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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이 망해도 외톨이는 아웃사이드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시적
작품등록일 :
2022.05.11 12:46
최근연재일 :
2022.09.0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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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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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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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58. 나는 너완 다르다

DUMMY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한 오솔길, 시원한 그늘을 따라 난 길을 걷는다.


절그럭거리는 깡통과 자칭 숲의 주인이라는 여자가 두 발짝 정도 앞서 걷고 있다.


여지껏 혼자 걷던 내게는 이런 종류의 동행이 어색했다. 아니지. 동행 자체가 어색한 건가.


조용한 정적 속에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숲의 주인이 나에겐 무슨 용건이지."


숲의 주인은 내가 찾아야 할 존재였다. 이렇게 친히 마중 나올 것이었으면 오솔길 초입 블루밍들의 적대적인 태도가 설명되지 않는다.


이그렌시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해맑게 말한다.


"방금 전 말했다시피~ 원혼을 위로하고 원한 섞인 백을 정화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보답하고 싶어서요. 곧 다른 생존자분들도 이곳을 찾아낼 테지만 아직은 시간도 있구 게걸아귀를 처단하는 김에 찾아왔어요."


처단. 나는 아까 보았던 머리를 상기했다.


"너희가 괴물을 죽이는 것은 강제성에 개입하는 것 아닌가?"


게걸아귀는 삼옥수였다. 삼옥수는 나타난 것만으로도 상당한 사건이며 삼옥수 살해는 하나의 업적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생존자가 업적을 이룰 기회를 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강제성에서 가만 볼 리가 없는데.


"맞아요. 저희는 강제성에 개입하는 모든 행위에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죠. 그래도 너무 빡빡하진 않아요. 피치 못할 상황의 방어적인 이유에서라면 어느 정도 허용된답니다. 본능에 의존해 살아가는 괴물이기에 필드에 머무는 도우미를 습격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거든요."


"저 괴물이 너를 노렸다는 뜻인가?"


"네. 게걸아귀는 숲 너머에서 큰 부상을 입고 저의 관할인 원소의 숲으로 다시금 도망쳐 왔어요. 게걸아귀가 보옥을 통해 얻은 이능은 흡수, 단기간에 삼옥수가 되게 해준 그 힘에 의지해 저와 숲의 기운을 흡수해 부상을 치료하고 자신을 상처입힌 존재에게 복수하길 원했죠. 실패했지만요."


나는 그녀, 그리고 그녀 옆을 걷는 기사를 응시하며 말했다.


"...고작 삼옥수 따위가 그 깡통을 넘어 널 흡수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데."


「카피」를 통해 탐지계 마력을 흉내 낼 수는 있으나, 상대를 자극할 위험이 있어 관뒀다. 나에겐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탐지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직관만으로도 느껴진다. 이그렌시아를 호위하듯 걷는 저 깡통은 강하다. 숲에 퍼져있는 모든 인간이 달려들어도 저것의 풀 플레이트 아머에 흔집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삼옥수가 약하단 뜻이 아니다. 다만, 저 갑옷은 초월의 근접한 힘을 품고 있다.


반대로, 이그렌시아에겐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 덕분이에요. 생존자님이 펼쳐준 결계 덕분에 제 프라임 가디언인 그라함이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그렌시아는 제 손바닥을 마주대며 말했다.


"그라함은 원래 중앙산의 통로를 지키는 역할이었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그의 인정을 받아야만 이곳으로 향할 수 있었죠. 하지만 생존자님의 술법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저는 생존자님이 펼친 술법을 확대하고 강화해 중앙산의 정식 시련으로 고정시켰죠. 술법에 담긴 의지와 소망은 조금은 어긋났을지 몰라도 조금은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슷하기도 했구요. 헤헤."


"그렇다면..."


"그라함은 저의 수호로 임무를 바꾸었구요. 덕분에 저를 노리던 게걸아귀를 막아낼 수 있었죠."


방긋 웃는 그녀의 말에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중앙산 동굴을 떠올렸다.


숲에서 가장 높은 산, 잘보이는 곳에 드러나 있는 동굴. 어쩐지 너무 뻔한 장소라 했다. 아마 추가 강제성 클리어를 목표로 하는 인간들 대부분 중앙산이 단서임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함정이었다.


