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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7.01 23:08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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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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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0
글자수 :
207,658

작성
24.05.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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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글자
10쪽

윤회의 굴레 (0)

DUMMY

몸이 산 채로 얼어붙고 있다.


이 느낌은 익숙한 것이다. 나는 평생 이 감각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새로운 감각이 덧씌워졌다. 피부가 조각조각 찢어지고, 바늘로 온 몸을 성기게 꿰어놓은 듯한 느낌.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걸 깨달은 게 이쯤이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넘겨지며 강보에 휘감기는 중이었다.


"도련님이 얼음처럼 차가워요!"


"어서, 난로에 불을 지펴라!"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날 살리려 든다는 것만은 알겠다.


"치유사! 치유사는 뭘 하고 있는 게냐?"


"콜린 님은 마님께 가 계십니다···!"


"마님은 늦었어! 와서 산 아이부터 살리란 말이다!"


누군가가 악을 질렀다. 다급한 발소리 속에 여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섞여있었다.


지금 내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절맥은 폭주하고 있는데, 정작 그것을 억누를 도력이 없었다.


흩어진 도력을 수습하려고도 해봤지만, 갓 태어난 몸에는 아직 기의 구심점이 될만한 단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콜린 님, 여깁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노인은 내 머리맡에 선 중년인과 급박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관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자연계열의 각성 능력이오. 공자님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온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소. 하지만 설명은 나중에 하고, 우선 숨만 붙여두시오!"


"각성 능력은 질병이 아닙니다. 신성마법으로도 질병이 아닌 것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됐고, 무슨 수를 쓰든지 살려만 내시오!"


노인이 팔을 걷어부쳤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회의적으로 지켜보았다.


못 살린다니까, 설령 우담화가 다시 핀다고 한들 한음절맥을 치료한다는 건 불가능해.


"금속의 어버이 솔리타스시여!"


노인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의 성스러운 이름에 간구하나니, 부디 이 작고 보잘것없는 영혼을 돌보소서. 견고함과, 굳건함과, 불변함과, 반석 같은 지혜와, 닳지 않은 자비로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그때였다. 머리 위가 환하게 밝아지는가 싶더니, 한 줄기 찬란한 서광이 이마에 내리쬐었다.


이건 대체 무슨 술법이지?


절맥이 치유된 건 아니다. 상황은 한 치도 나아진 게 없는데, 고통만 기가 막히게 가셨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도력과는 확연히 다른 성질의 힘이 몸 안에 흘러들어왔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힘을 단전으로 유도했다.


"공자님께서 차도를 보이고 계세요!"


"조용, 집중을 방해하지 말거라."


정교한 작업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망치와 끌로 살얼음 위에 글자를 새겨넣는 수준의 난이도랄까.


본래 새롭게 기의 통로를 만드는 일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천천히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장 이 자리에서 십 년치의 작업을 해내야만 했다. 어떻게든 기가 모이는 거점을 만들어내야만 절맥에 목줄을 채울 수 있었다.


낙관적인 전망을 몇 가지 해보자면 그래도 내가 이 짓거리를 처음 해보는 게 아니라는 점.


둘째로는 갓 태어난 덕분에 내 몸의 모든 기혈이 팽팽하고 탱탱해서, 지금 단전을 만들어둔다면 평생에 다시 없을 기연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점이다.


"오오, 솔리타스시여!"


아씨, 깜짝이야.


"이 작디작은 생명의 몸과 마음이 빛의 영역으로 나올 수 있게끔 인도하소서! 당신의 은총을 갈구하나이다! 당신의 기적을 바라나이다!"


노인의 술법은 지금은 소음공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는 힘이 아니라 섬세함의 영역이다.


"응답하소서!"


···환장하겠군, 절맥보다 더한 복병이 있을 줄이야.


집중해야 한다. 잠깐이라도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코앞까지 다가온 기연이 날아버릴 위기니까.


나는 노인이 빚어내는 소음과 몇 시간여 동안 악전고투를 벌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중단전에 작은 기의 거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축복을 내리소서!"


"콜린 님, 이제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도련님께서 노려보고 계세요."


"고생하셨소. 그대 덕분에 공자님만이라도 살릴 수 있었소."


나는 하녀들의 손에 들려 요람으로 옮겨졌다. 하녀들은 체온을 높이려는지 나를 몇 겹의 이불로 꽁꽁 둘러쌌다.


