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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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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7.01 23:08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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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0
글자수 :
207,658

작성
24.05.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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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글자
11쪽

형제애 (2)

DUMMY

언젠가 스승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었다.


'평아, 도사가 피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나는 고민하지 않고, 내가 무서워하는 단 한 가지 답을 말씀드렸다.


'신선이 되지 못하고 죽는 건가요?'


스승님은 내 대답에 잠시 서글픈 표정을 지으셨다.


'그것도 맞지만, 도사가 가장 멀리해야 하는 건 같은 도사란다.'


'어째서죠?'


'도사란 족속들은 모두 제 잇속밖에 챙길 줄 모르기 때문이란다. 보거라, 자기 혼자만 불로장생하겠답시고, 몸에 좋다는 것들을 모두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앞으로 다른 도사를 만나거든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필시 네 것도 탐을 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영감님은 제 걸 탐내지 않잖아요.'


'그야 네가 눈을 큼직하게 뜨고 있지 않느냐.'


주름진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단다. 자기 몸이 귀한 줄 아는 자일수록 겁이 많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혹시 영감님도 겁이 많나요?'


'말해 무엇하겠느냐, 허허.'


스승님은 한바탕 웃으시더니,


'이제부터 네게 겁쟁이들이나 쓰는 술법을 가르쳐주마. 직접 나서지 않고도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라며 가르쳐주신 게 괴뢰술(傀儡術), 즉 꼭두각시 병정을 만드는 술법이다.


괴뢰술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나도 겁쟁이였던 모양인지, 직접 몸을 부딪혀 싸우는 것보다 뒤에서 조종을 하는 게 더 좋더라고.


내가 나서서 손을 쓴 건 그때 그 꽃 도둑놈이 유일했다.


아무튼, 나는 괴뢰술로 밤낮으로 날 지켜줄 듬직한 호위병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진법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일 수밖에 없다. 진법으로 적을 함정에 빠뜨리고 난 뒤에는 마무리를 지을 공격수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방 구석에 놓인 갑옷이었다. 갑옷은 장식용이라기엔 무척 견고해보였고, 온 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형태라서 안에 사람이 한 명 들어가 있어도 모를 듯했다.


"리리."


나는 뜨개질 중이던 릴리의 드레스 자락을 잡아당겼다.


"네, 도련님."


"저게 뭐야?"


"네? 갑옷 말씀이신가요?"


"응."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사내아이의 관심사가 뻔한 게 아니겠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도련님의 조상님 중에서 이반 에스테르지라는 훌륭한 기사분이 계셨어요. 저 갑옷은 이반 님께서 아끼시던 물건이랍니다."


"장식품이야?"


그녀는 내가 제법 어려운 어휘를 구사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랍니다. 관리를 꼼꼼하게 해왔기 때문에, 훗날 도련님께서 용맹한 기사가 되신다면 직접 입어보실 수도 있을 거예요."


장식품이 아니라면 써먹을 수 있겠는걸.


조상님의 유품이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이걸 써먹지 않으면 않으면 내게 훗날이라는 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갑옷을 움직이게끔 하는 건 쉽다.


관건은 갑옷에 얼마만큼의 힘을 부여하느냐다. 가능한 한 많은 힘을 불어넣으면 좋겠지만, 지금의 내겐 나눠줄만한 도력이 없다.


그럴 힘이 있었다면 그 맹랑한 녀석을 현장에서 숯덩이로 만들어버렸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마침 힘이 넘쳐서 주체가 안 되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거든.



**



"콜린 님이요?"


"응."


릴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그 시끄러운 할아버지를 다시 찾으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 같다.


"혹시 아픈 곳이 있으신가요?"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죄송하지만 콜린 님께서는 담당 교구를 관리하느라 바쁘셔서, 도련님께서 아프실 때만 오실 수 있어요."


"불러 줘! 불러 줘어!"


아기의 몸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막무가내로 떼를 써도 용납이 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드러눕는 것에도 제법 익숙해져서, 정말로 퇴행중인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어쩌죠?"


하녀들이 서로 곤란한 눈빛을 교환했다.


"···주교님께 입궁 요청을 드리세요."


릴리가 결심한 듯이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주교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뵙고 싶어하시는 것일 수도 있어요. 도련님 주변에는 의지할만한 어른이 많지 않으니까요."


한 시간여가 지나자, 백발의 노인이 잰걸음으로 등장했다. 노인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홰홰 돌리며 물었다.


"공자님께서 이 늙은이를 만나고 싶어하셨다는데 사실인가?"


"네, 주교님의 성함을 몇 번이나 부르셨습니다."


"허허, 그것 참."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억지를 부린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는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로 기뻐해주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였다. 나는 그의 사제복을 붙들고 늘어지며 비장의 단어를 외쳤다.


"콜린, 기도해 줘!"


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릴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픈 곳은 없다지 않으셨나?"


"예. 무척 건강하십니다. 다만 도련님께서는 주교님과 함께하신 시간을 일종의 놀이로 인식하신 모양입니다."


"허어··· 그래, 안 될 게 무엇이더냐? 공자님을 위해서라면 내 몇 번이건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지."


노인이 기도를 올리려고 두 손을 모았을 때였다. 내가 구석에 세워진 갑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다 해 줘!"


"저기요? 저기에 대관절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저거 내 친구야!"