삼옥수의 목을 장작마냥 쪼개버리는 중무장 기사가 지키는 통로를 그 누가 통과할 수 있으랴.


이그렌시아는 재잘재잘 새소리 같은 목소리로 친절히 길의 시련에 대해 말해주었다.


"생존자님도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각 방위마다 난 길마다 시련은 존재해요. 동쪽은 무력을, 서쪽은 지혜를, 남쪽은 인내를, 북쪽은 전반적인 생존자의 자질을 시험하죠. 다만, 게걸아귀가 동쪽 길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기 때문에 폐쇄를 결정했답니다. 규정대로 여섯 시간 후 닫힐 것이랍니다."


그런가. 단서가 다섯 곳이란 추측은 맞았네. 그나저나 난 운이 좋았군. 게걸아귀를 따라 들어오느라 어떤 시련도 겪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이그렌시아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존자님도 시련을 통과하셨어요."


응? 내가? 난 와서 휴식을 취한 것밖에 없는데.


"생존자님은 블루밍의 인정을 받으셨지요. 생존자님께는 그것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생존자님은 처음부터 블루밍과 함께 다니셨죠. 블루밍은 귀엽고 사랑스런 생물이지만 다른 종족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요. 그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선함을 느끼죠. 만약 그들이 당신을 따른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증명이나 다름없답니다."


그러고 보면, 블루밍이 다른 인간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후후."웃는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길의 존재를 안다고 하여도 모두가 이곳으로 올 순 없어요. 모든 길은 열린 후 딱 반나절 동안만 유지되다가 사라져버리거든요. 무제한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은 오직 중앙산 뿐."


"그러나 중앙산은 사실상 함정이지. 저 깡통이 지키고 있었다면 그 누가 들어오겠어...."


이그렌시아가 나의 말을 끊었다.


"그라함이에요."


"깡통이지."


"그라함이에요."


"깡통이다."


"그라함."


이그렌시아가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라함은 그라함이에요."


나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깡통은 깡통이다. 너가 저것에 어떠한 애칭을 붙이던 자유이나 나에게 강요하지 말지."


그때, 잠자코 서 있던 기사의 투구 사이로 음성이 흘러나왔다.


-괜찮습니다. 이그렌시아님. 저 인간은 제가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어 하는 말 입니다.-


"에? 정말?"


이그렌시아의 눈이 함박만 해진다.


음성 기능도 있는 것인가. 여태 잠자코 있길래 못하는 줄 알았다. 그라함이라는 저 깡통에게서는 생명으로서의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갑옷 부딪히는 소리뿐.


나는 작게 혀를 찼다.


"그래. 난 너 같은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인간은 혐오하고, 인간이 아닌 것은 무시하지. 하물며 생명조차 아니어서야."


정확히 말하자면 이기적인 이유로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종류의 근시안적 인간성을 혐오한다. 이러한 나의 성질은 대부분의 인간에 대한 혐오로 귀결된다. 몇몇 고귀한 인간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유도 이에 따른 반증이며 날 때부터 정해진 '본능'에 행동방식이 강제당하는 미물에겐 많은 감정을 할애하지 않는다.


나의 시선이 눈앞의 여인을 훑는다.... 그녀와 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억울한 희생자들을 위로했다며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인간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는 게 눈앞의 여인이다. 난 저러한 고귀한 종류의 박애주의자와 비교할 사람은 되지 못한다. 나의 가치관마저도 결국 자기혐오에 따른 반증이니까.


반면 이그렌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생존자님은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는데. 그들의 아픔에 슬퍼하고 공감했었는데.'


그녀는 그가 중앙산의 동굴에서 보였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가 느꼈던 슬픔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그가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는 자신을 비정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짓든 말든, 이그렌시아에게 나는 선심 쓰듯 말했다.


"깡통이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지. 인공지능 갑옷? 강철 매개 마법 생명체?"


그런 나에게 깡통 역시 감정 없는 어조로 말한다.


-용아병으로 불러주십시오.-


"용아병?"


잠깐. 용아병. 용아병? 용아병(龍牙兵)이라면. 용, 드래곤의 어금니에서 태어나 드래곤의 레어를 수호하고 침입자를 척결하는 수호자. 즉, 용이 자신의 뼈를 매개로 직접 창조한 강대한 마법 생명체다.