한 숨 돌리자 전생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디밀었다.


죽기 전에 보았던 광경들··· 땅바닥을 뒹굴던 우담화의 꽃대와, 나무가 우거진 노인의 봉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나쁜 기억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선이 되지 못한 영혼은 윤회의 굴레를 짊어지게 된단다.'


'혹시 아느냐. 다음 생에는 내가 네 제자가 될런지, 허허허.'


스승님은 내게 삶이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다.


세상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도.


"상태가 많이 나아지신 것 같네요."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일까?


그렇다면 바라는 건 많지 않다. 그저 나를 버리지만 않으면... 볕을 가릴 지붕과,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기만 하면 된다.


"좀 주무시겠어요?"


고개가 자꾸만 모로 기울어진다. 미성숙한 몸이 휴식을 원하고 있다.


나는 의식을 놓기 전에 생각했다. 만약 혈육의 정이라는 걸 느껴볼 수 있다면, 이번 생은 그것만으로도 살아볼 가치가 있겠다고.



**



콜린이라 불리는 노인은 그 후로도 네댓 차례나 더 찾아왔다. 그때마다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며 술법을 걸어댔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그의 도움이 필요가 없었다.


노인도 아는 거 같기는 했다. 방문을 거듭할수록 목소리에서 맥이 빠진달까,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달까.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노인은 붉은 머리 여인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여전히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맥락으로 의미를 유추해볼 순 있었다.


"도련님의 몸이 차가우세요. 어째서 신성마법으로도 차도가 없는 걸까요?"


"말하지 않았느냐. 각성 능력은 질병이 아니야."


"하지만 그 능력이 도련님을 잡아먹고 있는데도요?"


"그래서 강한 능력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지. 그래도 당분간 공자님 걱정은 안 해도 될 게야."


"어째서요?"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공자님의 내면에 다른 종류의 각성 능력이 깃들어있는 것 같더구나. 어쩌면 크리스 공자님과 비견될 수 있을지도 모를······엄청나게 강력한 힘 말이다. 신성마법을 걸어드릴 때마다 마치 드넓은 호수에 돌을 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힘이 공자님을 지켜주는 한 내가 필요할 일은 없을 게다."


노인은 여인과 대담을 마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옆에 있을 때는 이만저만 시끄러운 게 아니었는데, 막상 안 보이니 아쉽기는 했다. 그의 술법에 대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거든.


중단전을 개통한 건 예상했던대로 기연으로 돌아왔다. 도력이 쌓이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주변의 기가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가 노인에게 술법을 배운 기간은 십 년 남짓이었다. 나는 십 년만에 등선경의 바로 아래 단계인 화신경(化身境)에 도달했다.


'내가 무어라 했느냐. 널더러 선재(仙才)라고 하지 않았느냐.'


스승님은 화신경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속도라면 십 년을 오 년까지 줄여볼 수 있을 듯했다.


정보를 얻는 일도 게을리할 순 없었다. 이곳은 단지 언어만 낯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생소했다.


서역(西域)의 나라일까?


신강의 사막을 건너 서쪽으로 쭉 가면 눈이 파랗고 머리색이 노란 인간들이 모여사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파랗고 노랗기만 한 게 아니었다. 형형색색 울긋불긋했다.


어쩌다가 거울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변한 게 없었다. 절맥증 환자 특유의 하얀 색 말이야.


머리카락도 하얗고, 눈썹도 하얗고, 피부도 창백하다못해 병약해보일 지경으로 희기만 하다.


이게 색깔만 이런 게 아니라 만지면 실제로 차갑다는 것이 소름이지.


"도련님은 머리카락이 참 예쁘세요."


"정말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눈송이처럼 흴 수가 있어요?"


다만 하녀들의 견해는 다른 듯했다. 미적 관념이 뒤틀려있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태어난지 석 달이 지나자, 하녀들은 내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육을 도맡은 건 첫날 나를 재워주었던 붉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도련님, 제 이름은 릴리예요. 따라해보시겠어요? 릴리."


"리리."


"어머, 정말 잘하시네요! 다시 해보시겠어요?"


"···리리."


"이번에는 도련님 차례예요."


여인이 손가락으로 내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덴 에스테르지."


"이뎅······."


"에스테르지!"


"에으에으···."


"와, 도련님은 천재이신가봐요!"


이덴 에스테르지. 이게 내 이름인가보다


평생 비슷한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혀를 어찌나 굴려야하던지 혓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야.