"고, 공자님···!"


릴리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러나 노인은 유쾌하게 받아주었다.


"저런, 공자님의 기사가 용맹하게 싸우다 부상을 입은 모양입니다. 좋습니다. 내 솔리타스 님께 기도를 올려드리지요."


그는 목청을 한 차례 다듬더니, 우렁차게 소리쳤다.


"금속의 어버이 솔리타스시여! 당신의 견고함과, 굳건함과, 불변함과, 반석 같은 지혜와, 닳지 않은 자비에 간구하나이다!"


여전히 변함없는 성량이다.


변함없는 체력이고.


그날 콜린은 날 살리겠다며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술법을 퍼부었다. 그의 몸 안에는 나와는 결이 다른 에너지가 충만했다.


영롱한 서광이 갑옷 위에 내리쬐었다. 갑옷 안쪽에 새겨둔 술식이 외부 에너지로 충전되기 시작했다. 내가 꺄륵 웃으며 박수를 치자, 노인은 신이 나서 목소리를 한결 더 높였다.


"오오, 복되도다!"



**



"낚였어."


렉스가 말했다.


"아니."


토린이 부정했다.


"낚였다니까?"


렉스가 낚싯대를 과시하듯이 흔들어보였다. 하지만 토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줄이 느슨해. 골드 피쉬가 낚였다면 줄이 훨씬 팽팽했어야지."


두 사람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렉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때 의뢰를 받는 게 아니었는데."


"그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여든 번째다, 렉스."


토린이 즉각 핀잔을 주었다.


"꼬맹이 이름이 뭐였지? 이덴이었나? 이덴 에스테르지?"


"맞아, 이덴 에스테르지."


토린이 무심한 투로 대답했다. 끼룩 소리를 내며 갈매기 한 마리가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처음부터 난 좀 수상했어. 젖도 못 뗀 꼬맹이를 처리하기만 하면 오만 바트를 주겠다니, 아무리 공작의 아들이라지만 액수가 말이 안 되잖아."


"처음부터 수상했으면 얘기 좀 하지 그랬냐."


"하려고 했어. 대출금만 아니었어도."


두 사람은 툴툴거리며 낚시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렉스가 바다에 드리운 건 낚싯대가 아니라 창이었다. 그는 무인도에 고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무기를 낚싯대로 쓰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토린이 물고기를 담은 통은 투구였다. 그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던 투구는 이제 비린내가 풀풀 나는 바구니로 전락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들이 모든 걸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여섯 달 전, 공작가의 삼남을 암살하기 위해 별궁으로 침투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막상 이덴의 궁에 도착했을 때 두 사내를 맞이한 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였다.


그들은 임시 거처로 돌아와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았다. 렉스가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장작에 불을 붙이자, 토린은 잡아온 생선을 나뭇가지에 꿰어 걸어두었다.


"있잖아, 토린."


렉스가 젖은 몸을 말리며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우리는 지금 엄청나게 강력한 환영마법 안에 갇힌 거잖냐."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환영마법은 결국 정신에 작용하는 거란 말이지."


"그래서?"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정신이 작용하지 않는 방식······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해서 충격을 주면 환영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


"벌써 잊은 거냐? 우리 같이 안해본 게 없잖아. 모래성을 10층 높이로 쌓아도 봤고, 닷새 동안 굶어도 봤고, 섬을 뒤로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고 - "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 신선하긴 해도 충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


"그럼 또 뭘 해보자고?"


"···내가 절대 안 할 거라고 다짐했던 무언가."


렉스가 손을 뻗어 낚싯대를 쥐었다. 토린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토린은 생선 비린내가 나는 투구를 슬그머니 끌어당겼다.


"렉스, 진정해."


"난 지금 어느 때보다 침착해, 토린."


"아니, 넌 정상이 아니야. 너무 여기서 오래 지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게 문제야. 여기서 너무 오래 지냈다는 거."


렉스가 창대 끄트머리로 토린을 겨누었다. 토린은 한숨을 푹 쉬며 투구를 뒤집어썼다. 갯지렁이 한 마리가 머리카락을 타고 꾸물꾸물 늘어졌다.


"야, 진짜 후회할 일 만들지 마라."


"난 뭐라도 해 보고 후회할래. 어차피 후회는 할 거니까."


렉스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토린은 오른손을 내밀며 겨루기 자세를 취했다. 강렬한 투기가 두 사내를 사로잡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이 발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둘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주먹만한 점으로 빨려들어가더니, 낯익은 풍경을 토해냈다.


차가운 돌바닥.


창문 안으로 뻗어 들어온 담쟁이덩굴과, 그 위로 무수하게 떠있는 별.


반년 전 그때와 똑같았다. 그들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무인도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때와 달라진 풍경이 존재했다. 거대한 갑옷이 우뚝 서서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투구 언저리에서는 붉은 안광이 횃불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유령처럼 하얀 아이가 갑옷의 어깨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이덴 에스테르지,


의뢰목표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육 개월 동안의 감금,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갑옷,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종하는 악마의 자식.


바야흐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토린, 이 미친 환영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


"낸들 알겠냐!"


쿵.


갑옷이 커다란 미늘창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판석이 두 조각으로 쪼개지며 튀어오르자, 렉스와 토린은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제는 의뢰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그들은 창과 검을 내던지고는, 뒤로 돌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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