"그럼 넌?"


이그렌시아가 심술 난 장난꾸러기의 미소로 답했다.


"네. 당연하게도 제가 용이겠죠?"


일순간 동공이 커졌으나 곧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


평정인 모양새에 이그렌시아의 호기심이 동한다.


"안 놀라셔요? 안 궁금하세요? 용인걸 밝히면 보통 놀라는 게 정상 아닌가요?"


"내가 비정상인가 봐."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다.


그 후로도 나와 이그렌시아는 두런두런 대화를 하며 걸었다.


이례적이고 도저히 나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머리가 아프지 않은 편안한 산책이었다.








두 번째 관문인 '짙은 숲속'을 지나 '원소의 요람'으로 향했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여유를 만끽하며 걸었다. 주욱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대화를 즐길 수 있을 리도 없지. 숲 자체로 아름다운 광경이 많았기에 그것들을 감상하다 보니 반나절은 걸린 것 같았다.


숲의 심처에만 서식하는 원소의 힘을 짙게 타고난 야수들도 있었고, 다양한 마력현상도 관측되었다.


한 번씩은 '정령'이라는 존재도 나타나곤 했으나 수줍음이 많은지 빼쭉 얼굴만 보이고 도망쳤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짙은 숲속은 원소의 힘을 짙게 타고난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생태의 보고였으며 원소의 요람은 물불흙공기 등의 순수 원소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짙은 숲속을 지나 도착한 원소의 요람. 그 중심엔 이그렌시아의 레어가 있었다.


레어 구경까지 시켜준 이그렌시아와 나는 레어 밖으로 나갔다.


참고로 용아병은 바로 전에 새로이 입장한 생존자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본래는 짙은 숲속을 뚫고 원소의 요람에 도달하는 것까지가 시련이나 동쪽 길은 게걸아귀로 인해 프리패스였기 때문에 용아병이 직접 시험한다고 했다.


동쪽 길에서 온 이들이라 했으니 대공원 그룹이겠지. 그 무뚝뚝한 용아병 상대로 몇 명이나 통과할지 미지수이니 명복이나 빌어주자.


이그렌시아는 목걸이에 마력을 주입하더니 원소를 부려 돌과 나무로 지어진 작은 집 한 채를 지어주었다.


침대에 소파까지 딸린 아담한 집이었다.


"수고하셨어요. 생존자님.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돼요. 이대로 쉬셔도 좋고 오솔길이나 짙은 숲속에서 그곳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무언가를 채집하셔도 좋아요. 대신 원소의 요람에서는 허락 없이 무언가를 만지거나 가져가서도 안 되고요 어떠한 경우에서도 싸움을 벌이시면 안 돼요."

그러면서 그녀는 작은 풀피리를 선물로 주었다.


"저에게 볼일이 있으시거나 혹, 위험에 닥치시게 되면 이 피리를 불어주세요. 요람에 도달한 생존자에게 주는 선물이랍니다. 헤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 이따가 저녁에 만찬을 준비할 생각이니 꼭 참석해주세요!"


"생각해 보고."


"네에네에. 푹 쉬세요~ 이따가 봐요!"


이그렌시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문을 닫았다.


이그렌시아가 떠나고, 나는 잠시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녀와 산책하는 와중에도 분신으로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대화와 탐색을 동시에 하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 소모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 충분히 쉬어주어야 한다.


나를 따르던 블루밍들도 원소의 요람으로 오고는 뀨귯! 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그렌시아 말로는 이곳이 저들의 고향이라 오랜만에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다나 뭐라나.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혼자다. 원래도 혼자이지만 지금은 완전무결한 혼자인 것이다.


혼자라는 사실에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회복되는 기분이다.


몇 분의 휴식으로 퍼지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오솔길과 짙은 숲속에서는 아이템을 채집해도 된다고 했다. 마침 분신으로 주변을 확인했던 참이니 나가서 뭐라도 할 셈이다.


원소의 요람에서는 전투가 금지된다고 했다. '원소의 요람에서만'이다. 그 외의 장소에서는 야수를 사냥하든 정령과 숨바꼭질하든, 혹 생존자를 습격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다른 생존자를 방해할 수는 없을 듯하다.


