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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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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삼나무
작품등록일 :
2014.11.03 17:08
최근연재일 :
2014.11.03 17:2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664
추천수 :
127
글자수 :
39,922

작성
14.11.03 17:23
조회
470
추천
14
글자
9쪽

에필로그

DUMMY

네가 사라지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 동안 나는 수험생의 신분으로 수능을 봤고, 지금은 점수를 기다리며 한량처럼 살고 있는 중이다. 수능은 물론 망쳤다. 애초에 좋은 대학에 가기도 무리였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대학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지방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하고 있다.


닫아놓은 창 밖은 온통 하얬다. 오늘도 눈이 많이 내리는 모양이다. 하얀 눈, 너처럼 하얀 눈. 아직도 네 생각이 나면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 눈이 펄펄 내리던 날 나타난 너 때문에 이제는 매 해 겨울이 되면 너를 떠올리게 생겼다. 말도 없이 사라진 너를 원망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미안한 게 더 많아서 결국 자책만 하게 된다. 그날 네가 옷을 갈아입은 이유가 있었을 텐데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그날 너를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그냥 처음부터 너를 울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송두리째 시큰거렸다. 우연히 내 방에 왔다가 삼 년 동안 울기만 하고 가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내가 미워서 갔을 거다. 내 폭언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너무 싫어서. 나는 모니터 어느 한곳에 의미 없이 시선을 두고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느리게 한숨을 내쉰다. 순하기만 한 너를 내가 너무 힘들게 한 것 같다.


"문성현! 너 수능 봤다고 이렇게 거지처럼 살 거야? 수능도 잘 못 봤으면서! 어?"


청소기를 들고 나타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책상 위의 다 먹은 컵라면과 빈 커피 캔, 아무렇게나 던져진 젓가락들 때문이었다. 나는 한숨을 팍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갔다 올게."

"눈도 오고 추운데 어딜 나가?"

"엄마 잔소리 때문에 못 있겠어."

"잔소리를 안 듣고 싶으면 수능을 잘 봤어야지!"


나는 지겨운 마음에 귀를 후볐다. 그렇지만 반항할 생각은 없다. 수능을 망친 것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할 일도 없으면서 괜히 나가지 말고 시간 있을 때 책상 정리라도 해."


나는 파카를 몸에 걸치다가 엄마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앞으로 기숙사 생활 해야 하는데 갖고 갈 거 있으면 미리 좀 챙겨두고."

"나중에 할게."

"지금 해! 안 읽는 책들은 다 버리고.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기숙사 내려가려고 그래?"

"엄마가 해주면 되잖아."

"네가 뭐가 예쁘다고 해줘? 꿈도 꾸지 마. 네가 정리해. 지금."


단호한 대답에 나는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거칠게 흩뜨렸다. 무시하고 나가자니 수능을 망친 대역죄인으로서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다. 나는 몸에 걸쳤던 파카를 다시 옷걸이에 걸어놓고 느린 걸음으로 책상에 다가섰다.


"뭐부터 해야 하는데."

"버릴 것부터 추려내."


위잉 울리는 청소기 소리에 일단 창문부터 열었다. 엄마는 춥다고 하지만 나는 추운 게 좋다. 아니, 허옇게 드러나던 네 손목, 발목 같은 걸 생각하면 나도 추워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하얀 소복을 입고 따뜻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 버릴 게 뭐가 이렇게 많아."


나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투덜거렸다. 안 읽는 책들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문제집과 참고서들은 죄다 버리고 안 읽는 소설책도 버릴 생각이었다. 쌓아둔 책의 높이가 내 허벅지까지 올라왔을 무렵, 책장 구석에서 낡은 공책들을 발견했다. 그걸 보니 또 네 생각이 나, 가슴팍이 다시 욱신거린다.


"......"


나는 가만히 서서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이 일기를 매일 읽었던 너를 떠올리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일기장을 펼쳐 건성건성 넘기다가 5학년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너는 5학년 일기장을 가장 많이 보는 것 같았다.


일기장엔 학급 배정을 받은 이후부터의 이런저런 일들이 적혀있었다. 별로 특별한 내용도 없는데 왜 그렇게 이 일기를 열심히 읽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중간쯤 넘기다가 문득 이상한 걸 발견했다. 전에 없던 동그란 자국이 눈에 띈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액체가 떨어졌다가 증발한 흔적 같았다.


같은 자국들은 듬성듬성 보였다. 나는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자국이 나있는 페이지의 일기만 읽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연인지 뭔지, 자국이 있는 페이지는 모두 내 짝이었던 다운이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 곳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출처 모를 불안감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나는 조금 빨라진 손길로 일기장을 넘겨보았다. 동그란 자국 말고는 별 흔적이 없다가 맨 마지막 장에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낯선 필체가 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성현아 안녕. 나 다운이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손이 떨린다.