"그럼 이번에는 이쪽을 보시겠어요?"


릴리가 손을 뻗어 벽에 걸린 초상화를 가리켰다. 초상화에는 근엄한 표정의,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드렉 에스테르지."


"드래···."


"에스테르지, 도련님의 아버님이세요. 북부 에스테르지령을 다스리는 공작 전하시랍니다."


'공작 전하'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그녀의 얼굴에 뿌듯한 빛이 가득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이 내 아버지임을 깨달았다. 공작은 아버지의 직함을 가리키는 단어라는 것도.


그것이 정확히 얼마나 높은 직위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작 아기 하나 눕히는 방이 대궐처럼 넓다거나, 촛대나 탁자 등의 자잘한 집기에도 금을 처덕처덕 발라둔 걸 보면 태수에 버금가는 권력자라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도련님은······."


그녀가 손가락을 세 개 펴보였다.


"공작님의 셋째 아드님이셔요."


나는 여전히 그녀가 하는 말을 모른다. 그러나 곧게 펴진 세 개의 손가락이 썩 좋은 의미 같지는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91 너드아재
    작성일
    24.06.27 09:06
    No. 1

    결계까지 준비한 곳을 천하제일인이 이유없이 찾아옴.
    그리고 허접하게 죽음.

    찬성: 13 | 반대: 3

  • 작성자
    Personacon 숫자하나
    작성일
    24.06.29 20:08
    No. 2

    백색증이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장붕
    작성일
    24.06.29 22:28
    No. 3

    공후백자남은 원래 중국에서 사용하던 작위이긴 한데... 뭐 주인공 사는 곳에선 안 썼을 수도 있지만

    찬성: 1 | 반대: 2

  • 작성자
    Lv.72 어쩌다빌런
    작성일
    24.06.30 02:37
    No. 4

    자칭 천하제일인이 허접하다기 보다 도사가 인간이 닿을 수 있는 끝자락의 도술경지였다는 거 같은데욥?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1 서당강아지
    작성일
    24.06.30 03:02
    No. 5

    우리야 한국어로 읽고 있지만 언어가 다르다잖아요. 주인공이 모르는 언어이지만 한국어로는 공작이라고 표현되는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타타타멧
    작성일
    24.06.30 09:17
    No. 6

    무협이랑 선협은 파워스케일이 달라서 어쩔수없음
    무협 천하제일인이 선협가면 범부인게 불편하면... 안읽으면됩니다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97 에스텔
    작성일
    24.06.30 19:25
    No. 7

    ....3개월 아기에게 말을 가르치고 그걸 해내요? 보통 적어도 8개월은 지나야 겨우 엄마 한마디 하는데..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81 구다알
    작성일
    24.06.30 22:01
    No. 8

    원래 환생트럭은 허접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4.07.01 11:59
    No. 9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운동좀하자
    작성일
    24.07.01 16:35
    No. 10

    에으에으 가 왤케 웃기고 재밌지? 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운동좀하자
    작성일
    24.07.01 16:39
    No. 11

    3개월된 아기에게 하녀들이 장난삼아 말을 갈켰고, 애가 천재인걸 알곤 더 많은걸 갈켜주는거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기에게 어른들이 자기도 모르게 계속 말걸게 됨. 고작 1개월된 아기테도 “엄마 해봐, 엄마!”라고 하게 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Vegabond
    작성일
    24.07.01 22:53
    No. 12

    글이 맘에 안들면 안읽으면 되는데 굳이 쳐읽고 댓글로 비아냥댐. 현실에서의 지 허접함 때문에 이런식으로라도 자존감 채워야됨.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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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막내도련님이 도술로 다 씹어먹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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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과 얼음의 노래 (1) +5 24.05.29 6,757 192 11쪽
7 뜨겁고 화끈한 것 (3) +8 24.05.27 6,794 195 9쪽
6 뜨겁고 화끈한 것 (2) +6 24.05.26 6,968 211 11쪽
5 뜨겁고 화끈한 것 (1) +7 24.05.25 7,305 217 9쪽
4 형제애 (2) +5 24.05.24 7,680 198 11쪽
3 형제애 (1) +11 24.05.23 8,059 201 12쪽
» 윤회의 굴레 (0) +12 24.05.22 8,570 218 10쪽
1 상서로운 꽃 (0) +17 24.05.21 9,433 2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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