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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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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삼나무
작품등록일 :
2014.11.03 17:08
최근연재일 :
2014.11.03 17:2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658
추천수 :
127
글자수 :
39,922

작성
14.11.03 17:16
조회
243
추천
11
글자
7쪽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4)

DUMMY

나는 본래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귀신은 전래동화와도 같은 이야기이고 기가 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이자 헛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너의 등장이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너를 받아들이게 된 후에는 사후세계나 유령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검색도 해보고 책도 찾아보고 영화도 봤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너와 같은 귀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 칠갑을 하거나 기이한 소리를 내거나 하다못해 음산한 기운이라도 흘려야 귀신 같은데 너는 아랫집 초등학생보다도 만만하니 대체 어떤 종류의 귀신인가 싶었다.


처음엔 지박령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내 방에 나타나기 전까지 너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으니 따지고 보면 지박령은 아니다. 그럼 왜 내 방을 나갈 수가 없는 건지 고민했다. 당사자도 모르는 이유를 한낱 인간인 내가 알 수가 있겠느냐 만은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너를 하늘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였다.


향도 피워보고 절도 해보고 밤새 인터넷을 뒤져 귀신을 쫓는다는 온갖 미신들을 다 갖다 써봤다. 하지만 너는 어쩐 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미련이나 원한이 남아 있으면 떠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너의 고민을 물어보았으나 너는 네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아...!"


나는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도사처럼 무릎을 탁 쳤다. 너는 '그 애'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한다. 불현듯 그 애에게 미련이 남아서 떠나지 못하는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있지 않아 확신했다. 틀림없이 그 애다. 너는 그 애에게 미련이 남은 것이다.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3년이 되는 해에 겨우 깨달은 내 자신을 꾸짖고 싶기도, 이제라도 깨닫게 된 것을 칭찬해 주고 싶기도 했다.


하교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당장이라도 너의 미련을 해소해주고 하늘나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발에 날개라도 달린 듯 집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내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너는 침대에 엎드려 또 내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욕이라도 해줬겠지만 오늘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너는 나의 등장에 당황해 하며 허둥지둥 일어났지만 나는 가방을 벗어 내려놓고 책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생각해 봤는데."

"어? 어어..."


너는 화를 내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봤다.


"네 '그 애' 말이야."

"어어?"


그러다 그 애의 이야기에 너는 눈을 휘둥그래 떴다.


"너 걔 때문에 못 올라가는 것 같아."


'인 것 같다'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


그러자 너는 이런 나를 제법 한참 동안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당황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런 네 모습이 나의 확신에 더한 확신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도와줄게."

"뭐, 뭐얼?"

"걔 보고 싶어서 인간 세상에 미련이 남은 거잖아."

"......"

"내가 보게 해준다고. 걔 어디에서 만났다고 했냐. 중학교랬나? 학교랑 졸업 년도랑 이름 말해 봐."

"시, 싫어."

"싫기는 왜 싫어. 걔를 봐야 미련이 풀릴 거 아니야."

"첫사랑은 다시 보는 거 아니랬어..."

"인간 같은 소리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싫다니까 왜 그래?"


너는 갖잖은 반항을 하며 몸을 웅크렸다. 애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만 모습이 마치 끝까지 말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 같았다.


"너 그럼 평생 내 방에서 살 생각이냐."

"평생 아냐..."

"뭐?"

"평생 아냐."


너는 베개에 코를 묻고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뭔 소리야. 너 이제 가는 거야?"

"너 내가 여기에 있는 거 싫어?"

"그럼 좋냐?"

"......"


두 번 생각 않고 나간 대답에 너는 말이 없었다. 어쩐지 침울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약해진 나는 뒤늦게 변명을 했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네가 갈 곳이 없다면 여기에 있어도 되긴 하는데."

"됐어..."

"너도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 아니야. 귀신이 인간 세상에서 계속 사는 거 이상하잖아."

"...흐으윽..."

"이런 걸로 울고 지랄!"


네가 또 울음보를 터뜨리는 통에 나는 난감해지고 말았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우는 사람 달래주는 재주 없이 태어났는데 더군다나 네가 울면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가서 안아줄 수도 없다. 토닥거려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낯간지럽게 말로 달래는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했다.


"그만 쳐 울어. 울라고 한 소리 아니니까."

"우으으... 이으우으..."

"베개에서 고개 들고 말해. 안 들려."

"너는 정말 못돼 처먹었어!"

"이제 알았냐?"


마음은 그게 아닌데 미운 소리만 골라서 나간다.


"흐으윽... 으윽... 으허어어... 끄윽..."


서럽게도 운다. 네가 자꾸 우니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안쓰러워지기까지 한 나는 "에이 씨발." 중얼거리고는 무뚝뚝하게 사과했다.


"야. 미안해."

"흐으으윽... 흐어어... 으으..."

"미안하다고, 병신아."

"욕하지 마!"


욕하지 말란 외침에 나는 어색하게 목을 긁적였다. 내 기준에서 '병신'은 욕이 아닌데 말이다.


"알았어. 그럼 뭐... 과일이라도 먹을래?"

"흐어어어... 끄으으윽..."

"참치 넣고 밥 비벼서 가져올까?"

"...흐으으... 으윽..."

"아니면 치킨 시켜?"

"...흐으읍."


점점 울음소리가 느려진다 했더니 치킨이라는 단어에 뚝 그친다. 귀신 주제에 인간이 좋아하는 음식은 어찌나 밝히는지, 이런 네가 우습다가도 이런 경우엔 다행이었다. 이렇게라도 너를 달래줄 수 있으니 말이다.


"치킨 뭐로 시킬까? 후라이드? 양념?"

"파닭."


고개를 들어 파닭을 주장하는 네 눈에는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코밑은 콧물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 네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애든 저 애든 일단은 급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네 입에 뭐라도 물리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너를 위해 내 피 같은 용돈을 또 쓰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음식 주문 앱을 열었다. 그러다가 문득 멈칫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네 말이 마음에 걸려서다.


고개를 들어 너를 보자, 너는 빨리 주문을 하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고여있던 눈물이 볼록 솟아오른 광대를 타고 내려간다. 네 눈물에 짜증만 나던 나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만 전의를 상실한 기분으로 치킨 메뉴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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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2) 14.11.03 252 9 8쪽
6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1) 14.11.03 283 9 7쪽
5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5) 14.11.03 292 11 7쪽
»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4) 14.11.03 244 11 7쪽
3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3) 14.11.03 203 9 6쪽
2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2) 14.11.03 362 9 7쪽
1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1) +4 14.11.03 568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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