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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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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삼나무
작품등록일 :
2014.11.03 17:08
최근연재일 :
2014.11.03 17:2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662
추천수 :
127
글자수 :
39,922

작성
14.11.03 17:22
조회
244
추천
9
글자
10쪽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6)

DUMMY

네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엔 심심했다. 방학을 하면 좀 나을 거라 기대했지만 방학 기간엔 네가 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도리어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늘었다. 그래서 방 창문을 열어놓고 밖을 내다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네 어머니가 방을 청소하시는 날에는 할 수 없었다. 전에 방 창문을 열어놓았다가 애꿎게도 네가 혼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한 공간에 있으면서 너만 나를 모른다는 게 고통이었다. 잘못을 뉘우칠 테니 제발 벌을 거두어 달라고 삼촌에게 매일 빌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에 대한 대답은 한 달을 지나 한달 반이 되어갈 무렵에서야 돌아왔다.


"네 이놈! 바빠 죽겠는데 왜 그렇게 기도를 하는 거야!"

"삼촌!"


나는 반가움 마음에 와락 소리쳤다. 뭉글뭉글 뭉글거리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았다.


"삼촌, 제가 잘못했어요. 저 진짜 반성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네 놈이 반성을 많이 했다고?"

"네!"


그러자 삼촌은 흠, 소리를 냈다.


"좋아. 네 놈도 반성을 많이 하고 네 부모도 너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으니 내렸던 벌을 좀 줄여주마."

"저희 엄마 아빠가요?"

"그래. 지금도 너를 위해 밤낮 없이 기도하고 계셔."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말에 가슴이 그만 울컥 요동쳤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런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지 삼촌은 혀를 쯧쯧 차며 나무라는 말투로 물었다.


"그러게 왜 장례도 안 지키고 거길 갔어?"

"죄송해요...성현이가 보고 싶어서...우으...윽..."

"됐다. 그땐 네가 괘씸해서 벌을 주긴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가혹한 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는 눈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눈물을 쏟아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흐으...으으...삼촌..."

"너를 괴롭힌 그 애들에게도 벌을 달게 내릴 생각이다."

"저, 정말요?"

"그래."

"삼촌...으윽...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 문성현이 좋아하지?"


네 이름이 나오자 나는 놀라 딸꾹질이라도 할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미처 나오지 못한 눈물들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널 잊었다고 원망하지 마라. 잊은 게 아니니까."

"네?"

"그리고 오늘부터 문성현이 눈에 네가 보일 테니 잘 지내도록 해."

"네, 네? 성현이 눈에 제가 보인다구요?"


놀란 나머지 차오르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뭉글거리던 천장은 곧 없어질 것처럼 흐려지다가 내가 삼촌을 애타게 부르자 힘차게 울렁거리더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바쁘니까 그만 말 시켜, 이 놈아. 네 소원 들어준 거다. 천일 되는 날 보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평소처럼 돌아온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부터 네 눈에 내가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더니 눈물 범벅인 내 얼굴이 아주 못나 보였다. 세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방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가 강렬한 통증이 온몸을 덮쳐와 나는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아야야... 못 나가는 건 여전하구나..."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도로 방 문을 닫았다. 너를 기다리기까지 무얼 해야 할까 고민했다. 방 안을 서성이다가 창문을 드르륵 열어보았는데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와아..."


삼촌이 주시는 선물일까 생각했다. 나는 삼촌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는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예뻤다. 새하얀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혹시라도 네 어머니가 들어오실까 불안해 얼른 창문을 닫았다. 네 침대에도 누워보고 네 책상에도 앉아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책장 구석에 꽂혀있는 낡은 공책 수권. 그것들은 어쩐지 눈에 익었다.


조심스럽게 빼 들었다. 역시 초등학교 때 네가 쓰던 일기장이었다. 봐도 될까 고민했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장을 펼치자 익숙한 네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방금 울었던 것도 잊고 배시시 웃으며 네 하루하루의 일기를 읽어나갔다.


읽다 보니 나를 잊은 게 아니라는 삼촌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어쩌면 일기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란 믿음이 들었다. 내가 처음 읽은 건 네가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기다. 귀여운 네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어느덧 공책의 반을 읽어갈 무렵, 등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네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놀랄 것을 우려해 일어나서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무언가 우르르 떨어뜨리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고, 곧바로 기겁에 가까운 네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으하악!"