듣기로는 숲 심처에 도달한 이는 아직까지 나, 그리고 이제 막 들어온 대공원 그룹이 전부다.


대공원 그룹은 껄끄럽다. 그들 무리엔 유미래 대위와 강태현 중위가 있다. 둘 모두 상당한 강자다. 친분을 다질 필요는 없으나 적대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다른 그룹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터인데, 적어도 며칠은 걸릴 터였다.


물론 습격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기도 했고.


"강제성 창."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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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 추가 강제성 발현!]


새로이 등장한 지형은 저마다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서 있는 이곳은 [원소의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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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숲]


분류 : 자연 던전


지형 효과

순수 원소의 힘 증폭 2단계

순수 원소 외 다른 속성 마력의 소모량 증가 1단계

────────────────────────

목표 : 숲의 주인을 만나세요.


제한 시간 : 48일


실패 시 : 추방


보상 : 상인 이용권, 업적에 따라 보상 등급 조정 및 추가 보상


[완료]


추신 : 각 지형마다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비밀을 해결하고 특별 보상을 획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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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추가 강제성은 완료되었다. 보상은 늘 그랬듯 제한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지급되겠지만 상관없다. 메인은 실패 페널티를 받지 않는 것이니까.


나는 곧장 이그렌시아의 레어로 향했다.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레어의 앞에서 그녀가 준 풀피리를 불었다.


피이이~


청명한 음이 울린다. 듣기 좋은 음색이다.


"무슨 일이세요. 생존자님?"


레어의 입구에 그녀가 나타났다.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방을 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불렀으니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부탁이 있다.."


"무엇을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나가는 길을 알려주었으면 한다."


그러자 이그렌시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밖이요? 설마 심처 밖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내보내 드릴 수는 있지만... 어째서요? 지금 숲속은 위험해요."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이그렌시아는 어울리지 않게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보니 이유를 듣지 못하였네요. 왜 그러셨던 거죠?"


그녀는 내가 숲에 혼란을 가져왔음을 안다. 숲의 주인이니까. 다만,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프로메테우스도 거기까진 말하지 않은 모양.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으나 솔직하게 답했다.


"난 인간이 싫다. 그래서 가능한 모두, 이 숲의 인간을 숲 밖으로 추방시킬 생각이다."


나는 강제성창을 켜 추가 강제성에 실패 패널티 부분을 가리켰다.


"본래는 일을 더 크게 벌일 생각이었다. 추가 강제성의 목표인 숲의 주인, 너와 생존자들이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지. 너에게로 향하는 다리가 있다면 다리를 부쉈을 것이고, 동굴 안에 있다면 동굴을 무너뜨렸을 것이며 집단을 반목시켜 와해시켜 개인으로 만들고, 식량을 불살라 생존 외의 다른 가치를 파괴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


이그렌시아는 가만히 들었다.


"나는 다른 통로를 모조리 클리어 할 생각이다."


중앙을 제외한 모든 통로는 오직 한 번만 열린다. 그마저도 반나절이면 닫혀버린다.


즉, 남은 세 곳의 통로를 클리어한다면 이곳으로 향하는 이들의 수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향하는 아름다운 금안을 들여다본다.


투명하고, 맑다. 신비와 이지로 빛나는 눈동자. 나는 그것을 새기며 말했다.


"목표를 잃은 무리는 쉽게 와해된다. 곧 생존자들은 추가 강제성의 클리어를 포기하고 숲 밖으로 나가거나 생존에 초첨을 맞추어 시간을 보내겠지. 너의 박애주의에도 어긋나지 않다. 나의 목적을 가장 적은 피해로 이루는 방법이다."


잠자코 듣던 이그렌시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었다.


"...생존자님은 역시 친절하시군요."


나는 즉답했다.


"나는 친절하지 않다."


나의 행동은 끝없는 이기심과 그에 반발된 자기혐오의 원리로 움직인다.


"아뇨. 친절하세요. 제가 슬퍼할까 봐 방법을 바꾸셨잖아요."


"크나큰 착각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일 뿐이야."


이그렌시아의 눈에 슬픔이 깃든다.


