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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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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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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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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658

작성
24.05.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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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형제애 (1)

DUMMY

나는 하녀들의 수다 속에서 형제들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얻었다. 그들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맥락으로만 유추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내게는 두 명의 형이 있다.


큰형의 이름은 마벨 에스테르지.


마벨에 대한 하녀들의 평가는 잘생김, 콧날이 높음, 목소리가 멋짐, 짧게 자른 오렌지색 머리카락이 섹시함 등이었다.


인물평이 외모에만 치중되어 있는 건 정보의 원천이 오염되어 있어서 그렇다.


마벨은 나보다 일곱 살이 많았고, 현재는 기사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둘째 형의 이름은 크리스 에스테르지였다.


마벨 때보다 크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하녀들의 목소리가 한 톤은 더 높았다. 그녀들의 간증에 따르자면 그는 그야말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각성 능력의 이름이 '베리타스'라니, 너무 멋지지 않아요?"


"에스테르지 가문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들 하더라고요."


"게다가 성격은 얼마나 또 착하신지 몰라요. 다정하고, 친절하시고, 목소리도 나긋하시고···."


"용모가 정말 수려하세요. 저는 공자님과 눈이 처음 마주쳤을때 숨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요."


외모, 재능, 성격.


그야말로 삼위일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친구가 현재 유력한 공작위 계승후보였다. 나이로는 둘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나는 공작위에 딱히 욕심이 없다. 그래서 둘째 형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응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내 목표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살아남는 것이지, 권력을 쟁취하는 게 아니다. 권력 같은 건 절맥이 없는 자들이 누리는 사치품 같은 거지.


다만 이번 생에서는 가문 덕을 보고 싶기도 하다. 노인과 함께 천하를 주유하는 건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드넓은 땅의 어딘가에 박혀있을 영물을 발품 팔아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싶긴 했거든.


"셋째 도련님은 어때요?"


공자들에 대한 담론은 자연히 내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도련님은 귀여우시죠."


"귀여우세요."


"너무 하얘서 털뭉치 같아요."


그래, 아기 주제에 무슨 진지한 평가를 바라겠냐.


나는 대화를 엿듣기 위해 펼친 지청술을 거둬들였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강보에 감싸인 꼬물이일 뿐이다. 누구도 내게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으니, 열심히 도력이나 모으면 된다.


먹고, 자고, 싸고, 모으고.


그런 나날이 두어 달 반복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불쑥 방에 들어왔다. 요정처럼 깜찍한, 어딜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미모를 가진 아이였다.


때마침 하녀들은 방을 비운 상태였다. 아이는 내가 누운 요람으로 다가오더니, 머리맡에 서서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네가 이덴이구나?"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아기 흉내를 내느니 입을 다물기로 방침을 정해둔 상태였거든.


"나는 크리스 에스테르지라고 해. 네 둘째 형이란다."


그 친구로군, 에스테르지 가문 사상 최고의 천재.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난 인물이다 싶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뿜어내는 기세도 청명하기 그지없다.


스승님이 말씀하신 선재(仙才)란 실은 이런 친구가 아닐까?


"어머니는 널 만나러 가는 걸 반대하셨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 어떻게든 동생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궁을 빠져나왔지."


그가 천진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웃을 때마다 오렌지색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흔들렸다.


"아직 말을 하진 못하나봐? 그렇지?"


"······."


"아참, 선물을 가져왔어."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끄집어내 수줍게 앞으로 내밀었다. 앙증맞은 손바닥 위에 작고 동그란 과자가 놓여있었다.


"먹어봐, 이덴."


이걸 먹으라고?


"어서."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웬만한 물건이라면 그냥 받고 말겠지만, 선물이 하필 먹거리였다. 난 아직 이유식을 떼지 못했거든.


"어서, 이덴."


그가 나를 재촉했다.


"어서 처먹으라니까!"


그가 내 턱을 꽉 쥐더니, 과자를 억지로 입 안에 쑤셔넣으려 들었다. 그는 이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쯤에서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얏!"


나는 녀석의 손가락을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세게 비틀었다. 녀석은 손가락을 부여쥐며 뒤로 물러서더니, 나를 죽일 듯이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감히 날 다치게 했겠다, 하찮은 버러지 주제에!"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 같다. 아니, 귀신이 들린 것 같다.


"후회하게 될 거야, 이덴. 약을 먹고 죽는 게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알았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모두 네가 자초한 거라고!"


녀석이 눈을 희번득거리며 협박을 늘어놓았다.