그것이 우리의 아니, 너에게는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너는 한동안 나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사후세계의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하고 나를 만져보기도 했다. 내 몸을 통과해버리는 네 손이 나 역시 신기했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많이 친해졌고, 그것은 나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네 호기심은 얼마 가지 않아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고등학생이 되더니 너는 나와 말 섞는 걸 귀찮아했다. 뿐만 아니라 툭하면 욕도 했다. 너의 변화가 서운했지만 그게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거라 여겼다. 나 역시 왕따만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욕도 하고 만사가 귀찮은 고등학생으로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네가 방에 없을 때마다 너의 옛 일기장을 훔쳐 보았다. 들킬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는 너에게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었다. 알아야 천일이 되는 날 마음 편히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5학년이던 시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나는 여느 때보다 집중해서 읽었고, 1월부터 4월을 지나 5월의 일기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내가 아는 이야기가 나왔다. 눈이 번쩍 뜨이고 탄성이 흘렀다.


이 날은 체육대회가 있었던 날이다. 나는 아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출전한 종목은 없었지만 단체전인 줄다리기와 반 춤 대회에는 나 역시 참여했었다. 남녀가 짝을 이뤄 하는 율동이었는데, 학급에 여자가 부족해 남자 세 명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춰야 했었다. 당시 유난히 왜소하고 피부가 하얬던 내가 그 중 한 명으로 뽑혔고, 여자 아이들이 가져온 치마를 입고 춤을 췄었다.


[연습할 땐 하기 싫었는데 그래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얼마 없는 학창시절의 추억이다. 네가 적은 말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로부터 몇 줄 밑에 적혀있는 문장에 나는 그만 놀란 나머지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우리 반 여자애들 중에서 정다운이 가장 예뻤다.]


'우리 반 여자애들 중에서'에 시선이 머물렀다가 '정다운이 가장 예뻤다'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리고 반복해서 읽었다. '우리 반 여자애들 중에서', '정다운이 가장 예뻤다'. '정다운이 가장 예뻤다', '우리 반 여자애들 중에서'.


"아..."


너는 나를 여자애라 여겼던 모양이다. 내 얼굴은 순간 당황으로 물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체육대회를 할 때에는 너와 내가 짝으로 만나기 전이었고, 자리도 교실 끝과 끝이어서 얌전했던 내가 네 눈에 띌 리가 없었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뒷장을 넘기며 또 내 이야기가 있는지를 살폈다. 내 이야기는 그 후에도 간혹 나왔는데 너와 내가 짝이었을 때 가장 많이 나왔다.


[정다운은 말이 없고 잘 울지만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다.]

[애들이 다운이를 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운이 생일이 언제인지 궁금하다. 생일 파티에 초대됐으면 좋겠다.]

[정다운은 공부를 잘한다. 얼굴도 예쁜데 공부까지 잘한다.]

[그런데 정다운은 왜 치마를 입지 않을까. 체육대회 날 예뻤는데.]


내 이야기를 찾으면 찾을 수록 내 얼굴은 피자 빵처럼 붉어져 곧 펑 터질 것 같았고, 6학년 반이 배정되던 날이 마지막 내 이야기였다.


[정다운이랑 반이 갈렸다. 더 친해질걸. 아쉽지만 다운아 안녕. 잘 지내.]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일기장을 넘겼다. 너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일기를 쓰지 않았는지 마지막 공책은 공백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가 적힌 5학년 일기장을 읽고 또 읽었다. 네가 보지 말라고 구박을 하고 숨겨놔도 기어이 찾아내 계속 읽었다.


천일 동안 나는 네가 쓴 모든 문장을 외웠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고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눈물이 퐁퐁 나기도 했고 웃음이 헤헤 나기도 했다.


그랬는데 천일이 되던 날에는 너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달라진 내 모습에 너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속상한 마음에 아주 많이 울었고 계단이 내려와도 올라가지 않고 버텼다.


"네 이놈!"


그러자 삼촌은 내게 큰 벌을 내릴 것처럼 큰 호통을 쳤다. 겁을 집어먹은 나는 하는 수 없이 엉엉 울면서 급하게 편지를 썼다. 편지라기엔 작은 메모였지만 언젠가는 네가 읽어주기를 바랐다.


"성현아...흐으...안녕...우으윽...잘 지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서 빈 방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내 짝사랑에 대한 작별 인사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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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5) 14.11.03 229 9 8쪽
9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4) 14.11.03 248 9 7쪽
8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3) 14.11.03 262 12 8쪽
7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2) 14.11.03 254 9 8쪽
6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1) 14.11.03 283 9 7쪽
5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5) 14.11.03 293 11 7쪽
4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4) 14.11.03 244 11 7쪽
3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3) 14.11.03 203 9 6쪽
2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2) 14.11.03 362 9 7쪽
1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1) +4 14.11.03 568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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