"더 힘든 방법이죠. 한번 나가시면 마음대로 다시 들어오실 수 없어요. 또다시 시련을 완수하셔야 하죠. 숲의 시련은 그 어떤 것도 절대 쉽지 않아요. 자칫하면 돌아오지 못하실 수도 있어요."


"모든 시련을 끝내러 가는 것이다. 그졍도 어려움조차 감수 못할까."


나는 이그렌시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그렌시아. 너는 어째서 도우미가 되었지?"


"네?"


갑작스런 물음에 또다시 그녀의 눈이 커진다.


"너는 분명 초월의 벽을 넘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을 봉인한 채 고작 숲 하나에 갇혀 숲의 주인이란 역할극에 어울리고 있지."


지금의 그녀는 그녀가 창조한 용아병보다도 약하다. 용아병이 초월 직전의 강함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지. 도우미로 활동하기 위해 제약을 짊어졌다 추측하는 것이 타당하다.


간간히 힘을 발휘할 때면 마치 허락을 구하듯 목걸이에서 마력을 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마저도 제한이 있다. 초월자이기에 가능한 초월적인 능력은 모조리 봉인되었다. 지금의 그녀는 단순히 친절하고 특별한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만약 지금처럼 용아병이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은신이란 분야의 경지에 오른 상위권 랭커'가 급습한다면 힘을 끌어낼 틈도 없이 살해당할 것이다.


초월자란 본디 거대한 존재다. 물리적인 의미가 아닌, 존재로서의 거대함이다. 용이 작은 개울에 답답함을 느끼듯 자신을 가둔 이 숲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용이 있어야 할 곳은 드넓은 창공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불만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강제성 속에서는 많은 생명이 덧없이 사라진다.


인간의 칼에, 괴물의 이빨에, 야수의 발톱에─ 인간이, 괴물이, 야수가 살해당한다. 이는 분명 그녀에게 큰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이그렌시아는 모든 생명을 단지 생명이란 이유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관리자 혹은 '지배자'란 인물과 계약 때문일 터.


나는 한나절 동안의 산책, 그 속에서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주로 그녀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순수하고 친절하며 이타적이고 평등하다. 여기서 평등이란, 자기자신과 만물을 동일한 무게로 여김을 의미한다. 약간의 이기심 없이, 아주 조금의 자기애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한다.


그녀의 관점에서 강제성 한 가운데에 들어와 도우미를 자처하는 일은 분명 괴로운 일일 것이었다.


"아마도 피치 못할 사정. 너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일신의 영달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결정이었겠지."


분명 누군가를 위한 헌신, 혹은 대의를 위한 조력의 일환이었으리라.


그녀와 내가 다르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억지로 동일시 하려고 하지 마라. 나는 너완 다르다. 누군가를 위해 손을 묶지 않으며 누군가 나를 가둔다면 나를 구속하는 우리를 부수기 위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 만약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목에 감긴 목줄이라도 느슨하게 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칠 거다."


나의 반골기질적 사상이 담긴 날카로운 문장.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는 고요했다. 새벽 평야에 드리운 고요함, 잔잔한 파도 위에 드리워진 낚시대처럼 평화롭다.


"나를 가두는 우리는 강제성이다. 작금의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부술 수 있을 리 없지. 그러니 이것은 몸부림이다."


범람하는 강물처럼 요동치는 세상 속에 나만의 조용한 낚시터를 만들어 내는 것.


내가 이 숲에 뛰어든 이유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나는 이 숲을 나의 거점으로 삼을 생각이다. 나의 영역에 인간은 불필요하다. 그런고로, 모두를 추방시킬 것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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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나는 너완 다르다 22.07.30 50 1 21쪽
57 57. 22.07.26 50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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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 짱돌이나 맞아라 22.07.11 56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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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 원소의 숲 22.06.16 81 0 12쪽
43 43. 22.06.16 7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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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 언제나와 같다 22.06.05 104 2 21쪽
38 38. +2 22.06.04 106 1 19쪽
37 37. 22.06.03 100 1 21쪽
36 36. 밖으로 +2 22.06.02 104 0 13쪽
35 35. 파멸 22.06.01 106 4 14쪽
34 34. 학살에 맞서는 이들 22.05.31 112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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