때마침 문 밖에서 하녀들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녀석은 마치 미리 계획했던 것처럼 발코니를 통해 잽싸게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놈의 오렌지빛 뒤통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쩌다가 축생도로 굴러 떨어지는 걸 면했나 싶었는데, 실은 인간과 똑같이 생겼을 뿐인 짐승으로 태어난 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되먹지 못한 짐승이 내 형제일 리가 없잖아.


그나저나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모두 자초한 것이라니, 그거야말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만.



**



크리스가 천재라는 말은 이제 의심하지 않겠다. 불과 나이 다섯 살에 자기 동생을 암살할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다니, 그런 재능이 흔할 리가.


하지만 천재성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는 십 년만에 화신경도 찍었고, 천하제일인이라던 꽃 도둑놈도 이겼잖아?


관건은 그놈이 진짜 천하제일인인지, 주둥이만 나불대는 놈인지인데.


다른 사람들과 투닥거려본 경험이 적다보니 내 위치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모르겠다.


"어머!"


릴리가 기저귀를 들추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에구, 우리 도련님 좀 봐! 기저귀를 또 갈아드리게 생겼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다 성장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랍니다. 자아, 가만히 있어보기예요?"


······마음이 꺾인다.


누워서 똥기저귀나 만들고 있노라면 차라리 꽃 도둑놈하고 다시 싸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쩔 수 없지. 인간의 존엄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수밖에.


급선무는 크리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단 상황 자체는 내가 불리하다. 전생의 지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똥오줌도 못 가리는 미성숙한 몸으로는 아무리 지식이 있어봤자다.


혀가 짧아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음식은 주는대로 받아먹어야하고, 활동반경은 좁은 방 안으로만 제한되며······.


반면 녀석은 가문의 총애를 받는 유망주인데다, 한 번 데여봤으니 다음 시도는 보다 신중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방법이 없지는 않아.


"리리."


그녀는 기저귀를 치우는데 열중해서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리리!"


"어머나! 벌써 제 이름을 외우셨네요! 영특하기도 하셔라."


"리리, 저거···!"


"네? 저거라니요?"


그녀가 내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버지인 드렉 에스테르지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공작 전하를 뵙고 싶으신가요?"


"아니, 저거! 저거!"


나는 팔을 열심히 휘저으며 떼를 썼다.


"네? 그림을 가까이서 보고 싶으시다구요?"


"아니야!"


"도련님, 괜찮으세요? 지금 뺨이 엄청 빨갛거든요."


내가 원하는 건 그림을 그릴 종이와 필기도구였다. 그런데 빌어먹게도 그 단어를 아직 배우지 못했다. '종이'와 '필기도구'!!


때문에 지금까지 배웠던 약 스무 개 내외의 단어만을 조합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뜻을 표현해야하는데, 왜 나는 다시 태어나서 이 고행을 자처하고 있을까?


나는 약 두 시간 동안 떼도 쓰고, 바닥에 누워서 팔다리도 휘저어보고, 온갖 추태를 부린 끝에 마침내 종이와 그림도구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기쁘진 않았다. 원하는 건 얻었으나 더 중요한 걸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이상하다, 원래는 이런 분이 아니셨는데······."


"뭘 잘못 드신 거 아닐까요? 오늘따라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신 것 같아요."


나는 하녀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펜을 쥐었다. 난생 처음 쥐어보는 필기도구는 생김새가 붓에 비해 훨씬 작고 섬세했다.


때문에 잉크의 양이 넘치거나 필압이 과하거나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첫 번째 시도는 완전히 망해버렸지만, 릴리가 눈치 빠르게 다른 종이를 가져다준 덕에 또 떼를 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는 보다 신중하게, 원하는 형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저게 대체 무슨 그림이죠?"


"혹시 도련님께 저런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을 보여드린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전혀요."


나는 장장 한 시간여 동안 아이답지 않은 집중력을 발휘해서 한 장의 그림을 마무리했다. 완성된 그림은 상형문자로 가득찬, 고도의 상징이 담긴 도해였다.


저쪽 세계 말로는 '부적'이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이곳 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이 부적은 '수호부(守護符)'라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액운을 쫓아내는 용도로 쓰이나, 도력이 높은 도사가 만들면 침입자를 퇴치하는 술법의 매개가 된다.


"이거, 저기."


"네?"


"저기이!"


"그림을 저기 벽에다 붙여 달라고요?"


"응!"


이번에도 릴리가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내 부적을 받아 아버지의 초상화 옆에 조심스레 붙여두었다.


전생의 힘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호부 한 장 만으로는 큰 재미를 보기 힘들다. 건방진 꼬맹이에게 진정한 지옥을 맛보여주려면 가능한 한 많은 부적이 필요했다.