[이렇게 급하게 가게 돼서 미안해.

그 동안 내 친구로 있어줘서 고마웠어.]


무어라 말을 못하겠다. 네가 편지를 남기고 갔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고마웠어'를 끝으로 많은 공백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망설이다 급하게 쓴 것처럼 글씨가 엉망이었다.


[성현아 있잖아 나 사실은

너를 계속 보고 싶어

미안해

그렇지만]


'그렇지만' 다음으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잉크가 크게 번져있고 종이가 온통 울어있었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동그란 자국들은 모두 네 눈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심장이 지끈거려 도무지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내 제사 지내주면 안돼]


너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물음표도 미처 그리지 못했다. 나는 일기장을 들고 울컥거리는 가슴을 몇 번이나 눌러 삼키다가, 문득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대화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면중학교에서 어떤 애 자살했대.'

'학교에서 존나 괴롭힘 당했다던데.'

'불쌍하다. 어쩌다 그랬냐.'


나는 일기장을 던지듯 내려놓고 미친 사람처럼 책장을 뒤졌다.


'다운아, 중학교 어디로 가?'

'대... 대면중학교...'


왜 너는 내 짝 정다운을 적은 곳에만 눈물을 흘렸던 건지 궁금했다. 아니, 알아야 했다.


"그럴 리가 없지..."


내가 기억하는 내 짝 정다운은 분명 여자아이였다. 울보였지만 웃는 게 참 예쁜 여자아이였단 말이다.


"하 씨발..."


내 짝 정다운이 6학년 때 몇 반이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1반부터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지만 그럴 수록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손가락으로 한명 한명 짚어가며 앨범을 넘겼고 벌벌 떨리던 손이 3반 페이지를 넘겼을 때,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얼이 빠졌다.


[정 다 운]


어색하게 웃고 있는 네가 졸업 앨범에 있다.


"미친... 말도 안돼."


실소를 터뜨리며 앨범을 다시 넘겼다. 내가 기억하는 정다운이 너였을 리 없다. 그러나 앨범을 끝까지 넘겨봐도 정다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전교에 너 하나뿐이었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고 눈앞이 출렁거렸다. 병신 같은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유서도 없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대.'

'내 친구 대면중 다니거든. 걔한테 들었는데 학교생활 개 힘들게 했다더라.'

'나도 들었어. 이름 때문에 성격도 소심해서 전교생 빵셔틀로 딱이었다고.'

'이름이 왜?'

'존나 여자애 이름이었다는데.'


"다운아..."


생각해보면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네가 네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던 탓이다. 정신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서있다가 청소를 다 하고 나가려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죽은 사람 보려면 어디로 가야 돼?"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죽은 사람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분향소로 가야지. 그건 왜?"


너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다.


"아니야."


나는 졸업앨범 마지막 장을 펼쳤다. 그리고 주소록에서 너희 집 주소를 찾는다. 주소지는 역시 멀지 않았다. 나는 파카를 입고 무작정 방을 빠져 나왔다.


"너 갑자기 어디 가? 얘! 문성현!"


너를 몰라서 미안해. 내가 병신이어서 미안해.


"헉...! 헉...!"


너를 처음 만난 날처럼 눈이 발목까지 내린 길을 미친 듯이 달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눈이 뺨에 떨어져 뜨거운 눈물과 함께 녹는다.


"흐으으...미안해...다운아...미안해..."


눈앞의 눈송이들이 춤을 추듯 사뿐거렸다. 이제라도 알아줘서 반갑다는 듯이. 나를 다 용서했다는 듯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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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애블리
    작성일
    14.11.03 19:43
    No. 1

    독특한 설정에 흡입력있는 필력까지.... 빠져들어서 읽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판타지까지 가미된 게, 작가님 상상력이 뛰어나세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할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6 율2008
    작성일
    14.11.10 17:37
    No. 2

    무지 울었었는데...안쓰럽고 애틋하고 보고또봐도 어떻게 이리도..시린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력소유자
    작성일
    14.12.02 12:42
    No. 3

    이게 끝이라니ㅠㅠ 다시 환생이라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밤의길목
    작성일
    15.05.19 21:01
    No. 4

    다시보지만 그래도 눈물나요. 아픈손가락이야 이글은 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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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4 14.11.03 471 14 9쪽
11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6) 14.11.03 245 9 10쪽
10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5) 14.11.03 229 9 8쪽
9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4) 14.11.03 248 9 7쪽
8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3) 14.11.03 262 12 8쪽
7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2) 14.11.03 254 9 8쪽
6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1) 14.11.03 283 9 7쪽
5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5) 14.11.03 293 11 7쪽
4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4) 14.11.03 244 11 7쪽
3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3) 14.11.03 203 9 6쪽
2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2) 14.11.03 362 9 7쪽
1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1) +4 14.11.03 569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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