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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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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삼나무
작품등록일 :
2014.11.03 17:08
최근연재일 :
2014.11.03 17:2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660
추천수 :
127
글자수 :
39,922

작성
14.11.03 17:17
조회
292
추천
11
글자
7쪽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5)

DUMMY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너의 말은 묘하게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다가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다가도, 밤에 잠을 자다가도 그 말이 떠오르면 감았던 눈도 번쩍 뜨였다. 혹시라도 자는 사이에 네가 가버린 것은 아닌지 주변을 둘러보면 너는 언제나처럼 벽에 붙어서 자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네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을 하듯 다시 잠이 드는 이상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이런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동안은 너를 하늘로 돌려보내려 애를 쓰던 나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미우나 고우나 삼 년이나 룸메이트 생활을 했는데 이별이 아무렇지 않은 건 오히려 피도 눈물도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웬수 같아도 막상 헤어지게 되면 아쉬운 게 당연한 일이다. 다만 자존심 때문인지 뭔지 언제 떠나냐고는 물을 수 없었다.


살다 보면 기분이 이상한 날이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불안함이 엄습하는 그런 날 말이다. 이 막연하게 불안한 기분은 오늘 점심을 먹고 나서 들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강해져 왔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주는 기분 탓이라고 여기고 싶었지만 강도가 여느 때와 달랐다. 결국 나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문을 뜯어버릴 듯이 열어젖혔다. 네가 불안했다.


"엄마야!"


너는 방이 울리도록 벌컥 열린 문에 온몸을 들썩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나는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너를 보았다.


"와, 왔어?"


너는 또 내 일기를 훔쳐보고 있었다. 일기장을 허둥지둥 덮는 손길이 어수룩하다. 넌 이렇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 방에 있었지만 나는 눈썹 사이를 사정없이 구겼다.


"어디 갔다왔냐."


기분이 이상하다 했더니, 너는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어, 으응... 어울려?"

"뭐야."

"어?"

"씨발. 내 방에서 못나간다는 거 구라였냐?"


이유는 모르지만 너의 낯선 모습을 보자마자 화가 솟구쳤다. 낡은 삼베옷이 아니라 너는 어디에서 갖다 입었는지 새하얀 소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하늘나라로 떠날 것처럼 말이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어디 갔다 왔는데."

"그, 그건..."

"됐다."

"설명할게!"

"설명하지 마. 듣기 싫어."


나는 가방을 멘 그 상태 그대로 방문을 쾅 닫았다. 네가 걱정이 되어 달려왔음에도 막상 달라진 너를 보니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이 몰려왔다. 배신감? 이 감정을 배신감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저 네가 옷 하나 갈아입었다는 사실에 치솟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그래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애초에 결론을 낼 수 있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단지 네가 하루아침에 내 앞에 나타난 것처럼 하루아침에 내 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게 문제였다. 이상하게도 화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은 내가 지금까지 바라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울컥하던 마음을 오랜 시간을 들여 간신히 진정시킨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열리는 문 틈새로 새하얀 소복을 입은 네가 보였고, 너는 생각했던 대로 혼자 울고 있었다.


"으우윽...욱...흐윽...크읏...흐으......"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두 뺨이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우는 너는 지겹도록 봐왔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지끈거려 욕지거리를 했다.


"병신같이 또 쳐 울고 있었냐?"

"우욱...흣... 우윽..."

"듣기 싫어, 씨발."

"흐어어... 어어으우... 흐우웁... 윽..."


듣기 싫다는 말에 너는 울음을 참으려는 건지 손등을 반이나 덮는 하얀 소매로 얼굴을 덮었다. 어깨가 들썩이다 못해 온몸이 흔들리도록 오열하는 너지만 끅끅거리며 더 이상 울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은 그런 모습마저도 보기 싫었다. 너는 바보 같았다. 머저리 같았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우는 것뿐인 게 신경질이 났다.


"너는 왜 나한테 화 안 내냐?"


까칠한 말투에 너는 성급하게 눈물을 닦으면서도 나를 본다. 충혈 되어버린 눈이 미안했다.


"너도 짜증내. 화내. 내가 막 대하면 너도 울지만 말고 나한테 막 대하라고!"

"우으으... 으으..."

"울면 누가 알아줘? 아무도 안 알아줘, 병신아."

"우윽... 흡..."

"할말이 있으면 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따지라고!”

"끄읍... 미안..."

"하... 엿 같네."


나는 울고 있는 너에게 미안하면서도 또 가시 돋친 말을 해버리고 만다.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저 언제 가냐는 질문일 뿐인데. 짜증이 나서 책가방을 바닥에 집어 던지듯 내려놓고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닫히는 문 틈새로 네가 다급히 나를 부르는 게 들렸지만 무시했다. 얼굴을 보면 또 미안할 것 같아서였다.


갈 곳도 없으면서 괜히 집을 나왔다. 주머니에 든 건 폰 뿐이었기에 당장 만날 수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밤이 깊도록 놀았다. 고3이 할 일은 아니지만 가방을 방에 두고 나왔기에 별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엄마의 연이은 전화에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민하다가 과자를 몇 봉지 샀다. 네가 뭘 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대충 사왔다.


"너는 대체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지금이 몇 시야!"


집에 들어오자마자 쏟아지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에 나는 한숨을 쉬어가며 귀를 후벼팠다. 그러자 태도가 불량하다며 또 화를 낸다. 결국 잘못했다고,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과 비슷한 약속을 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내 머릿속엔 그저 과자로 너를 달래 줄 생각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방문을 열었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과자를 든 손에 힘이 풀리고 만다.


"엄마. 다운이 어딨어?"


믿을 수 없게도 네가 없었다.


"뭐? 다운이가 뭐야. 들어가서 얼른 공부해! 이 정신 나간 녀석아!"

"정다운 어디 있냐고."

"무슨 소리야, 대체?"


침대 위에도, 방 구석에도, 책상 밑에도 너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너는 정말로 아무데도 없었다.


"아, 씨발! 정다운 어디 있어!"

"얘! 너 왜 그래!"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방에 있는 물건들을 헤집다가 악을 질렀다. 내 방에 네가 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외롭게 혼자 울고 있었을 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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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4) 14.11.03 248 9 7쪽
8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3) 14.11.03 262 12 8쪽
7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2) 14.11.03 253 9 8쪽
6 너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1) 14.11.03 283 9 7쪽
»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5) 14.11.03 293 11 7쪽
4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4) 14.11.03 244 11 7쪽
3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3) 14.11.03 203 9 6쪽
2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2) 14.11.03 362 9 7쪽
1 너는 너를 귀신이라고 소개했다(1) +4 14.11.03 568 1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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