 이대로 참아야 합니까?”


“만수야! 어쩌겠느냐? 힘없는 정의는 공염불일 뿐인 것을!”


이로서 야율아보기는 거란 팔부족(八部族)을 확실히 장악하게 되었다.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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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존중하나요? 가족을 사랑합니까? 이땅이 좋습니까? 겨레를 위하고 싶은가요? 그럼 이 글을 보세요!


작가의말

출장 중이라 등재가 늦었습니다.

앞으로 제 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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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2 악지유
    작성일
    15.03.31 16:35
    No. 1

    거란의 야율아보기도 등장하는군요.
    분위기가 확 바뀌는 느낌이 듭니다.
    선계에서 다시 인간세계의 이야기로 돌아온 느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방소봉
    작성일
    15.03.31 17:00
    No. 2

    병원에서 막 왔습니다.
    예약 연재 해두니 편하기는 하네요.
    원래 발해의 멸망, 백두산 화산의 진실, 야율아보기의 급사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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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소멸기(倚天消滅記) -백두풍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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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무술, 선술의 경지와 기타 독서에 필요한 사항 +11 15.03.21 1,421 0 -
51 열하나; 6. 마신호리 +4 15.04.03 1,090 18 10쪽
50 열하나; 5. 무사대성 +3 15.04.03 1,097 16 10쪽
49 열하나; 4. 야수사냥 +5 15.04.02 821 19 10쪽
48 열하나; 3. 기문진해 +7 15.04.02 861 22 10쪽
47 열하나; 2. 환영부록 +4 15.04.02 899 18 10쪽
46 열하나; 석실기연 -1. 공간지 +4 15.04.02 1,028 17 10쪽
45 열; 4. 전갈 꼬리 늑대. +6 15.04.01 1,024 18 10쪽
44 열; 3. 바람이 일면 머리를 조심해라. +4 15.04.01 760 20 10쪽
43 열; 2. 바람의 무공 +2 15.04.01 722 18 11쪽
42 열; 조화풍혼결- 1.각풍(覺風) +3 15.04.01 791 18 10쪽
41 아홉; 4. 통일(統一) +5 15.03.31 599 8 1쪽
40 아홉; 3.제물(祭物) +3 15.03.31 648 10 1쪽
39 아홉- 2.위렵(圍獵) +4 15.03.31 708 11 1쪽
» 아홉; 야율아보기 외전 1--1.거란의 전설 +2 15.03.31 1,047 14 32쪽
37 여덟 7. 귀문(鬼門)의 흔적 +3 15.03.30 907 18 10쪽
36 여덟 6. 이화접목(梨花椄木) +3 15.03.30 804 19 9쪽
35 여덟 5. 임상실험(臨床實驗) +4 15.03.30 888 16 12쪽
34 여덟 4. 천인공노(天人共怒) +4 15.03.29 1,014 18 11쪽
33 여덟 3. 옥석구분(玉石俱焚) +5 15.03.29 884 24 11쪽
32 여덟 2. 옥석난분(玉石難分) +3 15.03.29 869 22 11쪽
31 여덟; 위기중중(危機重重)1.여의도사 +3 15.03.29 943 24 12쪽
30 일곱 5. 무소부재 +6 15.03.28 995 22 10쪽
29 일곱 4. 활연대오 +5 15.03.28 871 23 9쪽
28 일곱 3. 경죄중벌 +4 15.03.28 828 27 10쪽
27 일곱 2. 백절불굴 +6 15.03.28 933 22 12쪽
26 일곱; 일겁일시(一劫一試) 1. 견문발검 +8 15.03.27 981 23 8쪽
25 여섯 5. 무형무상(無形無相) +4 15.03.27 998 27 11쪽
24 여섯 4. 수호대(守護隊) +4 15.03.27 1,002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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