나는 자리를 틀고 앉아 부적을 척척 그려나갔다. 하녀들은 장난감이나 젖병 따위로 주의를 돌리려고 노력했으나, 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들이 '마음씨가 다정하고 친절한 공자님'이 얼마나 흉악한 놈인지 몰라서 그래. 내가 죽어버리면 당신들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텐데, 그런 건 바라지 않을 테지.


근육이라고는 없는 아기의 팔이지만, 도력으로 보조하니 장시간의 작업을 버틸만했다. 작업이 거듭될수록 요령이 붙어서 속도도 빨라졌다.


"다 되쪄."


결국 나는 방도 모자라서 복도까지 부적으로 도배해버렸다.


"도련님, 어쩜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실까요. 이러다 정말로 화가가 되실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다 노셨으면 저희가 깨끗하게 치워드릴게요, 괜찮으시죠?"


"앙대!"


나는 짧은 혀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단호함으로 말했다.


"그럼 앙대!"


"그림은 내일도 그리게 해드릴게요, 네?"


"앙대! 앙대!"


나는 도사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렇게나 갖다붙인 게 아니다. 칼처럼 정밀하게 방위를 따져 붙인 것이다. 각각의 수호부는 저마다의 방위에서 기의 흐름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일정하게 유도된 기의 흐름은 하나의 진법이 되어 건물 전체를 아울렀다.


이름하야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


탈출구인 생문(生門)과, 막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사문(死門)은 복도의 양 끝단으로 설정했다.


그 말의 의미는, 내 허락 없이 이 건물을 들락거리면 죽을 때까지 길을 헤매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 작성자
    Lv.71 소설판독기
    작성일
    24.05.24 18:46
    No. 1

    잘보고갑니다 ㅎㅎ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이기준
    작성일
    24.05.24 21:51
    No. 2

    격조했습니다 :)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완지
    작성일
    24.06.28 07:51
    No. 3

    첫째가 일곱살이고 둘째가 잘 해야 5살일텐데 무슨 눈아 마주쳤을 때 숨이 막히니마니 천재니.... 애기들 데리고 뭘....

    찬성: 22 | 반대: 2

  • 작성자
    Lv.60 투무르
    작성일
    24.06.28 21:16
    No. 4

    그리고 다음 날 리리는 실종되고 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숫자하나
    작성일
    24.06.29 21:27
    No. 5

    잉? 그래도 10대는 될줄 알았더니 잉? 물론 그때 10대가 이뤄야할 교육을 미리 땠을정도면 영지바깥에서도 신동소리 들을만 하긴 한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동글슬라임
    작성일
    24.06.30 01:51
    No. 6

    아니 판타지소설에 왜 이렇게 까지 태클이.... 무협지만봐도 네댓살에 천무지체니 선골이니 신동이니 엄청 나오지 않나요

    찬성: 0 | 반대: 2

  • 작성자
    Lv.88 k5263
    작성일
    24.06.30 01:54
    No. 7

    외모평가는 좀... 애들 나이가 많이 어린데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2 어쩌다빌런
    작성일
    24.06.30 02:46
    No. 8

    하녀들도 어린가 보죠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서당강아지
    작성일
    24.06.30 03:07
    No. 9

    7~9살 정도한테 섹시하다, 목소리가 멋지다(변성기도 한참 멀었는데!), 용모가 수려해서 눈 마주치니 숨 멎을 뻔했다- 하는건 이상하죠. 윤리 문제를 떠나서 그냥 상식적으로 이상해요. 띠용띠용이에요.
    무협에서 네댓살에 선골 천무지체 어쩌구 하는 거랑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7 에스텔
    작성일
    24.06.30 19:36
    No. 10

    네댓살짜리가 천재니 어쩌니보다.. 지금 주인공 나이가 따져보니 6개월 정도인데 저 정도 대응을 보이는게 넘 신기함... 중단전을 만들어서 그런가.. 저정도 육체적 대응을 할 수 있나 싶어서 걸리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4.07.01 12:08
    No. 11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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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과 얼음의 노래 (1) +5 24.05.29 6,757 192 11쪽
7 뜨겁고 화끈한 것 (3) +8 24.05.27 6,793 195 9쪽
6 뜨겁고 화끈한 것 (2) +6 24.05.26 6,967 211 11쪽
5 뜨겁고 화끈한 것 (1) +7 24.05.25 7,304 217 9쪽
4 형제애 (2) +5 24.05.24 7,678 198 11쪽
» 형제애 (1) +11 24.05.23 8,058 201 12쪽
2 윤회의 굴레 (0) +12 24.05.22 8,566 218 10쪽
1 상서로운 꽃 (0) +17 24.05.21 9,429 2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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