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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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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삼나무
작품등록일 :
2014.11.03 17:08
최근연재일 :
2014.11.03 17:2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663
추천수 :
127
글자수 :
39,922

작성
14.11.03 17:11
조회
568
추천
16
글자
7쪽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1)

DUMMY

기억하기로 맨 처음 만남은 약 3년 전, 중학교 졸업식이 끝난 밤이었다. 눈이 발목까지 쌓였던 그 한겨울에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다며 첫 페이지만 간신히 펼쳐볼 문제집을 잔뜩 사와 방으로 들어왔던 날, 너는 내 책상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낯선 존재에 기겁을 한 나는 품에 안고 있던 문제집을 우르르 떨어뜨리며 기절을 할 것처럼 굴었는데 그 상황에서 더 기절을 할 것처럼 굴었던 건 도리어 너였다. 입에 거품을 물 기세인 나에게 허둥지둥 달려와 놀라지 말라고 두 손을 내젓던 너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수룩하고 바보 같아 보였다. 그래, 그게 네 첫인상이었다.


'내 이름은 정다운이야.'


네가 밝힌 이름은 그랬다. 너는 남자인 주제에 내 초등학교 짝꿍이었던 여자아이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호떡같이 하얀 얼굴에 맑게 웃는 얼굴이 귀신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 나이는 고작 내 또래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도 너는 정말 귀신이 맞았다.


손을 뻗어도 너를 만질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너를 만지면 내 손이 네 몸을 통과해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 외에는 아무도 너를 보지 못했고 그 추운 한겨울에도 너는 바람이 숭숭 다 통하는 삼베옷 같은 걸 입고 있었다. 그마저도 옷이 작아서 허연 손목과 발목 같은 게 다 드러났다. 겨울엔 발이 시리다고 내 이불 안에서 꼬물대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괜히 신경질이 났다.


그렇게 불청객처럼 불쑥 내 앞에 나타난 너는 3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귀신이라는 게 신기해서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관심도 갖고 그랬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해 싱거워져 버렸다. 이제는 네가 성가시게 된지 오래였다.


나는 너 때문에 방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야동이라도 볼라 치면 귀신인 주제에 얼굴을 붉히고 다가와 다소곳이 서서 함께 모니터를 주시했고, 팬티라도 갈아입을라 치면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배배 꼬았다.


고작 귀신 하나 때문에 내 방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짜증이 나서 너에게 화를 낸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면 너는 또 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질질 짰다. 그렇게 내쫓지도 못 하고 사이 좋게 지내지도 못하는 상태로 동거 아닌 동거를 한 지도 어느덧 삼 년째인 것이다.


"야 이 씨발! 정다운!"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너는 내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서 내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었다. 마침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성질이 나는 대로 소리를 버럭 질렀는데 너는 어깨가 움찔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며 침대에서 화닥닥 내려왔다. 나는 너를 만질 수 없지만 너는 무엇이든 만질 수가 있어서, 내가 방에 없을 때면 이렇게 내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곤 했다. 특히 일기장을 잘 그랬다.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랬잖아!"

"아니 난... 너 올 때까지만 잠깐 보려고...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할 게 없으니까 너무 심심해서..."

"그럼 쳐 자! 하늘나라에라도 쳐 올라가든가!"

"오늘 모의고사 망했어? 왜 화내..."

"닥쳐!"


고3이 되면서 신경이 부쩍 예민해진 건 사실이다. 게다가 너의 말대로 모의고사를 망친 뜨거운 여름 낮이 유쾌할 리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내려놓고 교복 단추를 푸르자 너는 마치 새색시라도 되는 양 내 뒤에 얌전히 서서 내가 바닥에 벗어 던지는 교복을 차곡차곡 집어 들어 정리했다. 그런 모습마저 짜증이 난 나는 팬티 차림으로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인 건, 너는 내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이유는 너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내 방에서 나오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내 방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디에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건 비밀이라고 했다. 속눈썹도 짧은 게 눈을 내리깔고 한참을 부끄러워하기에 더 물어보려던 것을 관뒀다. 어디 여탕이나 여자 기숙사에 있었나 보다고 어림짐작으로 생각했다.


내 방에서 네가 나올 수 없는 덕분에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방이 아닌 공간에선 자유였다. 가끔 네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나는 날이면 거실에서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거나 밖에서 온종일 놀다 들어왔다. 그럼 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말도 걸지 않았다. 귀신 주제에 삐치기는 엄청 잘 삐쳐서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서운해했다.


매일 못되게 구는 나인데도 너는 내가 없는 걸 싫어했다. 물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너를 달래준 적은 없었다. 그러면 너는 벽에 몸을 반쯤 파묻고 방에서 기다리는 자기는 생각도 안 한다고, 못돼 처먹었다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날이면 나는 꼭 가위에 눌렸다. 어수룩해 보여도 너는 귀신이 맞긴 맞았다.


너는 내 교복을 입어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주말 같은 날이면 내가 자는 동안 몰래 내 교복을 훔쳐 입었는데, 나는 그걸 다 알고도 모른 척해 주었다. 거울 앞에서 교복을 입은 네 모습을 비춰보며 설레 하는 네 모습이 안쓰러워서였다.


어쩌다 어린 나이에 귀신이 된 건지는 모른다. 한 번은 물었다가 네가 펑펑 우는 바람에 그 후로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무리 귀신이라도 말랑하게 생긴 외모 탓인지 네가 울면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귀신 소리 내지 말라고 면박을 주고 나서야 너는 겨우 울음을 멈추었지만 히끅거리는 서러운 숨소리는 한동안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너의 그 숨소리에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숨을 쉬는데도 숨을 쉬는 게 아닌 네 처지가 처음으로 불쌍했다.


너는 식성이 좋았다. 귀신이 식성이 좋다니 코미디 같은 얘기지만 정말 그랬다. 공부를 하다 보면 엄마가 간식을 놓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간식은 거의 모두 네 차지였다. 나는 워낙 입이 짧아서 무엇이든 많이 먹지 않지만 너는 무엇이든 다 잘 먹었다. 엄마는 네가 먹는 건 줄도 모르고 깨끗하게 비워져 나오는 접시에 기뻐하며 날마다 맛있는 간식을 갖다 주었다.


네가 내 방에 있는 게 짜증이 날 때가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헤헤 웃으며 맛있는 걸 집어먹는 너를 보고 있으면 그냥 이대로 평생 내 방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아니면 네가 어디에 가서 이런 음식을 얻어먹나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나중에 이사를 간다거나 이다음에 결혼을 해서 이 방을 나가게 되면 너는 그때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상념에 사로잡혀 밤을 꼬박 지새운 적도 더러 있었다.


작가의말

총 12편의 짧은 BL판타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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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4) 14.11.03 248 9 7쪽
8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3) 14.11.03 262 12 8쪽
7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2) 14.11.03 254 9 8쪽
6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1) 14.11.03 283 9 7쪽
5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5) 14.11.03 293 11 7쪽
4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4) 14.11.03 244 11 7쪽
3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3) 14.11.03 203 9 6쪽
2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2) 14.11.03 362 9 7쪽
»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1) +4 14.11.03 569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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